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창세기 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1) 아담은 그 때 당시에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의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생명과 영생을 갖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2) 아담 앞에 몇 가지 길이 있었습니까? 순종과 불순종, 겸손과 교만,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며 사는 길과 자신이 주인으로 사는 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과 마귀를 기쁘게 하는 길, 사는 길과 죽는 길 즉, 2길이 있었습니다. (3) 아담이 선악과를 먹었을 때 영과 육이 죽었습니까? 예. 먹는 순간 죽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선악과를 먹는 순간 영은 죽고, 육은 안 죽었다고 얘기 하는데 먹는 순간 영과 육이 함께 죽은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차를 타고 가다보면 길옆에 가로수들을 보게 됩니다. 나무를 전정하는 사람이 한 나무의 가지를 톱으로 잘랐다고 해봅시다. 그 잘려 나온 가지가 산 것입니까? 죽은 것입니까? 모양새는 산 것과 똑같이 보일지 모르나 그 잘린 가지는 자름과 동시에 죽은 것입니다. 왜냐면, 생명이 끊어져 있기 때문
그것은 역사가 말해주고 있고, 성경의 말씀을 따라 살았던 사람들의 삶이 증명한다. 성경 안에는 역사, 문학, 철학 등이 다 들어 있다. 그 어떤 책도 성경을 넘어설 수 없다. 목회자는 성경을 영혼의 양식으로 여기고 꾸준히 읽는 것이 기본적인 사명임을 알아야 한다. 찰스 스펄전(Charles H. Spurgeon)은 목회자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온 땅에 책 기근이라 할 만큼 읽을 책이 없다 해도 여러분 모두가 갖고 있는 책이 한 권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을 손에 쥔 목회자는 물맷돌을 손에 쥔 다윗처럼 싸울 태세를 다 갖춘 것입니다. 성경이 곁에 있는데도 길을 우물이 없다고는 어느 누구도 말 못할 것입니다. 성경 자체가 하나의 완벽한 도서관입니다. 성경을 철저히 연구한 사람은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책 전체를 다 섭렵한 사람보다 더 훌륭한 학자입니다. 성경을 철저히 이해하는 것이 우리의 포부여야 합니다. 우리는 마치 주부가 바늘을 다루거나, 상인이 회계장부를 다루거나, 뱃사공이 배를 다루는 것처럼 능숙하게 성경을 다루어야 합니다. 성경의 전체적인 흐름, 각 권의 내용, 역사와 교리와 가르침의 세부적인 내용 등 성경의 모든 것을 알아
그는 갈라디아서 3:1-4:11을 면밀하게 조사함으로써, 바울 사상의 틀이 교리적 체계나 그의 개인적인 종교 체험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 무엇보다도 바울 사상의 동인은 복음 이야기에 함축된 의미,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속에 교회의 선교가 반영되어 있는 방식을 도출해내려는 바울의 관심이었다고 본다. 헤이스는 그의 책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에서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편지의 한 단락(갈 3:1~4:11)에 초점을 맞춰 기존의 바울 사상이 ‘이신칭의’(단일 신학원칙)나 종말론(특정 상징적 사고 틀)이었다는 주장을 거부하고 바울사상의 일관성은 메시야 예수에 관한 이야기에 있다고 한다. 즉 갈라디아서의 바울의 주장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를 전제로 하고 있으며, 그의 신학적 성찰은 그 이야기의 의미를 분명하게 제시하려는 시도였다고 주장한다. 그 이야기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는 오직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갈 1:4)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을 통하여 행동을 취하신 하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에 관한 그 이야기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는 내용이
