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복고의 열풍을 불러일으킨 드라마가 있다. ‘응답하라’ 시리즈이다. 80년대를 배경으로 했던 이 드라마의 한 장면에서 한 가정 에 일어나는 알 수 없는 갈등을 다루었다. 갈등은 어머니가 남편과 아들들만 남겨놓고 급히 친정에 다녀와야 했던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일어난다. 어머니가 부재한 잠시의 시간 동안 집안 전체는 쓰레기통으로 돌변한다. 집에 남겨진 남자들의 세상은 혼란과 자유의 공간이 된다. 과자 부스러기가 사방에 흩어져도, 팬티만 입고 아무데서나 드러누워도, 아무렇게나 먹고 싶은 대로 먹어도 누구하나 잔소리 하는 사람이 없다. 그러다 어머니 가 다시 집으로 돌아올 시간이 되자 이제 맘대로의 편안한 세상에 비상이 걸린다. 남겨졌던 남자들은 최선을 다해서 집안을 원래의 상태로 돌려놓는다. 어머니가 자기들을 걱정할 필요 없이 자기들끼리도 잘 지냈다는 것을 증명하고 스스로들을 대견해한다. 그런데 이 남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어머니의 반응이다. 꽤 깨끗한 집안과 지시대로 비워진 냉장고를 둘러보던 어머니는 영 시큰둥하다. 어머니의 저기압을 눈치 챈 남편과 아들들은 영문을 알 수 없다. 사람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한 이웃친구의 조언에 따라 막 내아들은 집안
어느 남편이 결혼생활 20년만에 아내가 사랑없이 자신과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20년동안 아내는 “나는 당신을 사랑해서 결혼한 것이 아니고 숨소리조차 싫은 친정 아버지 곁을 하루라도 빨리 떠나기 위해 도망치듯 당신과 결혼했다”는 말들을 입버릇처럼 해 왔습니다. 남편은 그저 사랑스러운 아내의 투정으로 여겼습니다. 아내가 늘 남편의 일에 딴지를 걸을 때도 아내가 친정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 때문에 부정적인 사람이 되어 그러려니 이해하며 넘겼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지난 20여년 동안 아내와 함께 살아온 삶을 곰곰이 되돌아보니 비로소 아내의 지지나 인정을 받아본 기억이 거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아내에게 남편은 언제나 잘못하는 사람이요, 언제나 못된 사람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몇 번의 예외 외에는 아내가 이웃들에게 남편을 칭찬 한 적도 거의 없었습니다. 아내는 언제나 남편이 하고자 하는 일에 반대였습니다. 남편에게 ‘잘했어요’나 ‘그렇게 하세요’를 해 본적이 별로 없는 아내입니다. 언제나 ‘안되요’ ‘하지 말아요’ ‘그래서 되겠어요?’ 입니다. 그래도 남편은 스스로 자존감이 높고 이웃들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확신하며 살았기에 아내의 이러
오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정이라는 단어는 가족과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다. 그렇다고 가족의 달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가정과 가족의 차이는 무엇일까? 사전적인 정의를 보면 먼저 가족(家族)은 부부를 중심으로 하여 그로부터 생겨난 아들, 딸, 손자, 손녀 등 가까운 혈육들로 이루어지는 집단이며 가정(家庭)은 부부를 중심으로 그 부모나 자녀를 포함한 집단과 그들이 살아가는 물리적 공간인 집을 포함한 생활 공동체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가족에게 있어서 집이라는 공간과 생활 공동체란 관계와 체계가 포함되는 것이 ‘가정’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가정은 가족의 체계를 이루며 그 체계는 부부를 중심으로 자녀와 손자와 손녀로 이루어진다. 손자와 손녀가 있다는 것은 이미 부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되었다는 말이며 그 자녀들은 자신들과 동격인 부부가 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한 세대가 지나면 조부모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소천하게 되는 것이 인생이다. 자녀는 누구도 자신들이 부모를 선택해서 자신의 의지로 세상에 나오지 않는다. 부모의 사랑의 결과로 자녀는 태어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부모가 자신의 자녀를 처음부터 아들 딸 구별하여 낳을 수는 없다. 단지 초
