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게 살아라. 인생을 즐겁게 살려면 삶을 단순하게 살아야 한다. 나뭇가지에 연 걸리듯이 여기 저기 연결된 곳이 많고 이것저것 벌려놓은 일이 많고 복잡하면 쉴 틈이 없고 여유가 없어 자신이 삶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일에 끌려 다니는 처지가 되고 피곤한 인생을 살게 된다. 필자도 복잡한 것을 싫어하지만 살다보면 자꾸만 복잡하게 되는 것을 본다. 사회적으로도 여기 저기 직함이 하나씩 늘어나고 직함 때문에 얼굴을 내밀어야 하는 경우들이 많아진다. 책상 위를 정리 해놓고 나도 며칠만 지나면 책장에서 꺼내놓은 책과 매일 배달되는 우편물들이 책상위에 수북이 쌓여 복잡해진다. 결국은 버리면서도 혹시나 필요 할까 혹시나 보게 될까 해서 두다보니 자꾸 복잡해진다. 그래서 한 번씩 버릴 것은 버리고 정리를 하지만 그래도 미련이 남아 버리지 못하고 두다보면 정리하는 것도 일이다. 오랫동안 이사하지 않고 한집에서 오래 산 집은 집안이 복잡하고 살림살이가 많은데 몇 년마다 이사를 한집은 집안이 정리 돼있고 살림도 단촐하다. 이사할 때 마다 불필요한 물건들을 정리했기 때문이다. 집안에는 쓰지도 않으면서 버리자니 아까워서 쌓아두고 있는 물건들이 많아 복잡하고 집이 비좁아서 더 넓은
교회에서 사역하는 많은 일들을 볼 때 여성들의 헌신이 너무도 중요한 사명을 감당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하나님은 왜 이처럼 여성을 소중하게 여기시고 사용하시는지 생각을 해보았다. 여성(女性) 우리 인생은 하나님이 흙으로 만드신 존재이다. 흙으로 빚어서 구운 그릇을 토기(옹기)라고 한다. 제법 큰 독이라도 그 값은 별로 비싸지 않다. 그러나 흙에다 물소 뼈를 섞어서 구운 그릇을 본차이나(bone china, 骨灰)라 하는데 그 크기가 작아도 그 값이 토기와 비교할 수 없이 비싸고 뼈의 배합율이 높을수록 값은 한층 더 고급이며, 비싸진다. 그러므로 흙으로 빚어 만든 남자와 갈비뼈로 만들어진 여자와는 그 값을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여자는 100% 본차이나이기 때문이다. 어떤 물건이든 하찮은 것이라 생각되면 함부로 취급하게 되지만 비싼 것인 줄 알면 더 소중히 다루게 된다. 그러므로 여자는 남자보다 약하지만 비싸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이기도 하다. 본차이나인 여성들을 함부로 다뤄서는 안 된다. 남자들은 뚝배기 그릇인데 값이 한참 떨어진다. 인명재처(人命在妻) 사람의 운명은 아내에게 있다. 처화만사성(妻和萬事成) 아내와 화목하면 만사가 순조롭다. 순처자(
다 같은 시간인데 어릴 때는 한 주도 길고 일 년도 길고 세월이 더디 가는 것 만 같더니 중년이 지나고 나니 시간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 세월이 너무 빨리 가서 어지러울 지경이다. 40대는 40km로 달리고 60대는 60km로 달리고 80대는 80km로 달린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세월은 빠른 속도로 달리는데 질병과 사고가 많은 세상이라 여차하면 평균 수명도 못 살고 사랑하는 가족들을 남겨두고 먼저 이 세상을 떠날 수도 있는 것이 인생이다. 2014년 만물이 소생하는 춘삼월에 승객 239명을 태운 말레이시아 항공기가 베이징으로 가던 도중 실종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호주인 봅 로튼(57)씨는 시각장애인인 부인 캐시(53)의 시력이 더 나빠지기 전에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주기 위해 말레이시아에서 중국을 거처 홍콩과 베트남까지 여행을 하기 위해 비행기를 탔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세월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고 기회는 언제나 내 곁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며 짧은 인생 후회하지 않도록 날마다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야한다.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