7월이 시작됐습니다. 7월은 한 해의 절반이 시작되는 달, 새로운 반년의 시작이니 남다른 각오와 마음으로 맞이하고 싶습니다. 무더위로 인해 몸과 마음이 지칠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마음까지 마냥 지칠 수는 없습니다. 얼굴을 바꿀 수는 없지만 표정은 우리가 마음 먹은 대로 변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7월의 꽃들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7월에는 우리에게 친숙한 꽃들이 참 많이 핍니다. 접시꽃, 칸나꽃, 분꽃, 나리꽃, 나팔꽃, 백일홍, 백합, 맨드라미, 해바라기, 다알리아, 도라지, 상사화, 백합 등 여러 가지 다양한 꽃들이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우리의 삶에도 다채롭고 풍요롭게 피어나기를 기원합니다. 알려진 꽃말들을 소개해 보면 접시꽃은 “열렬한 사랑”, 칸나꽃은 “정열과 쾌활”, 분꽃은 “수줍음”, 나리꽃은 “깨끗한 마음”, 나팔꽃은 “결속 또는 허무한 사랑”이라고 백일홍은 “꿈” 다알리아는 “감사와 영화”, 백도라지는 “영원한 사랑”, 상사화는 “이루지 못할 사랑”, 맨드라미는 “불타는 사랑”, 해바라기는 “숭배”, 백합은 “순결”이란 꽃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골목길을 다니다보면 어떤 집의 담장 위에나 베란다에 멋지게 늘어져 피어나는 우아한 능소화를
-하인리히 불링거의- 이번 주간에는 취리히의 개혁자로서 열 한 명의 자녀들 중 남아 여섯 명을 모두 목사로 길러낸 하인리히 불링거(Heinrich Bullinger, 1504-75) 목사가 자신의 자녀들에게 준 편지를 함께 읽고자 한다. 16세기 당시의 종교개혁자들은 대부분 사제의 결혼을 금한 가톨릭교회의 신부직을 버리고 개종한 이들이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결혼이 늦고 결혼 기간도 짧은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터는 여섯 명의 자녀에 네 명의 고아를 입양해서 열 명의 자녀를 양육했고, 츠빙글리는 9년의 결혼생활 중에 여덟 명의 자녀를 가지는 등 자녀가 많았다. 불링거는 츠빙글리(Ulrich Zwingli, 1484-1531)가 18년 동안 목회한 그로뮌스터 교회의 후임 목사로 부임해서 죽기까지 44년 동안 한 교회에서만 목회했다. 불링거 목사는 저술가로서는 ‘스위스 종교개혁사’를 비롯해서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펴냈고, 제네바시의 길롬 파렐과 쟝 칼뱅을 초빙해서 두 도시가 종교개혁에 연합전선을 펴기로 한 “취리히 합의”(Consensus of Zuerich, 1549)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특히 불링거 목사는 목회기간 동안 신앙 문제로 쫓기는 사람들은 누
멀쩡하게 잘 나가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넘어지는 경우가 있다. 대중의 존경을 한 몸에 받다가도 어느 한 순간, 사람도 지위도 다 잃는다. 과연 어쩌다가 그렇게 된 것일까? 이유는 뭘까? 이에 나를 포함한 우리 모든 목회자들이 새겨볼 성경적 교훈들이 여기 있다. 첫째, 선줄로 생각해서이다.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고 성경도 분명히 말했다. 마치 모든 것을 이미 다 이룬 양 자만하거나, 이제는 모든 게 다 자기중심으로만 돌아갈 거라 착각하여, 겸손일랑은 아예 없고 교만하기만 하여 안하무인(眼下無人)인 사람은 언젠가는 그렇게 된다는 말씀이다. 그러니 내 각본대로 일이 너무 잘 돌아갈 때 조심하자. 나를 향한 말들이 칭찬일색일 때 더 낮추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잠16:18)임은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이다. 둘째, 경고를 잘 듣지 않아서이다. 아담과 하와도 그래서 넘어졌다(창3:2-6). 하나님 말씀은 무시하더니 사탄의 꼬임에는 잘도 넘어갔다. “죽는다”는 경고도 대수롭잖게 여기더니, “먹지말라”하시는 건 기어이 먹었다. 결국 그 일로 그 아름답고 풍요로운 곳에서도 쫓겨나버렸다.
