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은 봉황(鳳凰)과 더불어 상상 속의 동물이지만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에서는 신비한 영력을 가진 존재로 기림 받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즐겨 사용하는 용과 관련된 어휘는 하나같이 길(吉)한 의미를 가졌다. 등용문(登龍門), 용왕(龍王), 용꿈, 용안(龍顔), 용상(龍床), 용포(龍袍)등이 있다.
용이, 이와 같이, 동양에서 추앙에 가까운 존중을 받는 것과는 달리, 서양에서는 고대로부터 악마의 상징으로 묘사됐다. 독일의 기사도 문학을 대표하는 대 서사시 <니벨룽의 반지>(Der Ring des Nibelungen)는 저주에 걸린 반지를 가지고 악행을 일삼는 용을 죽이고 반지를 되찾은 영웅 지그프리트의 무용담과 그의 비극적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며, 영국의 고전 서사시 <베어울프>( Beowulf)는 인간 희생제물을 요구하는 화룡(火龍)을 잡으려고 용의 동굴로 들어간 베어울프의 영웅적인 모험을 그린 이야기다.
필자가 용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최근 대통령을 탄핵이라는 막다른 골목까지 몰고 간 “최순실 게이트”와 용이 상관이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공개된 <미르·K스포츠> 로고에는 하늘로 비상하듯 몸을 비튼 용의 형상이 있었다. ‘미르’가 우리 옛말로 용을 뜻하기 때문에 그런가보다 했는데, 얼마 전에 한 TV채널이 공개한 국가정보원 로고에도 그와 꼭 같은 용이 들어 있었다. 지난 6월에 바꾸었다고 하는 새 로고에 무슨 이유로 기관의 성격과도 관련이 없어 보이는 용을 넣었을까. 최순실의 입김이 거기까지 미친 것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88올림픽 개·폐회식을 기획한 이어령 선생은 한국의 고유한 전통문화가 용 문화에 가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올림픽 기간 동안 용 이미지를 일체 사용하지 못하게 한 일도 있었는데….
그러면, 성경은 용을 어떻게 그리고 있는가?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창3:1),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 새…”(계12:7),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계12:9),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계20:2)
성경에서의 용은 마귀, 즉 사탄의 다른 이름이다. 마귀는 주어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용을 쓴다. 오늘의 한국사회는 베어울프와 지그프리트 같은 전사를 필요로 하는 위급한 역사의 경점에 있지 않은가.
목회자는 행여 허약한 온정주의에 빠져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곡해해서는 안 되며, 예언자로서의 냉철한 판단으로 주어진 양떼에게 정의로운 길을 제시해야 하겠다. 전통문화 속의 용은 하나의 상징으로 수용하는 바이지만, 영혼이 용에 사로잡힌 사람은 악마로 간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