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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처한 이웃”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가진 것을 다 뺏기고 죽을 정도로 맞은 채 버려졌다. 이 사람은 신체적 폭력, 심리적 충격으로 곧 죽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한적하고 외진 길이었지만 마침 지나가던 사람들이 있어서 구조될 수도 있었건만 그들 또한 그를 버려두고 피해 가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한 사마리아인이 위기상황에 처한 이 사람을 안타깝게 여겨 신속히 응급조치를 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데려가 살 수 있었다(10:30~35).

 

위기’(crisis)의 사전적 정의는 위험한 고비나 시기를 일컫는다. ‘분리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어떤 판단이나 선택, 결정의 분기점 혹은 전환점에 있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위기 사건이나 상황 자체가 문제이지만 그 위험한 고비나 시간을 어떻게 지나는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위기는 흔히 개인적 혹은 상황적 요소에 의해 발생하게 된다. 길에서 강도만난 사람은 강도라는 상황적 요인에 의해 삶과 죽음의 위험한 고비 혹은 분기점에 이르렀던 것이다. 위기상황은 치명적인 심신의 문제나 정서적 외상 혹은 죽음에까지 이르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어떻게 위험한 고비나 시기를 통과하느냐에 따라, 큰 문제나 후유증 없이 혹은 그 부정적 여파를 최소화하며 회복될 수도 있다. 나아가 이를 계기로 새로운 변화와 성장의 기회로 전환시킬 수도 있다. 그래서 위기’(危機)험한 회라고도 한다.

 

2001911, 항공기 납치 자살 테러로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부상당하는 사상 초유의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그때 그 충격적인 위기의 순간에도 긴급재난구조단의 활동으로 많은 사람들이 신속하게 필요한 지원을 받고 심리적 안정을 얻을 수 있었다.

 

당시 뉴욕의 그라운드 제로주변 천막에서 위기지원상담을 한 상담사들이 한 말은 아 유 오케이(Are You Okay?“를 비롯한 몇 개의 단어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 위기의 현장에서 비명을 지르듯 두려움과 공포의 정서를 토해내며 울고 또 울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이제 괜찮아졌어요라고 말하며 일어날 수 있었다. 위기는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

 

예측하기 힘든 빠른 변화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그만큼 예측하기 어려운 위기에 직면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가족이나 친구, 혹은 동료들과의 관계적 위기, 건강상의 위기, 신체적 혹은 성적인 폭력의 위기, 경제적 위기, 커리어 위기 등이 예고 없이 발생할 수 있다. 학교의 위기, 교회의 위기, 기업체의 위기, 지진이나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의 위기, 국가부도의 위기, 전쟁의 위기 등 수많은 위기들이 언제 어떻게 불쑥 찾아올지 모를 일이다.

 

이러한 상황이 닥치면 사람들은 흔히 평상시와 같은 이성적 판단과 행동을 하지 못하고 심신의 충격과 그에 따른 트라우마로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된다. 위기의 순간에 신속하고도 적절한 위기상황 진단과 더불어 필요한 위기지원, 상담개입(intervention), 주위의 사려 깊은 돌봄 등이 있다면 피해와 고통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대체로 위기가 발생한 후 72시간 이내에 적절한 지원과 돌봄이 제공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장기적이고 만성적인 더 큰 상처와 후유증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기계문명은 더 발달하고 사람들은 더 안전한 삶을 위한 각종 제도와 장치들을 마련하지만 언제 어떻게 누구에게 어떤 위기상황이 닥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우리나라에도 각종 자연재해와 대형참사 뿐만 아니라 학교폭력, 성폭력, 흉악범죄, 살인, 자살 등 크고 작은 위기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위기에 처한 사람과 그 가족, 관계자들을 위한 위기대응체계나 심리적 지원 및 상담 등의 대책은 매우 미흡하거나 부재한 것이 사실이다. 대개의 경우, 위기에 처한 사람이나 가족이 개별적으로 위기상황을 수습하거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위기상황에 대한 정보와 지원체계의 부재, 미숙한 대처반응으로 더 심각한 위기상황에 직면하는 경우가 많다. 여리고 도상에서 거의 죽게 된 위기에 처한 사람의 경우 다행히 선한 사마리아인을 만나 너무 늦기 전에 긴급한 치료적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 전에 그를 발견한 제사장과 레위인이 더 일찍 강도만난 사람을 데려다 치료했더라면 그 사람의 상태는 덜 악화됐을 것이고 더 빨리 회복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폭력적 위기 상황의 신체적 후유증이나 정서적 외상의 영향 또한 훨씬 감소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오늘 강도만나 죽게 된 사람은 내일의 일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교회는, 지금 너무 자기일로 바빠서 혹은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무관심으로 인하여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부르심을 받았지만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며 추상적 담론이나 늘어놓는 것이 오늘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솔직히 자문(自問)해 볼 일이다. 예수님이 선한 사마리아인을 지칭하며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하신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이 성찰(省察)해 볼 일이다(10:37).

 

우리는 행동해야 한다. 우리 주변에 위기에 처한 이웃이 있는지 살펴보고 가서 필요한 지원과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각종 위기상황들에 대한 이해와 정보를 확보하고, 예방을 위한 사전 대책을 세워 교육과 훈련을 받고, 위기발생시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반대로 우리가 위기의 상황에 처한다면 그러한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개인과 가정, 교회와 기관, 지역 단체, 정부가 함께 위기지원네트웍을 구축하고 통합적인 위기지원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서로를 돌보고 지켜주는 일, 그것은 우리 모두의 사명(mission)이다. 함께 하면 할 수 있다.

Together We Go for It!

 

유재성 목사

침신대 상담심리학과

늘사랑교회협동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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