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과연 12월 25일에 오셨는가? 우리는 그 날을 기념해야 하는가? 성경을 자세히 살피고 역사기록들을 부지런히 공부하면 예수님께서는 결코 12월 25일에 출생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12월 25일은 바벨론 태양신 축제의 날임을 알 수가 있다. 12월 25일이 어떻게 태양신 축제의 날이 되었는가? 고대 바벨론 왕국은 바벨탑을 쌓기 이전부터 노아홍수 심판을 거치면서 태양을 생명이라고 숭배하기 시작했다. 창세기에 보면 니므롯(Nimrod)이 바벨이라는 큰 성을 세우고 하나님 앞에 처음 영걸이 되었다.(창10:8-9) 니므롯이 죽은 후에 그의 어머니이자 부인이 된 구스의 아내 세미라미스(Semiramis)가 니므롯을 태양신으로, 자신을 월신(月神)으로 숭배하도록 강요했다. 그 때부터 12월 25일은 태양신 숭배의 날로 지켜지기 시작했다. 에스겔서에도 태양에게 경배하는 기록이 있다.(겔8:16) 이 바벨론의 태양신 숭배가 메데, 페르시아, 헬라, 로마 제국으로 이어져 내려오다가, 로마 카톨릭이 서기 5세기경에 12월 25일을 예수님 생일로 영원히 지킬 것을 명령했다. 그 때부터 오늘날의 성탄절 즉 크리스마스(Christmas, 그리스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의 한 마술사가 쥐를 관찰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쥐는 어쩐 일인지 불안과 초조에 떨고 있었다. 마술사는 쥐가 왜 저렇게 불안해하는지 살펴보았더니 고양이 때문이었다.고양이가 언제 나타나서 나를 잡아먹을지 모른다면서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술사는 이 쥐를 고양이로 만들면 두려움이 없어지겠지 하고 쥐를 고양이로 만들어 주었다.하지만 고양이로 변했는데도 여전히 불안해하는 것이다. 왜 그런지 살펴보니, 이번에는 개가 두려워서 그런 것이다. 그래서 마술사는 그 고양이를 개가 되게 했다. 하지만 두려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호랑이가 겁났던 것이다.또 마술사는 개를 다시 호랑이로 만들어 주었다. 호랑이가 되었으니까, 이제는 더 이상 불안하거나 두러워하지 않겠구나 생각했는데 또 두러워하는 것이다.호랑이가 무엇을 두러워했겠는가? 그렇다. 이번에는 사냥꾼의 총을 두러워하는 것이었다. 마술사는 “너의 두러움은 사라지지 않는구나! 너는 별수 없는 쥐다”하면서 다시 쥐의 모습으로 되돌리고 말았다고한다.이 이야기의 끝에 마술사가 호랑이를 사냥꾼으로 만들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젠 정말 불안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 존재가 되었
2013년도 몇 일 안 남기고 있다. 한해가 지나가는 마지막 날에 한 해를 되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시작할 때 가졌던 아름다운 희망과 꿈과 기대가 성취된 것보다는 미완성으로 사라져 가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다가오는 새해를 맞이하며 새로운 희망과 꿈과 기대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회개를 통해 대청소를 해야만 한다. 한해를 살아오면서 부정적인 생각의 노예가 되어서 살아 왔었다. 언제나 삶의 모자라는 것과 어두운 면을 찾아서 강조하며 살아온 그리스도인들이 아닌가? 부정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은 모든 면에서 부정적인 꼬투리를 잡는다. 진실로 마음이 밝고 맑고 환하고 긍정적이 되지 못하고 무언지 모르게 언제나 어두운 점을 찾고 모자라는 점을 찾고 못된 점을 찾는 그런 마음을 갖고 살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또한 한 해 동안 너무나 소극적으로 살아왔다. 발전과 향상을 저항하는 삶이 소극적이다. 그러므로 적극적인 사람은 모험적이고, 발전적이며, 창조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소극적인 사람은 언제나 나 홀로 전통적이며 안정적이고 보수적으로 살아간다. 그러기 때문에 발전하지 못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소원을 따라 우리가 과연 그리스도 안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를 확
