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개의 수명과 관련된 예화가 있다. 솔개의 최대 수명은 약 70세인데 이렇게 장수하려면 40세가 됐을 때 매우 고통스럽고 중요한 결심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노화된 발톱을 뽑고 길게 자란 부리를 깨뜨려 다시 자라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이 설교는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우리가 크리스천으로 거듭나 바로 살아가기 위해선 솔개가 했던 것처럼 발톱을 뽑고 부리를 깨뜨리는 결심과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고 말이다. 물론 나 또한 그 설교에 은혜를 받았던 한사람이다. 하지만 이것은 명백한 가짜뉴스이다. 솔개가 부리를 깨뜨리면 그것은 그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이며 부리가 다시 자라나지도 않는다고 한다. 은혜를 위해 가짜뉴스가 강단에서 선포된 것이다. 예화별로 논란의 여지는 있을 수 있으나 설교에서 사용되는 가짜뉴스는 지금 당장은 은혜로 작용할지 몰라도 건강하다고는 볼 수 없기에 올바른 분별이 필요하다. 설교의 무게감과 책임감은 그 어떤 예배순서보다 크다. 종교개혁 당시 만인제사장을 부르짖은 마르틴 루터 또한 이 사실을 잘 알기에 목사라는 제도적 장치를 보전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한국의 주류 교회 대부분의 예배순서에서도 설교의 비중은 크게 작
우리교단 제109차 정기총회를 앞두고 전국 교회들의 교세보고서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다. 교세보고서를 보면 개 교회의 재적 및 출석 성도, 성도 분포 현황, 재정 상황 등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개 교회의 민감한 정보를 담고 있어 비공개가 원칙이지만 큰 틀에서 보자면 침례교회의 수와 성도의 숫자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침례교회 또한 여느 한국교회처럼 중대형교회보다는 작은 교회가 대다수다. 작은 교회 대부분은 미자립 또는 개척교회들이다. 흔히 말하는 미자립교회의 정확한 사전적 정의는 교계에서 통일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미자립교회라고 하면 재정적으로 자립하지 못할 경우를 일컫는다. 그런 만큼 외부지원은 교회를 지탱하는 큰 요인이 된다. 침례교단 소속의 미자립교회는 80% 안팎으로 추산한다. 그만큼 교회의 운영과 활동이 열악한 곳이 많다는 의미이다. 대부분의 미자립교회는 자립교회나 지방회, 연합단체 등을 통해서 지원을 받는다. 재정적인 지원이외에도 선교지원, 전도지원 등을 돕고 있다. 앞으로도 미자립교회 지원 사역들은 보다 체계적이고 많은 교회들이 혜택을 볼 수 있도록 실질적인 협력이 이뤄져야 할 때다. 현재 교단 내에서 대표적으로 미
군 복무 시절 정신교육 시간에 우리 군의 주적에 대해 “북한 주민을 제외한 군·당·정”이라고 교육을 받았다. 최근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로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주적의 개념을 놓고 볼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무조건으로 반일을 한다며 일본과의 모든 관계를 끊어야 맞는 지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 개인적으로 일본인 모두를 적으로 돌리는 것보다 이 일을 야기시킨 일본 아베정권에 화살을 돌려야 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일본선교에 소명을 품고 있던 나는 대학생 시절 매년 여름마다 통역을 위해 일본 오사카 부근에 있는 히라가타시(枚方市)의 한 교회로 단기선교를 떠났다. 분주한 일정이었지만 현지 교회의 일본인 목사는 강제징용된 조선 사람들이 모여 살던 마을로 우리를 인도하는 일정을 빼놓지 않았다. 일제가 당시 우리 국민들에게 어떤 죄악을 저질렀는지 빠짐없이 고백하며 무릎을 꿇고 우리에게 대신 사죄했다. 이 일본인 목회자의 진심어린 사죄를 통역할 때마다 일본선교에 대한 나의 마음은 커져갔다. 일본이 복음으로 변화되면 회개의 불길이 일어나 한일관계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것이고 여기서 더 나아가 중동과
8월 15일은 우리나라가 일제의 포악한 강점에서 해방된 광복의 날이다. 1910년 8월 29일, 그동안 끊임없이 조선과 대한제국을 침략하기 위해 일본은 갖은 만행을 저지르며 이 나라의 경제침탈, 군대해산, 외교권 박탈 등을 벌이면서 결국 강압에 굴복해 36년의 긴 압제의 시절을 겪었다. 36년의 시간 동안 우리 한반도는 고통과 아픔의 시간을 보내왔다. 철저하게 일본의 통치에 신음하며 인적, 물적 자원들이 수탈되고 언론과 문화가 통제되며 태평양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의 병참기지로 수모를 당했다. 3·1만세운동과 의병활동, 대한민국임시정부 활동, 독립군의 활동으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수많은 희생이 있었지만, 일본은 이러한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가혹하게 탄압하며 한반도를 유린했다. 한국교회는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일제의 탄압에 항거하고 독립을 외쳤던 사실들을 기념했다. 비폭력 평화적인 방법으로 독립을 요구하고 그 중심에 교회들이 일어났다는 사실, 우리 믿음의 선진들이 이 나라의 독립을 얼마나 간절하게 염원했는지 신자들도 알아야 할 것이다. 침례교회 또한 주요 사료를 통해서 만세운동에 참여하고 구국기도회를 개최하며 독립을 기원하고 독립운동에 적
