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믿음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확실한 기초가 필요하다. 그 반석이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다. 이는 갈라디아서의 구원론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관점에 기초한 기독론적인 내러티브이기 때문이다. 갈라디아서 3장의 아브라함의 복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방인에게로 흘러가고 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약속으로 표현됐지만,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되어진 사건이다.바울은 갈라디아서 2장 19절에서 “율법에 대하여 죽었으니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함이라” 고백함으로, 그리스도 예수로 인하여 믿는다고 했다. 창조주와 아브라함의 관계는 약속의 당사자가 될 수 없는 죄인이 그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인자가 되셨다는 이유를 설명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인생은 약속의 당사자가 되는 것이니 은혜로 말미암은 결과이다. 이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아들과 성부 하나님의 약속이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약속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들로 인도하고 있다. 3. 갈라디아서의 교회바울은 갈라디아서 2장 19절에 “율법으로 인하여 들춰진 죄는 인생이 자신의 윤리와 도덕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선포한다. 그러므로 “율법이 말하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Ⅶ. 목회자의 독서 계획을 위한 제안 목회자가 책을 읽는다는 것은 세상을 사랑하고, 사람을 폭넓게 이해하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차원 높은 의미가 있다. 또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삶의 걸음걸음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것과 함께 영적 성장과 성숙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책은 목회에 평생 친구가 될 수 있다. 좋은 책은 좋은 사람과 비슷한 점이 많다. 책은 무작정 많이 읽는 것보다는 한 권을 읽더라도 자신의 정보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닥치는 대로 읽는 것보다는 책 읽기의 궁극적인 비전과 나이별, 또는 주제별로 분명한 목표와 전략을 가질 때 효과가 크다고 말할 수 있다. 자기만의 독서법을 갖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위대한 업적을 이룬 사람들은 모두 읽기에 대한 자신만의 전략들을 가진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책을 읽는다고 만사가 형통되는 것은 아니다. 1. 목회자 독서 계획의 수립 목회자 독서 계획의 수립은 가장 먼저 꾸준하게 읽어야 할 책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 당장, 혹은 평생에 걸쳐 읽어야 할 책들을 선별한다는 것은 무척 의미 있는 일이다. 다음으로 마음에 닿는 좋은 책이 있다면 가까이 두고 연속해서 읽자는 뜻
“그러나 율법은 사람이 그것을 적법하게만 쓰면 선한 것임을 우리는 아노라 알 것은 이것이니 율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와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과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와 아버지를 죽이는 자와 어머니를 죽이는 자와 살인하는 자며”(딤전1:8~9) 허물 많은 인간 세계에 법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가히 상상 할 수 없는 사건, 사고들이 발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각국마다 그 나라에 합당한 법을 만들어 지키게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법은 크고 작은 단체나 모임에도 일반적으로 있으며 또한 그 법은 그 모임의 성격에 맞도록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학교에 맞는 ‘교칙’이 있고, 청년이 군에 입대 하게 되면 그 안에 ‘군법’이 있습니다. 그리고 회사에는 ‘사칙’ 과 각 동호회 안에도 ‘회칙’들이 있으며, 심지어 우리 목회자들의 모임 안에도 ‘규약’이 있지 않습니까? 법이 있으므로 말미암아 그 모임이 더욱 건강하게 되고 또한 바르게 세워 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저희 교회에서 성경 공부할 사람을 모집하게 되었는데, 화요일 오전 10시 30