Ⅲ. 목회자 독서의 신학적 이해 지도자는 책을 읽는 사람이다. 특히 뛰어난 영적 지도자는 지식과 품성, 비전에 있어서 남다른 사람으로, 그들은 대부분 책의 사람들이다. 지도자와 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특히 진리를 탐구하고 전하는 목회자에게는 더욱 그렇다. 세상에서 목회자만큼 책에 관심을 기울이고 책과 함께 해야 할 사명이 있는 사람들도 드물다. 왜냐하면 목회자는 성경책을 사랑하는 책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신앙 체계이다.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는 달리 계시 종교로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가르침 위에 세워진다. 성경은 하나님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성령님에 대해, 교회에 대해, 그리고 기독교의 신앙 내용과 행습에 대한 진리를 가르쳐준다. 그러므로 성경 없는 기독교 신앙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기독교는 책의 종교이다. ‘책’을 뜻하는 그리스어 비블리온(biblion)은 ‘파피루스’라는 뜻을 지닌 비블로스(biblos)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성서라는 ‘바이블(bible)’이 이 말에서 생겼다. 이처럼 성경을 바탕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영적 지도자가 목회자이다. 그러므로 목회자 독서의 신학적 이해
톰 라이트(N. T. Wright)도 던과 같이 샌더스의 언약적 율법주의를 수용해 개신교의 전통적인 해석을 거부하면서 종교개혁자들의 이신칭의를 집중적으로 비판했다. 루터와 칼빈 등 종교개혁자들은 ‘이신칭의’를 바울 복음의 중심으로 해석했으나 라이트는 바울의 이신칭의 구원론의 중요한 요소인 전가(imputation)의 가르침은 성경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판단해 이신칭의가 바울 복음의 본질적 요소임을 반대했다. 그래서 1세기 유대주의 관점에서 바울을 해석해야만 바울서신을 잘 이해할 수 있고 특히 ‘이신칭의’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라이트는 종교개혁자들의 ‘하나님의 의’에 대한 이해가 잘못됐다고 비판한다. ‘하나님의 의’를 추상적이고 무역사적인 헬라적 배경에서 이해함으로써 하나님의 의를 잘못 해석했다는 것이다. 곧 ‘하나님의 의’는 루터가 생각한 ‘전가된 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의 의’는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자신의 신실성이며 이스라엘을 구출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라고 한다. 또한 재판관의 판결에 따라 의롭게 되는 것인지를 첨가하거나 배분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미래의 심판이 요청될 때 그들의 언약적 의무에 충실함을 반영하는
제가 섬기는 군인교회에서는 교육생 장병 형제들은 정해진 부대 중식시간에 맞춰 예배 후에 부대에 복귀해서 식사를 하지만, 간부들과 가족들, 민간신자들과 봉사자 형제들은 교회에서 준비한 점심식사를 함께 합니다. 그래서 예배가 끝난 다음에 식당 쪽으로는 길이 길게 서있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담임목사도 예외 없이 줄서서 뷔페 접시에 음식을 담아 식탁으로 가야하기 때문에 예배당에서 나오는 성도들과 일일이 인사를 하고 나면 줄 순서가 거의 끝번이 됩니다. 물론 제가 앉는 식탁 쪽에 앉는 분들은 제가 밥을 타서 앉아야 식사를 시작해야 할 것 같아 머뭇거리기 때문에, 성도들의 배려로 앞쪽으로 줄을 옮겨 먼저 밥을 타곤 합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니까, 은혜롭게 예배 잘 드리고 난 후에 담임목사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새치기였습니다. 그래도 다들 상황이 상황인지라 배려를 해주고 양보해주는 은혜를 베풀어서 그렇게 해왔지만 상당히 껄끄러운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아예 식당 봉사하는 분들에게 밥을 먼저 떠 놓아달라고 부탁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에 부담스러운 것을 그냥 무시하고 지내는 것은 그리 지혜로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2:1
그러나 아직도 여전히 목회자 독서는 부족한 면이 많이 있다. 좀 더 관심을 갖고 독서에 매진해야 할 필요가 있다. 강영안은 목회자를 상대로 인문학 강의를 할 때마다 목회자들이 너무 책을 안 읽는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한다. 기독교의 고전으로 꼽히는 고백록도 제대로 읽은 이는 10명 중 1~2명이나 될까라고 생각할 정도로 책 읽기에 무관심하다. 이렇게 목회자 독서에 관한 부정적인 현실은 시대적으로 우려할 만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분명한 사실은 목회자들이 좀 더 독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만은 명확하다. 연구자는 책과 책 읽는 것에 대해 어린 시절부터 상당한 관심을 가져왔다. 특별히 목회자가 되면서부터 점점 더 책의 중요성과 책 읽는 것의 소중함을 체득하게 됐다. 책에 대한 서평이나 광고가 있으면 거의 다 읽어보고 독서에 대한 방법이나 유익한 자료가 있으면 찾아보고 확보하려고 애써왔다. 신기한 것은 책이 어떻게 생겼든지 어떤 환경에 처해 있든지 무슨 냄새를 풍기는지에 상관없이 책에 대한 관심은 언제나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고 있노라면 빼곡하게 쓰여 있는 글씨들이 알려주는 신선한 세계는 무한한 희망과 용기를 제공한다. 또한 무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