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는 나라를 망치는 일곱 가지 사회악을 원칙 없는 정치, 노동 없는 부, 양심 없는 쾌락, 희생 없는 신앙, 도덕 없는 경제, 인간성 없는 과학, 인격 없는 교육이라고 말한다. 어느 것 하나 껄끄럽지 않은 것이 없으나 특별히 오늘 더 목에 걸리는 것은 인격 없는 교육이다. 요즘처럼 평생교육의 場을 많이 펼치고, 배우기는 항상 배우나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는(딤후3: 7) 이유가 무엇일까? 주자(朱子)는 배움을 권면하는 글에서 촌음을 아껴 배움에 열심을 다하라고 권하며, 성경에서도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이런 열정적인 가르침을 주시는 스승이 겸비해야 하는 것이 바로 바울이 “너희는 내게 배우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우리 주님도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눅10: 36)”고 말씀하신다. “스승됨”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달인 오월에 人格있는 敎育을 몸소 보이신 주님의 교육방법은 요즘말로 “넛지(nudge)”의 개념을 승화시킨 것이 아닌가 싶다. 원래 nudge는 “(특히 팔꿈치로)옆구리를 슬쩍 찌르다”는 말로, 시카고 대학에 리처드탈러교수(넛지 “똑똑한
얼마 전 바닷가 산동네를 28년째 섬기는 목사님의 기사를 봤다. 교인은 20명도 채 안되고 동네가 가난하니 교회도 가난하고 목회자도 가난하지만 예수는 머리 둘 곳이 없을 정도로 가난했으니 목회자의 가난은 숙명이라면서 “성경은 구약에선 고아와 과부 그리고 나그네를 돌보라고 했으니 가난한 이웃과 함께 살다 죽으려합니다”고 말했다. 달동네 현장 사역자의 소명감에 오랜만에 미세먼지가 걷힌 6월의 푸른 하늘의 흰 구름을 보는 듯 마음이 상쾌해졌다. “과부”란 단어에서 가끔 신학대 후배 모 사모가 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원대한 목회의 비전으로 서울의 한가운데서 꿈을 펼치다 봄 야외 예배를 드리다 교인들이 보는 앞에서 심장쇼크로 남편 목사가 소천했다. 교인들과 가까운 지인들은 홀사모된 그를 위하여 걱정이 되어 잠을 못 이룰 때 모 사모는 놀랍게도 여동문회 회장직도 놀랍게도 잘 수행했고 남편의 교수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공부했던 그 수많은 책들을 모교 도서관에 기증했다. 그뿐 아니라 어린 딸 세 명을 열심히 키워 침례교의 명문대와 유학 등을 마치고 침례교회의 사역자의 반열에 세웠고, 강남의 영어교사로 좋은 크리스천의 믿음의 본보기가 됐다. 그가 우리 여동문들에게 들려준 이야
20년 전 예배당을 새로 지을 때 예배당 현관 앞은 경사진 언덕이어서 약간 흙을 돋우어 폭 3미터 정도를 마당과 높이를 같게 만들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흙을 돋운 만큼 2미터 높이의 경사가 생겼고 흙이 비에 유실되지 않도록 잔디를 심었다. 처음에는 잔디가 잘 자라서 점점 촘촘해지고 조금씩 번져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잔디밭에 침입자가 생겼다. 정확한 이름은 모르지만 어려서 메꽃이라 불렀고 나팔꽃 비슷한 분홍 꽃이 피는 넝쿨 식물이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무섭게 번져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가볍게 뽑았더니 뿌리가 뽑히지 않고 윗부분에서 끊어지는 것이었다. 그런가보다 하고 끝냈는데 나중에 보니 거기서 또 싹이 나서 자라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뿌리를 캐려고 하니 뿌리가 깊어 한 뼘은 보통이었다. 잔디를 상하지 않게 하려니 어려웠고 비가 온 후 땅이 물러진 후에나 제대로 뽑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몇 해를 실랑이 하다 보니 언젠가부터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다음에 잔디밭을 공격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쑥이었다. 결국 또 몇 년간 쑥과의 싸움은 계속되었다. 자주 뽑아주다가도 이런 저런 이유로 시간이 좀