상담소를 찾은 B양은 직장일과 관련되어 고민이 많았다. 자신에게는 직장에 들어가기 위한 인터뷰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사교적이고 언변이 뛰어난 B양은 자신의 의견이나 능력을 보이고 설명하는데 뛰어났다. 처음에 좋은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할 만큼 친절했고 상냥했다. 인터뷰를 주관하는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리고 남성과 인터뷰를 할 경우 좀 더 여성스럽고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애쓰고, 여성과 인터뷰를 할 경우 전문적인 경험과 능력을 더 강조한다고도 했다. 그러한 그녀만의 독특한 기술이 효과를 보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어쨌든 인터뷰를 하는 직장마다 쉽게 자리를 얻어 들어갔다. 그러나 문제는 들어간 직장에서 두세 달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던지 쫓겨난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일도 빨리 배웠고 맡겨진 일들을 척척 해나갔다. 그러나 똑똑하고 눈치 빠른 그녀의 눈에 직장의 문제점들은 너무나 쉽게 빨리 드러났다. 누가 일을 안 하는데도 안 걸리고 넘어가고 있으며, 누구와 누가 친했고, 어떤 상사가 능력이 없는지도 금방 알아차렸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쉽게 눈치 챘다. 그중 누군
“과연 변할까?”라는 질문에서 우리 모두는 자유롭지 않다. 경계선적 성격장애(BPD)나 불안증, 우울증 등의 증상을 가지고 힘들어 하시는 분들이 흔히 표현하는 것은 깊은 무기력감과 절망감이다. ‘나의 상황이 과연 나아질까’ ‘나는 과연 변할 수 있을까’ ‘과연 내게 희망이 있을까’라는 질문과 회의감에 시달린다. 희망을 가지고 이리저리 환경도 바꿔보고 직장이나 교회 등 주위 사람들을 바꿔 봐도 묘하게 비슷한 문제가 반복된다. 처음에는 다시 한 번 힘을 내고 이번만은 다르지 않을까 기대한다. 다른 직장, 다른 교회, 다른 사람들이라면 자신의 문제가 없어지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내 안에 깊이 잠재된 외로움, 소외감, 열등감, 실패감, 분노, 인간관계의 문제들은 장소나 사람들을 바꿔도 또 드러나기 마련이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늘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다 보면 스스로 지치게 마련이다. 거기에 지쳐가는 가장 가까운 가족들이 등을 돌리기도 하고 답답한 마음에 정신 차리라는 등 심한 말로 쏘아붙이기도 한다. 주위의 사람들을 하나둘씩 잃다 보면 다 포기하고 싶고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 될 때도 있다. 잔인한 세상 탓을 하며 모든 사람들을 멀리하기로 작정하기도 한다. 때로는 돕
말로 축복하라성경에는 야곱이 아들들을 축복하고 바로 왕을 축복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창47:10) 바로왕은 그 당시 천하를 호령하는 왕이지만 야곱이 바로에게 인사하러 가서 바로를 축복했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보내면서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 할지어다. 하라.”(눅10:5)고 했다.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평안이 그 집에 임할 것이나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오리라고 하시면서 어느 집이든 가면 평안을 축복하라고 했다. 꿈이 이뤄지도록 말로 축복해야한다. 우리가 축복할 때 하나님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그 사람에게 복을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꿈을 축복하고 자신의 사업을 축복하고 자녀들의 꿈을 축복하고 주변 사람들의 꿈을 축복해야한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민6:24)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고 지키시고 은혜 베푸시며
이제껏 다뤘던 경계선적 성격장애(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의 특징 중에 한 가지는 극단적인 완벽주의(perfectionism)이다. 완벽주의는 성격장애뿐 아니라 우울증과 불안증의 기저에 뿌리 깊게 자리하는 메커니즘이다. 우리들 대부분이 완벽하고 싶어하고 완전을 추구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부족함 때문에 갈등하고 슬퍼한다. 불안해한다. 긍정적인 면을 본다면 완벽을 추구하는 경향 덕에 우리는 발전할 수 있고 일의 성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완벽주의의 성향이 너무 심해서 자신의 생활과 대인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정도가 되면 다시 한 번 그 생각의 틀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B씨가 상담소를 찾은 것은 간신히 찾은 아르바이트에서 다시 해고되면서였다. 그는 이번에 시작한 직장에 나가면서 간단한 일부터 배워가기 시작했다. 상사가 주는 서류들을 복사하는 것을 포함해서 잔심부름을 하는 것도 주어진 일의 하나였다. 그런데 서류를 복사할 때, 그 서류들이 조금이라도 구겨져 있으면 신경이 곤두섰다. 구겨진 종이를 한 장씩 일일이 문질러 펴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간단한 일을 시켜서 너무 오랜 시
