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는 현재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영적인 혼돈과 종교다원주의의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본질적인 문제는 진리의 왜곡과 빈곤이라 할 것이다. 모름지기 교회는 진리의 공급과 동력이 없어지면 세상의 어떤 조직보다도 세속화와 부패의 길을 걷게 된다. 그것은 교회가 세상의 조직과는 전혀 다른 원칙과 생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의 사명은 오직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의 공급으로만 활기를 얻게 되는 신령한 유기체다. 다른 표현으로 많은 돈, 사람의 수, 인간 지도자의 지도력, 조직력 등도 교회의 영적 생명을 자라게 하는 데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있어도 진리의 순수함과 공급이 사라지면, 교회는 반드시 저급하고 누추한 세속화의 길을 걷게 된다. 이는 역사가 웅변으로 증명하며 오늘날의 한국교회가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성경의 진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성도들의 영혼을 병들게 하는 것은 그릇된 성경 해석으로 말미암아 인본주의 신학과 신앙때문이다. 가르치는 중요한 개념이 잘못 해석되면서 성도의 신앙생활에 엄청난 혼돈을 가져온 것이다. 교회의 교회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개념 중에 하나는 이른바 “하나님의 일”이다
세대주의 신학은 영국의 배타적인 형제교회(Separatist Plymouth Brethren) 지도자 John Nelson Darby(1800-1882)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Scofield Reference Bible에 의해 영어권에 널리 보급되었다. 그의 종말론은 미국 근본주의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 C.I. Scofield Reference Bible은 50년 동안 3백만 부가 팔렸는데, 그 영향으로 Biola, Moody, Dallas, Grace와 같은 신학교가 세대주의 종말론을 가르쳤다.세대주의 신학과 개혁주의 신학(언약신학)성경 전체를 이해하는 시스템에 따라서 신학이 크게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하나는 루터와 칼빈이 가르친 개신교 정통신학인 ‘개혁주의 언약신학’이고, 또 다른 하나는 ‘세대주의 신학’이다. 두 신학체계는 구원과 율법, 종말에 대한 입장이 다르다.구원관의 차이. 신구약 성경을 보는 관점에 우리에게 친숙한 세대주의가 있다. 세대주의에서는 성경 역사를 무죄(innocence)시대, 양심(conscience)시대, 인간통치(human government)시대, 약속(promise: Patriarchal Rule)시대, 율법(Law)시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나라를 사랑해야 하고, 그 누구보다도 애국정신이 투철해야 한다. 왜냐하면 나라 없는 국민이 없기 때문이다.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자유베트남이 공산화가 되었을 때 많은 국민들이 작은 배를 타고 탈출하던 것을 잊지 않고 있을 것이다. 왜 나라를 버리고 떠나야만 했었는지 구차한 말을 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대한민국은 2015년 3월 1일은 삼일절을 96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삼일운동은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하던 시대에 교회가 중심이 되어 일어난 독립운동이었고 기독교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한국교회는 해마다 삼일절을 기념하는 예배와 뜻 깊은 행사를 하고 있다. 비록 지금은 삼일운동에 참가했던 많은 분들이 모두 세상을 떠났지만 삼일절의 정신은 후대에 길이 계승되어야 한다. 성경에서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하시려고 모세에게 하신 말씀을 기록하고 있는데 삼일운동의 기독교정신은 이스라엘의 출애굽, 즉 엑서더스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삼일운동을 전개한 가장 큰 이유는 일제의 압제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얻기 위한 데 있다. 당시 우리나라를 강제로 합병하고 국권을 찬탈한 일제는 우리 민족을 매우 가혹
