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한국교회는 지난 11월 18일 주일을 추수감사로 지켰다. 추수감사절의 시작은 구약시대 맥추절부터다. 맥추절(the Feast of Harvest)은 5월 중순에서 6월 중순 밀 추수가 끝날 무렵에 좋은 것으로 먼저 하나님께 드리는 추수 감사제이다(출 23:16, 34:22). 한국교회는 1904년에 처음으로 추수감사절을 지켰고, 1914년에 와서 11월 셋째 주일로 정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최근 몇 년 전부터 일부 교회와 성도들은 한국식으로 추석을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교회도 눈에 띄지만 여전히 많은 한국교회가 11월을 추수감사주일로 지켜오고 있다. 사실 지금의 추수감사절로 자리 잡게 한 일등공신은 북미 대륙을 개척한 청교도들(Pilgrims)이다. 청교도들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영국을 떠나면서 “나라는 있어도 왕이 없고, 교회는 있어도 교황이 없고, 영어를 사용하고, 기름진 땅과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곳에 도착하도록” 뜨겁게 기도했고, 그 꿈에 그리던 정착지가 바로 북미 대륙이었다. 청교도들은 미국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목숨을 잃는 등 이런 저런 고생을 하다가 마침내 1621년 가을 플리머드에서, 하나님께 첫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렸다. 추수한 첫 곡
지난 11월 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대법관 9대 4의 의견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형사처벌할 수 없다고 선고했다. 헌법재판소가 대체복무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에 이어 이번 대법 판결까지 더해져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논란이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현재 국민여론은 양심적병역거부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5월 15~16일 전국 성인남녀 101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양심적병역거부를 이해할 수 없다는 응답이 66.8%를 차지했다. 대체복무제 도입 찬성 응답이 73.4%를 차지하고 있어 병역거부말고 대체복무라도 하라는 것이 주된 국민여론이다. ‘양심적’이란 표현도 문제되고 있다. 많은 이들이 “그렇다면 군에 입대한 사람들은 양심이 없는 것이냐”라는 반발하고 있다. 반면 찬성론자들은 여기서 말하는 양심은 주관적인 개념 즉 개인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주관적 신념 내지는 양심이라며 구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렇게 양심이란 부분을 각 개인이 가진 주관적 관념이라고 정의내리면 징병제 국가인 대한민국으로서는 난감한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것을 측정할 만한 기준이 애매하기 때문이다. 찬성
학교법인 한국침례신학원 신임총장에 김선배 교수가 선출됐다. 8명의 신학교 관선이사들은 10월 22일 3년 동안 공석이던 침례신학대학교(침신대)의 새로운 총장으로 김선배 교수를 만장일치로 선임했다. 이로써 그동안 직무대행체제로 운영되던 신학교가 이제 사실상 정상화의 첫 발을 내딛게 됐다. 그런 만큼 우리는 동문, 교직원 등 침신대 모든 교회 공동체 관계자들은 신임 김선배 총장에게 모든 힘을 실어주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관선이사들이 새 총장을 선출했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례교단 신학교가 정상화에 대한 기대가 더 큰 것이 사실이다. 우리교단 선지동산인 침신대는 그동안 신학교 이사들의 갈등과 이사 선임 문제, 교원 채용 문제 등이 소송으로 얼룩져 교단 갈등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이로 인해 총회파송 이사들과 신학교간 계속된 마찰은 결국 현재 8명의 관선이사 체제아래서 운영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신학교의 정상화는 지금 시작에 불과하다. 물론 정관개정이나 정이사 선임, 학교 재산의 처분 등과 같은 것은 이사회에서 할 수 없지만 그 외의 모든 결정은 가능한 상태라고 한다. 신학교가 다시 교단과 긴밀하게 협동할 수 있도록 교직원들은 법인 이사회와
