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태신앙인 조영일 목사는 음악을 좋아했던 소년이었다. 어릴 때 밴드에서 활동하기도 하고 대학교를 졸업한 후 직장생활을 시작해 지점장의 자리까지 올라가기도 할 정도로 공과 사 모든 일에 열심이었던 그는 30대 중반 건강상의 문제로 직장을 그만두고 치킨 배달에서 음악 과외까지 정말 한시도 쉬지 않는 인생을 살아왔다. 그런 그가 목사로서 비전을 품고 나아간 것은 40대 이후부터이다. 30대 중후반부터 오산에 거주했던 조영일 목사는 오산교회에 출석하고 있었다. 어느 날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마음을 품게 된 조영일 목사는 당시 오산교회 담임이었던 고명진 목사(현 수원중앙)를 만나 신앙상담을 풀어놓았다. “목사님, 내가 한번 사는 인생 이렇게 살아가라고 주님께서 저를 이 땅에 보낸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가치 있는 삶을 살아보고 싶습니다.” 조영일 목사의 고백에 고명진 목사는 한국침례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입학할 것을 권유했다. 늦은 나이에 다시 공부를 시작한 조 목사는 40대 중후반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는 파트타임으로 주말에는 사역을 하고 평일에는 일을 하는 자비량으로 사역의 방향을 잡았다. 본격적인 사역을 위해 아무 연고도 없던 천안에 내려
“도동리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 같아요. 강권적인 하나님의 이끌리심이 이들을 만나게 되고 이들의 삶을 이해하게 되고 더 나누고 싶어 음료수를 따 건네며 붙잡으니 어떤 부녀회원 ‘찐득이’라고 홀겨도 또 포기할 수 없는 아버지 마음이네요. 아직도 복음을 전해야 할 60여 가구의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이 생명을 주님께 드립니다.” 이혜원 목사(영동대흥)는 대전대흥교회(정인택 목사)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해 평신도로 10년, 사역자로 10년을 교회에서 헌신해 왔다. 사역자에게 자신이 필요로 할 곳이 어디인지를 고민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목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강권적인 부르심의 역사로 교회 사역을 정리하고 2017년 영동대흥교회를 개척했다. 그렇게 이혜원 목사는 “오직 복음으로만 살리라”는 심정으로 산골 오지 구석구석에도 복음이 닿지 않는 곳이 없도록 불철주야로 달려왔다. 대전대흥교회에서 이혜원 목사는 여러 사역을 감당해 왔지만 그중 가장 행복한 사역은 어르신을 위한 사역이었다. 삶의 숱한 고생을 뒤로하고 교회로 나오신 어르신들을 환영하고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역, 교회 노인대학을 섬기면서 어르신에 대한 특별한 사랑과 관심은 충
인천지방회(회장 권병국 목사) 뉴그레이스채플교회(김대훈 목사)는 지난 3월 5일 교회 이전 감사예배를 드렸다. 지방회장 권병국 목사(사랑의)의 사회로 민인남 목사(밀알)가 기도하고 조윤호 목사(산성)가 성경봉독했다. 이어 김기덕 목사(새인천)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왕상 17:1~7)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김기덕 목사는 설교를 통해, “교회는 하나님이 일하시면 반드시 부흥하는데 견디기 힘든 상황에서 하나님이 말씀으로 임하신다”며 “엘리야에게 말씀이 임해 순종하니 사르밧 과부를 통해 일하셔서 그 여인도 살고 엘리야도 살린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해 기적의 역사를 이루는 삶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피은혜 목사(새창원은혜)와 김종국 목사(반석)가 교회 이전을 축하했으며 김철기 목사(새성)와 전종진 목사(보라)가 격려했다. 곽두희 목사(인천제일)가 헌금기도하고 이재옥 목사(부평중앙 원로)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뉴그레이스채플교회 이전은 지방회 소속 회원교회들의 협력과 협동으로 이뤄졌으며 군 선교사와 지방회 파송 선교사도 함께 했다. 특히 교회 리모데링 공사는 새창원은혜교회가 후원했다. 공보부장 송수자 목사
경동지방회(회장 김찬호 목사)는 지난 2월 19~20일 청송 주왕산 관광호텔에서 지방회 전도부(부장 최병창 목사) 주관으로 목회자 가정 수련회를 가졌다. 19일은 주왕산 국립공원 용추계곡을 둘러보고 온천에서 심신의 피로를 풀었고, 저녁식사 후 티타임을 가지면서 목회 정보를 함께 나누며 유쾌한 시간을 가졌다. 20일은 상쾌한 공기속에 청송 주왕산 국립공원 내에 있는 주선지 저수지를 돌며 산책했다. 친교 모임과 교제를 진행하며 화합을 도모하며 회복과 충전의 시간이었다. 지방회 공보부
온양지방회(회장 이준구 목사)는 지난 2월 20일 충남 아산 ‘모나밸리’에서 새생활교회(엄태일 목사) 주관으로 지방회 목회자와 사모, 여선교회 회원이 함께 한 가운데 2월 월례회를 진행했다. 1부 경건예배는 지방회 총무 조영일 목사(호산나)의 사회로 김병철 목사(온양)가 기도하고 지방회 여선교회가 특송했다. 이어 엄태일 목사(새생활)가 “렌즈로 보지 말자”(눅 6:1~11)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회무는 채광호 목사(행복이넘치는)의 기도로 각 부별 주요 보고 및 안건을 토의했다. 공보부장 서동진 목사
익산지방회(회장 이주승 목사)는 지난 2월 24일 이리교회(조규선 목사)에서 김근중 목사(늘푸른)를 강사로 지방회 연합 제직세미나를 진행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3년 만에 재개된 이번 세미나는 “청지기론”을 주제로 교회에서 직분자로 섬기는 이들이 짊어진 여러 고충들을 생각하는 기회가 됐다. 더불어 교회에서 현실적인 직분자의 모습들을 단계별로 구분해 고칠 부분과 세워져야 하는 부분들을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이날 세미나는 익산지방회에 소속된 목회자와 제직 등 140여 명이 참석했다 공보부장 박민호 목사
