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엘 교회에 불신자가 들어오면? 불신자가 교회를 등록하면 새가족부에서 관리한다. 새가족부에서 정해준 새가족 멘토를 정하면 그 멘토가 새가족에게 관심을 가지고 교회에 정착하도록 돕는다. 봄학기와 가을학기에 시작되는 생명의 삶 성경공부에 권면해 성경공부를 하게 한다. 목장에서 전도된 영혼은 그 목장에 소속하게 하고 교회로 전도되어진 사람은 목장에 소개하여 목장 안에서 교제하게 한다. 1년이 지나면 목자와 의논하여 교회의 부서사역에 은사에 맞춰 봉사하도록 한다. 그래서 하나엘교회에 전도되어온 성도들을 향한 목표는 생명의 삶을 통해 신앙양육을 받고, 예배를 통하여 은혜를 체험하고, 목장을 통하여 교제를 경험하게 되고, 부서봉사를 통해 교회를 사랑하게 되고, 새생명축제 때에 주변에 있는 불신자를 교회에 전도하는 전도인으로 성장하게 하는 것이다. 등록 후 3년에서 5년이 지나면 이제 “새로운 삶”, “말씀의 삶”을 통하여 더욱 성숙한 단계의 성경공부를 하게 된다. 목장에서 성도들과의 친밀한 교제를 통하여 신앙을 보고 배우게 된다. 교회 안에서 책임있는 역할을 맡게 된다. 해외선교나 국내선교에 동참하고 하나님 나라를 함께 이뤄나간다. 이것이 하나엘 교회가 불신자를 전도
매번 태풍이 불 때마다 핸드폰의 문자가 경고를 알리기에 바쁘다. 얼마 전 몇 년 만에 몰아오는 강한 태풍 솔릭으로 특히 도서지역인 진도에 사는 주민으로서의 혜택(?)인 듯 연거 푸 문자를 받았다. 전국적으로 태풍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준비했다. 그리고 나라 열도를 관통하고 지나갈 태풍이 피해가 없이 잘 지나가기를 모두 애원했다. 작년 진도에 내려온 첫해에, 농사를 짓는 사람이나 바닷가 사람들은 태풍이 큰 피해없이 지나갔다며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비가 오지 않아 저수지가 마르고 물이 없어 많은 농가에서 농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섬 산속에 있는 저수지와 심지어 바다와 인접해 있는 댐마저 녹조로 뒤 덮였었다. 그리고 2년 만에 태풍 같은 태풍을 맞아들이는 기분은 딱히 감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수없는 안전 안내 문자를 받고도 무감각했고, 처음 맞은 제주도의 상황도 남의 이야기처럼 들었다. 그러나 태풍의 바람이 느껴지기 시작하며 무엇인가 다르다는 것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 먼 섬에 있는 교회들에게 전화를 했을 때 “아직 본 게임도 아닙니다”하는 소리를 들었고, 비바람은 몰아치기 시작했다. 저녁때쯤 되어 본격적인
어느 교회에서 주일 점심시간에 후식으로 수박을 먹게 됐다. 그런데 봉사자가 권사 두 명이 마주 앉은 식탁에 수박을 담은 접시를 중간에 놓지 않음으로 다툼이 생겼다. 고의적인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박 접시에서 좀 더 멀리 떨어진 권사가 자기를 우습게보고 무시한 처사라고 화를 내었다. 이에 다른 권사가 이런 것 가지고 화를 낸다고 나무라다가 서로 거칠은 말을 내뱉기까지 했다. 다른 성도들을 권면해주고 위로해줘야 할 직분자들의 양보와 배려가 전혀 없는 추태였다. 두 사람은 결국 담임 목사의 심방마저 거절하더니 다른 교회로 옮겨갔다. 그들은 70세가 넘었고, 수십 년간 교회당 문턱을 넘나들었다. 그러면서 빌립보서 2장 3절에서 4절 말씀을 여러 번 읽거나 설교도 들었을 줄 짐작이 됐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는 것이다. 그들이 이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생활화했더라면 수박 접시를 놓는 거리 문제로 부끄러운 언행을 삼가 했을 것이다. 오히려 상대편 가까이 밀어주고, 권하고, 섬겨주는 아름다운 미덕
