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나라를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들을 기억하고 그 후손들을 잘 예우하자는 의미로 제정된 현충일이 있고 6·25전쟁 기념일도 있어서 6월을 호국보훈의 달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를 겪으면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목숨을 잃은 선조들과 전쟁이 일어났을 때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 바쳐 싸우다가 순직한 군인들이 많은 나라다.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기 위해 공산주의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가 목숨을 바치신 선조들의 피 흘리신 희생 위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세워졌으며 오늘날 우리는 세계 속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애국자들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피 흘리신 순교자들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기독교의 역사는 피의 역사인데 교단마다 많은 순교자들이 있다. 우리 침례교단에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피 흘린 발자취를 따라 성장해온 교단이다. 침례회출판사에서 출판한 “자랑스런 침례교회”라는 책에 순교자들에 대한 기록을 간단하지만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1918년에 박노기 목사, 최응선 감로, 전영태 총찰, 김희서 교사 등 전도자 네 명이 시
목회자는 탈진에 대해 어떤 마음과 태도를 지녀야 할까? 첫째로 “나”를 돌아봐야 할 시점이 됐다는 것이다. 둘째로 육신에 건강검진이 필요하듯 전인적인 건강검진이 필요한 때가 됐음을 자각해야 한다. “목회는 먹회”라는 말이 있다. 반드시 음식을 조절해야 한다. 당뇨나 지나친 복부비만은 적신호다. 그리고 미뤄뒀던 운동도 하나님의 일이라는 확신을 갖고 임해야 한다. 몇 년 전 타계하신 클레어몬트 신학대학의 목회상담학 교수인 하워드 클라인벨은 평소 운동을 하는 것은 “몸에 선물을 주는 행위”라고 말했다. 몸에 그간 못 준 선물을 줘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셋째로 세미한 음성을 들어야 한다. 즉 재소명에 대한 부르심이다. 흔히 말하는 첫사랑의 회복이다. 주님이 나를 불러주신 그 부르심을 기억하며 지금 있는 현장에서 다시 한번 재소명을 받을 필요가 있다. 가능하다면 첫 부르심을 받았던 기도원이나 교회에 가서 목 놓아 기도해보는 것도 은혜를 회복하는데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엘리야가 동굴에서 세미한 음성을 듣고 살아나고 소명을 회복했듯 각자의 “영적 동굴”로 들어가서 기다리며 기도하는 마음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넷째로 인정받음의 욕구에서 벗어나야
우리나라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연령차별금지법, 비정규직차별금지법, 고용상 성차별금지법 등과 같이 차별금지사유별 또는 차별금지 영역별로 차별을 규정하는 개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 차별을 방지하고 있다. 그런데 포괄적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우리 사회에 개별차별금지법이 차별을 막아내는데 비효율적이라며 포괄적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국교회법학회(법학자, 변호사, 실무법률가 등으로 구성)는 지난해 11월 8일 우리 사회는 개별적차별금지법을 통해서 충분히 차별을 막을 수 있다며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시도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현재 우리 사회가 개별적 차별금지법으로도 차별의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포괄적 차별금지법으로 통해 결국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은 ‘동성애’를 합법화시키는 결과밖에 없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통해 동성 성행위, 성전환 행위를 법으로 옹호 조장하고 동성애에 대한 반대표현을 차별로 여겨 법 위반으로 몰아감으로 동성애와 성전환의 문제점과 성경적 진리를 가르치고 표현하는 것을 금지시킨다. 그래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동성애를 반대하는 일반 국민과 성도들을 역차별하며 또한 강력한 법적인 제재를 통