믿음의 말을 하라 세상의 모든 역사는 말로 이루어진다. 정치도 사업도 교육도 사랑도 전도도 꿈도 말을 하지 않고 되는 일은 없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긍정적인사고를 가지고 말을 해도 긍정적으로 말한다. 그러나 실패하는 사람은 대부분 부정적인사고를 가지고 말을 해도 부정적으로 말한다. 찰스캡스가 지은 “혀의 창조적 능력을 사용하라”는 책의 서두에 “당신이 입으로 내는 말은 당신을 성공케 하든지 아니면 당신을 속박할 것이다”라고 했다. 우리는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인생을 성공과 풍성한 삶으로 이끌 수도 있고 자기 말에 얽혀서 피곤하고 고달픈 인생을 살수도 있다. 문제를 말하지 말고 희망을 말하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막11:22) 하나님을 믿고 산을 향하여 바다로 옮겨지라고 말하고 마음에 의심하지 않으면 그대로 될 것이라고 했다. 내가 하는 말을 하나님이 들으시고 이루어주실 줄 믿고 선포하는 말이 믿음의 말이요 믿음의 기도다. 사람들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문제를 보고
교회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기도 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며 새롭게 되는 장이다. 그런데 또 많은 사람들의 떠남을 겪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 떠남의 이유가 직장이나 학교의 변화 등 좋은 일일 때도 많고 교회 안에서 누군가와 부딪치고 싫어지면 떠나기도 한다. 흔히 시험들었다고 한다. 상처받았다고도 한다. 누가 시험을 들게 하고 누가 누구에게 상처를 주는 것인지는 늘 경계가 모호하고 항상 피해자만 있는 느낌이다. 교회는 만남과 은혜를 체험하는 하나님의 집이지만, 우리 모두의 부족함 때문에 상실과 분노를 경험하게 되는 아픔의 장이 되기도 한다. 더구나 이민 교회는 다른 곳에서는 수용과 인정, 사랑을 경험하기 힘든 외로운 사람들이 낯선 땅에서 새로운 가족을 찾고 싶어 모이는 곳이 된다. 그래서 사랑도 많이 하고 싸움도 많이 한다. 우리 모두의 가족이 그러하듯이. 미국에는 상담의 문화가 비교적 오랜 역사를 가지고 뿌리 깊게 자리한다. 자신에게 문제가 생기고 고민과 갈등으로 힘들어 하다보면 제3의 시각을 가진 전문가들을 찾는다. 우리가 보기에는 별것도 아닌 문제로 상담실을 찾는다. 감기 때문에 의사를 찾듯이, 친구와 싸웠든지 혹은 청소가 하기 싫든지 사소한
크리스천의 영성인식은 이러한 ‘인간적 차원의 영성’을 넘어 ‘초월적 차원의 영성’을 포함한다. 초월적 영역 즉 초월자와의 인격적 관계와 그것의 우선성 및 중심성, 그리고 그것이 개인과 인간적 차원의 관계상황에 영향을 주는 ‘수직적 차원’(vertical dimension)의 영성적 ‘내용’을 통합한다.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을 따라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심으로 ‘생령’(a living soul, KJV) 곧 몸과 마음이 살아나는 영적인 존재가 됐으며,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 혹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 나라의 ‘이중구조’안에서 살아가는 존재가 됐다는 성경 메시지와 연결되어 있다(창 2:7). 여기에서 ‘초월성’은 인간의 차원을 초월하지만 동시에 인간 안에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영’ 혹은 성령님과의 상호작용을 포함한다. 이런 면에서 크리스천 영성은 상담심리학에서 주로 관심을 갖는 개인적이고 사적인 영성적 측면이나 기능을 부인하지 않지만 근본적으로 ‘영’(Spirit)이신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주와 연결될 수 있는 영적인 존재로 기능하며 살도록 만드셨다는 성경적 인식에 근거하고 있다(갈 4:6). 영성의 수평적 차원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