2018년을 맞이하는 한국 침례교회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외부적으로 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 문제로 한반도에서 전쟁 위험이 커지고 있다. 사회적으로 한국은 심각한 저출산과 고령화의 문제를 안고 있다. 또한 교회는 다양한 이단들과 반기독교 단체들로 부터 거센 공격을 받고 있다. 기독교 내부적으로는 신학적 입장의 다원화로 동성애와 낙태, 종교인 납세 등과 같은 윤리적 이슈에 분명한 입장을 표현하는데 주저하며 가치관의 혼란을 경험하고 있다. 한국 침례교회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 성장했다. 하지만 성장의 과정 중 다양한 교단 배경을 가진 성도들이 침례교회에 들어오고 교단 정체성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이 충분하지 않아 침례교 정체성에 대한 혼동이 있다. 또한 교회 주일학교 인원이 감소하므로 다음세대가 새로운 선교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위험한 상황 가운데 있는 한국 침례교회가 어떻게 흐트러지지 않고 견고히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가? 교회가 영적으로 바르고 건강해야 위기를 이겨낼 힘을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 침례교회가 건강한 교회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미국의 워싱턴 DC에서 건강한 침례교회를 연구하고 실천하는 침례교
이스라엘 민족은 기원전 950년경 세 번째 왕 솔로몬의 죽음으로 국가적 위기를 맞게 된다. 이에 앞서, 북쪽의 몇 지파들은 사울이 죽은 후에 이미 다윗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울의 아들 왕자 이스보셋을 왕으로 추대했다. 그러나 이스보셋 정권은 오래 가지 못하고 곧 다윗의 군대에게 정복되고 말았다. 북쪽 지파들이 다윗을 거부한 이유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는 강하고 부유한 유다 지파 중심의 왕국이 자기들에 대해 차별정책을 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북쪽 지파들이 독립 왕국을 선포하도록 만든 분열의 직접적인 원인은 솔로몬이 죽은 후 나라를 이어 받은 왕자 르호보암의 어리석은 판단에 있었다. 르호보암이 대관식을 치루기 위해 관례에 따라 세겜에 올라갔을 때 솔로몬 치하에서 많은 세금과 강압적 통치에 시달렸던 북쪽 지파 대표들이 세겜으로 내려와서 르호보암을 만났다. 그들은 르호보암에게 앞으로 나라를 어떻게 통치할 것이지 물었다. 이와 같은 태도는 르호보암의 응답에 따라 유다에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이제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청년시절 군대에서 근무할 때다. 바로 위 고참 하나가 그렇게도 괴롭혀 너무 힘들고 어려워 각오를 하고 야간 근무를 마치고 모두 잠들어 있는 내무반에 들어가 군에서 사용하는 검을 빼어 들었다. 그리고 그 괴롭힘을 주던 고참 머리 위에 서서 검을 들어 '같이 죽자'라는 마음으로 손을 높이 들었다. 그 순간 그렇게도 괴롭히던 고참의 얼굴에 기도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고개를 가로 저으며 다시 손에 힘을 주면 새벽 네 시 반만 되시면 교회에 가시던 어머니의 얼굴이 보여 포기해야 했다. 그러기를 세 번 정도 됐을까, 그러다 보니 제대하게 되었고, 지금 이 자리에까지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그 옛날 분으로 글 하나 배우신 적이 없으셨지만 교회를 다니시며 성경을 읽으시고 찬송을 보시고 부르시는 모습에 형님들조차 “하나님이 계신지 잘 모르지만 우리 어머니 보니 계신 것이 확실하네.”고 하셨다. 절에 다니시다 예수님을 만나 교회에 다니시면서 한 겨울 새벽에 일어나 교회를 가실 때마다 찬물로 목욕하시고, 머리를 감으시고 가셨다. 신학교 학생시절이었지만 “어머님 그러다 큰일 나요. 감기 들면 어쩌시려고 그래요?” 말씀드리면 “어찌 하나님께 가
요한복음 1장 17절에서 요한사도님께서는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모세가 아니라 예수님을 의지하고 주님으로 말미암아 사는 사람입니다. 구약은 율법시대이며 신약은 은혜시대입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죄를 깨닫게 할망정(롬3:20) 죄를 용서하거나 구원을 주지는 못합니다. 만약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에 이를 수가 있다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지 않으셨겠습니다. 올 한 해를 살아갈 때에 우리는 무엇에 의해서 살 수 있습니까? 주님으로부터 오는 은혜가 아니면 누구도 진정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은 오직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오직 예수”, “오직 은혜”가 진정한 고백입니다. “오직 예수 뿐이네”라는 찬양처럼 우리를 살리는 것은 오직 예수, 오직 그분의 은혜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오직 주님의 은혜이면 족합니다. 주님의 은혜에 무엇이 더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주님의 은혜 안에는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바울사도가 “나의 다 된 것은 다 주님의 은혜라”(고전15:10)고 고백하신 것처럼 우리의 모든 것은 다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직 예수뿐이라고