교회 개척을 준비하며 개척을 작심하기 전까지 교회 개척을 갈망하거나 계획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좋은 담임목사님을 만나면 그분을 도와 공동체에 필요한 사역을 섬기며 살아가고픈 마음이었습니다. 대학시절부터 섬겼던 소소한 교회 허드렛일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차량 운전, 복사, 램프 갈기 등. 뭐든 교회 관련된 일이라면 의미 있다고 믿으며 전임 사역까지 이어왔습니다. 마침 마지막 사역지에서 좋은 목사님을 만나 행복하게 열심히 사역할 수 있었습니다. 열정적으로 사역한다는 것은 피곤을 동반합니다. 하지만 소모되는 느낌을 받지 않았기에 즐겁게 헌신할 수 있었습니다. 개척의 소명은 순식간에 제 마음에 임했습니다. 작지만 건강한 공동체를 이루는 것. 내 삶에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보다 더 행복할 수 없겠다는 마음이 저를 채웠습니다. 한 번도 개척 이야기를 꺼낸 적 없던 제가 갑자기 연고도 없는 부산이나 경남에서 개척하면 어떻겠냐는 말에 아내는 담담히 긍정해 줬습니다. 아내의 대답이 하나님의 선명한 신호라 믿고 아내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신호가 분명했다고 해서 바로 움직이지는 않았습니다. 존경해오던 담임 목사님께 먼저 상황을 나누며 공동체에 큰 무리가 없도록
성령침례를 받은 증거로서 방언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찰스 파햄으로부터 배우고 있었던 아그니스 오즈맨 양이 강의실에서 찰스 파햄과 여러 사람들의 안수기도를 받았을 때, 방언을 말하게 됐는데, 이것이 바로 성령침례의 증거였다는 것이다. 그 후 찰스 파햄 자신도 동일한 경험을 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이 방언이 진정한 성령 침례의 성경적인 증거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한다. 드디어 이제는 “성령의 망각”을 이야기하던 시대가 지나고 성령론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는 오순절 성령운동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기독교 역사 가운데 여러 가지 성령운동들이 많이 있었고 기적 발생에 대한 주장들도 있어왔지만, 성령의 초자연적 능력에 대한 강조는 대체적으로 20세기 초에 일어난 오순절 성령운동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나게 됐다. 그리고 역사상 어떤 성령운동도 오순절 성령운동만큼 광범위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지지를 얻지는 못했다. 20세기 오순절 성령운동의 기원은 1900년 12월에 미국 캔자스 주의 토페카(Topeka. Kensas)에 있는 벧엘 성서 대학(Bethel Bible College)에서 일어났던 사건에서 비롯됐다. 즉 이 대학에서 재직하며 “성결운동”을 주도했던 찰스 파
필자는 2017년 충남도민으로 충남도민 인권조례의 위험성을 알게 된 후, 인권조례를 반대해 폐지하고자 노력하는 시민단체에 속해 함께 했다. 각 지역에 제정된 인권조례는 차별금지법과 동일해 미니 차별금지법이라고 한다. 차별금지법(평등법) 반대운동에 연계되어 자원해 활동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은 2007년 노무현 정부에서 최초 추진했고 이후 15년간 여러 차례 입법 시도가 있었지만, 사회적 합의 등의 이유로 자진 철회하거나 폐기됐다. 현재 21대 국회에서는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대표 발의한 차별금지법안과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박주민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평등에 관한 법률안,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이 대표 발의한 평등 및 차별 금지에 관한 법률안 등 총 4건이 발의된 상태이다. 지난 5월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차별금지법 제정과 관련한 공청회 계획서 채택의 건을 의결했다. 일각에서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속도가 붙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으며 이에 대해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시민단체들과 각 지역의 기독교연합회는 규탄하며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 본 기고문에는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이 법이 왜 위헌인지 살펴보며 차별금지법에 대한 궁금증과 국내
때를 따라 꽃은 피고 열매를 맺나니 하나님께서 지으신 창조물들이 어찌 이리도 어여쁠까요. 봄이 되니 여기저기 그저 감탄사가 연거푸 나옵니다. 그러나 꿈에 부풀어 씨앗을 정성스레 심는다고 싹이 그냥 나오는 것은 아니더군요. 꽃마다 심을 시기가 있고 개화의 시기가 있고 열매 맺음의 시간이 있음을 화초를 통해 깨우쳤답니다. 제가 보기에 하도 예뻐서 초봄에 이르다 싶었지만 미리 씨앗을 심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행여나 싹이 나오나 매일 매일을 들여다보아도 싹이 틀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실패했다 싶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얼마있다 새롭게 또 씨앗을 심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엔 어느덧 떡잎이 쏙 나오더니 연한 녹색의 이파리가 쑥쑥 자라나 소담스레 넝쿨을 뻗으며 영역을 넓혀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이 꽃은 좀 더 기다렸다 씨앗을 뿌렸어야 했나 봅니다. 봄이 되면 자연적으로 떨어졌던 씨앗들이 돌 틈에서 수줍게 얼굴을 내미는 것을 종종 보게 되는데요, 그중에 어떤 씨앗은 싹이 나긴 하지만 떡잎만 나온 채로 가운데 싹은 자라지 않아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보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드디어 자주 내리던 빗물에도 부르트지 않고,
