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땅에서는 연일 단추만 누르면 서울은 불바다가 된다고 악을 쓰는데 경제력 40:1의 우위에 있는 우리는 침착하기만 하다. 미군 B-52폭격기 한 대가 갖고 있는 원자폭탄은 히로시마에 떨어뜨린 10배 파괴력을 갖고 있는데 호랑이 앞에서 마구 짖어대는 강아지 보듯 미국은 잠잠히 한반도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인터넷에 유포된 동영상에 노쇠한 통일교 주 문선명씨 곁에 부인이 막내 아들을 후계자로 지명하는데 부추기는데 결국은 경제력은 4남이 종교권은 7남이 차지했다. 3남 현진씨는 아버지 장례 유족 명단에서도 제외되었다. 삼성 그룹 이병철씨는 장남을 제치고 이건희씨에게 물려 주었다. 현대 그룹 정주영씨도 장남을 제치고 정몽헌씨에게 물려주었나? 새벽에 구약성경 열왕기상을 읽으면서 인간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암투의 연속이요 수천년이 지난 현대 문명시대에도 똑같은 패턴이 순환되고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다윗왕은 6명의 부인으로부터 각기 다른 배에서 6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장남 암몬은 3남 압살롬에게 살해됐고 4남 아도니야는 6남 솔로몬에게 죽임을 당했다. 북한 김정일은 첫째부인이 낳은 장남 김정남과 셋째부인 중에서도 큰 아들 김정철을 제치고 둘째 김정은에게 권력
지난번에는 지도자나 목회자의 품격 곧 됨됨이를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자세 곧 주의할 것들을 조심스럽게 나의 과거 목회 이야기를 통해 나누고자 한다.미국 워싱턴에서 BWA 실행위원회를 마치고 잭슨빌한인침례교회 부흥회를 마치는 날(09.3.11) 새벽에 아주 큰 소리로 “포니케이션!”이라고 외치치는 소리에 깜짝 놀라 잠을 깨보니 새벽 3:30이었다. ‘음행, 간음’으로 영어의 뜻은 알았으나 사전을 찾아보니 ‘종교적인 뜻’으로 ‘영적 간음’인 ‘우상숭배’라고 설명이 나왔다.‘무슨 음행과 간음, 영적 우상숭배인가?’ 생각하는데 먼저 자신이 영적 간음이나 우상숭배를 한 일은 없는가 스쳐 지나가면서 목회자들과 한국교회, 세계의 교회들, 나아가 바로 미국이 “땅의 임금들도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사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한”(계17:2) 나라임을 깨닫게 되었고, 온 세상이 음행과 우상숭배의 풍조에 소돔과 고모라의 뒤를 따르고 있구나 깨우쳤다. 성경을 펴보니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 것이 둘째 사망이라”(계21:8) 하셨고, 바울사도는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순교의 그림자는 구약에서 아벨의 피에서 시작해 가장 위대한 예언자였던 이사야를 들 수 있다. 6대 왕들의 치하에 살며 예언을 했고 유대교의 미슈나에 의하면 므나세왕의 이교적 박해로 순사했는데 톱으로 쪼개어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톱으로 켜는 것”(히11:37)이 그 증거이다. 예레미야는 민족의 멸망을 예언하다 고통과 투옥을 당했고 유다의 멸망 후 애굽까지 따라가서 예언활동을 하다가 돌에 맞아 순사되었다.(히11:37)예수님의 선구자인 마지막 예언자 침례요한은 요단강에서 회개의 침례를 베풀고 예수에게 침례주고 헤로디아의 일로 헤롯왕을 책망하다가 투옥되어 결국 살로메의 춤바람에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침례 요한보다 큰이가 일어남이 없도다”(마11:11)라고 예수님께 평가받은 제2의 엘리야는 참수의 순사로 역사에 남았다.“왕관”(스테파노스)의 뜻을 가진 이름의 스데반, 예루살렘 초대교회가 뽑은 7집사들의 수장인 그는 성령과 지혜와 믿음이 충만하며 칭찬듣는 사람이었고 나아가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한”(행6:9) 집사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담대하게 변증하다 순교할 때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6:18)고 했다. 스데
이태리 성 베드로 성당에 가면 천재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유일하게 자기 이름을 새겼다는 대리석 조각품 피에타(Pieta)가 있다.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신 예수님의 시신을 끌어 안고 처연한 모습으로 아들을 바라보고 있는 대리석 조각품인데 어떻게 구겨진 옷, 근육과 핏줄까지 이렇게 섬세하게 묘사될 수 있을까 감탄이 절로 나온다. 어떤 조각을 공부하는 학생이 망치와 끌을 들고 저 한 부분을 좀 더 다듬으면 좋겠다고 달려든다면 정신 감정을 받아야 한다. 십자가에서 “테텔라스타이(다 이루었다)”를 외치신 주님의 죽음 앞에 무언가 우리의 공로를 좀 더 보태야 완전한 구원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그런 사람이 아닐까?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우리의 구원은 완전하고 영원히 속죄됐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주님의 남은 고난을 자기 몸에 채우겠다고 한다. 무엇을 남기셨다는 말인가? 나치 독일에 항거하다 목숨을 잃은 순교자 본 훼퍼 목사는 독일 교회가 능력과 영향력을 잃어버린 원인중 하나는 값싼 복음(cheap gospel)을 지나치게 강조한 것이라 했는데 오늘날 한국 교회가 귀담아 들어야 할 메시지이다.주님은 제자들에게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하셨다.