2019년 8월 19일은 침례신문 창간 64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동안 침례신문은 침례교단 유일의 교단지로서 교단의 산 역사를 기록하고 교단 발전을 위해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 왔다. 본보는 개교회와 지방회, 여러 단체와 총회 기관, 총회와의 협동과 협력을 추구하며 교단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왔다. 또한 교단 현안에 대해 객관적인 시각으로 교단의 유익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해 왔다. 한국전쟁으로 대부분의 침례교회를 잃은 우리 교단은 1955년 8월 교단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침례회보’를 창간했다. 교단의 수많은 선배 동역자들이 눈물과 땀이 어우러진 본보는 1970년 경영난으로 폐간의 아픔을 겪었지만 교단의 목회자들의 기도와 헌신으로 복간하며 오늘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다양한 미디어의 성장과 매체의 발달, 1인 미디어 시대, SNS의 활성화는 종이 신문을 제작해 편집하는 본보에 커다란 위기와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점차 종이 신문의 쇠퇴는 막을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지만 여전히 교단에서 본보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교단의 현안을 인쇄물로 접해 볼 수 있는 유일한 매체로 여전히 교단 목회자들에게 사랑받
나는 가끔 명품과 명문가를 몹시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때로는 교회 지체들이나 또 아내까지도 우리 목사님은 명품 좋아하고 명문가 좋아해라고 말할 때면 어의가 없어진다. 아무리 살펴봐도 내 소지품들은 그냥 평범하고 명품이라고 굳이 내세울 만한 것은 명함케이스 하나다. 평생에 명품이란걸 가져본 적이 없어서 나는 분명히 명품 애호가는 아니다. 물론 명품을 구입할 경제적 여력이 있지도 않고 명품을 구입하는데 돈을 쓰고 싶지않다. 그리고 나는 명문가 자식도 아니고 명문가가 되보려 한 적도 없다. 그런데 내가 왜 그런 오해를 받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평소에 명품과 명문가 애찬론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명품이란 무엇일까? 한 물건이 명품으로 인정받는 과정은 간단치가 않다. 이것은 가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구촌에 사는 어떤 민족도 이 물건에 가치를 공유해야 한다. 그리고 그 물건을 소유하기 위해 기꺼이 대가를 지불할 수 있어야 한다. 오랜 시간을 소장해도 그 가치가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 용도가 이와 같던지 비슷해도 언제나 비교 우위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어떤 물건을 명품이라고 할 때 공감이라는 필수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어릴 때 어른들이
초등학교 6학년 때! 학교를 마치고 귀가 하는데 어머니가 집에서 키우던 닭을 잡고 집을 나서던 중 내가 물었다. “엄마! 닭은 왜 가지고 어디가?” “음 시장에 가서 팔려고 “ “ 왜 팔아?” “응 돈 쓸 일이 있어서…” 돌아오신 어머니 품에 닭은 없었다. 이튿날 학교 특활시간에 문예부에서 글짓기 시간에 닭과 얽힌 내 이야기를 원고지에 담아 써 내려갔다. 마침 문예부 지도를 하신 담임 선생님이 내가 제출했던 원고지를 주시면서 앞에 나와 읽으라고 하셨다. 200자 원고지의 대여섯 분량을 읽어 내려갔다. 선생님은 참 잘 썼다고 칭찬하시며 다음 글짓기 대회에 틀림없이 입상할 거라고 칭찬 하셨다. 그 후로 나는 원고지 칸을 채우느라고 많은 시간을 보내고 했다. 모든 가르침의 과정에서 어떤 과제를 학습하기 위해서는 학습자는 주어진 자극에 대해서 적절한 반응이 도출되어야 모든 학습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부활절에 성도들이 나눠준 계란은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뭇 인생들에서 안에서의 ‘줄’, 밖에서의 ‘탁’이 되어 동시에 일어났을 때, 새 생명이 되어 하나님의 자녀로 양육할 수 있다. 