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요한복음에서 하나님의 아들 칭호가 나오는 구절들을 중심으로 요한의 기독론 중에서 하나님의 아들 기독론을 살펴보고 있다. 요한복음에서도 하나님의 아들 칭호는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를 표현하는 가장 중심적 칭호인 동시에, 요한의 구원론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구원의 통로와도 직결된 것으로 제시된다(요20:31). 하나님의 아들 칭호는 나사로 부활 사건에서 두 번 나오는데, 먼저 이 사건의 목적을 알려주는 예수님 자신의 말씀으로(요11:4) 또한 다른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에 관한 여성 제자 마르다의 고백에 나온다(요11:27). 예수님은 나사로의 병듦에 관한 소식을 들으시고는 이틀을 더 머무르신 후에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 지난 후에 나사로의 장례 현장에 가셨다. 요한은 나사로 이야기에서도 다른 사건들의 묘사에서와 마찬가지로 예수님과 등장인물 사이의 대화를 통해 중요한 교훈을 전달한다. 이 사건의 중심적 국면의 묘사에서도 먼저 예수님과 마르다의 대화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와 사역의 핵심적 국면이 제시된다. 예수님은 마지막 날 부활을 기대하는 마르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은 마지막 날 부활에만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생활하는 요즘 젊은이들은 사색하지 않고 검색을 합니다. 숙제도 검색으로 하고, 친구와 밥 먹을 곳도 검색으로 찾고, 검색하지 않으면 쇼핑도 사랑도 못합니다. 그러나 저녁노을을 보는 감동, 새가 날아가는 경이로움, 마른 가지에서 꽃이 피는 기적을 검색해 보세요.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뛰는 심장을 심전도로 측정할 수 없듯이 죽음의 슬픔 삶의 기쁨을 검색해 보세요. 지난 여름, 사랑하는 친구와 함께 손을 잡고 해변을 달리던 때의 그 바다를 검색해 보세요. 구글의 동그라미가 무한으로 이어져도, 검색으로는 찾을 수 없는 세상이 있습니다.” 이어령 저(著) 이어령의 “80초 생각나누기 ‘길을 묻다’”(시공미디어, 129~135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최고의 인터넷 검색 사이트 구글의 로고는 무한을 상징하는 ‘∞’의 연속입니다. 무한대로 펼쳐있는 정보의 바다에서 헤엄치라는 의미입니다. 머리와 가슴보다는 엄지와 검지! 스마트폰과 컴퓨터가 생활 그 자체인 요즘 세대는 머리와 가슴으로 ‘사색’하지 않고, 엄지와 검지로 ‘검색’을 합니다. 친구와 밥 먹을 곳도 검색하고, 쇼핑과 숙제도 검색합니다. 심지어는 목회자들도 주님을 깊이 묵상하기보다는 검색으
요즘 들어 왜 그리도 내 앞에서 눈물 보이는 성도가 많은지 모르겠다. 최근 몇 주간, 전화 또는 대면으로, 남녀를 불문하고, 그 소중한 눈물을 여과 없이 흘려 보이셨다. 이에 그 눈물들의 결을 따라 내 눈물도 함께 흘렸다. 그렇다면 대체 그 의미는 뭘까? 문득 내 지난 과거의 두 장면이 떠오른다. 한 번은 고등학교 2학년 때, 날짜는 6월 6일 현충일. 그날은 고등부 야외예배가 있던 날, 난 총무로서 그 행사의 기획과 진행을 다 도맡았다. 게다가 다음날 7일은 시험까지 있어 5일 밤은 공부하느라 완전히 꼬박 새웠다. 그래서인지 행사를 끝내고 부산역에서 버스를 타고 청학동 집으로 오는 길은 완전히 녹초 그 자체. 그러더니 갑자기 주르륵 코피가 흘렀다. 처음엔 대수롭잖게 여겼지만, 곧 쌍코피로까지 심각해지자, 손수건으로 겨우 틀어막으며 어서 집에 도착하기만을 바랐다. 그렇게 난 정류장에 내렸고, 쏜살같이 집을 향해 달렸다. 대문 앞에 도착해서는 초인종을 있는대로 누르며 어머니를 불렀다. 그러자 놀라 뛰어나온 어머니. 그렇게 난 어머니와 눈이 마주쳤고, 참았던 눈물이 터지면서 곧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나중에 깨어보니 부산 침례병원 응급실. 그제야 정신이 차려져
V. 본문 설명을 위한 기술 알렌 박사는 본문 설명 방법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어떤 설교자들은 본문 주해만으로는 청중들의 관심을 끌 수 없다며 자신들의 본문 설명이 약한 이유를 설명한다. 하지만 본문 주해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지루한 주해(본문 설명)가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설교자는 본문 연구 후에 습득된 연구 자료를 설득력 있고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효과적으로 본문을 설명할 것인가? 필자는 효과적인 본문 설명을 위해서 다음의 열 가지 기술(수사적 질문, 정의, 비교·대조, 분석, 시청각 설명, 논증, 재진술, 인용, 스토리텔링, 실물 설명)을 제안한다. 본문의 내용과 청중의 상황 등을 고려해 아래의 기술들을 선택하여 사용할 수 있다. 1. 수사적 질문 수사적 기술은 청중들의 관심을 끌고 설득하는 기술이다. 수사적 질문은 청중에게 질문함으로써 설교자가 말하려는 부분에 대해 청중이 직접 생각하게 하므로 그들로 하여금 담화에 초대하도록 한다. 따라서 수사적 질문은 설교자가 본문에서 설명하는 주제에 대하여 청중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도록 할 수 있다. 2. 정의 정의는 단어 의미의 “한계”를 정
