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영화 ‘1987’을 봤다. 요리하다가 냄비도 태워먹어 집에서 밥을 먹는 것은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에 겸사겸사 외출을 하며 예매를 했다. 한쪽에서는 빨갱이 영화다 한쪽에서는 젠더감수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마초적 영화라는 비판도 있지만 그런 이데올로기적 해석을 뛰어넘는다면 많은 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굉장히 크다. 먼저 군사정권의 압박에도 양심을 지켰던 이들을 이야기하고 싶다. 박종철의 시신을 처음 봤던 중앙대 의사, 화장해달라는 공안수사처의 압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부검명령을 내리는 등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세상에 알리는 단초를 제공한 공안검사, 사인을 심장마비로 하라는 상부의 압박에도 소신을 굽히지 않은 국과수 부검의, 고문치사 범인이 세명 더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는데 결정적 도움을 제공한 교도소 보안계장에 대한 이야기다. 어떤 이들에게는 등장인물들이 빨갱이에 협조한 천인공노할 사람들일지 모른다. 하지만 난 이들이 어떤 진영에 가담해 고문치사를 세상에 알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직업을 보면 오히려 보수에 가까운 사람들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민주화세력을 다 진보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확대해석이라 생각하기에 ‘이건 아니다’라는
우리교단 신학교인 침례신학대학교에 빨간불이 켜졌다. 지난 10년 남짓 침신대 이사회는 교단 안팎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고 이해 당사자 간 소송이 끊이지 않았다. 이로 인해 교단 내 불필요한 갑론을박은 계속됐고 목회자간 신학생간 교수 사이에 편을 짓게 했다. 정기총회 회기 때마다 신학교 정상화 문제는 단골메뉴로 등장했다. 그러나 해결책 없이 시간만 끌다가 최근 대법원은 이사회의 결의 무효 소송이라는 초유의 판결을 내렸다. 이사장 권한대행은 문제 해결에 전혀 힘을 쓰지 못한데다가 이사 구성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채 파행만을 되풀이하다가 현재는 식물 이사회로 전락해 버렸다. 이사회의 궐위로 인해 학교 운영에도 돌파구가 보이지 않고 있다. 현재 예산안 집행부터 학사 일정, 학생 지원, 교직원 채용, 인사이동 등 이사회의 결의에 따라 집행해야 일들이 모두 멈춰진 상태로 알려졌다. 결국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최근 침신대 정시모집에서 신학교의 꽃인 신학과와 기독교교육과, 신학대학원 등이 줄줄이 미달돼 충격을 던져줬다. 지난 2016년부터 입학정원 10% 감축으로 현재까지 120명이 학생이 줄어들 가운데 미달 사태가 발생한 것은 신학교의 존폐까지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
동성애, 미래세대 양육, 이슬람, 이단사이비 등의 문제만 해도 버거운데 새해 1월 1일부터 시행된 종교인 과세는 한국교회의 문화와 풍토를 뿌리 째 바꿀 만큼 큰 과제로 떠올랐다. 지난달 중순이후부터 우리교단을 비롯해 한국교회는 교단별로 종교인과세 설명회를 비롯해 그 후속조치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현재 종교인 과세에 대한 부담감이 목회자들 사이에서 이만저만이 아니다. 일부 목회자들은 종교인 과세 시행과 관련해 정부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현장에서 정신없이 목회하기도 빠듯한데 돈 문제를 직접 다뤄야 하니 고민이라고 아우성이다. 이유야 어쨌든 한국교회가 이제 잘 준비하는 수밖에 없다. 한국교회는 한국교회법학회(회장 서헌제)가 제작한 ‘종교인소득 과세 한국교회 공동 매뉴얼’을 바탕으로 교회와 목회자들이 원활하게 세금을 낼 수 있도록 꼼꼼하게 준비해야 할 것이다. 기독교의 종교관련 종사자는 목사와 전도사, 강도사, 원로목사, 협동목사, 선교사(교회가 직접 파송한 경우) 등이다. 다만 해외선교에 대한 지원은 선교비로서 비과세된다. 목사에는 담임목사, 원로목사, 부목사, 협동목사, 교목, 원목 등이 포함된다. 이들은 모두 종교인소득 과세 대상이며, 종