새벽송의 추억이 그립다. 크리스마스 전날이 되면 밤이 맞도록 집집마다 다니면서 크리스마스 캐롤을 불렀다.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선율은 또 얼마나 감미로웠는지…. 참 아련하고 따뜻한 추억이다. 그러나 이제는 잊어야만 하는 추억이 되어버렸다. 가슴이 아프다. 크리스마스의 진실을 알고 나서는 더 이상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축제(?)를 즐길 수가 없게 됐기 때문이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께서 탄생한 날로 달력에 지정된 날이다. 그러나 이 날이 정말 그분께서 탄생한 날인가? 또 오늘날 교회에서 행하는 크리스마스 관습들(트리 장식, 산타클로스, 캐롤송, 선물교환 등)은 기독교의 기원을 갖고 있는가? 아니면 고대 이교주의(Cult)의 산물인가?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신 날짜에 대한 진실은 다음 번에 다루려고 한다. 먼저 ‘크리스마스’라는 단어의 어원을 찾아보면, 크리스마스(Christmas)는 ‘그리스도(Christ)’와 ‘미사’(Mass)가 합쳐진 것이다. 미사란 라틴어 “Massa”에서 나온 말로서 로마카톨릭의 그리스도의 미사(Christ`s Mass)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특별한 미사이다. 미사는 예배가 아니라 제사이다. 크리스마스는 초기
너만도 아니고 나만도 아니다. 까닭 없는 핀잔, 성급한 충돌 그러다가 후회하는 일들, 더러는 드물게, 더러는 너무 자주 겪는 그러한 일들이 많이 있다.살아 있는 사람이니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 또는 감정의 동물이니 당연하지 않느냐는 등 변명해 버리는 것으로 끝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심지어 그것을 하나의 후회로 넘겨 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한 일이겠는가?그러나 그것이 어디 그런가? 핀잔이나 충돌은 예리한 감정의 자극적인 표현으로써, 이에 접한 사람은 심한 상처를 입는다. 감정의 불균형은 인격의 위험 신호다. 감정이 필요 이상으로 예민해지면 판단이 흐려진다. 그런 가운데서는 인간관계의 우정이 오해가 되고 선배의 충고가 지겨워진다. 주위가 살벌해지고 오던 사람도 돌아가고 아는 사람도 멀어진다. 그런 때의 접촉은 충돌이며 충돌은 인격을 깎아 버린다. 체면을 사정없이 할퀴어 버린다. 경제적인 적신호에 앞서 인격적인 적신호가 오고, 인격적인 적신호에 앞서 감정적인 불균형이 온다. 이것은 알고 만 지나갈 문제가 아니다. 해결하고 지나가야 할 일이다. 또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다.감정의 불균형은 여러 가지 피로와 스트레스에서 올 수 있다. 그것은 일종의 투정이
2013년 한해를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아오게 하심을 감사드리며 목회를 하면서 목회자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늘 섬기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있기에 목회를 계획을 세우고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와 절기가 되면 긴장을 하게 되고 절기에 맞춰 기도하면서 많은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하게 됩니다. 목회자가 기도하며 영적으로도 준비해야 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송구영신예배는 교회의 절기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초기 기독교가 들어올 시기부터 지켜오던 전통적인 예배의 신앙 유산 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1887년 12월 31일에 언더우드 선교사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사역하던 서울의 정동교회(새문안교회)와 베델교회(정동감리교회)가 연합하여 우리나라에서 드린 최초의 송구영신예배였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언약예배”라고 했고 또한 “언약 갱신 예배”라고 하다가 “야성회”라 불려지기도 했습니다. 지나간 1년을 되돌아다 보며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새로운 해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언약을 세우는 순서가 있었다고 전해 내려옵니다. 이 예배가 드려지던 역사를 볼 때 역사상 처음으로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던 그 현장은 은혜와 감격이 충만한 예배였을 것입니다. 그 예배는 오늘까지 약 130여년 동안