“자기에게 쓸모 있는 책을 정독하는 것이야말로 지혜의 첩경이다. 그런데 좋은 책인지, 쓸모 있는 책인지는 대체 어떻게 판단한단 말인가. 결국 많은 책을 읽어 보는 수밖에 없다. 쓸모 있는 책, 좋은 책을 고르는 탁월한 안목은 ‘많이, 그리고 골고루’ 읽지 않고는 생겨나지 않기 때문이다. 다독(多讀)의 비효율성은 다독이 효과적이지 못하다고 단언할 만큼 많은 책을 읽어본 사람만 주장할 수 있다.” 임사라 저(著) ‘내 아이를 책의 바다로 이끄는 법’(비룡소, 20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에머슨은 ‘지혜로운 사람은 많은 것을 아는 자가 아니라 쓸모 있는 것을 아는 자’라고 말합니다. 이 진리는 책에도 적용됩니다. 자기에게 쓸모 있는 책을 정독하는 것이야말로 지혜의 첩경입니다. 그런데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 쓸모 있는 책인지는 결국 많은 책을 읽어봐야 압니다. 5세기 중국의 위진남북조 시대에 유협이 쓴 ‘문심조룡(文心雕龍)’은 동양을 대표하는 최고 최대의 문학이론서입니다. 소설가 이문열도 초년 시절 ‘문심조룡’을 자신의 문학 수원지(水源池)라고 소개한 적이 있을 정도입니다. 문심조룡에는 독서에 대한 좋은 권면이 있습니다. “천 개의 곡조를 다룬 후에야 음악을
어느 신앙 월간지에서 헨리 그루버의 ‘세상을 걷는 중보 기도자’라고 하는 글에서 “현 미국을 이끌어 가는 70대, 그들은 성장시기에 새벽에 일어나 신문을 돌리고 추수가 끝난 들판에 남겨진 곡식을 거두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판매한 돈으로 용돈을 벌었던 이들이 국가를 이끌어 가고 있다”며, “그때에는 곳곳마다 부흥회가 열렸고 성령이 부어졌고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고 안타까운 하소연을 소개하고 있었다. 그 글을 읽으면서 10여 년을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점점 줄어들고 있는 젊은 세대의 신앙인들로 인해 마음 아파했던 생각이 났다. 그런 와중에도 근근하게 신앙을 지켜 나가려고 애를 쓰는 노년층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이킨다면 기근의 때의 어려움은 축복이 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킨다면 재앙이 축복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그루버는 역전의 하나님을 소개한다. 영적으로만이 이해할 수 있는 말이다. 가난한 심정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만나 주시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모습과 한국 교회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헬조선이라는 말까지 남발하면서 나라를 비판하고, 개독교라는 소리로 교회를 손가락질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 번제를 드린 솔로몬 왕의 꿈에 여호와께서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고 했다. 열왕기상 3장 9절에 보면 그때 솔로몬은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하고 구했다. 그의 이런 간구함은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고 지혜와 총명뿐만이 아니라 그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주겠다고 하셨다. 솔로몬의 간구가 왜 그렇게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을까?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시다. 성경은 여러 면으로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서 전해준다. 신명기 32장 4절엔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라고 모세는 노래했다. 시편 33장 5절엔 “그는 공의와 정의를 사랑하심이여 세상에는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충만하도다”라고 말씀했다. 