메타버스 예배와 설교를 경험하면서 세상이 달라졌음을 발견했다. 메타버스 예배 속에서 느낀 점과 우리의 생활 특히 신앙생활에 미칠 영향을 나누어보겠다. 첫째, 메타버스의 세계는 이미 우리의 옆에 와있다. 따라서 메타버스 예배도 기술적으로 완전히 준비되어 있고 이미 시도되고 있다. 단지 우리가 그것에 익숙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면 메타버스 예배가 현실예배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까?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유튜브나 줌을 통해서 비대면 예배를 드리는 것은 어느새 일반화됐지만 현실의 대면예배를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었다. 원래 주님께서 의도하신 예배는 오감(五感)을 총동원한 예배였기 때문에 시각과 청각에 국한된 영상 예배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VR기술은 원래 사람의 오감으로 느끼게 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점차 현실에 근접하게 될 것이다. 또한 사람들은 메타버스에 참석하는 것이 점차 익숙해질 것이다. 물론 메타버스 예배가 현실예배를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 할지 모른다. 하지만 교회 예배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1부 예배(9:00), 2부 예배(11:00), 3부 메타버스 예배(오후 2:00) 등 이렇게 될 수도 있다. 둘째, 메타버스 예배의
그 동안 호세아 4:6을 중심을 우리의 현실을 살펴봤다. 이제 다음 세대 관련한 이야기들을 본격적으로 해보고자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다음 세대를 하나님께로 돌이키려고 작정하신 것 같이 느낀다. 나나 우리 팀들의 그 모든 부족에도 불구하고 다음 세대 사역과 관련해서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시는 것을 반복적으로 보면서 그렇게 느끼는 것이다. 먼저 나의 주변에서 다음 세대와 관련해서 하나님께서 하고 계신 전반적인 부분을 나누고, 그 다음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같이 고민하고 같이 기도하며 우리의 다음 세대를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일에 함께 힘썼으면 한다. 나의 경우, 다음 세대 관련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인도하신 것은 군선교였다. 좀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하나님께서 3군 전체를 열어가시는 것 같았다. 군선교 중 한 중요한 사역은 전국 ROTC 학군단에 간사들을 세워 후보생들을 섬기는 것이었다. 코로나 전 전국 113개 대학 모두에 간사들을 세워 섬겼다. 코로나로 인해 활동이 제한되어 잠깐 소강상태에 있다가 이제 다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고 있다. 지금은 80여개 대학에서 간사들이 후보생들을 섬기고 있고, 나머지 학교들에도 간사들을 충원하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믿게 해 주시고, 이 자리까지 이끌어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지금도 깊이 헤아리고 있는 한, 어떤 형편에 처해있든지 그 마음에 합당한 삶을 기꺼이 선택하며 살아가고자 수고하고 땀 흘리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누구라도 혹은 누가 어느 수준에까지 이르렀다고 해도 하나님 아버지의 절절한 마음을 잊어버리고 잃어버리면 여지없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따라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때마다 일마다 기억해야 합니다. 이즈음에 또다시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정직하게 물어보았을 때, 예수님 보다 앞선 그 무엇 때문이라면, 다시 말해서, 그 마음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 무엇 때문이라면, 결국 허물어지고 말, 또한 반드시 허물어야 할 바벨탑이라는 사실도 때마다 일마다 기억해야 합니다. 하여, 일평생 동안 부활하신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인정하며 따라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전인격으로 경험하며 누리게 하소서. 생명과 약속의 말씀을 따라, 더불어 말씀과 함께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믿음직한 하나님의 자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