과학이 발달해 인공 심장, 인공 관절, 인공 줄기 세포까지…. 웬만하면 다 만들어 내는데 아직까지 피는 못 만든다. 피검사를 통해 피의 구성과 생명체의 신비와 몸속에 질병을 알아내지만 여전히 피에 대한 신비는 무한대로 남아있다.지구상에 모든 제사는 피를 요구한다. 가장 고귀한 생명을 요구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도 죄인에게 피의 제사를 요구하셨다. 구약 수천 년 동안 죄인들은 황소의 피, 양의 피를 바쳤다. 3.1절 독립만세를 회상하다 인터넷에서 일본 군인들의 천인공노할 만행을 담은 사진들을 보게 됐다. 닭 모가지 치듯 조센징의 잘리운 머리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수십개 목을 잘라 긴 빨래 줄에 곶감처럼 매달은 사진, 일본도로 내리칠 때 피가 튀지 않도록 뒷목에 수건 덮은 사진, 총검에 찔리기 직전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는 사진, 여성의 음부에 총질하여 처참하게 널 부러진 사진, 시술대 위에 구불거리는 창자를 꺼내며 해부하는 사진도 있다. 지금 우리가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는 이 땅에 이토록 수많은 우리 선조들의 피가 뿌려졌다는 것을 우리 후손들은 얼마나 실감하고 있을까? 공분과 함께 가슴이 아려온다.5년 후 이 땅은 동족상잔의 6.25 전쟁으로 다시
맥베스의 비극의 후예들영문학과 4년째 누구나 골머리를 앓는 영문학의 최고봉은 셰익스피어(Shakespeare)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나마 재미있게 넘기지만 대비극의 하나로 “To be or not to be”의 햄릿(Hamlet)을 배울 때는 인생의 심각성을 깨우치나, 맥베스(Macbeth)는 데칼트가 언급한 “권력욕”(Will to power)의 허상을 쫓다가 결국 파멸하는 비극으로 끝맺는다. 오늘날도 권력에 거머리처럼 더덕더덕 붙었다가 똥배불러 큰집(교도소)로 떨어지고 비참하게 종국을 맞는 맥베스의 후예들을 본다.스코틀랜드의 용맹한 장수 맥베스는 왕이 될거라는 마녀의 예언에 현혹되어 아내와 짜고 사촌인 던칸(Duncun) 왕을 엘진(Elgin) 전투에서 살해하고 왕좌에 앉으나 최강의 권력자가 된 부부는 행복은 커녕 두려움과 공포에 시달린다. 마음속의 재판관인 양심이 죄책감이라는 무서운 형벌을 내렸기 때문이다. 드디어 3년 후 던칸 왕의 장자인 말콤(Malcolm)에게 자신도 살해되어 결국 “맥베스의 비극”으로 종말을 맞는다.역사를 살펴보면 권력욕의 희생물로 최후를 마친 맥베스는 많다. 인간의 탐욕 가운데 가장 강력한 권력욕의 후예는 성경의 사울왕과 징
세계적인 발명품은 번개처럼 스쳐지나가는 생각으로부터 시작되는 것들이 많다.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발견한 뉴턴의 만유인력. 천둥번개에 놀란 프랭클린의 피뢰침이 그런 것들이다. 50년 전 천막을 치고 이단취급 받던 개척 교회에서 오늘날 세계 최대의 교회를 이룩한 조용기 목사의 ‘4차원의 영성’도 어느 날 기도하다가 하나님이 주신 번뜩인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1차원의 점과 점 사이를 잇는 선(線)은 현미경으로 보면 이미 면(面)을 지니고 있다. 2차원의 면도 3차원의 이미 공간(空間)속에 지배를 받고 3차원의 입체(立體)도 입체를 만드는 순간 4차원의 무한한 시공간(視空間)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4차원은 영혼의 세계이기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3차원의 세계는 4차원의 영적인 무한한 세계에 이미 들어와 있고 지배를 받게 된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3차원은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다”는 히11:3에 말씀에 근거한다. 4차원의 영성이란 생각, 믿음, 꿈, 말 등 4가지 요소를 잘 다스리고 훈련하는 영성이다.(1) 생각 :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잠23:7). 