메뉴

고난을 기쁨으로 바꾼 신앙

사람들은 길가에 아무렇게나 피어있는 민들레를 천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민들레가 짓밟히고 또 짓밟히며 자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민들레는 그렇게 짓밟히는 가운데서도 자라고 또 자라 결국은 황금빛 꽃을 피우고야 맙니다.
이 민들레 꽃을 보고 인생을 큰 승리로 이끈 세계적인 한국 사람이 있으니 그가 우장춘(禹長春) 박사입니다. 그는 여섯 살 때 아버지를 잃고 일본 도쿄의 한 고아원에서 불우하게 자란 한국의 가련한 소년이었습니다. 일본인으로부터 ‘조센징’이라고 멸시와 천대를 한 몸에 받으면서 민들레처럼 짓밟히며 자랐지만 어린 소년 우장춘은 책상 앞에 다음과 같이 써 붙이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짓밟히면서도 피어나는 길가의 민들레’ 드디어 그는 일본의 최고 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하고 한 번 심어 두 번 거두는 획기적인 농사법을 연구함으로써 세계적인 육종학의 권위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낙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답답한 일을 당할지라도 낙심하지 맙시다.
오늘날 사람들은 크고 작은 곤경에 허덕이는 힘겨운 존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질병, 실패, 이혼, 신체장애, 고독, 죽음 등이 사람들의 삶 속에 파고듭니다. ‘장애 때문에….’라고 하면서 이 세상 사람들은 흔히 신체적으로 결함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다 장애자입니다. 왜냐하면 완전무결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육체적인 장애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기능, 즉 간이나 위장 등의 장애, 정신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의외로 많습니다.
어떤 사람도 고난의 짐에서 제외된 사람은 없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운명적으로 고난의 짐을 지고 태어난 사람, 살다가 고난을 당하는 사람, 어떤 존재도 다 고난의 존재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몸에 가시가 있었는데, 이 가시는 너무도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는 이 병을 낫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는데, “바울아!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12:9)
육신의 질병이 약하게 만드는 줄 알았던 바울은 그러나 그 약함이 오히려 강하게 만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육체의 가시, 즉 육체의 약함 때문에 그는 더 큰 능력을 받게 된 것입니다.


1. 고난의 긍정성
우리 인생길에서 수 없이 닥쳐오는 고난의 실체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인생의 고난을 극복하기 위해 기도했으며, 하나님은 그 고난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알아야 합니다. 장애를 제거하는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장애를 통하여 더 큰 일을 이루시기도 하십니다. 그러므로 장애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인생은 저마다 가시가 있습니다. 여러분 가정에도 어떤 가시가 있을 것입니다. 자식을 통해서 오는 가시라든지 남편을 통해서 오는 가시, 경제적인 가시, 질병의 가시 등 저마다의 가시가 있을 터인데, 이 가시가 뽑아지면 다행이거니와 만약 안 뽑아지는 가시라면 그 가시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건강해야만 가치가 있지 병들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성공하면 가치가 있고 실패하면 가치가 없는 줄로 생각합니다. 건강할 때는 상대적인 가치관으로 삽니다. 즉 자신을 상대와 비교하면서 그 가치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병들었을 때는 상대가치, 즉 비교가치가 아니라 절대가치관으로 생을 체험하게 됩니다. 가진 것과 가지지 못한 것, 배운 것과 배우지 못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인생의 사는 목적이 무엇인가’하는 절대적인 자기 존재의 가치를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건강할 때는 외적인 가치관에 의해 뛰던 사람이 병들었을 때는 내적인 가치관으로 방향전환이 이루어집니다. 병들면 남보다 앞서가는 데서 가치를 찾는 것이 아니라, 남보다 달라짐으로 자신의 인생길을 찾게 됩니다.
병과 시련 속에서 더 위대한 생을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서울에 있는 모병원의 원장은 학창시절부터 주일학교와 성가대등을 통해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병원경영이 잘되자,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교회를 자꾸 빠지게 되고 결국은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그의 친구 중에 목회를 하시는 목사님이 몇 번이나 충고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는 많은 재산을 모으고 학계에서도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즈음 그의 건강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진찰결과 암이라고 판명되었지만, 그는 자신이 의사라는 자신감에 약을 쓰고 치료하면 얼마든지 건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밤 친구 목사를 급히 부릅니다. “여보게, 나를 위해 기도해 주게, 나를 제발 살려주게”, “여보게 친구, 나를 보고 살려달라고 하지 말고 예수님을 찾게나. 예수님의 손을 붙들고 그분께 부탁해 보게나.” 그 의사는 40대의 젊은 나이로 숱한 재산을 모으고 명예를 얻었지만,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돈과 명예를 위해서 부지런히 뛰어다녔으나, 아쉽고 원통한 마음에 눈도 감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의사의 인생 속에서 무엇을 느끼십니까? 우리는 신비한 창조물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인데, 그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면 끝까지 하나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앙생활입니다.