요한복음서에서 “하나님의 아들” 칭호가 처음 사용된 것은 침례자 요한의 사역을 다룬 기사에서 침례자 요한 자신의 언급으로 제시된다(요 1:34). 요한복음서는 침례자 요한의 사역이 가장 많이 다뤄진 복음서라는 특징을 갖고 있기도 하다. 요한은 그의 복음서 서두에서부터 침례자 요한을 다룸으로써(요 1:5~8, 15), 침례자 요한과 예수 그리스도 사이의 긴밀한 관계성을 부각시킨다. 요한은 서두를 마치고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묘사를 시작하면서 먼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침례자 요한의 증언을 두 단락으로 제시한다. 첫째 단락에서(요 1:19~28)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침례자 요한의 증언은 자기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오실 길을 준비하는 소리이며(요 1:23) 또한 그의 침례 사역의 목적은 그리스도를 세상에 나타내기 위한 사역이라는 것으로 제시된다(요 1:26). 둘째 단락에서(요 1:29~34)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증언은 예수께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며(요 1:29) 또한 성령으로 침례를 베푸시는 분으로서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것이다(요 1:34). 세상 죄를 지고 가신 대속 제물로써의 하나님의 어린양과 성령으로 침례를 베
개교회주의의 잘못된 실천은 교회사역의 관심과 영역을 교회 내로만 국한하거나, 교인들의 활동 범위를 교회 내부에만 제한하는 것이다. 신앙생활은 실상 교회 내보다 교회 외부에서 더 많이 이뤄져야 한다. 교인들을 교회 내부에만 묶어두어서는 역동적인 하나님 나라의 역사가 일어나기 어렵다. 교인들의 빛과 소금 역할은 교회 밖에서 성취되어야 한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마 5:15)는 주 예수님의 말씀이 바로 이런 의미다. 구약성경은 공동체 안에서의 상호돌봄에 대해 마땅한 것으로 강조하고 있다: “너는 반드시 네 경내에 네 형제의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치라”(신 15:11). 또 신약성경도 영적인 공동체로서만이 아니라 물질적 공동체로서의 의미를 강조하면서 필요가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자발적으로 공유하면서 나누는 것에 대한 원리를 제시했다(행 2:44~46; 딤전 5:3~16). 진정한 공동체성은 주님의 은혜 안에서 함께 생명을 나누는 것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므로 봉사는 기독교 정신의 핵심이며 신앙 실천의 중요한 요소이다. 침례교는 역사적으로 다양한 스펙트럼
소그룹 사역국 교회관리부, 미디어부, 새가족부, 봉사부, 선교나눔부, 시설관리부, 식당봉사부, 예배부, 재정부, 전도부, 주차관리부, 차량부로 구성되며 교회의 부흥과 영성, 선교적 사명을 위한 사역 1) 교회관리부 교회 전반적인 환경관리, 분리수거 등을 섬기는 사역 주일예배 후 교회마당 및 주변 환경정리 쓰레기분리 수거 및 버리기 2) 미디어부 예배 시 방송실 운영, 홈페이지 관리, 컴퓨터의 유지 보수 등을 섬기는 사역 교회 홈페이지 어플 제작, 교회네트워크 개설, 예배 및 행사, 각 부 서의 주일 모습 등을 촬영하여 홈페이지업로드 시설 장비확충, 캠페인 활동(격월) 3) 새가족부 한 영혼을 소중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따르는데 헌신한 사람들의 모임으로, 새가족을 위한 친절한 안내와 등록을 도우며, 원활한 예배참여를 위해 돕는 사역 4) 선교나눔부 선교헌금의 관리 및 각 선교지와 교회가 유기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사역 선교지 탐방 및 현지 사역자 세미나 등을 통한 선교지 새로운 동력원 제공 및 나눔을 통해 주님의 사랑을 전함 5) 시설관리부 교회각종행사 및 전반적인 시설관리, 설치 및 제작 사역 배수관 정리, 에어컨 관리, 월동 준비 및 온풍