콩나물은 콩나물시루 속에 빽빽하게 밀집되어있어야 잘 자란다. 마치 조상대대로 한 마을 좁은 땅위에서 빽빽하게 밀집되어 삼대(三代)가 함께 살을 맞대고 수백 수천 년을 잘도 살아온 우리 민족을 생각하게 한다. 또 콩나물은 뿌리 내릴 흙이 없어도 내리 쬐는 볕이 없어도 잘만 자란다. 마치 가꾸어 먹을 땅도 없고 이렇다 할 천연자원도 없는 이 땅에서 가뭄과 홍수와 태풍과 악정(惡政)에 시달리면서도 티 없이 잘도 살아온 우리 민족역사와 같다. 콩나물은 거두는 일도 없고 가꾸는 일도 없이 그저 물만 주어도 잘 자란다. 풍부한 것이라고는 물밖에 없는 땅덩어리에서 보리죽도 제재로 못 먹고 고무신 하나도 제대로 신고 다니지 못했어도 억척스럽게 잘도 살아온 우리 민족처럼 말이다, 그래서 콩나물이 내는 맛도 짜고 맵고 쓰고 단 것이 아니라 담백하고 시원하고 소박하다. 마치 자연에 순응하여 하얀 베옷만 입고도 천직의 농부처럼 살아온 우리민족과 같다. 콩나물은 한국사람이다. 콩나물은 삶을 때 익기 전에 뚜껑을 열면 비린내가 나는 것까지도 한국인을 닮았다. 내성적이면서도 옳은 것이 아니면 성깔을 부리는 한국인의 저항방법을 꼭 닮았다. 콩나물의 이해를 돕는 결정적인 조건은 이 세상에
목회자 윤리 문제에 비상이 걸렸다. 최근 한 시사 프로그램에서 현직 목회자가 유학생활을 하면서 미성년자를 성추행한 사건이 다뤄진 뒤, 큰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 사건은 곧바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으며 목회자의 소속교회와 신상이 공개되면서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소속교단에서도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속시원한 답변이나 제재조치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성윤리 문제와 관련해 대형교회의 목회자부터 해외선교의 사역자까지 이런 일이 비일비재 하게 일어나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초대교회의 감독은 로마의 핍박과 유대교의 갈등 속에서 복음과 신앙을 지키기 위해 성도를 보호하고 기꺼이 순교의 길을 걸었다. 많은 성도들이 탄압을 이기지 못하고 배교의 길을 걸었어도 교회의 지도자들은 순교가 곧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생각하고 기꺼이 그 험한 길을 피하지 않았다. 이같이 목숨으로 신앙을 지켜왔기에 오늘의 교회가 굳건하게 세워질 수 있었다. 수많은 환난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던 선진들로 인해 한국교회가 부흥했다. 우리 침례교회도 마찬가지다. 교단의 전신인 동아기독교는 일제의 수탈과 목회자의 구금, 재산 몰수,
동성애자들의 거리 축제가 대한민국의 수도 한복판인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열렸다. 지난 11일 광화문 대로를 사이에 두고 서울광장과 대한문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아웃(OUT)’이라고 적힌 카드를 들고 다녔다. 광장에선 ‘차별 선동 아웃’, 덕수궁 앞에선 ‘동성애자 아웃’이라 글귀가 행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날 열린 퀴어(Queer)문화축제를 놓고 서로 다른 편에 서서 나온 목소리임을 쉽게 알 수 있게 한 대목이다. 17회째를 맞은 성소수자 지지 집회인 퀴어문화축제는 2000년에 시작됐다. 지난해 축제에 참여했던 성소수자 모임과 그들을 지지했던 80개 단체들이 올해는 100개 이상으로 늘었다. 이번 축제는 미국과 캐나다·호주·영국 등 14개국 대사관들이 참여해 국내외 여론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주최 측 추산 5만여 명, 경찰 추산 8000명이 축제에 참가했다. 1년에 한 번 있는 이날 행사에 성소수자들은 한국교회의 강한 우려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들만의 자유를 만끽했다. 동성애자들의 음란한 행사인 퀴어문화축제에 브래지어 차림의 반라(半裸)의 여성들이 어김없이 등장했으며, 동성애자들은 시민의 공공장소에서 술과 음식을 팔고 기부금을 받았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와 생명 공동체가 현재 심각한 위기 상황에 처해있다. 이성과 과학의 시대를 화려하게 꽃피운 인간들의 교만과 욕심이 온 세상을 조화롭게 인도하지 못하고 파멸의 길로 이끌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한국교회가 지금은 무엇보다도 먼저 자살예방과 생명을 존중하는 사회분위기를 조성하는 사업을 전개하는 일에 적극 앞장서 나가야 할 때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본질과 질서를 거스르는 일이 이 사회에 차고도 넘치고 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식탁을 점령해 버린 유전자 변형 기술로 재배된 작물(GMO) 논란, 대기오염과 기후 온난화 문제, 생태계를 파괴하는 난개발, 인종차별, 동성애 문제, 자살, 살인 테러 등으로 지구촌이 몸살을 앓고 있다. 요즘 대한민국 국민을 분노하게 만든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만 보더라도 돈에 눈이 먼 기업들의 탐욕이 만들어 낸 참사로 알려지고 있다. 문제 가습기를 만든 기업들은 하나같이 인체에 대한 유해성을 알면서도 이를 숨기고 이윤을 위해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했다고 한다. 우리는 수많은 이들의 생명을 앗아간 기업은 예외 없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특별히 한국교회가
