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베드로가 전한 복음도 부활 중심이었는가? 베드로가 행한 최초의 복음 전도 설교는 사도행전 2장에 비교적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신 현장을 찾아온 유대인들에게 열한 사도와 함께 일어서서 베드로가 한 설교이다. 14~21절은 모여든 군중에게 그들이 보고 있는 광경은 요엘서에 기록된 대로 성령께서 임하셨기 때문에 일어나고 있는 현상임을 설명한 후 곧바로 성령의 강림이 가능했던 이유가 그리스도의 부활이라고 선포한다. 그들이 못 박아 죽인 나사렛 예수께서 부활하셨고 또한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는데, 그분이 고난당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이미 약속하신 대로 아버지한테서 성령을 받아 보내주셨고 그들은 그 현장을 보고 있는 것이라는 선언이었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그 군중이 보고 있는 현상이 바로 예수께서 고난당하시기 전에 이미 약속하셨던 것이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것은 다름 아닌 그들이 죽인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확증해 주는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 일련의 일들에 대한 증인이었기에 그렇게 담대히 선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하나님이 오른 손으로 예수
부산에 있는 왈레스기념 침례병원은 미국 남침례교국제선교부(IMB)가 우리나라 6·25 전쟁 기간 중에 대한민국 임시 수도 부산에 있는 충무로교회(현 부산교회)에서 진료를 시작하면서 설립된 병원이다. 미국 국내가 아닌 다른 나라에 세워진 침례병원 중에서 IMB가 가장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병원이 왈레스기념 침례병원이었다. 중국에서 순교한 의료선교사 빌 왈레스를 기념하는 침례병원은 전쟁기간 중에 수십만명의 환자들을 진료했고 전쟁 후에도 지역사회에서 가장 신뢰받는 종합병원으로 성장했다(이 당시에는 부산대학교 의과대학 졸업생들이 부산대학병원보다 침례병원에서 수련 과정을 받겠다고 몰려왔었다). 그러던 침례병원이 IMB 선교사들이 1990년 이후 떠나면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경영악화로 인한 적자가 누적됐고 병원 부채를 갚아나갈 수 없게 되자 지난 2017년 7월 14일 부산지방법원은 침례병원 파산을 선고하게 됐다. 침례병원은 즉각적으로 파산을 재고해달라고 이의신청(항고)를 했지만 아직까지 침례병원의 주인 역할을 할 사람이 법원에 구체적으로 회생신청을 제출하지 않고 있어서 9월 27일이 자나면 침례병원은 경매(공매) 처분되어 사라질 절박한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주권이 국민에게 있으며 국민에 의해 정치를 행하는 주의)로 ‘인권’(인간으로서 당연히 갖는 기본적 권리)이란 탈을 쓴 동성애 동성혼 합법화가 눈앞에 다가와 있습니다. 한 마디로 너무나도 비참한 일입니다. 또한 대한민국 정세는 그 어느 때보다 전쟁 위협 속에 있습니다. 북한은 날마다 미사일을 쏘아 올리면서 전쟁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다들 괜찮다고 합니다. 동성애 동성혼 나와 상관없고 관심도 없고 오히려 교회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다시 질문합니다. 또한 대한민국은 절대 전쟁 일어나지 않고 북한 김정은이 쇼하고 있는 거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느 새벽기도가 끝난 후 잠시 성지순례기간에 갔던 이탈리아 폼페이가 생각이 났습니다. 지금으로 B.C. 79년경 수많은 사람들이 평화롭다고 생각했던 폼페이는 수많은 외국인들이 왕래하는 경제적 정치적 무역지역이었습니다. 그런데 폼페이에는 커다란 베수비오 이름을 가진 산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누구도 그 산이 휴화산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탈리아 폼페이가 18세기 중반에 한 농부를 통해 발굴되기 시작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폼페이에 무슨 일이
