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정기총회를 앞둔 대의원들의 초미의 관심사는 총회 주요 현안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일이다. 해마다 총회는 회기마다 교단에 직면한 민감하고 중요한 현안들을 두고 갑론을박을 넘어 편을 갈라 갈등과 대립양상을 보여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침례교회가 건강하고 성경적인 길로 가기 위한 대의원들의 생각은 총회 자유게시판이나 본보, SNS 등을 통해 전파되고 알려지는 상황이다. 최근 113차 총회 의장단 예비등록 이후 총회 자유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들은 대의원들을 적과 동지로 편을 나누고 있다. 정치색이 짙은 게시물마다 왜 이 시기에 이런 발언을 쏟아내는지, 충분한 근거와 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하고 있는지 되묻고 싶다. 총회 홈페이지 관리위원회를 통해 계속해서 삭제 처리되는 것을 보면서 교단의 인격과 소양을 다시 한 번 보게 된다. 악성 댓글이나 비방 글 하나로도 사람을 죽이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우리는 필사로 기록된 성경을 통해 전능한 하나님을 믿으며 그 말씀을 통해 성도들을 양육하며 믿지 않는 자를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한다. 우리가 불신자들과 다른 점은 이러한 사명을 바탕으로 보다 거룩한 인격을 갖춘 그리스도인임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총회
둘째 아이를 임신했지만 빚쟁이에게 쫓겨, 오산리금식기도원으로 도망가고 금식에 금식을 거듭하던 어느 날부터 몸이 탱탱 붓고 숨이 차고 심장이 조여 왔다. 예정일을 1주일 남겨두고 부산 침례병원에 갔다. 치료해야 출산할 수 있다고 이대로는 나도 아이도 위험하다고 어찌 이렇도록 임신부를 놔뒀냐고 남편을 나무라시는 의사의 말에 입원했지만 병원비를 마련할 길 없으니 막막하기도 했다. 치료도 못 하고 다음 날 아침에 둘째가 태어났지만 아기도 입원하고 산모도 의식을 잃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누군가 내 입에 죽을 떠 넣으면서 정신을 차리라 하는 소리를 들었다. 겨우 눈을 떠보니 남편을 만나게 해주신 목사님과 사모님이셨다. 동짓날이라 팥죽을 가지고 와서 먹이셨던 것이다. 하나님 은혜 가운데서 사랑의 손길을 통해 병원비 일부를 보내셨고 침례병원의 많은 배려로 무사히 치료받고 아기와 함께 건강하게 퇴원할 수 있었다. 퇴원해서 그 추운 동지섣달에 천막 한 켠에 합판으로 막아 방이라고 겨우 살고 있으니 어찌 산후조리를 할 수 있었겠는가? 길 건너 이웃 장로교에 다니는 성도들이 천막 교회 사모가 출산했으나 먹을 것이 없다는 소문을 듣고 돈을 모아 성미를 모으고 소고기 한 근
필자가 학부과정에서 내가 제일 마음에 들어했고, 평생 추구해야할 모델 신학자는 헨리 디이슨(Henry C. Thiessen, 1883~1947)이었다. 조직신학 수업 도중에 존 웨슬리의 신학은 칼빈주의와 아르미니우스주의, 그 중간 어디쯤이라고 들었는데, 어쩌다가 이러한 중도노선을 추구하는 신뢰할만한 신학자로 ‘헨리 디이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당시 교수가 어떤 근거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헨리 디이슨’의 신학노선은 바로 침례교 신학노선이라는 말을 들었다. 당장 원서를 구입해 읽기 시작했고 침례교회가 대단히 보수적이며 대단히 건전한 신학을 견지한다고 믿게 됐다. 학부를 졸업하고도 몇 년의 시간이 지난 뒤에, 신학교 M.Div. 과정에 진학할 때에는, 신학에 대한 나의 생각에 많은 변화가 있었기는 하지만, ‘헨리 디이슨’ 혹은 그 사상적 계보를 잇는 신학을 제대로 접하게 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물론, 1947년에 세상을 떠난 미국인이었기에 시대적 한계로 인해, 신학에 몇 가지 치명적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매우 건전한 조직신학을 제대로 배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만큼은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대전에 내려와보니 침신대는