‘호국·보훈의 달’ 6월이다. 호국(護國)이란 외부의 위협이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보호하고 지키는 것이고, 보훈(報勳)이란 국가의 존립과 주권수호를 위해 신체적, 정신적 희생을 당하거나 뚜렷한 공훈을 세운 자나 그 유족에 대해 국가가 적절하게 보상하는 것을 말한다. 현재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며, 국민의 호국·보훈의식 및 애국정신을 함양하기 위해 6월을 ‘호국보훈의 달’로 정하고 현충일, 6·25, 제2연평해전 등의 정부기념식을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열고 있다. 해마다 6월 한 달을 ‘추모의 기간(6월 1일~10일)’, ‘감사의 기간(6월 11일~20일)’, ‘화합과 단결의 기간(6월 21일~30일)’으로 나누어 기간별 특성에 맞는 호국·보훈행사를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언론·종교계, 청소년 등 온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행사를 전제로 하고 있다. 추모의 기간에는 현충일 추념식을 실시, 감사의 기간에는 국가유공자 및 유족 위로·격려와 보훈 관련 문화행사를 지원, 화합과 단결의 기간에는 6·25 기념식과 제2연평해전 기념행사 등이 열린다. 이러한 호국과 보훈의 의미가 가장 절실하게 담겨 있는 곳이 바로 구국
대한민국 20대 국회의원 임기가 오는 30일부터 시작한다. 한국교회는 동성애 반대와 이슬람 확산을 막고자 20대 국회 원내진입을 목표했지만 아깝게 비례대표 의원을 만들지 못했다. 하지만 기독교계는 20대 총선 기간 동안 초교파적으로 ‘동성애 법제화’ 및 ‘이슬람 문화 확산’ 반대에 한목소리를 냈다. 이번 20대 국회는 여소야대의 국면에서 다양한 국민들의 의견들이 표출되리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본보는 여러 차례 동성애의 문제점을 제기한 바 있다. 여기에 더해 특별히 이슬람 문화의 국내 확산은 한국교회의 큰 위기이자 사회 갈등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서상 무슬림 사회의 통념을 받아들이기도 어렵고 심각한 종교적 갈등을 야기 시킬 수 있다. 한 언론기관의 통계에 따르면 한국정착 무슬림은 약 4만5000여 명으로 이 가운데에는 한국으로 귀화한 무슬림(1700여 명)과 한국인 배우자와 결혼한 무슬림(4200여명), 무슬림으로 개종한 한국인 배우자(4000여 명), 마지막으로 토착 한국인 무슬림(3만5000여명)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통계를 좀 더 자세하게 보면 우리나라의 이주노동자의 유입과 다문화 가정의 확산, 오일달러를 앞세운 이슬람 거대 자
총선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울시(시장 박원순)는 동성애 퀴어(Queer) 축제의 서울광장 개최를 전격 발표하고 나서 한국교회의 우려와 분노를 사고 있다. 최근 서울시 홈페이지 내 ‘서울광장’ 행사 일정에는 오는 6월 11일 행사를 ‘2016년 제17회 퀴어문화축제’로 표기하고 이를 ‘수리’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서울시측이 내부적으로는 퀴어 축제를 허가해 주기로 해 놓고 20대 총선에 영향을 미칠까 두려워 발표를 늦췄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먼저 침례교회는 ‘서울시가 퀴어 축제 등으로 동성애를 사실상 조장하고 있다’는데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 오늘 5월 21일은 ‘부부의 날’이다. 5월 21일에는 가정의 달인 5월에 둘(2)이 하나(1)가 된다는 뜻이 들어 있다. 부부의 날은 부부관계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화목한 가정을 일궈 가자는 취지로 제정된 법정기념일이다. 부부의 날이 제정됐지만 그렇다고 이날을 기해 다투던 부부가 더 화목해지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요즘 이혼 가정이 늘어나고 결혼을 포기하거나 자녀를 낳지 않는 추세여서 국가적으로는 비상이다.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진행되는 도시화 산업화 등으로 인해 전통적인 가족의 개념은 빠르게 해체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