지금 한국교회는 어느 교단 할 것 없이 소송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단과의 싸움도 벅찬데 소송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다. 교계와 세상 언론을 펼쳐보면 교회와 교회, 목회자와 교인 사이 등의 분쟁은 우려할 만한 수준을 넘어선지 오래다. 성경은 소송을 금한다. 그러나 이도 옛말이 돼 교회법 보다는 세상 판결로 모든 것을 대신한다. 성경적인 교단이라 자부하는 우리교단도 총회·기관, 지방회, 개 교회까지 최근 몇 년간 크고 작은 소송 건으로 해당 당사자들 뿐 만 아니라 지켜보는 동역자들까지 힘들어하고 있다. 총회도 소송이 끊이지 않고 기관인 신학교, 침례병원 문제 등으로 침례교 공동체가 들썩이고 있다.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성경적인 화해와 조정, 중재 단체로 알려진 기독교화해중재원(이사장 피영민)에 따르면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법적인 수단에 호소할 때 그 결과는 상호 증오를 키우고 관계를 영원히 단절시키는 결과를 낳는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많은 교회와 개인은 화해중재원이 아닌 세상법정에 의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유야 어쨌든 교회와 관련된 송사는 내부적인 분열과 갈등을 일으키고 세상 사람들의 비판과 비난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게
신학대학 3학년 초쯤의 일이다. 어느 날 커피숍이었는지 식당이었는지 기억은 정확하지 않지만 옆자리에 앉은 내 또래의 대학생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그들의 대화 내용이 어떤 사회 현상에 대한 것 같은데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용어들이 있었다. 그들 사이에 흔히 쓰는 용어처럼 사용했기에 무슨 전문 학술용어 같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알아듣지 못한 것이다. 나는 내가 무식한 것처럼 느껴져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좋아했던 나는 고등학생 시절까지 내 또래에서 나보다 책을 많이 읽은 것 같은 사람을 보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물 안 개구리의 오만함이었지만 말이다. 그 때부터 나는 사회과학 전문서점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그런 책들을 읽으며 나는 내가 얼마나 세상에 대해 무지했는지를 알아 가게 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신학대학에 진학한 뒤로 학교와 교회 생활이 전부이다시피 했기에 학교공부와 성경공부, 신앙서적 읽기 외에는 눈 돌릴 틈(?)이 없었다. 1학년 때 서양문화사 교수(외래강사)가 침신대 학생들은 책은 많이 읽는 것 같은데 너무 기독교 서적만 읽는 것 같다며 다양한 독서를 권했었지만 그 말이 마음에 와 닿지
‘정의’는 인류의 끊임없는 갈망이며 논쟁이다. 정의(正義, justice)를 정의(定義, definition)하기가 쉽지 않음과 시대와 지역과 그리고 대상이 달라 항상 가변적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범죄 이후 인간의 속성이 정의를 스스로 주장하거나 정의하기에는 그 정당성이 부족한 것이 근본적인 이유일 것이다. 정의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마이클 샌델도 그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를 통해 ‘텔로스’, 즉 ‘목적’을 충족시키는 것이 정의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론 등을 언급 한 후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의무’를, 그 동안 있어왔던 벤담, 칸트, 롤스 등 여러 정의론에 자신의 견해 하나를 추가하는 것으로 책의 끝을 장식했다. 결국 정의를 독자의 몫으로 돌린 것이다. 이만큼 정의를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이것은 아마도 인류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끝없는 논쟁거리가 될 것이다. 한 때, 법치가 사회의 정의인 것처럼 각인되어진 적이 있었다. 정작 그 정의를 외친 사람들은 정의롭지 못했음에도 국민에게 법치적 정의를 외치며 강요했다. 물론 법치가 이 사회를 정의롭게 할 수 있다는 착각을 하게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삼권분립이 분명한 민주제도의 국가이면서도 우리의 정치사는 정