갈등은 삶의 자연스러운 한 부분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 자신 안에서 우리는 모두 갈등한다. 갈등에서 오는 좌절감, 분노 또한 당연한 감정이다. 그런데 양파처럼 겹겹이 싸여있는 분노의 껍질을 까보면 꽤나 의외의 뒷모습이 숨어 있다. 상담을 오는 분들 중의 대부분은 무슨 일 때문에 싸웠는지 구체적인 사건을 이야기하기에 바쁘다. 분노의 시초가 되는 일상의 작은 해프닝들에 대해 설명한다. 시간을 안 지키고 계속 늦는 목장 식구 때문에 짜증이 난다, 아무리 치우라고 해도 여전히 돼지 우리인 딸 방 때문에 폭발했다, 내 카카오톡에는 답글을 안달아주는 몇몇 그룹 사람들 때문에 상처받았다, 말이 안 통하는 배우자 때문에 열 받는다, 연중 평가서에 부정적인 코멘트를 날린 상사가 꼴도 보기 싫다 등등 내가 화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한다. 그런데 겉으로 드러나는 여러 갈등의 사건들을 가만히 들어다보면 비슷한 사건들이 자꾸 반복되는 현상을 알 수 있다. 돈 문제, 소통의 문제, 시댁이나 처가의 문제, 자녀교육 문제, 종교문제, 중독의 문제 등등 갈등과 분노는 늘 비슷한 문제로 터지기 마련이다. 자꾸 싸우는 문제 가지고 또 싸우고 전에 열 받았던 비슷한 일 때문에 또 화가
노란 유채꽃과 진달래가 만개하여 봄을 노래하는 아름다운 계절에 신라천년의 찬란한 문화도시 경주 보문호의 분수대는 하늘 높이 솟구치고 공원은 녹색 옷으로 갈아입은 보문단지에 있는 켄싱턴리조트에서 침례교단 목회자부부 영적성장 대회가 열렸습니다. 전국에서 모여오신 목사님 사모님들이 목회의 짐을 잠시 내려놓고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얼굴들을 반기며 삼삼오오 모여 담소하며 사랑의 교제를 나누고 찬양단의 인도를 따라 뜨겁게 찬양하며 스트레스의 실타래를 풀어 내리며 은혜와 감동의 시간으로 빠져들었습니다. 필자도 아내와 지방회 목사님 사모님들과 함께 참석하면서 다른 일이 있어 오후 시간은 울산으로 내려가 볼일을 볼 생각이었으나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마음을 내려놓고 첫 시간부터 열 시간 연속기도회와 저녁 집회까지 다 참석하며 선후배 목사님들이 전하는 말씀에 아멘으로 화답하며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번 성장대회에는 젊은 강사들이 대거 등장하여 매시간 성령 충만한 은혜와 신선함을 제공한 성장대회였다는 평가를 필자뿐만 아니라 주변 목사님들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초교파적으로 성령운동을 주도하며 한국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침례교단 부흥사 목사님들이 한 분 두 분 은퇴하시면서
“어제는 광주광역시의 한 등산로에서 한 남성이 아무 이유없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등산객 한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범인은 전날부터 흉기를 들고 등산로와 인근 지역을 배회한 것으로 조사되었고 전날에도 칼을 들고 대학을 전전했으나 자신보다 젊고 월등히 힘이 센 대학생들을 위해하지 못하고 결국 등산로에서 만난 힘없는 노인을 상대로 분풀이 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조사결과 가해자는 30년 동안 신경안정제를 복용한 것으로 드러났고 기자들의 질문에 횡설수설하는 모습도 방송되었는데 피해자가 자신을 고발하려 전화해서 죽였다고 합니다. 편집증적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 앞에서 전화한 것이 이런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편집증적 성격장애(Paranoid)는 의심을 잘하고 오해를 잘하며 투사를 잘하는 성격입니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해치려 하고 자신에 대한 음모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정신적 질환입니다. 이런 분들은 자신의 잘못을 절대 인정하지 않습니다. 늘 “네가 잘못해서 내가 힘들다”고 상대를 비난합니다. 그러다 보니 누구도 믿지 못합니다. 누군가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늘 불안해하고 초조해 합니다. 이런 성격은 하나님도 잘 믿지를 못합니다. 언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저마다 행복한 삶을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 중에 그리스도인을 가리켜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이 다르고, 이 세상에 살지만 천국에 속한 백성이라는 것이 다르고, 천국을 소망하며 사는 것이 다르고, 삶의 가치관이 다르고, 인생의 목표가 다른 사람들이다. 이론상으로는 분명히 다른데 세상 속에 살면서 믿지 않는 사람들과 다른 점이 무엇이 있는가?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다른 사람들과 무엇이 다른지 한번 생각해 보자. 일요일 교회에 가서 종교 활동 하는 것이 그들과 다르다고 말하겠는가? 종교 활동 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도 다른 종교인들도 많이 있지 않는가? 다른 삶이란?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마5:46~47)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끼리끼리 잘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더 잘할지 모른다. 비신자들은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더 가까이 친하게 지내기 위해 계를 몇 개씩 조직해