최근 교회에서는 믿음을 강조하면서 실생활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대한 윤리강요가 꼭 필요한 것임을 가르치고 있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신앙인들에게 교회생활만 가르쳤지 사회생활에서 빛이 되고 소금돼야 함을 제대로 교육하지 못한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것이다. 특히 믿음만 강조했던 교회의 반성이 절실하게 요구된다.중세 스콜라 철학을 대표했던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의 저서 “신학 대전”에서 자살에 반대해야 하는 세 가지 근거를 제시했다. 자살이란 각자가 자신에게 빚지고 있는 사랑에 대한 공격이고 공동체에 대한 모욕이며, 하나님의 대한 범죄라는 것이다. 또한 자살을 치명적인 죄악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자살을 죄악시했던 경향은 중세를 지나 19세기까지 유럽 사회를 지배했다. 자살이 질병으로 생각되기 시작한 것은 19세에 이르러서다. “자살에 대한 목회 지침서”를 발간하여 교회마다 영적인 훈련에 교재로 사용하고 있음은 세계적으로 대세를 이루고 있다. 한국에서 셀 그룹을 통해 지역, 혹은 이웃 같은 교우들의 소통을 이루고 있지만, 한 사람의 속내를 들여다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바른 신앙 교육을 통해, 생명의 귀중함을 인식시켜야 한다. 때 늦은 감은
말로 하면 똑딱. 일초도 안 되는 ‘안녕!’ 안녕이라는 말을 사전적으로 풀면 ‘아무 탈없이 편안함’이다. 결국 안녕이라는 말과 편안하다는 말은 같은 뜻이다. 그런데 ‘나는 편안해’라고는 해도 ‘나는 안녕해’ 라고 하지는 않는다. 안녕은 주로 상대방에게 건네는 인사말로 쓰인다. 하지만 안녕, 글자로만 달랑 써놓으면 이게 만날 때 인사인지 헤어질 때 하는 인사인지 알 수 없다. ‘헬로우’인지 ‘굿바이’인지 알 수 없다. 우리는 만날 때도 ‘안녕’이라고 하고 헤어질 때도 ‘안녕’이라고 한다. 만날 때도 손 흔들고 헤어질 때도 똑같이 손을 흔드는 간단한 몸동작 같은 두 글자 ‘안녕’. ‘처음 뵙겠습니다’ 이 1초의 짧은 말에 대해서 일생의 순간을 느낄 때가 있다. ‘고마워요’ 1초의 짧은 말에서 사람의 따뜻한 마음을 알 때가 있다. ‘힘내세요’ 1초에 짧은 말에서 용기가 되살아날 때가 있다. ‘축하해요’ 1초의 짧은 말에서 행복이 넘치는 때가 있다. ‘용서하세요’ 1초의 짧은 말에서 인간의 약한 모습을 볼 때가 있다. ‘안녕’ 1초의 짧은 말에서 일생동안의 이별이 될 때가 있다. 일생의 순간, 사람의 따뜻함, 용기, 행복, 인간의 약한 모습 그리고 이별 이 모든 감
많은 화제를 뿌리며 현재까지 상영되고 있는 영화 국제시장은 관객이 무려 1,200만을 넘기며 한국영화 역사상 5위 안에 드는 위업을 자랑할 듯하다. 그런 가운데 영화의 중심 현장이었던 ‘꽃분이네’가 영화 후광을 넘어 후유증을 겪으면서 점포 주인의 지나친 권리금 인상 요구로 가게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온다. 참으로 기회를 이기적으로 활용(?)하려는 탐욕의 자화상을 보는 듯 하여 영화 흥행이 또 다른 甲질을 보여 주는 것 같아 무조건 반갑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그 감동이 여운으로 잔잔하게 흐르고 있다. 특히 한 아버지의 아들로 가족의 가장이라는 무거운 책임을 희생이라는 덕목으로 감당해 내는 모습들은 영화 속 주인공의 자식들이 살아가는 오늘날의 밑거름이 되었기에 더욱 훈훈한 감동이다. 영화가 끝나고 사람들의 뇌리에 남은 장면들은 주인공이 살아낸 삶의 이야기들이었을 것이다. 영화의 끝 장면으로 갈수록 주인공의 삶이 일부에서는 ‘토’라는 단어도 쏟아냈지만 공감이 견인한 감동 그 자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영화의 시작은 국제시장이 아닌 흥남부두였다. 김일성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 한국전쟁이 일어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영적인 시험을 당하셨다. 마귀는 예수님께 자기를 경배하기만 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고 했다. 마귀는 그렇게 우리가 추구하고 얻기 원하는 것을 모두 주겠다고 말한다. 이 시대에 이 말보다 더 유혹적인 것은 없다. 마귀는 지치지 않는다. 또 예수님을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서, 환경을 바꿔가며 계속해서 시험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해병대 신앙”을 가져야 한다. 환경에 관계없는 “전천후 신앙”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그렇다면 마귀는 우리를 영적으로 시험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첫째 마귀는 합리성으로 유혹한다. 마귀는 논리로 접근해 온다. 일종의 괴변이지만, 사고하는 훈련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쉽게 넘어간다. 한 번 양보하고 두 번 양보하다가 결국 마귀에게 완전히 빠져버릴 때가 많다. 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가면 되지 않을 때도 있다. 사람들은 ‘구제하라’, ‘섬기라’는 식의 기독교가 아니고도 얘기 될 수 있는 보편타당한 것들을 말할 때는 납득하지만 기독교에서 말하는 근본적인 진리를 애기하면 황당해 할 때가 참 많다.‘처녀가 애를 낳았다’고 한다. ‘죽음에서 부활한다’, ‘행위가 아니고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내 공