부활절에 달걀을 삶아서 나눠주는 풍습을 종교개혁자인 마틴 루터로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여름 휴가철을 맞아 일선 개교회들은 전교인 수련회 및 단기선교를 진행한다. 가깝게는 C국을 비롯해 중동이나 아프리카로 의료봉사 등으로 주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그리고 그곳에 일어날 주님의 역사를 기대하며 기도로 준비하고 있다. 선교지로 떠날 때 선교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중요하게 준비해야 할 것이 바로 안전문제일 것이다. 한국교회는 이미 2007년 가슴 아픈 일을 겪은 바 있다. 바로 탈레반에 의한 분당샘물교회 사건이다. 시시비비를 떠나 이 사건은 한국 교계는 물론 한국사회에 크나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단기선교에 있어 안전을 경시해서는 안된다는 풍토가 마련됐다. 그리고 이 사건을 계기로 교계 위기관리 전문기관 한국위기관리재단이 발족하게 됐다. 지난 7월 2일 외교부와 한국위기관리재단, 선교단체 관계자들은 간담회를 열고 여름단기선교 안전에 대한 세부사항을 논의했다. 이날 논의된 내용은 네팔지역의 위기관리 강화와 불안한 중동 정세로 인한 안전 주의, 항상 위험지역으로 분류되는 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갔다. 먼저 네팔지역의 경우 중국의 영향으로 선교활동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상황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현지 경찰에 선교사들이 체포돼 500달러의
108차 회기가 마무리 돼 가는 시점에서 어떻게 흘러갔는지 되돌아보기를 원한다. 총회 인수인계 이후 정기총회에서 임명받은 위원들이 해임되고 총회 행정을 책임지는 총무를 직무에서 정지시켰다. 총회 규약의 임원 선임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임원을 선출한 이후 9명의 임원이 직무정지가 되고 일부 인원이 사임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108차 회기에 해임된 임원들은 해임에 불복해 세상 법정으로 갔다. 또한 제108차 총회와 총회 총무가 고소 고발에 항고까지 진행하며 극한의 대립을 보여주고 있다. 더 나아가 총회 규약에 위배되는 특별감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총회를 비롯해 각 기관을 감사하겠다며 총회 규약과 각 기관의 정관을 무시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엄연히 총회는 감사위원회와 윤리위원회 등을 거쳐 총회 조사나 감사 등을 진행할 수 있도록 총회 규약을 개정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며 위원 선임 절차에도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며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는 엄연히 총회 규약에 반하는 행동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교단의 집행부가 진영논리나 내편 감싸기가 아닌 침례교 공동체 대의원을 위해 소통하고 협동하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침례교회가 한 깃발아래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먼저 침례교단 농어촌선교회를 세우셔서 주의 크신 뜻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높이 찬양하며, 저희 농어촌선교회를 위해 기도와 물질 등으로 함께 해 주신 교단 내 모든 교회와 목사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한국교회가 한참 부흥하던 70·80년 대 그 부흥의 밑거름은 농어촌교회였습니다. 농어촌에서 나고 자라며 믿음을 가진 젊은이들이 도시로 나가 교회들을 섬기며 헌신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탈농어촌 현상은 성장하는 도시교회들과는 반대로 농어촌교회들의 성장을 멈추게 했으며, 아이들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차고 넘쳤던 교회들은 원치 않는 빈자리만 넘쳐나게 됐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지금의 농어촌교회는 성장은 고사하고 목회자의 생계마저 고민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대부분의 초·중·고등학교가 폐교 혹은 축소되어 교회에서 아이들과 젊은이들을 더 이상 볼 수 없으며, 그나마 남아서 교회를 지키는 소수의 성도들은 대부분 천국을 앞둔 고령자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어촌 목회자들은 소수의 성도들과 교회를 지키며 나름대로 교회를 다시 일으키려 몸부림을 치며 그 달려갈 길을 달려가는 최선의 헌신을 다하고 있습니다. 주어진 상황에서 오는 미자립의 현실과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