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교회에 어느 때부턴가 종말론 강해가 사라졌다. 시한부 종말론자들 때문이었다. 그러다 요즘 다시 붐이 일고 있다.그런데 그 종말론이라는 것이 조금 수상하다. 성경이 말씀하는 것과는 많이 빗나가 있다. 특별히 다니엘의 70 이레(Seventy weeks) 예언과 마태복음 24장이 그렇다. 이 해석이 잘못되면 영원한 속죄 교리에 문제가 생기고 급기야는 요한계시록과 히브리서 해석까지 문제가 생긴다. 종국에는 예수님의 희생과 부활까지 무효화 시키는 무서운 일이 벌어진다. 다니엘의 70주 예언, 다시 말해서 다니엘의 490일 예언은 구약시대, 예루살렘 회복과 건축명령 때부터 예수님이 메시아가 되신 때까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예언이다. 이 예언(단9:24~27)을 이해하면 세대주의 누룩 인‘미래주의(Futurism)’의 미혹을 드러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다니엘서 9장 24절과 27절이 해석의 고갱이(core)다.먼저 성경의 예언 어법에서 하루는 한 해와‘등가(等價)’이다.(겔 4:5~6) 한 주는 7년이고 70주는 490년이다. 그러므로 다니엘의 70주, 즉 490년의 기간은 예루살렘 회복과 건축 명령 때부터 예수님이 메시아가 되신 해까지를 나타낸다. 메시아(Mes
■ 전체 개요“후에 든 그 흉년이 너무 심하므로 이전 풍년을 이 땅에서 기억하지 못하게 되리이다”(창세기41:31)2005년 정부가 시행한 인구주택조사 결과 기독교인수는 대략 870만(18.7%) 정도였습니다. 이 숫자는 이단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문가들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870만 중 대략 150-250만 정도를 이단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인의 숫자는 2005년 기준으로 620~720만에 불과합니다.교회의 교회학교는 더욱 심각한 상태입니다. 예장 통합측에서만 지난 10년 동안 교회학교 어린이 부서가 약38만 명에서 약28만 명으로 줄었고, 일반 교단들도 전체적으로 약30%가 감소했습니다.또 다른 통계자료에 의하면 교회학교는 이미 2005년부터 2015년경까지 지속되는 4차 감소국면을 통과하는 중이며 2045년이 되면 교회의 교회학교 숫자는 대략 30~40만 명으로 추락할 가능성이 아주 크다고 보고했습니다. 또한 2050년경이 되면 교인 중 60%~70% 이상이 은퇴자로 가득 차게 되고. 교회의 갱신이나 변화 없이 이대로 지속된다면 한국교회는 무너지고 말 것이라고 예측하기도합니다.(2010년 통계청 자료)한국교회는 지금 중요한 변화의
1919년 3월 1일 독립운동이 일어났으니 독립운동이 일어난 지 벌써 95년이 됐다. 이제 3.1절 세대는 거의 사망하고 3.1절 역사를 생생하게 증언해 줄 선조들이 소멸되어 가고 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세대는 행복한 세대들이지만 90~100세가 된 세대들은 참 기구한 시대를 살아온 세대들이다.우선 그들은 일제의 압제에 역사에서 가장 비참한 삶을 살아왔다. 그냥 압제가 아니고 주권도 말도 나라도 이름도 뺏기고 살았으니 그 고뇌가 얼마나 컸겠는가? 식민지 역사에서도 그런 압제의 사례가 없다. 우리 선조들은 그런 고민이 많은 삶을 살았다. 그렇게 살아오다 해방이 되어 자유를 누리는가 싶었는데 다시 6.25 전쟁을 겪었다. 역시 6.25 전쟁도 비참한 삶이었다. 승자도 패자도 모두 손해를 보는 전쟁이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자 찾아온 것은 극심한 가난이었다. 그때 이후 얼마나 배고픈 기간을 보내야 했었는지 모른다. 우리 부모님 세대들은 그렇게 살아왔다. 그리고 이제는 평화도 안정도 주어지고 먹고 살만큼 되니까 다 세상을 떠났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참 행복한 세대다. 너무 행복해서 행복이 뭔지 모르고 살아간다. 오늘 젊은 세대들은 이 나라가 그런 과정을 거쳐서
만남과 헤어짐이 있고 시작과 끝이 유난히 가까이 느껴지는 때가 이맘 때인거 같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유난히 성실하게 자기의 아픔을 공부로 승화해 주고 반듯한 교사로 근무하는 조카의 졸업식장은 모든 이에게 열매의 풍성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반면 또 다른 조카는 학창시절에는 그리 흥미를 못 느끼더니 막상 대학을 졸업하고 이제는 다시 공부를 해보고 싶다고 멀리 이국까지 공부를 시작하러 갔다. 그의 용기에는 박수를 보내지만 그 녀석이 할 고생을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필자의 작은 아들 또한 자신의 인생에 대한 깊은 생각의 작은 실천을 위해 호주로 간지가 벌써 5개월이 되어간다. 내가 사는 곳과는 반대의 기후인지라 춥지는 않겠지만 어떤 날은 유난히 목소리에 외로움이 전달되어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아들이 만나고 있는 시간들은 분명 가족과의 헤어짐을 값지게 하는 그 무엇을 만드는 것들 일거라는 아들이 말이 든든하게 여운으로 남는다.많은 사람에게 깊은 감동을 전하는 이들 중에 이지선이라는 자매가 있다. 꿈 많은 대학교 때 대형 교통사고를 당해 전신에 화상을 입고 많은 수술을 했었을 때 그 자매가 했던 말 중에서 이런 말이 있다. “사고 후 화상 수술을 받고 얼굴을 둘둘