‘우리 교단 이대로 좋은가’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신 줄 압니다. 지난 106차 정기총회는 태풍처럼 지나가서 교단 발전의 정책을 심도있게 논의 할 여유를 갖지 못했습니다. 이제 우리 교단은 현실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미래를 바라보는 현실적인 정책이 수립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번 총회장 후보자들의 소견을 보면 키워드가 “미래”와 “세움”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미래를 위하여 무엇을 세울 것인가 당면한 과제이기도 합니다. 필자는 총회장 후보자와 1500대의원들에게 교단 발전과 질서를 확립할 수 있는 정책을 제안합니다. 인선공천위원회를 설치하자는 겁니다. 지금까지 우리 총회의 인선은 대부분 총회장이 주도적으로 단행하였고 심하게 말하면 소위 코드인사를 자행해 왔습니다. 이로 인한 피해는 교단의 분열과 독선과 일관성없는 인사 등 행정의 혼란을 가져왔고 교단 기관의 존폐를 좌우하는 원인이 되었다고 판단됩니다. 그러므로 총회장은 당회기의 임원만 인선하고 각 기관의 장과 이사, 감사 등은 인선 공천위원회의 추천을 통해서 적재적소의 인재를 기용할 수 있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더 이상 감투정치로 혼란을 가져오고 총회의 인사행정에 난맥상을 미연에 방지
“침례병원을 가려면 어디서 내려야 합니까?” 앞에 앉은 자매가 “남산동에 내려야지요. 나도 거기 내리니 따라 내리면 돼요” 옆에 앉은 분이“거기는 뭘라꼬 가요. 침례병원 문닫은지 오래됐어요.” 앞에 앉은 분은 “그래요! 아이고 우짜노, 나는 오랫동안 침례병원만 다녔는데…그게 정말입니까?” 이렇게 병원에 대한 얘기가 오가다가 날보고 “문 닫은 줄 알고나 갑니까?”라고 물었다. 그렇다고 한 후 나도 하도 답답해서 7월 3일부터 한 주간 금식기도를 하려했는데 집 이사를 하느라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기도라도 하려고 서울에서 내려왔다고 대답했다. 정문 앞에 두 사람의 수위가 지키고 있어 서울서 여기 온 사실을 얘기하고 잠깐 기도하게 허락해 달라했더니 법적 관리중이라며 딱 거절해서 눈치를 보다가 지하로 들어가는 문으로 달려가니 주먹만 한 열쇠가 굳게 챙겨져있어 또 다시 나와 할 수 없이 정문에서 사진을 두 장 찍고 고개 숙여 기도한 후 눈물을 닦으며 돌아 나와 전철로 온천장에 내려 모텔에 투숙하고 부산의 어느 누구와도 연락 않고 습설해서 노포동에서 버스로 목포와 광주를 거쳐 무등산 기슭 모텔에서 늦잠 자고 이튿날 기차로 서울로 올라오면서 뒤돌아보니 ‘침례병원은 나 때문
아스팔트 거리를 걷는 도시민은 무척이나 흙 밟기를 좋아한다. 문경새재 제일관문에서 마지막 관문까지는 아스팔트가 아닌 순 흙길이다. 도시민이 와서 맨발로 걷는 것을 보면 흙을 무척 그리워하는 모습이 보인다. 왜 사람들은 흙을 동경하는가! 도시 직장에서 은퇴하고 귀촌하는 사람들의 얇은 소망은 텃밭에 채소를 심고 호미로 땅을 뒤져보는 것이었다. 손으로 흙을 만져보고 코로 흙냄새도 맡는다. “산골농부의 자연밥상”의 저자 자우님의 “흙과 더불어 사는 즐거움”이란 글이 있기에 여기 실어본다. 그대로의 자연 그리고 건강한 삶 자연에 온전히 몸을 맡기고 산골농부로 살아가는 동안 심성도 변하고 관상도 변한 것을 보면 흙밭과 더불어 마음밭도 적잖이 일궈진 모양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변화는 남의 일인 줄만 알았던 건강한 삶이 지금 여기에서 현재 진행형으로 펼쳐진다는 것이다. 이렇듯 나를 송두리째 뒤바꿔놓은 것은 다름 아닌 자연에 중심을 둔 농사다. 산골농사는 땅을 갈지 않고, 두둑도 만들지 않고, 화학비료와 농약, 거름 등 인위적으로 만든 자재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농사가 되는지 의아하게 여길 텐데 아주 쉽고 단순한 원리다. 땅을 갈지 않는 ‘무경운’과 ‘자연 절기
형의 분노로부터 도망치듯 야반도주한 야곱이 그 밤에 도착한 곳은 루스였다. 언제 누군가로부터 약탈을 당하거나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처지였다. 숨을 곳도 밤이슬을 피할 곳도 없어 그저 너른 들판에 자리를 깔았다. 하늘에는 무수한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넓은 침대였고, 가장 높은 천정이었다. 그런데 그날 밤 꿈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나는 네 조부 아브라함과 네 부친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와 함께 하고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너무나 놀랐다. 아버지의 집에만 계시는 줄 알았던 하나님이 여기에도 계셨던 것이다. 그 하나님이 내가 어디로 가든지 나와 함께 하시겠다니. 그래서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다.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이다. 이곳 벧엘은 야곱의 생애에 영적인 고향이 됐다. 힘들 때마다, 흔들릴 때마다, 그때 그곳에서 들려주신 주의 음성,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지키리라’는 이 음성이 그에게 큰 힘이 됐다. 어쩌면 야곱은 그 추억 하나로 일생을 버텼는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에게는 이런 영적인 추억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고향 뒷동산을 떠올리듯이, 영적인 고통이 밀