우리 교단 113차 총회 의장단 예비 후보들은 지난 7월 6일 후보 등록을 모두 마쳤다. 이날 총회장 예비 후보는 이욥 목사(대전은포)와 이종성 목사(상록수)가, 1부총회장 예비 후보로는 홍석훈 목사(신탄진)가 각각 등록했다. 예비 후보들은 본선거 등록 전까지 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조현철 목사) 규정에 따라 선거운동을 전개하며 지지를 호소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선관위는 규정된 범위 내에서의 활동은 깨끗하고 공명정대한 선거 운동을 기대하고 있다. 우리는 다양한 교단 지도자를 배출하며 교단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는 이들을 지켜봤다. 모두가 개인의 명예보다 교단을 위한 마음이 더 크다는 점으로 대의원들은 투표를 통해 보여줬다고 본다. 지지하는 조직이나 이익에 따른 선거가 아닌 진정으로 교단의 미래를 감당하며 교단을 위해 봉사하는 자를 세울 수 있도록 우리는 후보자들의 공약사항을 확인하고 선거운동원을 통해 대의원들은 교단의 지도자를 선택해 왔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혹시라도 교단 선거가 정치적인 쟁점이나 이익을 위해 선거가 과열되지 않기를 바란다. 대의원들은 누가 되느냐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교단을 위해, 개교회를 위해 어떤 일을 해줄 수 있느냐를 판단
선교사 직분을 사임한 토마스는 중국을 떠나 영국 본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다. 그러나 당시 여러 상황으로 인해 귀국은 쉽지 않는 상황이었고, 그는 생계를 위해 산둥성에 소재한 항구도시 ‘즈푸’의 세관에서 통역사로 취직했다. 지도를 보면, 항구도시 즈푸의 우측 방향에는 서해(황해)가 있는데, 서해(황해)를 넘으면 바로 조선이었다. 세관에서 일하게 된 토마스는 모든 것을 잊기 위해 일에 전념했다. 약 9개월 정도 일하게 됐는데, 이때 스코틀랜드 성서공회의 알렉산더 윌리엄스 선교사를 만나 호형호제하면서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토마스는 윌리엄스 선교사를 통해 조선인들과 만나는 기회가 생겼다. 그 조선인들은 김자평과 최선일이라는 천주교 신자였다. 김자평과 최선일은 조선의 천주교 박해를 피해 중국으로 건너왔다. 당시 조선은 1791년 신해박해(천주교 신자인 윤지충과 권상연이 1790년 북경교구에서 내린 ‘제사 금지령’에 따라 조상 숭배를 거부하고 신주를 모두 불태우며, 윤지충의 어머니 장례를 전통적인 유교 방식으로 치르지 않아 처형당한 사건)를 시작으로 이후 천주교에 대한 크고 작은 여러 탄압과 박해가 많았다. 왜냐하면 조선은 천주교를 조선의 전통적인
코로나 엔데믹 이후 교단 내 행사가 활기를 띠고 있다. 총회와 각 기관은 기도회를 비롯해 교육 세미나, 각 기관 정기총회 등 적극적인 대면모임을 진행했다. 오랜만에 동역자끼리 한 자리에 모여 함께 교제하고 은혜를 나누며 다시 코로나 이전으로 사역들이 회복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교단 행사를 참여하고 함께 하며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112차 총회는 올해 초 전국교회의 교세보고서를 통해 다양한 통계 자료를 발표했다. 이중 출석교인 연령별 분포에서 0~20세는 전체 출석교인의 18.77%, 20~29세는 11.38%, 30~39세는 12.17%, 40~49세는 15.34%, 50~59세는 16.67%, 60~69세는 13.62%, 70세 이상은 12.01%로 조사됐다. 다음세대는 전체 출석교인에 1/5이 안되는 상황이며 교회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20~40세는 38.39%이고, 교회의 중직이라 할 수 있는 41~60세는 42.3%를 차지하고 있다. 통계자료를 근거로 교단은 고령화의 상황에 접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교단 주요 행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전국여성선교연합회 구국기도회나 전국남선교연합회 영적성장대회, 전국사모회 연
본래 다섯째날 방문하기로 했던 유대인 최후 항전 요새인 마사다 국립 공원이 우리의 여정 넷째날까지 오픈하고 바로 다음날부터 며칠간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전해져 금일의 일정과 후일의 일정을 바꿔 진행하게 되면서 갈릴리 침례식 다음날인 네 번째 날 문제의 요단강 침례터를 전격 방문하게 됐다. 원래의 침례식 거행 장소였음을 밝히자 아이들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1차 때보다 모여든 순례객의 수가 현저히 줄어 혼잡은 덜했으나 여전히 강물은 혼탁했고 뚜렷한 기준없는 차림 혹은 탈의한 채로 강물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적잖이 보이니 차갑긴 했지만 잔잔한 유속과 맑은 수질의 갈릴리에서 오롯이 우리들만의 침례식을 거행함이 선물처럼 여겨진 모양이었다. 