금년 성탄절에는 호박꽂이를 넣은 시루떡을 만들어서 교우들과 함께 나눴다. 올해는 특별히 떡 한 가지를 더 했는데 무설기 시루떡이었다. 가난했던 시절 시골에서 싸레기 쌀가루에 무를 듬뿍 넣어서 시루에 쪄서 온 가족이 먹던 생각이 나서 연세가 드신 어르신 교우 들게 향취를 느끼게 해드리면 좋겠다 싶은 뜻에서 한 일이다. 광고시간에 담임목사보다 나이가 많으신 어르신 성도들은 무설기를 드리고 그 외에는 찹쌀시루떡을 나눠 드린다고 했는데 막상 김이 무럭무럭 나는 무설기떡을 보더니 너도나도 무설기파로 몰려들었다. 그야말로 완전무설기 대박이 난 것이다. 사실 젊은이들은 무설기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호기심에 몰려든 것 같다. 사실 무설기 떡이 가난했던 시절에도 아이들에게는 그다지 맛있는 음식은 아니었던 기억이다. 오늘은 지면을 빌려 어려서 부흥목사님으로부터 들은 무설기떡에 이야기 한 토막을 소개할까 한다. 어느 날 목사님은 지나는 길에 그 교회 연세가 지긋한 어느 집사님 댁을 예고도 없이 심방을 하시게 됐다고 한다. 지금은 심방을 미리 알리고 날자와 시간을 약속을 잡지만 통신 수단이 별로 없던 옛날에는 아무 때나 목사님이나 전도사님들이 성도님들의 가정을 방문해서 기도해 드리
‘당신은 상식적인 사람인가요? 다음 영상에서 비상식적인 점을 찾아보세요.’라는 문구가 나오면서 시작된 영상에는 회사 간부쯤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공사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고압적인 태도로 훈계를 하고, 듣는 사람들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다. 이어서 ‘찾으셨나요?’라는 자막이 뜨면서 비정상적인 것을 찾았느냐는 질문을 여러 사람에게 한 다음, ‘그것도 맞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것!’이라며 ‘현장에 안전모 미착용’이라는 자막이 뜬다. 공사 현장에서는 누구든 안전모를 쓰는 상식을 지키라는 모 회사의 공익캠페인이다. 상식이란 보통사람들이 가지는 보편적 가치를 이른다. 물론 이 말은 상대성을 가진다. 일반상식은 보편성이지만 그 일반상식 범위를 벗어나 존재하는 상식과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보편적 상식과 특별 상식 모두를 가지고 있으며 서로를 존중한다. 이는 예수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세주이시지만 그의 머리 된 교회는 세상의 빛이고 소금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교회는 복음의 특수성과 함께 상식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과 교회 그리고 세상은 서로를 향하여 상식 내의 삶을 요구한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의 일부 교회들은 상식적이
고(故) 최진실 씨 자살 사건은 증권가 ‘찌라시’(정보지)의 폐해가 낳은 결과였다. 이 거짓 정보는 사람들에 의해 공유돼 그 폐해가 더욱 컸다. 이제 가짜 소식이 판치는 SNS에 찌라시와 참 정보를 구분하기 더욱 어려워졌다. 일명 ‘최진실법’이 생겨도 악플은 없어지지 않았다. SNS에 허위사실을 적시해 침례신문을 음해하는 이들이 있다. J목사의 SNS글로 시끄럽다. 그는 “침례신문을 펼치자 지방에서 악명 높은 목사님의 글이 여과없이 실렸다”며 “내가 학자는 아니지만 적어도 논문을 게재한다면 검증된 논문을 선택해야하지 않는가”라고 힐난했다. 그리고 해당 목사가 신문사에 거액을 후원했다는 소문이 있다며 논문 게재가 돈 때문이라는 식으로 몰아갔다. 개인적으로 쓴 글이 뭐가 문제냐 싶겠지만,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70조 2항)고 한다. 검증된 논문이라는 것이 뭔가? 그리고 누가 논문을 검증하나? 당연히 답은 침신대 교수들이다. 침례신문 편집
2018년 희망찬 새해가 시작됐다. 시간이 빠르게 간다. 지난 한 해를 보내면서 예측 가능하지 않은 일들이 우리에게 다가왔고 이를 이겨내면서 새해를 맞이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시간 또한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정해진 시간과 우리가 정해진 시간은 분명 다르다. 동성애, 북핵 해법 등에 대한 사회적 갈등이 해를 넘겨 계속되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하나님이 예비하는 시간과 사람이 계획하는 시간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삶은 태어나 죽음까지의 시간적 개념 속에서 살고 있다. 그 안에서 자신의 꿈꾸는 삶을 위해 열심과 노력을 다해 살아간다. 이렇듯 우리의 시간은 숫자와 흐름 속에 쌓여간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시간은 과연 어떠한가? 성경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구현하기 위한 구속사적 뜻과 법칙에 따른다.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사용하시고자 하는 때에 그의 계획하신 일들을 이루신다. 그리고 그 일들은 소명 받은 자들에 의해 이뤄진다. 어떤 이는 30대에 어떤 이는 80세에 하나님의 뜻대로 부름 받아 쓰임을 받는다. 또 부르심에 따라 집사의 직분을 감당하며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의 삶을 걷기도 하며 어떤 이는 자
