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 열린 간증 프로젝트『Amazing Grace』에 우리 교회 열한 명의 성도들이 출연했다. 게임 중독자, 마약 중독자, 알콜 중독자, 도박 중독자, 조직 폭력배, 우울증 환자, 안티 기독교, 심지어 자살 중독자까지…. 그들이 가지고 있던 문제는 다양했지만 그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오직 ‘부활의 복음’이었다.
그 어떤 것으로도 변화시킬 수 없었던 이들과 20여년을 함께 해 온 나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 있다. 그것은 ‘복음이면 다 된다’는 큰 확신이다. 복음은 로마서 1장 16절 말씀 같이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래서 복음은 이 세상 어떤 사람도 변화시킬 수 있으며 그 어떤 문제도 다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CBS 간증 프로젝트『Amazing Grace』에 나간 열한 명의 간증자들이 그 증거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나의 목회를 돌아보며, 과거에도 동일하게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선포했는데 ‘왜 지금과 같은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과연 어디에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첫째는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Nothing but Jonah`s sign) 없다’는 것을 강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마 12:39).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참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믿을 수 있게 하는 표적’을 요구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없다고 말씀하셨다(마 16:4). 나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1990년 교회 개척 초기부터 동일한 부활의 말씀을 그렇게 많이 선포했는데도 지금과 같은 역사가 왜 일어나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됐다.
‘부활’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과 나의 마음이 너무나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로 부활을 주시고(행 17:31), 그 부활 밖에는 없다고 말씀 하셨는데 나는 그렇지가 않았다. 나는 입술로는 지금과 동일한 ‘부활’을 선포했지만 나에게 있어 부활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여러 사건 중 하나였다. 그리고 성경을 많이 알아야 예수님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성도들과 함께 성경공부를 많이 했는데 ‘부활’을 그 과정 중 하나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부활을 부활절에나 설교하는 주제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으니 부활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요나의 표적 밖에는 없다’는 말씀을 통하여 부활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고 성령의 권능으로 부활을 선포할 때 놀라운 역사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말씀은 똑같은데 하나는 능력이 나타나고 또 다른 하나는 아무런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요나의 표적(부활) 밖에는 없다는 말씀(마 16:4)을 붙잡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됐다.
그렇다면 왜 부활의 표적 밖에 없는가? 그 이유에 대해서 지난 주 ‘왜 부활의 복음인가!’라는 칼럼에서도 말한 것 같이 부활은 예수님께서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확증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활이 없으면 우리의 믿음이 헛것이고, 우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고전 15:17). 이렇게 부활은 성경에 기록된 여러 사건 중 하나가 아니라 모든 것의 최고봉이며 기독교의 심장이다.
둘째는 하나님의 방법인 ‘성경대로(고전 15:3~4)’를 강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 신앙생활을 할 때 환상을 보고, 방언을 하고, 병든 자에게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고, 신비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너무나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체험들을 하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병고침, 은사, 방언, 환상, 기도응답 등 자신들이 경험한 체험들을 가지고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자신의 구원을 확신한다. 물론 나는 성령의 역사와 은사를 부정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러한 체험이 믿음의 근거가 되면 다시 병이 들어 병 고침을 받지 못하거나 하나님의 음성이 다시 들리지 않으면 하나님에 대한 근원적인 믿음까지 흔들린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어렵지 않게 해 놓으셨다. 나는 늘 성도들에게 아이큐가 가장 낮은 사람도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을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강조한다. 하나님의 방법은 ‘성경대로’ 믿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과 부활하신 것은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부활하신 것이다.
즉 예언을 성취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을 통해 예수님께서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부활할 것을 이미 기록해 놓으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그 예언된 메시아라고 말씀하시고, 성경대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성경대로 부활하신 것이다. 이렇게 ‘성경대로’ 구약의 모든 예언을 완벽히 성취하신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이신 것이다(사 9:6).
또한 예수님께서 ‘성경대로’ 부활하셨다면 성경의 모든 말씀은 일점일획이라도 없어지지 않고 반드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 확증이 되는 것이다(요 2:22). ‘성경대로!’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과 성경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을 갖게 된다. 이 확신은 주관적인 체험이 아닌,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갖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방법인 ‘성경대로’로 접근하게 되면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게 된다. 신비적이고 주관적인 체험에서 벗어나 ‘성경대로의 능력’이 공동체 가운데 임하면서 성도들이 이 땅에 살면서 하늘나라를 준비하는 자가 됐고,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의 생명보다 귀하다는 것을 실제로 고백하게 됐다(계 12:11). 셋째는 지금 하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신 만물의 통치자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엡 1:20~24).
우리가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부활을 통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셔서 지금 하늘나라 보좌 우편에 앉아계신 만물의 통치자라는 것을 확증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신앙생활이 십자가에만 머무르게 되면 모든 말씀을 내 힘으로 지켜보려고 애쓰게 되고 결국 신앙생활 자체가 힘들어진다. 또한 단순하게 부활 사건만을 강조하다 보면 십자가와 다른 사건들은 무시하는 오류에 빠지기도 한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도, 부활하신 분도, 그리고 승천하셔서 하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분도 모두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바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지금 보좌 우편에 앉아 이 땅을 통치하시는 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께 굴복하는 것이다. 굴복은 통치의 시작이며,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우리를 통치하신다. 이것이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나는 이 시대의 유일한 희망이 ‘부활의 복음’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부활의 복음’으로 모든 열방이 주께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김성로 목사 / 춘천한마음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