평신도 사역은 전신자제사장직분 교리의 기초 위에서 이뤄진다. 전신자제사장직분 교리란 모든 신자가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신자가 각자에게 주어진 은사를 사용함으로 특별한 사역을 담당함으로써 책임성 있는 사역자가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모든 교회회원에게 사역적 소명이 있음을 깨닫고, 모두가 자신의 사역을 인식하고, 자신의 사역을 수행할 기회를 제공하고 실제로 사역하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이러한 전교인사역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먼저 제자도의 확립이 필요하다. 책임성 있는 교인이 되지 않으면 전교인 사역이 불가능하다. 책임성 있는 교인이 되기 위해서는 제자도 확립이 요구된다. 제자도란 한 사람의 교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섬기면서 교회를 통한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사는 사람에게 갖춰져 있어야 할 삶의 방식이며, 제자로 훈련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기본적인 생활을 훈련하며, 교회의 건전한 교인으로서의 사명을 다하는 성도로 양육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자훈련의 내용은 개인경건생활부터 시작해서 가정생활, 교회생활, 학교생활, 직정생활, 사회생활 등 삶의 전반에 걸쳐
첫째, 매뉴얼을 계속 데이트 베이스화해야 한다. 작년에 시행한 전도 프로그램 매뉴얼을 보관했다가 다음해에 프로그램을 시행할 때에 그것을 기초로 보완할 것은 보완하고 뺄 것은 빼서 사역 시행 매뉴얼을 조금씩 다듬는다. 이미 프로그램을 진행했기에 경험이 있으니 두 번째는 조금 더 쉽게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다. 몇 번의 경험이 쌓이게 되면 본인의 교회의 상황과 여건에 맞는 프로그램으로 정착되고 이렇게 5년 정도 꾸준히 진행하다 보면 어느새 본인 교회 맞춤 프로그램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제 열매를 경험하게 된다. 어떤 프로그램도 처음부터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자료를 보관하고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성도들도 이제 경험이 있어 두 번째는 훨씬 더 잘 봉사하게 된다. 둘째, 사역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집중해 작은 열매를 맺도록 해야 한다. 어떤 프로그램도 작은 성공이 중요하다. 그래야 다음에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동력을 얻을 수 있다. 어떤 행사를 실패하면 그 다음에는 성도들의 동력을 만들기 어렵다. 그래서 전도 프로그램을 계획하면 1명이라도 결실을 맛 볼 수 있도록 사전에 준비를 잘해야 한다. 그래서 교회의 형편에 힘겨운 행
“일요일 교회요, 토요일 교회요?” 진도에서 전도할 때 사람들에게 듣는 말이다. 진도에는 대부분 마을마다 예배당이 있다. 개신교회와 함께 제칠일 안식일 재림교회가 섞여 있다. 언제부터인가 믿지 않는 지역 주민들의 눈에는 다른 두 교회를 설명하기 어려우니 부르기 쉽게 토요일에 모이는 교회와 일요일에 모이는 교회, 토요일 교회와 일요일 교회로 부르게 된 것 같다. 믿지 않는 사람들의 눈에는 두 교회가 서로 자기가 옳다고 티격태격 하는 모습이 보기 좋을 리 없다. 그리고 그것이나 저것이나 똑 같다고 보여지는 것이다. 다만 토요일에 가는 것과 일요일에 가는 것 차이라고 생각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진도에 살면서 대부분 식당이나 심지어 숙박시설에 들어가도 민속공연을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있다. 지역의 특색을 살려 민속 공연을 하고 즐기는 문화를 홍보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포스터마다 “굿 보러 오세요”라는 글이 들어 있다. 지역 문화라고 생각해서 아무런 생각 없이 사용 되고 있는 말은 마을마다 자리잡고 있는 교회의 영적 영향을 묶고 있는 듯 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것을 모르니 안타깝다. 토요일에 모이니 토요일 교회고 일요일에 모이니 일요일 교회라는 말도 ‘그것이