생각은 시공간의 지배를 받지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눅 22:44)인류를 구원하고 역사를 바꾼 주예수 그리스도의 피땀 흘리신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는 기도응답의 영원한 표상이다.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6)우리가 한때 기쁨이 충만했고 은혜와 평강이 넘쳤는데 지금은 냉랭하고 공허하며 미지근하고 쓸쓸하게 되었다면 사무엘이 말한 “기도하기를 쉬는 죄”(삼상12:23)부터 먼저 회개할 것이다. 호흡과 같은 기도에 태만한 것은 영의 양식인 말씀을 먹지 않은 것 못지 않게 통찰하고 다시 얍복 나루터에 나아가 천사와 씨름하는 기도로 승리하여 영적 환희와 감격이 넘치고 충만한 응답의 체험을 만끽해야 하지 않겠는가?가끔 우리 앞에 나타나는 문제들은 언제나 문제가 아니라 바로 기도하여 응답받으라는 적신호이다. 문제나 한계는 그대로 남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큰 믿음으로 승화시키고 은혜와 축복의 통로이며 기적을 안겨주는 하나님의 방법이다.근심, 걱정, 염려, 심험, 병고, 환란, 좌절 같은 어처구니 없는 사건들은 우리로 무릎을 꿇게 하고 막힌 문을 열고 돌담을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후 첫번하신 메시지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4:17)였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만 믿음은 회개를 전제로 하고 회개는 믿음을 수반하는 것으로 회개와 믿음은 동전의 앞뒤와 같다고 한다.성경에서 예수님의 돈궤를 맡은 가룟유다에게 돈의 탐욕으로 “사단이 들어가니”(눅22:3) 몇 번이나 회개의 기회를 준 스승 예수를 배반하고 은 30냥에 팔아넘긴 후 회개치 않아 “스스로 목매어 죽어”(마27:5),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흘러나온지라”(행1:18) 저주의 최후를 맞게 되었다.오순절 이후 예루살렘교회는 부흥일로에 있었으나 때론 사도들이 투옥되는 고난을 겪기도 했다. 그 와중에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하나님과 교회, 성령과 베드로 사도를 속인 죄로 교회당 안에서 죽어 장사되었다. 그들은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우리가 정말 죽을 죄를 저질렀으니 교회와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합니다. 선한 동기에서 시작한 봉헌이었는데 물질의 탐욕이 우리를 범죄케 했으니 용서해주십시오’라고 회개하며 고백했더라면 비참한 죽음을 맞지 않았으리라.회개치 않는 자에 대해 예수님은 경고했다. “이에 가서 저보다 악한 귀신
성대하게 치뤄지는 대한민국 18대 대통령 취임식을 지켜보면서 5년 전 손 흔들며 그 자리를 떠났던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이 크로즈 업됐다. 그 어느 누가 몇 개월 뒤 부엉이 바위 위에서 뛰어 내릴 줄 상상이나 했겠는가? 대통령의 자리는 분명 축복의 자리임에 틀림없지만 그 자리는 또한 저주의 자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역사의 교훈을 받는다.하나님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두고 모세를 통해 그 땅이 얼마나 비옥하고 아름다운 땅인지를 소개한 뒤 그 곳에서 백성들이 어떻게 믿음을 지키는가에 따라 축복이 될 수도 있고 저주가 될 수도 있음을 가르쳐 주셨다(신명기11장).돈이 주는 혜택이 얼마나 많은가? 사람들은 그래서 그 돈을 벌려고 그렇게 애를 쓴다. 그런데 정작 그 많은 돈을 번 뒤에 그 돈 때문에 망하는 사람이 많다.로또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을 조사한 보고서는 놀랍게도 그 복권 때문에 알콜 중독자가 되고, 이혼하고, 심지어 자살하는 불행한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이다. 실은 복권 때문에 행. 불행이 나눠지는 것이 아니라 복권과 상관없이 평소 행복한 삶을 살았던 사람은 더 나누고 베풀면서 행복을 이어갔고, 평소 원망과 불평 속에 살던 사람은 횡재한 뒤에 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