상담소를 찾는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나누는 고민 중 하나는 시도 때도 없이 터지는 분노이다. 자신이 생각해도 별것 아닌 일 로 견딜 수 없이 짜증이 나고 분노를 터뜨리게 된다는 것이다. “저도 왜 그런지 잘 모르겠네요. 너무 쉽게 화가 나고, 일단 화가 나면 잘 가라앉질 않습니다. 얼마 전에는 제가 말하는 도중에 아내가 자기 말을 하느라 제 말을 끊었어요. 그게 얼마나 열이 나는지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어요. 무슨 이야기 중이었는지는 생각도 안나요.” “그냥 다 화가 나요. 세상만사 제 맘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한 계획이나 생각에 어긋나는 일이 생기면 참을 수가 없어요. 밥 먹어야 하는 시간, 자야하는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정말 짜증이 나요. 내가 놓아둔 자리에 그 물건이 있지 않으면 화가 솟구쳐요.” 사람들은 오만가지의 이유로, 혹은 스스로도 모르는 이유로 화를 낸다. 요즘 버럭버럭 소리 지르거나 까칠하게 구는 나쁜 남자나 나쁜 여자가 멋진 것처럼 미화되기도 한다. 그러다 알듯 모를 듯 은근히 잘해 주면 ‘츤데레’ 캐릭터로 각광받는다. 그러나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매력적이 모습과는 다르게, 현실에서 버럭남이나 버럭녀는 남에게 곧
최근 딸을 때려서 숨지게 하고 여러 달 동안 집에 미라 상태로 방치했던 한 가정의 뉴스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좀 더 자극적이고 좀 더 큰 이슈에 목마른 언론에서는 이 가정의 가장이 목사였다는 사실을 부각시켰고, 이 가정이 저지른 극악한 범죄와 맞물려 세상의 증오심과 뭇매가 이들을 향하고 있다. 이 일은 아버지가 목사이었든 한 회사의 샐러리맨이었든 가볍게 다루어져서도 변명의 여지가 있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과연 무엇이 이 한 사람을 이 지경까지 몰고 갔을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또 어디에서 무서운 아동학대가 자행되고 있는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자라난 아이들이 또 똑같은 패턴을 반복하며 자신을 상처 입히고 주위를 괴롭게 하지는 않을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에 본 한 인터뷰에서 한 남자는 고백한다. “저는 상대를 때려야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게 사랑과 극심한 매는 하나의 세트처럼 따라다녔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심하고 때리고 온갖 욕을 쏟아내며 말하곤 했습니다.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제게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을 때, 아이가 태어났을 때, 제가 알고 있던 유일한 사랑의 표현은 폭력이었습니다.
수년전 인도네시아에 진도 8.9의 강진이 해저에서 발생하여 수마트라 섬 북쪽의 아체지역에 엄청난 쓰나미가 몰려와 해안도시를 쓸어 버렸다. 약 20여만 명이 사망 또는 실종되고 도시는 폐허가 돼버렸다. 성한 건물이 없도록 파괴되고 배들이 부셔지고 어떤 배는 도시 한가운데 밀려들어와 있고 시신이 쓰레기더미와 뒤 섞여있었다. 집과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들 부모를 잃은 고아들이 넘치고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쓰나미의 충격으로 사람들은 망연자실하고 있었다. 엄청난 대 재앙으로 신음하고 있을 때 세계 각국에서 구호 팀들이 그곳으로 속속 들어가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몇몇 NGO 단체들이 들어가는데 작은 교회 목회자들이 자원하여 연합 봉사단을 만들어 인도네시아로 들어갔다. 그 때 필자도 자원봉사자로 구호활동에 참여하여 열흘간 인도네시아에서 자원 봉사를 하고 돌아 온 적이 있었다. 인천공항에서 떠날 때 미처 휴대폰 로밍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떠났다. 다섯 시간을 비행기를 타고 싱가포르 공항에 내렸는데 네 시간을 기다려야 인도네시아 매단으로 가는 비행기를 탈 수 있다고 했다. 공항에서 기다리면서 시간을 보기위해 휴대폰을 꺼내서 전원을 켰더니 “통화권을 벗어났습니다”는 메시지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