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속에서 남의 말을 제대로 듣고 이해하기 전에 나의 생각과 판단을 결정해 버리면 모든 인간관계의 ‘적신호’ 오고 만다.더욱 중요한 것은 좋은 미래를 기대하려거든 상대방을 이해하는 쪽을 선택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모든 일에 올바른 사리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무엇이냐? 사물을 바로 보고 바른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한쪽 편에 기울어져 있으면 상대편을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판단 기준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생각과 행동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특별히 나는 괜찮은 사람인데, 남은 전부 나쁜 사람이라고 판단해버리면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모자라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리고 사물을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을 혼돈해서는 더더욱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실판단은 쉽지만, 가치판단은 어렵기 때문이다. 왜 가치판단이 어려우냐? 판단자의 주관과 감정, 이해관계가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라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라 악에서 떠나 선한 일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쫓으라.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 중 하나는 ‘기쁨 없는 수고’일 것이다.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참교육이 포기된 시절을 보내고 취직하기 위해 대학생들은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들어간 직장에서 기쁨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황폐함 속에서 소외와 갈등과 불안을 안고 살아야한다면 너무 불행하지 않을까? 20세기 초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이 도입된 이후 생산은 증대됐지만 자동화로 인해 인간은 소외 가운데 자기 노동의 결과를 발견하지 못하게 됐다. 수세공과 제작이 있던 과거에는 어떤 성취를 이뤘지만 이제는 한 자리에서 매우 단순한 한 가지 일만 해야 한다. 쉬는 시간외에는 늘 혼자 자기의 자리를 지켜야 하니, ‘기쁨 없는 수고’란 말이 생기는 것이다. 사무직은 조금 나을까? 작은 톱니바퀴 같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행동은 하지 않지만 성과에 대한 압박과 동료들과의 무한 경쟁 그리고 소위 명퇴와 같은 미래에 대한 불안 등은 그들 역시 ‘기쁨 없는 수고’를 하게 만들었다. 행복한 노동을 위해서는 직장 선교를 목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성경에서는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모세는 이집트의 왕자였지만 동족을 돕고자 이집트인을 살해한 일로 미디안 땅으로
천지창조 세쨋날 주님의 역사하심이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그러나 요즘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떠한가?현재의 추세로 나아간다면 한국인이 일본인보다 먼저 멸종하게 될 것이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가 내 놓은 암울한 전망이다. 현재와 같은 낮은 출산율을 방치할 경우 마지막 한국인은 2750년에 사망하고, 마지막 일본인은 3011년에 태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는 먼 미래를 내다본 인구 예측이어서 추정에 많은 불확실성이 있으나 다른 변수들도 감안해야 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하지만 단순한 엄포만은 아니다. 한국은 인구 노령화에 출산율까지 낮아지고 있는데다 여성들은 갈수록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2013년 출생률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인구 1000명당 8.6명이 태어나 전년 대비 9.9%나 급감했다. 여성 1명이 일생 동안 1.187명의 아기를 출산 세계에서 다섯째로 적다. 이런 추세가 이어질 경우, 북한과의 통일이나 상당한 이주민 유입이 없다면 한국인은 2750년 자연적으로 멸종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현재 5141만여 명인 인구가 이번 세기 말에는 2000만 명으로 줄어들고, 부산에선 2413년, 서울에선 2505년에 완전