여행을 하거나 행사가 있어서 숙박을 다른 사람들과 합숙해야 될 때가 있는데 쉽게 수면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꽤나 부럽다. 어떤 사람들은 머리를 베개에 얹으면 5분도 안되어 잠든다고 하니 그것도 복이라고까지 생각이 되어진다. 나의 경우엔 잠자리를 옮겼을 땐 잠들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다보니 먼저 잠든 사람들의 작은 코골이 소리나, 큰 코골이 소리도 다 들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거의 수면이 어려워져 힘든 밤을 보내기가 일쑤였다. 언젠가부터 아내가 코골이를 하기 시작했다. 아내는 뚱뚱한 편도 아니고 과체중도 아닌데 하는 것을 보면 하루하루의 삶이 피곤한 탓일 것이다. 아내가 코골이를 심하게 함으로 각방을 사용해야 할 필요성도 있지만 고린도전서 7장 5절 말씀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는 말씀에 순종해서 그대로 지낸다. 하나님께선 남자가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해서 돕는 배필로 여자를 주셨다(창2:18). 잠언 18장 22절엔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라고 했는데 나도 아내로 인해서 복을 얻은 자가 되었고 은총을 받은 자가 되었다. 또 아내가 가정주부로서, 목사
3. 한국침례교회의 발전을 위한실천신학적 제안 필자는 한국침례교회가 걸어온 발자취 속에 담긴 실천신학적 특성을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그에 비추어 앞으로 더욱 발전하기 위한 실천신학적 제안을 몇 가지 제시하고자 한다. 1) 교회회원권 확립 교회회원권이란 교회회원으로서의 신분을 누구에게 부여하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한 사람이 회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해 중생의 체험을 하게 되면, 그는 자신의 신앙을 먼저 믿은 사람들 앞에 고백하고, 신앙공동체는 그의 회심에 동의하면서 거듭남의 표시로 침례를 베푼다. 신약성경은 회심한 사람에게 침례를 줌으로써 교회 공동체에 가입시키는 원리를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행 2:42 등). 그리고 교회에 가입하여 교인 된 사람을 제자라고 부른다(행 6:1,7; 9:1,19,26 등). 즉 “회심-중생-침례-교인-제자”의 일련의 과정으로 정리할 수 있다. 물론 신학적 입장과 목회경험에 따라 사용하는 용어가 다르기도 하고 설명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믿는 사람은 자신의 신앙고백에 근거하여 침례를 받고, 침례를 받음으로 교회 교인이 되며, 교인 된 사람은 주님의 제자로서의 신앙생활을 하고, 신앙이 성숙함에 따라 사역자로 헌신
목회규모에 맞는 매뉴얼 만들기 목회자 세미나를 마쳤을 때 목사님들이 나에게 하는 질문들이 있다. “지금 성도가 하나도 없습니다. 목회 매뉴얼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까?” 한명도 없을 때 목회 매뉴얼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제안은 이렇다. 5가지의 집을 세워 나간다고 가정하면 예배는 담임목사가 먼저 예배에 충실해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 10년 동안 어떻게 설교를 전할지 계획을 세워보는 것도 좋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가정예배를 계획해도 좋다. 영성훈련을 위해서 1년에 한차례 기도원 집회에 함께 참여하는 계획을 세워도 좋을 것이다. 선교 - 선교사님을 정해놓고 기도하면 된다. 그리고 개척 때는 어려우니 한 달에 만원이라도 헌금을 작정하고 후원하면 되고 선교사님을 1년에 한번이라도 초청해 선교 상황을 듣고 식사교제를 하는 것으로 형편에 맞는 선교목표를 삼으면 된다. 양육 - 목사님이 성경공부 양육 코스를 준비해 아내와 자녀들을 양육하면 된다. 