북한의 로열패밀리이자 2인자였던 장성택을 1심 재판 후 바로 기관총으로 처형한 북한이 우리나라를 ‘최악의 인권불모지’라고 부각시켜 실소를 자아내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14일 ‘남조선 인터넷신문, 남조선은 최악의 인권불모지라고 주장’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고 한다. 조선중앙통신은 “‘민중의 소리’를 인용, 남조선에서는 표현의 자유가 억제당하고 탄압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하면서 이것은 심각한 인권침해 행위라고 규탄했다”고 전했다. 또한 “권력이 앞장서서 국민의 의사에 대해 위협하며 폭압소동을 벌이는 것이야말로 세계인권선언에 위반되는 행위라고 단죄했다”고 전했다. 실제 ‘민중의 소리’는 11일자 사설에서 양승조, 장하나 의원의 발언과 관련한 청와대의 반응과 관련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표현 자체를 제재하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검열을 하도록 만든다. ‘위축효과’이다. 위축효과 영향으로 부당한 대우나 탄압이 두려워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심각한 인권침해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지난 12일 장성택을 국가안보위부 특별군사배판소의 1심 재판에서 국가전복음모죄로 사형 선고한 뒤 사형을 집행해 전 세계 문명국가들이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 바 있다. 이
일본의 유명한 마쓰시타 전기 주식회사를 창립한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했지만 쌍갈래 전구 소켓을 발명해서 성공한 인물이다. 그가 처음으로 쌍갈래 전구소켓을 특허 냈을 때 주문이 쇄도해 종업원들은 밤샘 작업을 하며 일해야 했다. 하루는 생산에 쫓겨 마쓰시타가 거래처에 가야 할 일이 생겨 종업원들에게 간곡히 부탁을 했다. “내일 납품해야 할 물량은 오늘 밤을 새워서라도 끝내야 합니다. 여러분들 조금만 참고 이해 주십시오.” 그러나 마쓰시타가 총총히 사라지자 생산장의 기계 소리가 하나 둘씩 멈추기 시작했다. “사장님도 안 계신데 천천히 합시다. 일은 내일 해도 늦지 않는다구.” 모두들 사장의 간곡한 부탁은 언제였느냐는 듯 밖으로 나가 야구를 하기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남아서 기계를 돌리던 한 종업원도 일을 단념하고 밖으로 나가려 할 때였다. 거래처에 나갔던 마쓰시타가 숨을 헐떡이며 공장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이내 안색이 변했다. “다들 어디 간 거야? 일은 다 끝났나?” 종업원은 재수 없이 걸렸다는 마음으로 시큰둥하게 사실을 말씀드렸다. “내가 그렇게 부탁했는데 내일 일을 하겠다고? 게다가 너마저 나가서 놀겠다는 거야?” 순간 종업원은
2002년 미국 의회가 전화기의 최초 발견자를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에서 안토니오 뮤치로 수정 발표했지만 일반적으로는 1876년 벨이 최초 전화 발명자로 알려져 있다. 그렇게 시작된 전화의 역사는 여러 과정을 거쳐 1980년 대 휴대폰 시대를 연다. 집에서 거리로, 고정에서 이동으로 변신을 한 것이다. 처음의 휴대폰은 크기나 편리성에서 여러 가지로 불편했지만 점점 진화해 1993년 IBM의 흑백스마트폰을 거쳐 2008년 애플의 2G를 3G로 업그레이드 된 아이폰과 2010년 안드로이드를 기반으로 한 삼성의 갤럭시S가 출시되면서 인터넷 웹서핑과 각종 검색, SNS 등 휴대폰의 활용 영역이 모든 삶의 영역으로 확대됐다.최근에는 지문인식과 안구인식의 기능을 하는 능력까지 발휘하며 세상을 향해 그 거만한 혀를 날름거린다. 이렇게 세계가 스마트폰의 지배를 기꺼이 수용하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인터넷과 함께 휴대폰 보급률 및 교체율에 있어 당당히 세계 1위를 고수하며 달리고 있다. 이는 거의 종속 및 지배수준이다. 이제 휴대폰은 없어서는 살 수 없는 우리 생활의 절대필수품이 되었다. 리모컨으로 TV 채널을 마음대로 돌려대듯이 휴대폰은 단순한 통화기능에서부터 대부분의 분야에
“엄마, 보고 싶어요. 그러나 미안해하지 마세요.그때는 몰랐어요. 왜 어머니는 없어지고 나만 거리에 남았는지.그때는 미처 몰랐어요. 왜 인천 고아원에서 혼자 별을 바라봐야 했는지.정말 몰랐어요 그때는. 왜 비행기를 타고 밤낮이 바뀐 세상에 왔는지.하지만 알게 됐죠. 내 눈빛이 양부모의 것과 다르다는 것을.살아가면서 알게 됐죠. 다른 아이들보다 머리속이 복잡했던 이유를.아이를 차디찬 길거리에 버린 어머니. 버려진 아이를 주체 못해 나라 밖으로 보낸 조국.그런 아이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어머니의 나라.허나 알다가도 모를 일, 어찌 된 조화일까요.내 입에서 날린 화살은, 머리에서 쏘아 댄 독한 화살은. 어머니의 나라에 꽂히기도 전에 꽃이 돼 떨어지고 말았습니다.어머니, 자식을 버렸다고 부끄러워 마세요.저도 딸 둘을 둔 어머니가 된 지금 미움은 사라지고 희망의 꽃만 활짝 피어 있습니다.여섯 살 때 고국을 떠났던 순이. 아무것도 모르고 비행기에 올랐던 순이.독화살을 날리면서 그리움에 사무치던 순이가 27년 만에 사회복지사가 되어 돌아왔어요.어머니, 꼭 뵙고 싶습니다”이 편지에서 입양아는 혼자 별을 바라봐야 했는지(외로움)라고 하고, 자신도 부모님을 충분히 원망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