선장중앙교회(강형주 목사)는 지난 3월 17일 주일 오전 10시 30분 교회 창립 50주년 기념 감사예배 및 권사 취임식을 가졌다. 감사예배는 강형주 목사의 사회로 김승희 장로(선장중앙)의 기도, 엑트성경연구원 원장 이차희 목사가 “어머니와 같은 교회”(마 15:22~28)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이차희 목사는 설교를 통해, “우리에게 수많은 위기와 고난, 아픔과 상처들이 존재하지만 기도의 제단을 쌓으며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생각한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넘쳐나기를 소망한다”면서 “수로보니게 여인과의 이야기를 통해 예수님은 그의 간절함과 믿음의 고백을 기억하고 계셨기에 교회는 간절함 속에서 부르짖음 속에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리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어 선장중앙교회 2대 담임목사이자 교단 총회장을 역임한 최창용 목사(도마동 원로)가 교회 창립 50주년을 축하하며 성도들에게 권면했다. 최창용 목사는 “이 교회에서 목회자가 5명 사모가 5명, 선교사가 2명이 나온 것은 놀라운 축복이고 큰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50년 동안 한결같이 부어주신 은혜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다”며 “교회의 직분자로 섬기는 자로, 복음을 전
교회를 개척한 후 아주 가끔씩이라도 한두 사람씩 성도가 늘어나기 시작하지만, 대부분의 개척 교회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기대하는 것만큼 성도 수가 급격하게 늘어나지 않는다.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나도 제자리 걸음하는 것처럼 새로운 성도가 오지 않고, 그러한 시간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하면 목사는 서서히 지치게 된다. 목사만 지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도 조금씩 지쳐가기 시작한다. 목사의 얼굴에서 생기가 사라지고, 성도들의 모습에서도 활기를 찾아보기 어렵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생기를 잃어버리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성도의 숫자가 늘어야 한다는 생각에 초점이 맞춰있기 때문이다. 물론 생명력 있는 교회라면 전도가 이뤄져야 하고, 성도의 숫자도 늘어가야 하는 것이 맞다. 그렇지만 이 시대의 상황을 볼 때 개척 교회들이 몸부림을 쳐봐도 교회의 숫자적 성장이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기독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그리 좋지만은 않은 데다가 새로운 교회를 찾는 사람들도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교회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혹여 새로운 교회를 찾기 위해 한 번 방문하였다가도 예배드리는 성도의 숫자가 많이 적은 분위기를 보고는 등록하지 않게 되는 일도 많이 겪
중학교 3학년, 1반 교실에서는 아침부터 선생님께 혼나는 소리가 납니다. “야이 새끼야, 똑바로 앉어. 똑바로.” 삐딱하게 앉아있는 제 정강이를 구둣발로 힘껏 차며 소리를 지르는 분은 담임선생님이십니다. 중학교 1학년 때도 담임이셨는데, 그 때의 착실한 김진혁을 생각하고 부반장이 된 것을 한껏 축하해 주신 분이기도 합니다. 학기 초, 서명운동을 주도하고 퇴학 위기를 한 번 넘기고 나니, 제 자신부터 학교를 다니기 싫었지만, 담임 선생님 또한 그런 저를 못마땅해 하셨습니다. 그래서 3학년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부터 저는 이미 학교를 떠나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공부도, 친구들과의 관계도, 선생님들과의 관계도 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고입 연합고사, 체력장 20점에 총 200만점으로 진행되는 시험에 40점을 맞아 어느 고등학교도 입학하지 못했습니다. 농땡이를 피우지 않고서야, 누구나 20점을 유지 시켜주는 체력장 점수가 10점, 한 줄로만 쭉 찍어도 50점을 맞는 시험점수가 30점이니 고등학교 입학은 이미 물 건너갔습니다. 시험 점수를 받으러 학교에 간 날, 다른 녀석들과는 달리 이미 수준을 알고 있는 나는 점수표를 받자마자 미리 아르바이트를 신청해 놓은
반수면 상태에서 한 달 이상을 시달렸다 이건 시차 때문도 아니고 너무 더운 날씨 때문만도 아니다 운동을 하면 나을까, 열심히 헬스장에 갔더니 입술만 부르트고 스케줄에 따라 사람을 만나 맛있는 음식도 먹었다, 뭔 이야기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저냥 중요하지 않은 만남의 시간들 꼭 해야 할 일들을 습관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내 모습은 아니다 아~! 아바타 같다 나는 아바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만 하면서 진정한, 나는 반수면 상태에 있다 오늘 아침, 내가 왜 이럴까? 나는 아직도 비몽사몽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