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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에 나타난 구원 신학의 전개-3

김선배 교수

사도행전은 ‘도’라는 용어에 비유적으로 구원의 길에 들어가는 통로의 개념을 내포시킨다<주의 도(18:25); 하나님의 도(18:26); 이 도(19:9: 하나님 나라-19:8; 19:23: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19:20; 22:4, 14, 22). cf. 2:28(생명의 길); 13:10(바른 길); 14:16(자기들의 길); 구원의 길(16:17)>. 물리적으로 ‘길’을 의미하는 ‘도’는 비유적인 표현이다. 특히 이 용어는 헬라-로마 문화권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사용된다. 바울의 증언도 이러한 상황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22:4; 24:14). 바울은 총독 벨릭스 앞에서 행한 변호에서 ‘도’가 무엇인지 구체적인 진술을 한다. 이 장면에서 반복되는 ‘도’는 바울의 강론을 통해서 ‘의인과 악인의 부활’(24:15)과 ‘죽은 자의 부활’(24:21)을 비롯해 ‘의와 절제와 장차 올 심판’에 관한 내용임을 알 수 있다(24:25). 이 바울의 강론은 구원 이후의 결과를 함축한다.


사도행전에서 ‘하나님의 뜻’은 매우 드물게 사용된다<하나님의 정하신 뜻(2:23); 하나님의 권능과 뜻(4:28); 하나님의 뜻(13:36; 20:27). cf. 이단이라 하는 도(24:14)>. 이 용어는 바울이 에베소의 장로들에게 행한 고별 설교에서 등장한다(20:27). 바울은 그의 사역에 대한 종결의 의미로 ‘하나님의 뜻’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개종을 비롯한 사명 전체를 귀결하는 복합적인 의미이다. 이러한 바울의 고백 전에 등장하는 20장 25절의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는 내용 속에 함축되어 있듯이, ‘하나님의 뜻’은 어떤 특정한 사건이나 진술보다는 바울의 일생의 전 과정을 포함하는 사명 수행에 대한 충성의 표현인 것이다.


사도행전에서 ‘복음’(또는 ‘복음을 전하다’)은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가진 ‘복음’으로는 사용되지 않는다. 사도행전은 이 용어들을 구원의 실체를 내포하는 대표적인 어휘로 사용하지 않으며 단지 수식하는 ‘예수’나 또는 구절의 맥락에 의해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즉, 복음은 구원의 소식의 성격을 밝혀주는 역할을 한다(8:35; 16:10). 사도행전은, 이 용어에 대한 해석의 성격으로 예수가 복음 자체이며(8:35),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을 예수를 전하는 사명과 관련시킨다(16:10). 이 용어는 그 개념 속에 예수를 함축하면서 동시에 그 복음이 ‘말씀’임을 전제하기도 한다(16:10; cf. 16:6). ‘복음’은 이 용어 자체의 의미(좋은 소식) 속에 예수의 사회적인 의미를 담아 전달한다.


사도행전은 복음서의 ‘하나님 나라’ 사상을 계승하는 흐름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지상의 왕국과 구별되는 새로운 영역으로 소개한다. 제도화 되는 교회의 상황을 보고하는 사도행전은 하나님 나라와 비교되는 새로운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준다. 복음서에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던 예수는 사도행전에서는 자신이 하나님 나라로서 선포의 대상이 되며 이 선포는 교회라는 새로운 공동체를 통해서 수행된다<Craig A. Evans, From Jesus to the Church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2014), 38. 물론 Craig A. Evans는 ‘하나님 나라’ 개념 속에는 이미 새로운 공동체의 씨앗이 예수의 부활 후 교회로 발전했다고 전제한다: Ibid., 38-47.>. 그렇지만 사도행전은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에 대한 부연 설명이나 구체적인 형성을 보여주지 않는다.


하나님 나라는 제자들의 오해에 기인한 ‘이스라엘 나라 회복’(1:6)과 같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나라의 형성과 관련이 없으며<‘나라’로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오해하고 기대하던 제자들은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때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라고 예수를 환영하던 자들이다: G. E. Ladd, ?신약신학?, 이한수, 신성종 역, 개정증보판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1), 414.>, 단지 예수와 제자들의 선포 속에 그 개념이 포함되어 제시된다.