먼 거리에서도 아름다운 이, 텅 빈 공간에서도 보이는 얼굴, 대답은 없으나 늘 들을 수 있고, 만질 순 없으나 늘 느껴지는 이, 눈 감으면 더 가까이 다가오는 이. 그는 누구일까? 읽는 이의 상상에 맡기며, 오늘은 아주 맘먹고 그에 대한 예찬이나 좀 해볼까 한다. 그는 오랜 세월에도 바래지 않는 빛이며, 지워지지 않는 글씨이다. 결코 오염되지 않는 순수, 결코 고갈되지 않는 자원, 결코 마르지 않는 샘, 가려지지 않는 영광, 결코 더러워지지 않는 의, 결코 깰 수 없는 평화, 결코 흔들리지 않는 안식, 결코 줄어들지 않는 기쁨, 결코 막히지 않는 지혜, 결코 상처나지 않는 아름다움, 결코 죽지 않는 생명, 결코 정복당하지 않는 요새,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이름이다. 그 무엇에도 당당하고, 그 어디에도 어울리며, 그 누구와도 친구가 되는 이. 진정 그는 모르는 것이 없고, 못하는 것이 없으며, 안 계신 곳이 없다. 모든 생명이 그에게서 났고, 모든 예술 또한 그에게서 났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그의 사랑은 다 기록할 수 없고, 만 입이 내게 있어도 그 입 다 가지고 그가 베푸신 은총은 다 찬송할 수 없다. 그는 우리가 바라볼 수 있는 것보
Ⅵ. 목회자 독서의 필요성 목회자에게 독서는 바른 방향과 확실한 목표와 건전한 사고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목회자로 시대적인 사명을 올바르게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적인 흐름을 읽어야 하듯, 시대적인 흐름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처럼 영적 지도자인 목회자가 독서를 해야 할 이유는 너무나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따라서 많은 책임감과 함께 자원하는 마음이 요구되는 것은 당연하다. 목회자는 책에서 자극을 받고 감동을 받으며 힘을 얻을 수 있는 위치에 그 누구보다도 앞서 있다. 책을 통해 발견하고 느끼는 지적 감동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희열을 동반한다. 책 하나 하나에 담겨있는 의미와 뜻을 헤아리고 알아가는 기쁨은 자연스럽게 독서가 얼마나 귀하고 중요한지를 알게 한다. 1. 목회자 독서의 유익 목회자에게 유익한 것들은 일일이 열거 할 수 없을 정도로 세상에 많이 있다. 그 중에서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면서 유익한 것들이 있다면 가장 먼저 교육이다. 목회자라면 누구나 교육을 받아야 하고, 교육을 통해 발전해야 한다. 일반적인 교육과 함께 목회자로서의 자격을 갖추기 위한 체계적이면서 전문적인 교육이 목회에
Ⅳ. 갈라디아서에 나타난 기독론적 측면의 구원 신약성경이 하나님 중심적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신약의 저자들은 구약성경이 하나님에 대해 알려주는 바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많은 부분을 신약이 표현하지 않거나 매우 적게 이야기하는 것은 당연하다. 신약성경에 그리스도가 충만하다는 사실이 하나님의 최고되심을 반박하거나 감소시키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 자신이라는 의미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말한다. 성경이 말하기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며 창세전에 하나님의 작정과 경륜을 따라 되어진 것이다(고전 2:7, 8)라고 했다. 그리고 성도의 삶 안에서 우리의 현실을 살펴보면, 현실은 예수는 부활하셨고 예수님의 부활하심 안에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새 시대가 시작됐으나 성도들의 승천적 부활은 아직 실현되지 않고 있다. 곧 “이미와 아직”이라는 종말론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갈라디아서에 나타난 기독론적 구원관이 이와 같은 구조 속에서 설명되고 있다. “죽음과 부활,” “이미와 아직” 그리고 최종적 열매로서의 그리스도의 형상이다. 1. 십자가와 부활 예수의 십자가를 통해 실현된 갈라디아서의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관을 “이미와 아직” 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