엘리야의 뒤를 이어 북왕국 이스라엘의 선지자로 활동했던 엘리사가 여리고성의 물을 소금으로 치유해 새롭게 만들었던 일을 기념하며 보존되고 있는 여리고 동편 엘리사의 샘을 지나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으셨던 일명 시험산 조망 스팟을 지나던 중 잠시 들른 휴게소에서 외국인 성지순례객을 태운 한 버스의 기사를 보았는데 놀랍게도 그는 3년 전 1차 뿌리 이스라엘 원정대를 태우고 순례 기간 내내 정을 나누었던 기사 리프핫이었다. 더욱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향후 어떤 목회로 나아가야하는지에 대한 고민들을 나누고 해법을 모색하는 다양한 콘퍼런스와 모임이 열리고 있다. 하지만 어째선지 이런 행사들은 아는 사람만 아는 경우로 그치거나 사상누각에 그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중직 문제 등 이미 10년은 훌쩍 지난 이슈가 아직도 새로운 것처럼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교회의 변화는 오리무중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물론 변화들을 위한 움직임은 있었다. 새로운 목회를 추구하며 도전하는 이들이 교계 언론에 소개되고 있기는 하지만 어떠한 큰 운동으로 발전하기에는 무리가 따랐던 것이 현실이다.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콘텐츠의 개발 및 선점, 그리고 이를 통한 운동을 일으켜야 한다. 우리 교단의 경우 어떠한가? 6년 동안 침례교단에 몸을 담으면서 느낀 감상은 굉장히 인싸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점이다. 교단의 미래발전을 위한 담론들이 오가는 소식보다는 체육대회나 나들이를 다녀왔다는 기사들, 어디어디에 후원했다는 기사로만 신문이 채워지고 있다. 물론 이런 일들도 없어서는 안되겠지만 아쉬운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최근 종료된 라이즈업뱁티스트같은 행사들이 있기는 하지만 솔직히 교
6월 9일부터 진행한, ‘다음세대부흥위원회’ 주관의 전국 침례교회 릴레이 기도회가 한국교계의 모 주요 언론지에 기사화됐다. 이 기사는 김인환 총회장의 발언을 빌어 “‘다음 세대가 무너지고 있는 오늘, 우리의 모습을 진심으로 회개하고 자복하며…아울러 다음 세대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고 후원하며 침례교회의 미래를 바라보기를 원한다’고 취지를 밝혔다”라고 전한다. 김인환 총회장의 발언에 포함된, 지금 다음 세대가 무너지고 있다는 통찰력과 다음 세대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한다는 당위성, 그리고 간절한 소망은 전적으로 동의할만하다. 아니, 어떤 누구라도 감히 부정하지 아니할 것이다. 특히, 두 번째 문구 “우리의 모습을 진심으로 회개하고 자복하며”라는 말은 절실하게 맞는 말이다. 정확하게 맞는 말이기 때문에, 그리고 다음 세대가 무너진 중요한 원인제공자가 바로 지금 우리이고,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에, 비록 가슴이 아프더라도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진실하게 받아들이고 부족함 없이 철저하게 바로 잡아야 한다. 정말이지, 올바른 방향설정이다. 그런데 12일간에 걸쳐 진행되는, 12개 교회의 명단은 우리 교단의 대표적인 교회들인 셈인데 모범적이며 바람직한 모델일까에 대해 의구심이
최근 서울시가 서울퀴어문화축제 주최 측의 서울광장 사용을 불허했다는 소식이 알려져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았다. 서울시는 기독교 단체가 청소년 행사를 같은 날에 신청했다는 이유를 근거로 들었다. 불허 사유를 CTS문화재단에게 돌리기보다는 지금까지 퀴어축제에서 발생한 상식에 어긋난 행위들을 지적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래도 불허 결정을 내린 것은 매우 합리적인 처사라고 본다. 현재 퀴어축제 측은 서울시의 불허 결정에 장소를 을지로 2가로 변경하기로 했다고 한다. 퀴어축제는 서울만의 문제가 아니다. 춘천은 물론 대구에서도 그들의 야욕은 멈추지 않았으나 다행히 두 도시 모두 퀴어축제 개최에 대해 강한 반감으로 인해 퀴어축제 측의 기대대로 흘러가는 일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사실 퀴어축제를 막아낸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끝난 것은 아니다. 동성애 진영은 포괄적차별금지법과 평등법, 학생인권조례, 국가인권기본계획(NAP) 등을 통해 계속해서 마수를 펼치고 있고, 혼인평등법과 비혼출산지원법, 생활동반자법 등 ‘가족구성권 3법’의 입법 시도로 전통가족 체계의 붕괴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 이 와중에 한국 보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