캐나다의 자스퍼 국립공원에는 에디트 카벨이라는 영국 간호사의 이름을 기념하는 아름다운 산이 있다. 그녀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과 프랑스군의 부상병을 간호해서 탈주시켰다는 죄로 독일군에게 총살됐다. 그녀의 동상에 새겨진 유언은 애국심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아무에게도 미움과 쓰라림을 품지 않아야 합니다. 미국 역사상 링컨처럼 비난과 미움과 배신을 많이 당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핸더슨이 쓴 전기에는 그는 어떤 조처를 취할 필요가 있을 때는 그의 정적들도 다른 사람들만큼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를 비난하고 불평하는 사람일지라도 어떤 지위에 적합하면 친구에게 주듯이 그 자리를 선뜻 주었다. “싫어하는 사람이라든가 그의 정적이라는 이유로 누구든 면직시킨 일은 없었던 것 같다”고 써 있다. 우리의 적들과 마찬가지로 육체적, 정신적, 감정적 특성을 우리가 타고났다면, 그리고 그들이 인생으로부터 받은 것과 똑같은 대접을 받는다면 우리도 그들과 똑같을 것이다. 오! 하나님이여, 우리가 남의 신을 신고 보름 동안 걸어보기 전에는 남을 판단하거나 비난하는 일을 삼가게 하소서라는 수우족 인디언의 기도문을 우리도 외울 만큼 너그러워야 할 것이다. 적을 미워하는 대신에,
나는 요즘 글을 쓰고 싶다. 특별한 경험이나 의미 있는 삶의 흔적을 글로 남기고 싶다. 그런데 막상 글을 쓰려고 하니 쉽지 않다. 현대는 지식 기반 사회로 말과 글이 넘치는 사회라고 한다. 다양한 분야의 많은 글들이 이미 쓰여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든지 필요한 글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굳이 내가 또 글을 써야 하는가? 라고 자문하면서 글 쓰지 않는 것을 합리화했다. 또한 글을 잘 쓰고 싶은 바람이 글 쓰는 것을 망설이게 했다. 내 마음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문자로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리고 글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쓰는 것도 의외로 어려웠다. 그뿐만 아니라 글을 쓸 시간이나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다른 일을 할 시간은 있는데 앉아서 글 쓸 시간은 없다. 글 쓰는 것이 부담스럽다. 그렇지만 목사는 글을 쓰면서 살아야 한다.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직접 글을 써 주셨다. 그게 바로 십계명의 돌판이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직접 신약성경을 기록하진 않았지만 제자들을 통해 신약성경을 쓰게 하셨다. 신약성경의 절반을 기록한 사도 바울은 말주변은 별로 없었지만, 그의 글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었다고 한다. 세상의 많은 유력한
내가 한국인으로 모국어를 사용하면서 느끼는 것은 우리말은 우리 역사와 문화, 관습, 그리고 우리 전통들을 송두리째 담고 있는 그릇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그 민족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그 민족의 의식세계에 깊은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그 민족들이 수천 년을 그 땅에서 살아오면서 민초들이 만들어낸 속담들이야말로 그 민족성의 일부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우리 한민족이 사용해온 속담가운데는 아름다운 속담들도 많이 있지만 내가 인생의 여정을 살다 느낀 것은 어떤 속담들은 이것들은 우리 속담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것들이 의외로 많다. 그 중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우리 사회 곳곳에는 오늘도 아니 땐 굴뚝에서 시커먼 거짓 프로파간다의 연기가 무럭무럭 피워 올라서 무수한 생사람들을 잡고 있음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옷깃 한번 스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요란한 소리들이 도처에서 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런 종류들의 어처구니없는 속담들을 오늘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서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 가운데서 내게 가장 공감되지 않는 속담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