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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있는 축도

“하늘 붓 가는대로”-82

평상시 잘 알고 있는 어떤 성도님이 굳이 자기가 모이는 모임에 한 번 참여해 달라는 간곡한 부탁에 못 이겨 내가 찾아간 곳이 서울 모처 모교회당이었다.

저녁 7시에 갖는 모임인지라 성도와 함께 부근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그 교회 1층 어린이 예배실로 갔다. 이 교회는 이 모임을 한 달에 한 번씩 어린이 예배실에 갖도록 허락해 줬기에 이들의 모임을 월 1회 여기서 꼭 정한 이날에 갖는다는 것이었다. 그 모임의 이름은 대한민국 대통령을 위한 OO모임이었다. 누구는 대통령을 위해서 기도 안하나? 어느 교회든 조국과 대통령을 위해 기도안하나? 왜 굳이 이들만이 유별스럽게 그런 기도를 하느냐고 이 모임에 들어가면서 느꼈던 감정이었다.


나는 이 모임의 이름이나 성격도 모른채 단지 평상시 잘 아는 지인 성도의 간곡한 부탁을 그냥 한 번 들어주자는 예의상에 취한 걸음걸이었다. 대중을 대충 헤아려 보니 10여 명에 불과한 작은 무리였다.

들어서자마자 순서지에 나의 이름 석 자가 축도라는 순서에 적혀 있었다. 그 지인이 주최 측에 미리 말했던 모양이다. 축도면 축도일 뿐 하면 되는 거지 뭐. 그런데 20가지 기도제목이 있는데 그 첫 번째가 “10계명을 국가, 민족발전의 기초로 삼는 대통령이 되게 하소서임을 발견하고 나는 거의 뒤로 넘어질뻔할 정도로 경악했다. 지금 어느 시대라고? 10계명 곧 율법, 즉 구약, 곧 그림과, 즉 죽은 문서, 곧 도말되어버린 의문, 그리고 십자가의 구속의 피, 곧 복음, 즉 은혜와 대립되는 계명으로 나라를 지키자는 이들의 신앙의 근본이 아직도 율법에 매인바 되고 복음에 캄캄한 사람들의 종교행위라는 나의 신학적 판단으로 대단한 거부반응이 나왔던 것이었다.


게다가 어떤 목사가 설교라고 하는데 에베소서 6:10~17을 읽어놓고는 이승만 대통령부터 이명박 대통령까지 인물업적을 소개하다가 다시 이북의 김일성 삼부자까지 설명하고 좌경 종북 반미나라여서는 안된다고 호소하며 울기까지 하는데 나는 애국심에 불감증환자인지 그냥 감정없이 눈물없이 그걸 설교라고 듣자하니 내가 왜 이 자리에 앉아 있나 싶었다. 나라위한 기도와 설교에 무슨 잔소리를 할까마는 설교는 설교여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모임의 이런 행사를 예배라 하는데에 더욱 괴로웠던 것이었다. 예배는 예배여야 하지 않느냐 말이다. 게다가 찬송을 인도한다는 어떤 여 목사의 옷차림이 연예인 복같고 광대놀이 여자의 그것 같아 밤거리의 여자의 그것같이 번쩍번쩍 현란해 눈이 어지러웠다.

부르는 찬송도 유행 가수처럼 올라가다가 꺾어 버리고 손발을 움직이는 모습이 꼭 시골 광대 놀이패의 노래 같아서 더 역겨웠다. 그녀가 만나자마자 입구에서 명함을 달라하기에 얼떨결에 줘놓고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문제는 나의 축도순서이다. 내가 굳이 이런 곳에서 축도를 할거냐 말거냐? 오늘 축도는 나의 결단에 걸린 스릴 넘치는 축도였다. 사회자에게 사양한다는 의사를 전하고 싶지만 예배가 진행 중이라 여기까지 온 것이다. 덕을 위해 축도하자. 그런데 이 모임에서 어떻게 무슨 내용의 축도를 할 것인가? 도저히 축복해 줄 수 없는 딱한 사람들의 모임인데, 그래서 나는 축도문을 아래와 같이 써서 축도를 했다.


악인과 선인에게 그 해를 비추시며 불의한 자와 의로운 자에게 비를 내리시는 하나님!(하나님은 그런 넓으신 하나님 아닙니까? 하는 나의 속셈) 이제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감화 감동하심이 이 가련한 무리와 조국 위에 영원히 함께 하실지어다

축도를 마치고 내려오는 나에게 아무도 왜 우리가 가련한 무리냐?”라고 질문하는 사람이 없어서 또 한 번 실망했다. 가련함을 가련함으로 모른다는 것이 가련함 아닌가? 복음을 모른 채 헤메는 모든 종교활동가들의 하는 운명이 가련하다는 것인데 말이다.

/水流(수류) 권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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