108차 총회가 지난 10월 2일 인수인계를 마치고 본격적인 회기 업무에 들어갔다. 총회장 취임예배가 한글날인 9일 전북 전주 르윈 호텔에서 교단 관계자를 비롯해 지역 목회자, 성도들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치러졌다. 이날 행사에서 순서를 맡은 인사들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상황에서 교단의 미래를 위해 화합하라는 당부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총회장 출마해 두 번의 쓴 잔을 든 뒤, 세 번째 도전 끝에 드디어 총회장에 당선 된 만큼 박종철 목사를 위한 진심어린 조언과 격려들이 이어졌다. 취임예배에서 말씀을 전한 박성웅 목사는 우리가 불러야 할 자랑스러운 이름에 걸맞게 살아야 함을 강조하면서 “예수 정신으로 살아가면서 언제 어디서든지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함께 기도해 나가자”고 힘주어 말했다. 박 목사는 가장 성경적인 우리교단에서 ‘예수 정신’이 계속 전해지기를 소망하기를 기대했다. 이는 소모적인 교단 싸움에 휘말리지 말라는 메시지였다. 박종철 총회장도 취임 인사에서 자신이 부끄럽지 않은 것에 대해 언급하면서 침례교 총회장으로 교단의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뜻을 분명하게 밝혔다. 임기 동안 아니 임기 뒤에라도 미자립교회들을 돕기
한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해프닝이다. 졸업을 앞두고 학창시절을 그동안의 추억을 회고하는 자리에서 어느 해 수학여행 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한다. 저녁에 숙소에서 아이들이 잠옷으로 갈아입고 함께 재미있게 어울려 노는 자리에서 짓궂은 한 아이가 서있는 한 아이의 바지를 잡아 내렸다. 소위 깝질을 벗긴 것이다. 너무 갑작스런 일이라 그만 이 아이는 보여주기 부끄러운 부분까지 보여주고 말았다. 그 순간 아이들을 박수를 치며 웃었고 어떤 아이들은 “찍어, 찍어”를 외쳤고 동작 빠른 아이는 핸드폰을 꺼내들고 사진을 찍었다. 바지가 벗겨진 아이는 수치감 때문에 울어버렸고 반 아이들은 우르르 찍은 사진을 보느라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 일은 담임 선생님이 그 방으로 들어와서 장난을 친 아이가 울고 있는 아이에게 사과하게 하고 사건은 일단 마무리가 됐다. 그때 있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그 장면을 상기시킨다. 그때 아이들이 “찍어, 찍어“를 외칠 때 큰 소리로 “안 돼 찍지 마라! 찍지 마라”라고 외친 두 아이가 있었다. 아이들이 찍힌 사진을 보려고 우르르 몰려들었을 때도 그 아이는 “지워, 빨리 지워”라고 외쳤다. 사과한 아이는 사과를 한 것이 아니다. 그 아이의 사과는 자신
요즘 낙태가 화제다. 낙태가 불법인 대한민국이 낙태율 1위이다. 신생아 수는 40만 명인데, 낙태 수는 110만 건이다. 상황이 이런데 낙태가 합법화되면 하루에 죽는 태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태아는 그냥 핏덩어리나 제거해야 할 암 세포가 아니라 독립적인 생명체다. 이것은 생명과학이 인정하는 사실이다. 태아는 수정 된지 16일 째부터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40일이 지나면 뇌파가 측정된다. 심장이 뛰고 뇌가 살아 있는데 이게 생명이 아니면 무엇이 생명인가. 태아는 단순한 세포, 결정권, 자유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가장 인권이 유린되고 있는 생명이다. 생명권을 지키고 보호해야 하는 것이 부모의 도리요 국가의 책임이다. 그뿐 아니라 낙태를 한 사람은 평생 죄책감에 시달린다. 이미 모자보건법엔 임산부와 태아를 고려해서 낙태에 대해서 처벌 받지 않는 조항이 많다. 낙태죄는 유지돼야 한다. 태아는 세포가 아니라 아이(child)다 낙태는 가벼운 죄가 아니다. 낙태는 살인이라고 성경은 증거한다. 성경을 추적해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태어나심은 이러하니라.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에게 정혼되었으나 그들이 동거하기 전에 그녀가 성령님으로 말미암은 아이를 가진
우리교단 기독교한국침례회(The Korea Baptist Convention)는 대한민국의 침례교 신앙을 표방하는 교단이다. 우리교단은 1889년 12월 8일 한반도 땅을 밟은 캐나다 선교사 말콤 펜윅(Malcom C. Fenwick)의 선교로 시작됐다. 우리교단은 지금의 북한 원산에 본부를 두고, 한반도 전역은 물론, 해외선교에 주력하여 만주와 시베리아까지 선교를 했으며, 일제와 공산주의자들에게 핍박을 받아 수많은 순교자가 발생했고, 일제로부터 교단 해체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1944년 5월 10일 일왕에 대한 신사참배거부로 인한 침례교단 해체령이 내려졌다. 광복 후에 다시 교단이 재건됐고 지난 2015년 105차 총회는 ‘5·10 침례교(단) 신사참배거부 기념일’을 제정해 해마다 지켜오고 있다. 침례교회는 성경을 신앙의 유일한 권위와 기준으로 삼고 있으며, 성경무오설, 성경해석의 자유, 신앙고백 등을 강조한다. 또 전신자제사장주의(만인제사장설)를 표방하며, 신앙의 자유와 교회와 국가의 분리(정교분리), 신자의 교회로서 회중정치를 내세우고 있다. 가장 성경적인 교단, 선교하는 교단인 기독교한국침례회는 오는 2019년이 ‘선교 130주년’이 되는 해이다.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