한 해가 저물어 간다. 한국교회는 평양대부훙 110년과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 해를 보냈고, 사회적으로는 새로운 민주정부를 향한 기대로 가득 찼던 한해였다. 그저 날짜 하나 바뀐 것이지만 그래도 2017년은 기도와 희망으로 시작된 한해였다. 한해를 돌아보기 위해 지난 본보의 기사들을 돌아보니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연금재단 설립에 관한 보도였다. 교단과 교회를 위해 일평생 헌신한 목회자들을 위한 열매가 연금이니만큼 많은 목회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는 것은 당연지사일 것이다. 현재 연금재단 설립은 순항 중에 있다. 연금위원장 유관재 목사에 따르면 10만10만 운동에 참여하겠다는 교회와 지방회의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연금정착을 위해 8억 상당의 부동산도 기부될 정도로 많은 관심과 성원이 이어지고 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돈 있는 곳에 항상 생겨나는 투명성 시비문제다. 연금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교단 가운데 잡음 없는 곳을 찾기 힘들 정도로 연금재단은 쉽지 않은 문제다. 재단설립 뿐만 아니라 투명하고 건강한 재정 운용을 위한 로드맵도 함께 제시되기를 바란다. 교계로 눈을 돌리자면 과연 올해가 종교개혁 500주년이 맞는지
여자친구가 있었다. 정말 착하고 선한 사람이었지만 나는 비전을 위해 서울로 올라가길 원했고, 그 친구는 전라도를 벗어나길 꺼려했다. 물론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안타깝게도 우린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2~3년 후 왜 그랬는지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지만 그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여수가 고향이었던 그 친구에게 “여수가면 함 볼까”라고 말했지만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아요”라는 답변을 들었다. 알고 보니 그때 그 친구는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 있었고 나는 이미 남의 아내가 될 사람에게 쓸데없는 연락을 던졌던 것이었다. 그냥 헤어졌을 때 ‘안녕’하고 깨끗하게 끝맺었으면 좋았으련만 내 인생의 흑역사가 한줄 더 생겨났다. 한교총과 한교연의 통합이 무산되고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됐다. 한교연은 한기연으로 이름을 변경하고 입장문까지 발표하며 통합 결렬의 책임을 한교총에 돌렸다. 한기연으로 이름을 변경한 이유에 대해 자신들은 한국교회 하나됨을 위한 약속을 계속 지켜나가기 위한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고 있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한기연이란 이름은 한교총과의 통합에서만 그 의의가 있어 한교연의 선택이 그다지 좋은 모양새는 아닌 듯하다. 입장문 말미에 ‘한기총의
한국교회 연합운동의 ‘새틀짜기’가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장·감·성·순·침’(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순복음 침례교) 교단 사상 처음으로 한지붕 아래 모여 가장 큰 한국교회 연합의 ‘새틀’을 짰다. 한교총은 지난 11월 29일 가진 상임회장단 회의에서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한교연(한기연) 가입 교단들 가운데 소위 ‘7·7 정관’ 이전 가입 교단은 별도의 심사 없이 회원으로 받았다. 30개 주요 교단이 참여한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은 지난 12월 5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연합회관에서 제1회 총회를 열고 현직 총회장 중심으로 연합운동을 시작한다고 대내외에 선포했다. 이는 현직 교단장들이 리더십을 갖는 구조로, 교단 뜻과 상관없이 일부 인사에 의해 연합기관이 좌지우지되던 구태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특히 ‘1인 대표회장 체제’가 아닌 예장합동, 예장통합, 감리회, 기하성(여의도) 등 4인 공동 대표회장 체제를 도입해 한국교회 병폐로 지적돼온 금권선거를 원천부터 차단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분석이다. 또한 핵심 사업으로 종교인 과세 시행에 따른 보완책 수립, 평창 동계올림픽 기독교 봉사단 운영, 동성애·동성혼 대응, 재해지역 구호 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