엊그제 프란치스코 교황은 윤지충과 권상연을 비롯한 한국 천주교 창립 주역인 124명을 복자(福者)로 올렸다.지난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김대건 신부 등 103명을 성인(聖人)으로 추대한 이후로 한국 카톨릭계의 경사라 할 수 있다. 천주교의 복자는 성인 바로 다음의 반열로 “신앙의 스승”을 가리킨다.1791년에 일어난 윤지충과 권상연의 순교 사건으로 천주교의 수난은 시작됐다. 윤지충은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외사촌 권상연과 상의해 어머니의 제사를 안 지내기로 하고 신주를 불태웠다. 당시 천주교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하여 제사를 지내지 않은 것이다. 이들의 신앙의 절개를 기념하기 위해 전주 풍남문 앞 전동성당에는 목에 형틀을 쓴 사람과 손에 십자가를 든 사람의 동상이 있는데 이들이 바로 윤지충과 권상연의 동상이다. 이 후 천주교의 박해는 계속 이어졌다. 그는 체포된 후 관아의 심문에 답하기를 “사람이 죽으면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늘나라로 가든지 지옥으로 갑니다. 죽은 이는 집에 남을 수 없고, 또 남아 있어야 할 영혼도 없습니다. 위패들은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닙니다. 그저 나무토막에 불과 합니다. 어떻게 그 것들을 부모님처럼 여기고 받들 수
알렉산더 대왕이 아시아로 진군하기에 앞서 대대로 전해져 오는 예언 한 가지를 듣게 되었다. 주피터 신전에 있는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를 통치하게 된다는 예언이다.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매듭을 풀기 위해 애썼지만 아무도 풀지 못했다. 알렉산더 대왕은 묶인 배듭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과연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복잡하게 엉켜 있었다.그때 불현듯 어떤 생각이 머리속에 떠올랐다. “왜 끊어버리면 안 되는 거지?” 그리고 즉시 칼을 뽑아 매듭을 두 동강 내버렸다. 100년 동안 아무도 풀지 못한 난제가 한순간에 해결된 것이다.알렉산더 대왕의 용감한 행동과 목표를 향해 한마음으로 달려가는 신념 그리고 고정관념을 깨는 행동은 그가 대단한 지혜와 용기를 지녔음을 보여준다. 알렉산더 대왕이 세기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도 이와 같은 힘에서 비롯된 것이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라.두리번거리며 살피지도 주저하지도 시간을 끌지도 말고 앞을 향해 나아가라. 사람들은 이득을 판가름하기에 바빠 빠른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결국 좋은 기회를 모조리 날려버린다.이렇듯 ‘생각의 거인과 행동의 난쟁이’를 지닌 사람들이 많기에 혼자서 탄식하고 불평만 늘어놓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당시최대 호화 여객선으로 세계적관심을가지고 출항했던타이타닉 호는 한 순간의 부주의로첫 출항만에 침몰하고 만다)시대적 조명 한국교회의 부흥과 발전은 기독교 역사 가운데서도 놀라운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1980년대 한국교회는 전 세계 기독교와 선교의 미래를 짊어질 나라로 평가받았습니다. 한국경제의 기적과 함께 한국교회 부흥의 기적도 시작됐습니다. 당시만 해도 4명 중에 한 명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자랑했고, 미국과 유럽의 교회를 걱정하는 위치에 이르렀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초부터 교회성장이 멈추고, 교회를 향한 부정적 평가가 안팎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한국교회는 큰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지금 존립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엄청난 위기 속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성장이 잠시 주춤한 것이 아니라 이미 쇠퇴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최근 미국의 한 기독신문사는 목회자들이 생각하는 교회의 문제점들을 조사하였습니다. 물론 미국의 경우지만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문제점으로 삼는 주된 것들은 지나친 교회성장주의, 목회자들의 세속화와 탈선, 그리고 윤리의식의 실종이었습니다. 한국교회의 문제점들 가운데 하나로
