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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스있는 화내기 ①

가정회복-10

분노를 잘 표현하는 것이 정서적, 육체적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면 이제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분노를 잘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맞닥뜨린다. 분노가 부정적인 감정이고 파괴적인 감정이라는 생각으로 우리는 되도록이면 화내지 않고 화가 나도 표현하지 않고 넘어가려고 한다.

우리는 분노를 참고 티내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알게 모르게 표현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우리의 감정은 말로만 표현되는 것이 아니다. 화가 나도 직접적으로 말을 안 할지 모르지만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던지, 상대의 말을 무시하고 듣지 않는다던지, 갑자기 연락을 끊는다던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화를 낸다. 바로 수동 공격형(Passive-Aggressive) 방법으로 분노를 표현하는 것이다.


수동 공격적인 분노의 표현은 말을 안했다 뿐이지 인간관계에 해가 되기는 마찬가지이다. 수동적으로 분노를 표현하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이유도 알려주지 않은 채 그 관계를 단칼에 끊어버릴 수도 있다. 상대방이 자신에게 상처를 줄 의도가 있든지 없든지, 확인이나 화해할 기회도 가져보지 못한 채 그 사람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상대방은 왜 내가 거리를 두는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지 못할 수 있다. 정제되지 않은 분노의 폭발적 표현이나 수동공격형이나 사람을 잃어버리기는 매한가지일때가 다반사이다.


수동 공격적인 분노의 표현은 많은 경우 자신의 감정과 의사를 명확하게 전달하지 못하는 데에서 온다. 상대의 기분과 뜻에 맞추려는 뜻 깊은 배려도 도에 지나치면 분노의 씨앗이 되는 아이러니가 숨어있다. 내 자신이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불편한 것들을 표현하지 않고 참지만 그것이 쌓이면 슬슬 억울해지기 시작한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 뒤에는 어쩌면 내 자신의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자존감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의 의사를 분명히 하면 상대가 나를 거부하거나 싫어할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문제는 말을 정확히 안한다고 표현이 안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표정으로든, 눈빛으로든, 행동으로든 우리의 감정을 드러낸다. 사실 의사소통의 대부분은 실제적인 말보다는 비언어적 (None-verbal) 양식을 통해 일어나기 때문이다.


상담소를 찾은 T양은 직장을 얻고서 6개월을 넘긴 적이 드물다. 처음에는 막 구한 직장이 마음에 들어 열정적으로 배우고 일한다. 똑똑하고 무엇이든 잘 배우는 T양은 어느 곳이든 금방 직장에 적응했다. 그런데 주위의 사람들이 일을 잘하는 T양에게 자꾸만 다른 일들을 부탁하거나 시키기 시작한다. 그 일들을 맡아 열심히 처리하고 도와주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면 불만이 생겨났다. 나만 유독일하는 것 같고, 나만 일을 시키는 상사에 대한 불신이 싹트기 시작한다. 자신만큼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들이 눈에 띄고 거슬렸다. 자신에게 일을 떠넘기는 직장 상사들의 문제점들이 보이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의 불합리성이 드러났다. 이러한 불만들을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태도나 표정에서는 적대감이 드러나기 마련이었다. 말투도 쌀쌀 맞아지고 얼굴표정도 어두웠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일을 더 많이 시키는 것 같은 상사나 동료들이 자신을 따돌리고 싫어한다고 믿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다른 직장을 찾기 시작했다. T양의 문제는 어느 직장을 가든지 비슷한 문제가 반복되는 데에 있었다.


T양의 열정과 열심이 오히려 직장 안에서의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직장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를 자주 옮겨 다니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경험들이기도 한다. 이 사례에서 T양이 가진 어려움은 일을 많이 시키는 상사나 자신을 안 도와주는 동료에게서 기인하지 않는다.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하지 못하고, 아닐 때 아니라고 하지 못하는 것이 배려라기보다는 분노와 불신의 시초가 되고 있는 경우이다. 도움을 청하기보다는 어떻게든 혼자 해결해 보려는 독립심은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도와주지도 않고 싫어한다는 오해로 이어졌다.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오는 오해와 불신을 대화로 풀기보다 수동 공격적으로 표현하는 패턴은 관계의 단절로 나타났다. 아주 간단한 ‘Yes’ 혹은 ‘No’라는 명확한 의사의 표현이 매정해 보일지 몰라도, 더 이상의 불필요한 오해와 분노를 예방할 수 있다. ‘좋다’, ‘싫다라는 감정의 표현은 상대방에게 나 자신을 좀 더 솔직하고 용기 있게 드러내는 일이다.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히 말할 줄 아는 사람을 꼭 뻔뻔하다고 매도할 필요는 없다. 이리 돌려 말하고 저리 돌려 말하다가, 못 알아듣는 상대에게 은근히 화를 내는 사람보다는 훨씬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할 줄 아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할 때 하고 아니오할 때 아니오’ (5:37) 하는 아주 간단하고 분명한 의사소통은 무례함이 아니다. 불필요한 오해와 분노의 폭발을 미리 막아주는 기막힌 지혜이다.

 

심연희 사모 RTP지구촌교회(미주)

Life Plus Family Center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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