앞으로 가르칠 양육 성경공부를 미리 경험해보는 유익이 있다. 전도 - 개척목회때 목회자가 매일 전도할 수 없다. 목회자가 해야 할 일은 설교준비·심방·교회·시설관리 등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주에 하루 또는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하는 자를 기쁘게 하여 함이라”(딤후 4:12) 2학기 개강과 함께 정체성을 점검했다. 나는 누구인가? 돌이켜보면 어디에서 처음 누구와 만나면 스스로를 주로 청년사역자로 소개했다.지난 25년 이상 사역 현장이 여러 지역교회와 캠퍼스를 거치며 다양했지만 젊은 영혼을 섬기는 자리는 동일했기 때문이다. 지난 1월부터 부임한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사무국장 제의를 받았을 때도 내건 조건은 단 하나였다. “캠퍼스 사역을 병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감사하게 이런 답이 돌아왔다. “물론입니다. 목사님의 사역현장성은 우리 기관의 비전과 맞아서 오히려 기대가 됩니다.” 캠퍼스 영혼을 섬기는 전도자는 소명이 확실해야 한다. 그래야 오래 지속할 수 있다. 특히 그리스도의 군사로 부름 받았다는 확실한 정체성이 필요하다. 캠퍼스는 가장 치열한 영적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전쟁터이고 최신 영적 무기들이 서로를 행해 난무하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오늘 날의 이 영적 신무기들로는 동성애, 인권, 난민문제, 비혼 등이 있다. 사탄은 세상을 통해 이 무기들을 가지
얼마전 예배 방해와 성도들 시험 들게 하는 재미를 맛 봤으니 그냥 지나칠 리가 없었습니다. 오늘도 차량운행을 하는데, 우리 술중독 할아버지께서 교회당이 있는 마을인 인포리까지만 태워다 달라 하십니다. 아내 현 집사님은 지난주 모든 교인 앞에서 할아버지 때문에 수치와 낭패를 본 트라우마가 있으셔사 내리라고 그렇게 잡아당겨도, 얌전히 교회 마을 앞에서 버스타고 나가겠다고 우겨서 모시고 왔습니다. 그리하여 인포리를 도착하여 섰는데, 역시나 꿈쩍도 안합니다. “할아버지! 내리세요!” “슨상님…예배 끝나고 옥천 마실 나갈라고, 얌전히 강연시간에 앉아 있을께 갔다 옵시다. 오라이!” 교회당 앞에서 내내 할머니 집사님과 싸우다가, 고새 교회당 앞 슈퍼에 앉아 막걸리를 사서 마십니다. 사색이 된 우리 할머니 집사님이 당부를 하고 돌아옵니다. “당신 예배 중엔 절대 교회 들어오지마, 나 심장이 미치고 팔딱 뛰겠으니까.” “오케이! 난 이거면 오케이!” 그렇게 예배가 시작되기 15분전 자꾸 불안감이 몰려옵니다. 오늘 예배를 고대하며 주 1회 간신히 예배에 참석하는 교인들도 꽤 있기에 그들이 또 지난주 같이 예배에 집중하지 못할까봐 염려가 됩니다. 그래서 교회 집사님들과 상의
시대와 환경 때문에 공부의 기회를 갖지 못했던 분들을 위해 한글학교를 한다. 얼마 전 마을 한글 학교에서 공부하시는 엄니 손자가 결혼식을 한다고 해서 교회 승합차에 가시는 모든 분들을 모시고 읍에 있는 결혼식장에 다녀왔다. 결혼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자연스럽게 엄니들의 결혼식은 어땠는가 물었다. 처음에는 망설이는 듯 하다가 하나 둘 피시기 웃기도 하고 가끔 한숨도 쉬시며 결혼 이야기들을 털어 놓으셨다. 그래서 글로 써 보기로 했다. “어제는 결혼하러 갔다. 손자가 결혼 하러 갔다. 즐겁게 했다. 할머니는 열여덟에 결혼을 했다. 아주 무서웠지. 이전에는 다 그렇게 했단다.” “옛날에는 가마 타고 말 타고 쪽도리 쓰고 혼인식을 했는데 요즘에는 예식장에서 간단히 마친다. 사람이 한번 태어나면 꼭 한번 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결혼식이다.” 맞춤법이나 글자는 좀 틀려도 손주 결혼식을 마치고 돌아오시며 옛날을 회상하시며 얼떨결에 치른 결혼식의 즐거움과 그리움을 토로하신다. 아직은 서툴고 받침도 어설프지만 한자 한자 배우는 재미에 나이를 잊기도 하신다. 종종 “이 나이에 이런 거 배워서 머에 써먹겠어?” 그럴 때면 함께 부르며 힘을 내는 노래가 있다. “80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