술을 마셔서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은 술이 뇌 조직에 직접 영향을 주기 때문이며 지속적인 음주는 뇌조직의 광범위한 파괴현상으로 방향감각의 상실, 기억장애 등 치매증상이 나타나 개인에게 커다란 인격 결함을 야기한다. 알코올은 간을 거쳐 대사되기 때문에 가장 심각하게 영향을 받는다. 또한 다른 영양소의 대사기능을 방해해 산화되지 않는 지방이 간에 축적되면 간 기능 부전의 원인이 되며 이러한 증상이 전진되면 간경화, 간암 등으로 악화될 수 있다. 위와 장기 등은 물기가 촉촉한 점막에 의해 강한 소화 효소제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데 알코올이 이러한 점막을 깎아내려 염증과 궤양을 만든다. 췌장은 음식물의 소화 효소제를 만드는 곳으로 술은 췌장효소의 분기기능을 쓸데없이 자극해 췌장내의 단백질들이 소화되며 세포의 파괴가 뒤따른다. 이로 인해 인간의 고통 중에서 가장 견디기 힘들다는 췌장암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술은 우리 몸의 많은 부분을 병들게 하고 건강을 해치게 하는데 술을 지속적으로 마시는 우리나라 음주문화를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만큼 술에 대해 관대한 나라도 드물다. 기뻐도 한잔, 슬퍼도 한잔이다. 지나친 음주로 인해 걸핏하면 가정폭력이 발생하고
2월 중순이면 초등학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졸업시즌이다. 졸업은 한자로 졸(卒) 업(業)이라고 하는데 그 뜻은 “학생이 소정의 학업과정을 마치다”란 뜻으로 배우는 일을 마친다는 것이다. 그동안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등 과정을 마치기까지 수고한 졸업생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성실하게 배우고 익힌 것들이 앞으로 새로운 삶의 큰 유익과 미지의 사회생활에 큰 도움이 되리라 확신한다. 그런데 배움이라는 것은 특정의 시기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평생 동안 계속돼야 한다. 그래서 졸업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고 한다. 한 과정을 마치면 다른 과정의 배움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졸업생들은 하고 싶은 일, 계획한 일, 목표한 일을 이루려면 반드시 집중해야 한다. 공부에 집중하든, 운동에 집중하든, 연구에 집중하든, 원하는 일에 집중해야 기대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모두 다 집중한 사람들이다. 놀면서, 쉬면서, 실컷 자고, 게임하고 이런 상태로는 결코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없다. 작은 것이라도 이루려면 결단하고 노력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 고응척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어려서부터 오기가 대단한 사람이었다
중국 블루칼라 범죄자들은 중국을 전복시킬 잠재적 반정부 군단 제4부대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들이다. 중국 공안에 따르면 2007년 형사사건은 465만 3천 건이라고 발표했다. 그 중 강력 범죄는 55만 9천 건이었다. 공안부는 “중국 내에는 분쟁과 불화를 일으키는 요소가 부지기수로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압박 속에서 고작 180만 명의 공안이 13억 인구가 사는 나라의 안전을 유지하는 책임을 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실제로 일어난 형사 사건의 수와 상관없이 범죄자의 수가 많을수록 국가 경제와 사회 안정을 뒤흔들 위험요소가 커진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런 위험요소에 더해 범죄 사회로 편입해 들어가는 새로운 젊은이들에게 주목해야 한다. 중국 공안은 2006년 97만 9천 명의 청소년 범죄 용의자를 체포했다. 2006년 기소된 범죄자 열 명 중 한 명이 미성년자이고, 조직 폭력 범죄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법기관과 사회복지 기관들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와중에 무수한 젊은이들이 사회 안전망을 빠져나가 중국을 전복시키려는 반정부 군단에 합류하고 있는 것이다.중국 정부는 흡연이나 인터넷 중독을 청소년 범죄 원인으로 꼽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