하나님의 성품과 사랑하시는 것에는, 뜻과 일하심에는, 세계를 판단하고 심판하심에는 반드시 공의가 있다. 이런 하나님은 인간들에게도 공의가 있길 원하시는데 특히 재판관들에게 더욱 그렇다. 레위기 19장 15절엔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해마다 기독교한국침례회 연차총회 시에 발간되는 의사자료집에는 <총회규약>이라는 제목 하에 다음과 같이 “침례교회의 이상과 주장”이 게재되어 있습니다: 1.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창설하셨고 친히 머리가 되시며 그 입법자이다. 2. 교회의 교리와 생활에 대한 유일하고 권위 있는 표준은 성경뿐이다. 3. 교회의 의식은 침례와 주의 만찬으로서 상징적 기념일뿐 구원의 조건은 아니다. 4. 교회의 직분은 목사와 집사로서 이들은 교회를 섬기는 이들이다. 5. 교회의 정체는 민주정치로서 행정만 할뿐 입법은 하지 않는다. 6. 교회의 회원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난 신자들의 모임으로 구성된다. 7. 교회 회원의 의무는 신앙고백으로 침례를 받고 신약성서의 모든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다. 8. 모든 교회는 행정적으로 독립적이나 복음전도 사업은 협동한다. 9. 교회와 국가는 상호 분리되어 있다. 10. 신앙의 자유는 절대적이다. 또한 최근 3~4년 전까지 침례신학대학교 교직원용 수첩이 발간되었는데, “우리 대학교의 신앙과 주장”이라는 일종의 신앙고백이 게재되고 있었습니다: 1. 성경 : 성경 66권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오류 없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책을 읽는다고 하자. 책의 저자(著者)는 독자에게 있어서는 타자(他者)이다. 타자는 나를 넘어서는 영역, 즉 ‘다름’의 세계이다. 타자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독자는 독서를 통해 타자의 견해를 수용하든지, 거부하든지 아니면 일부 수용하게 된다. 독자는 이런 과정을 통해 주체적으로 해석하는 법을 길러간다. 독서를 통한 타자와의 만남, 타자와의 그 치열한 생각의 전투를 통해 독자는 ‘생각하는 힘’을 기르게 된다.” 한재욱 저(著) ‘인문학을 하나님께’(규장, 34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독서는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 중 하나입니다. 독서는 생각하는 힘을 길러 줍니다. 독서를 하는 중에 저자(= 타자, 他者)의 주장이 너무나 강력하고 감동적이어서 나에게 전적으로 수용되면 카프카가 말하듯이 책은 ‘도끼’ 가 되고, 니체의 표현에 의하면 ‘망치’가 되어 나를 깨서 새로운 세계를 보여 줍니다. 도끼와 망치 같은 책을 만나는 것은 큰 복입니다. 이렇듯 독서는 편견과 아집이라는 거대한 감옥을 쪼개고 새로운 집을 짓도록 해 줍니다. 읽고 생각하고 질문하고 의문을 품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과정 속에, 상상력을 주고 창의력을 주고, 수많은 대리 경험을 하게 합니다. 세종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18:3~4)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2가지 이상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첫째, 아무리 세상에서 잘 나가고, 출세하고, 잘 먹고, 잘 살아도 죽어서 지옥에 가면 사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반대로 거지 나사로처럼 걸인으로 살아도 천국에 간다면 그는 복을 받은 자입니다. 둘째는 우리가 이 세상에 벌거벗고 태어나도 어떤 사람은 대통령이 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노숙자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빌 게이츠처럼 수십조 원의 자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마이너스 통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천국에서도 큰 자가 있고 또한 작은 자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천국에 들어가는 자”와 “천국에서 큰 자”가 되는 모든 비결이 “어린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데 있다고 하시니 어린아이에 관한 연구는 반드시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1) 아주 먼 옛날,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있었던 일입니다. 저희 반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