2. 시련 중에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님의 사람에게 한결같이 임하십니다. 건강할 때나 병들었을 때, 성공할 때나 실패할 때도 언제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고난 속에서도 끝까지 감사를 잊지 않는 자에게 고난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시는 하나님을 기억합니다. 신앙을 가진 자는 현재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이 장차 나타날 그리스도의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믿음을 가진 자는 운명에 자신을 맡기지 않습니다. 고난에 힘없이 무릎을 꿇는 약한 인생을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고난도 주셨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시련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보내 주셨으며,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피로 우리를 구원시켜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한 일을 위하여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선한 일을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은 축복이며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받습니다. 우리 민족은 고난의 역사의 겪으면서 강인한 체질이 되었습니다. 고난의 환경 속에서 탁월한 재능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인도의 시인 타고르(Rabindranath Tagore)는 우리나라를 ‘동방의 등불’이라 극찬했고, 예일대학의 폴 케네디(Paul Michael Kennedy)교수는 21세기 동아시아의 중심역할을 할 나라로 우리나라를 꼽았습니다.
지난날 우리 민족에게는 시련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36년간의 일제의 압박 속에서 우리 민족의 시야가 넓어져 일본, 만주, 러시아, 중국의 하얼빈, 상하이, 하와이, 유럽까지 보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미국으로 이민을 가고, 중동에서 노동자로 일하기도 하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브라질, 아르헨티나에 농업이민을 갔습니다. 우리 민족이 잠에서 깨어 잠재력을 키우고 개척정신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시련을 통해 이루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던 것입니다.


위기, 문제라는 영어 단어 ‘crisis’는 ‘chance’와 ‘risk’가 붙어 있습니다. 위기 때 기회가 옵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찬스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이 정체되고 안주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어려운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이 왜 고난을 주셨는지 여쭈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이유를 알려 주십니다. 고난이 왔을 때 믿음이 성장하고 전진합니다. 성도의 고난은 손해가 아닙니다. 주님이 승리케 하십니다.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며 고난 중에 승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련, 가난, 아픔, 환난을 통해서 또 다른 새로운 길을 열어주십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위기에 강하고, 고난의 때에 명철을 발휘합니다. 이것이 고난이 주는 축복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그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십니다. 고난이 있고 힘이 든다면 기도로 그 장벽을 깨야 합니다. 고난 중에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이 지혜를 주시고 그 고난은 변하고 축복이 됨을 믿어야 합니다.


3. 고난속의 나의 사명
하나님은 풍성한 은혜를 가시 보자기에 싸 주시고, 신비한 축복을 고난의 보자기에 싸 주십니다. 이처럼 시련과 연단 속에 담겨진 하나님의 섭리를 아는 자만이 큰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고난까지도 주를 위해 100% 쓰여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믿음이 있고 이런 믿음의 연단을 통과한 자에게 가시를 축복의 면류관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주여!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행22:10). 이 말은 바울 사도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제일 먼저 부르짖은 외침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말입니까? 바울 사도가 실망과 불행을 모르고 살았던 것은 그의 환경이 좋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할 일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경우든 어떤 자리에서든 우리는 자기의 할 일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그런 사람을 기뻐하시며, 그런 사람을 붙들고 일하십니다. 주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는 분입니다.


주님은 큰 일 뿐만 아니라 작은 일이라도 옥합을 깨뜨리는 그 눈물과 믿음의 향기를 받으십니다. 하나님은 여기에서 기적을 이루어 역사를 창조해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 언제나 주님과 함께 하는 믿음으로 더 좋은 미래를 바라보면서 어떤 고난과 역경이 와도 실망하지 않고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신앙인은 불행이 와도 낙심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런 믿음 속에서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베드로는 지쳐 있었습니다. 밤새도록 헛 그물만 치느라 피곤이 쌓였고, 이제 그물을 씻고 집에 돌아가 지친 몸을 쉬어야 했습니다. 이때 예수께서 자신의 배에 타시고자 했습니다. 그리고는 생업과 관계도 없는 따분한 천국 이야기만 하십니다. 배도 고프고 지친 몸이라 베드로는 듣기도 싫고 기분도 내키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지시하시는 말씀에 순종하여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집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의 비어 있던 그물, 실패의 그물, 낭패의 그물이 풍성한 축복의 그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루터(Martin Ruther) 이후 직업을 ‘vocation’이라 부르는 것은 직업이 하나님의 일을 위해 불러서(라틴어-vocare) 세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부르신 곳에서 직장생활을 하기 때문에 신앙인의 본직은 선교사입니다. 선교의 사명을 위해 직장에 나를 보내신 것이며, 돈을 버는 것은 부업이고 내 본업은 선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난과 시련이 있어도 순종하며 복음의 진보를 위한 나의 사명에 충성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이 시간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여러분들을 통해 역사를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가장 어렵고 힘든 처지에 있으십니까? 고난 중에 기적을 주시는 나의 주님을 꼭 의지 하십시오. 새벽! 가장 춥고 어두울 때가 동트기 직전입니다.
It is always darkest just before dawn.
주여! 하늘의 지혜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고흥식 목사 영통영락교회



총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