본 발제문은 지난 1월 20일 세종 꿈의교회(안희묵 대표목사)에서 진행한 제1차 총회 부흥협력단 교회회복 희망 페스티벌에서 강사로 나선 블레싱샘터교회 고영수 목사의 발제문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편집자주■ 들어가는 말“비소통, 비타협, 비상식, 비신뢰 그리고 비호감!”안타깝게도 이것들이 지금 우리 사회에 비쳐지고 있는 대부분 한국 기독교회들의 초상화(Image)이다. 과하다고, 억울하다고, 정말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지금 당장 목양실을 벗어나서 나를 누구인지 전혀 모르는 낯선 곳에 가서 다음과 같이 사람들에게 말해보고, 그 반응을 살펴보시라.“저는 ○○교회에서 나온 ○○○목사입니다. 예수님 믿고 구원받으십시오!”현대는 ‘이미지(Image)시대’이다. ‘상품 브랜드 이미지’, ‘탤런트 이미지’, ‘기업 이미지’, ‘국가 이미지’, ‘대통령 이미지’ 그리고 ‘교회 이미지!’현대는 이미지가 사람들의 모든 의사 결정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이미지가 얼마만큼 실제(Reality)와 근접하는 것인지, 아니면 무엇인가에 의해 현혹되어 잘못 형성되어진 것인지를 분별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미국의 문명사학자 부스턴은 미
오늘의 한국교회와 신학은 위기를 맞고 있다. 교회의 생명은 복음적이라는 최고의 가치를 지니고 있음에도 복음이 왜곡되고 진리가 혼돈되어 참 진리를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특히 교회는 복음주의의 현 위치와 평가, 특징과 매력, 문제점, 나아갈 방향 등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주의는 매우 역동적인 신앙운동이 전개되면서 다음 세기 동안에도 꾸준하게 성장해 나갈 전망이다. 1990년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500곳의 개교회를 대상으로 실시된 여론 조사에 따르면, 그중 89%가 복음주의적인 것으로 밝혀졌다. 복음주의의 세계적인 부흥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 지역은 거의 없을 정도다. 심지어 로마 카톨릭교회의 중심지로 여겨져 온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서도 2025년이 되면 다양한 형태의 복음주의가 수적으로 지배적인 세력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기독교의 미래는 복음주의 운동에 달려 있다고 할 것이다. 지성과 감성을 조화 시키면서 복음주의 운동에 기대로 미래를 기다리고 있다. 복음주의를 이해하려는 모든 시도는 그 운동의 역사와 정체성에 대한 신중한 반성과 함께 시작돼야만 한다. 복음주의는 서유럽에 있는 현대 교회 내에서 가장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본 발제문은 지난 1월 20일 세종 꿈의교회(안희묵 대표목사)에서 진행한 제1차 총회 부흥협력단 교회회복 희망 페스티벌에서 강사로 나선 총회장 곽도희 목사(남원주)의 발제문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편집자주 미자립교회 살리기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나는 못합니다. 주님이 하십니다.” 주님의 은혜로 지금까지 35년 동안 목회와 부흥사역을 감당해 왔다. 부흥회를 다니면서 미자립교회와 농어촌교회를 갈 기회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수많은 목회자들이 겪고 있는 고충과 어려움들을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보면서 내 마음으로 사무치게 느끼게 되었다. 부흥회 사례비는 많으면 70만원, 적게는 30만원이었는데 차마 받지 못하고 사모님께 드렸다. 봉투를 받아들고 눈물을 흘리는 사모님들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 사례비가 한 달 생활비였던 것이다. 개척 교회 목사님들은 1~3년 동안 미친 듯이 목회활동을 한다. 하지만 4~6년이 지나도 부흥이 되지 않고 그렇게 10년이 지나면 힘이 빠져서 포기하게 된다. 결국 생활비를 구하기 위해 목회자는 대리운전을 하고 사모님은 취업전선에 뛰어든다. 이러한 상황에 처한 목회자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단순히 재정지원만 해 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