베드로와 바울의 신학적 상관성이 복음서의 예수와 사도행전의 성령을 연결시키듯이<김선배, “사도행전에 나타난 베드로와 바울의 신학적 상관성,” ?복음과 실천?, 46집 (2010 가을): 35-56.>, ‘하나님 나라’는 신학적으로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동일한 사상의 흐름으로 이어준다. ‘하나님 나라’ 선포에서 ‘그리스도의 교회’의 설립으로 전환되는 과정 속에서 예수의 부재는 제자들에게 당혹감을 주었고, 이 예수의 부재는 새로운 리더십의 필요와 기대를 발생시켰을 것이다<Evans, From Jesus to the Church, 18-58. Evans는 리더십의 부재는 예수의 형제 야고보에 의해서 보완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는 예루살렘교회와 관련한 것이며, 사도행전의 전체 구조 속에서 나사렛 예수의 부재를 확인시키는 예수의 승천 기사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와 리더십의 출현을 선언하는 기능을 한다: 김선배,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침례’의 신학적 의미,” ?복음과 실천?, 45 (2010 봄): 39-42.>. 물론 이 리더십은 나사렛 예수에서 성령으로 전환된다. 이 리더십의 부재와 계승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물질적으로 존재하는 영역으로서 보다는 예수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삶의 형태를 내포하는 개념으로 선포된다.
‘하나님 나라’와 관련된 ‘예수’에 대한 부연 설명이나 해석 대신에 ‘하나님 나라’는 예수와 동등한 개념으로 선포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바로 예수의 현존을 영속시키는 성령을 통해서 ‘예수’의 영역 속으로 들어가는 실체인 것이다.


        
2. 신학화된 메시지
‘회개’는 베드로의 구원의 선포에서 처음에 등장하는 권고적 용어로 사용된다(2:38). 특히 복음서에서 이 용어는 예수의 공생애와 더불어 시대의 전환을 선포할 때 그 시대 속에 들어오는 새로운 통로를 의미한다(막 1:15,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베드로는 이 용어를 이방인 고넬료의 구원을 설명하면서 반복하여 사용한다(11:18). 베드로와 고넬료의 동일한 성령 체험 후에 사용된 이러한 반복은 두 사건을 같은 맥락 속으로 포함시킬 뿐만 아니라 회개가 무엇인지 그 실체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베드로의 선포에서 등장하는 ‘회개’는 이와 연계되는 다른 구원론적 용어들에 의해 의미가 분명하게 전달되는 특징을 갖는다(2:38,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순차적인 사건처럼 배열된 2장 38절의 ‘회개-침례-죄사함-성령을 선물로 받음’은<이 배열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성령을 선물로 받음’은 번역상의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즉, ‘성령을 선물’과 ‘성령의 선물’이라는 두 가지 표현 사이의 문제이다. 일반적으로 ‘성령을 선물’이라는 표현이 폭넓은 지지를 받는다.

그 이유는 명사인 ‘성령’은 목적격 소유격이며 이 사건에 대한 베드로의 부연 설명 역시 이 해석을 지지하기 때문이다(2:17, 33; 11:15-17). 또한 “성령의”는 “보충적 속격”이며, 성령을 선물로 받는 것을 의미한다: Joseph A. Fitzmyer, The Acts of the Apostles, The Anchor Yale Bible, vol. 31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2010), 266. 이 어구에서 ‘선물’이 단수이면 성령 자체를 선물로 받는 것이며, 복수이면 성령이 주는 각종 은사(cf. 고전 12:11)를 의미한다는 F. F. Bruce의 주장은 적절하게 ‘성령을 선물’이라는 표현을 지지한다: F. F. Bruce, The Book of the Acts,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rpt. (Grand Rapids: Eerdmans, 1984), 77-8. 이 표현에 대한 추가 논의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김선배,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침례’의 신학적 의미,” ?복음과 실천?, 45 (2010 봄): 39-42.> 구원의 과정을 단계별로 제공하는 순서가 아니다.

이 구절에서 제시하는 요소들은 동시에 발생하는 입체적인 사건을 평면적으로 풀어서 표현하는 것이다. 즉, 이 과정은 하나의 동시적인 사건에 대한 순차적인 표현이며, 이 과정의 동시성은 회개의 실체가 무엇인지 보여주면서 회개와 구원의 관련성을 입증하는 기능을 한다<회개와 관련한 죄의 속성과 구원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Christoph Stenschke, “구원의 필요성,” ?복음의 증거: 사도행전신학?, I. H. Μarshall 편, 류근상 역 (서울: 크리스챤출판사, 2004), 171-4.>. 이와 같은 동시성은 바울이 행한 에베소 설교에서도 찾을 수 있다.

바울은 회개와 믿음을 평행으로 연결한다(20:21). 한 가지 사실에 대한 다른 표현인 회개와 믿음은 상호의 의미를 내포한, 이중의 의미를 담는 다른 표현방식이다(cf. 롬 5:9-10; 10:10). 베드로의 선포에 나타난 회개는 이어지는 표현들에 의해서 의미가 보강되어 구원의 의미를 밝혀주는 것이다. 이러한 순차적 표현을 통합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라고 지칭할 수 있다(15:11)<Ben Witherington III, The Acts of the Apostles (Grand Rapids: Eerdmans, 1998). 837.>.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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