부족한 사람이 금년 현대시선 신인 문학상 수필부분에 당선이 되었다. 무슨 늦은 나이에 신인 문학상이냐 할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또 하나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감사한다. 나의 어린 시절을 더듬어 보면 아직 우리 동네에 TV는 고사하고 라디오도 아직 그리 흔 하지 않은 때가 있었다. 농한기가 되면 우리 집 안방은 동네 할머니들이 모여서 이런 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는 공간이었다. 가끔은 기나긴 겨울밤 간식으로 찐 고구마와 동치미 무를 쭉쭉 쪼개서 잡수시면서 담소를 나누시곤 했는데 아주 가끔은 감자떡이나 무 설기 같은 별미를 해서 나누어 드시던 모습이 눈에 아련하다. 그럴 때면 할머니들에게 유일한 낙이 한 가지 있었는데 옛날 이야기책 읽는 것이었다. 눈도 어두우시고 한글을 잘 모르시던 할머니들이 책을 읽는다는 말은 다른 사람이 읽어드리면 할머니들은 읽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나는 책읽기를 유난히 좋아했는데 할머니들 앞에서 책을 읽어드리면 너무 좋아하셨고 고마워하셨다. 나는 그게 좋아서 밤늦은 시간까지 이야기책을 읽어드리곤 하였다. 그때 읽었던 책은 주로 명사십리, 장화홍련전, 콩쥐밭쥐. 어사 박문수, 을지문덕, 강감찬. 장끼전. 별주부전
싱그러운 푸른 나무숲에서 벌써 여름의 서곡처럼 메미의 울음소리가 청아하게 들리는 계절이 이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와 가뭄으로 인하여 지금 고통의 강을 건너고 있다.요즈음에는 요란한 천둥번개라도 함께 하는 소나기가 그리운 날이 많아지고 기다려진다고들 말한다. 삶의 괴로움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우리 국민들은 메르스에도 절망 대신 희망을 찾아 이 혹독한 사막같은 날들을 보내고 있다.이러한 아픈 현실 가운데 우리의 이웃 사역의 현장에서의 소식 중에는 소천이라는 메시지가 교단지나 핸드폰의 문자 메시지로 슬픔의 전갈을 받은 적이 요즈음에 많았던 것 같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는 소식은 성경적으로 생각하면 슬픈 단어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쓰는 별세(세상을 하직한다)나 작고(고인이 됐다)가 아닌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천국으로 불러 가셨다”는 것은 얼마나 영광된 길인가, 구원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땅에서의 이별의 슬픔은 가족과 지인들에게는 천지가 무너지는 듯한 삶의 괴로움으로 남는다. 얼마전 신학의 동산에서 젊은 시절의 구약학 교수님. 인생을 침신에서 후학들을 위하여 일생을 바치신 고고한 학자의 모습으로 기억되시는 스승님이 미국의 이역 만리에서 소천
얼마 전 한국의 무슬림 신도들이 한국을 무슬림의 나라를 만든다는 명분의 하나로 태극기를 등에 걸고 결사 기도를 했다고 한다. 이슬람의 세력의 한국 침투는 매우 전략적이다. 지난 2005년에도 한국이슬람연맹에서 출판한 ‘한국이슬람50년사’에는 이들의 선교전략이 소개되고 있다. 첫째, 사원 건립, 현재 있는 서울 중앙서원을 비롯해 9개의 이슬람 서원, 4개의 이슬람 센터와 50여개의 임시 예배처소를 점차적으로 확대하고 한다. 2015년 7월 초, 전국적으로 이슬람 예배처소는 수를 헤아릴 수 없게 됐다. 농촌까지 파고 들어가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예배를 드리고 있다. 둘째, 국제 이슬람학교, 설립, 무슬림 자녀들을 양육하기 위한 교육시설이라는 명목으로 영어로 가르치는 초등학교, 유치원 및 어린이집을 만들어 어려서부터 이슬람을 교육을 받으며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최고의 시설을 갖추고 저렴한 가격에 운영된다면 많은 한국인 부모들이 자녀들을 그곳으로 보내고 싶어할 것이다. 셋째, 이슬람 문화센터 건립, 이슬람 문화센터를 다와 센터라고 부른다. 문화센터에서는 많은 이슬람국가들이 언어교육부터 시작하여 상설 이슬람 교리강좌 등을 통해서 한국 사회에 이슬람을 뿌리내리
세대주의 전천년설을 믿는 이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기 전에 전쟁과 기근, 지진과 같은 징조가 있고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증거되며, 배도와 함께 적그리스도의 출현이 있고 7년 대환란이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은 대환란과 천년왕국을 교회가 아니라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이 실현되는 장으로서 본다. 교회시대의 정점은 휴거이며, 이때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신실한 제자들은 ‘공중에서’ 만나서 천국으로 데리고 가서 ‘어린 양의 혼인잔치’를 여실 것이다. 이렇게 참된 교회가 지상에서 사라지면, 적그리스도가 7년 동안 악마적 통치를 시작하며, 이때 하나님의 진노가 땅위에 쏟아진다. 이러한 대환란 기간에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대규모 전쟁이 일어날 것이며, 이 와중에 예수 그리스도가 천국의 군대와 함께 재림하셔서 주님의 원수를 모두 처부순다. 그 때 이스라엘은 비로소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할 것이며, 지상에 천년왕국이 세워질 것이다.세대주의 종말론은 기독인들로 하여금 미래의 어떤 시점(예수의 재림시점)에만 집착하도록 만듦으로서 현실의 삶을 등한시하도록 만들었다. 1992년 10. 28. 휴거설을 주창했던 다미선교회나 현재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은
동성애 합법화 반대한다동성애자를 널리 지칭하는 게이(gay)는 어떤 말에서 유래했을까? 영어의 게이는 ‘기쁨, 즐거운’이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어 ‘게(gai)’에서 나온 말이다. 19세기에 게이에 성관계로 쾌락을 즐긴다는 의미가 추가됐고, 동성애자를 가리키는 말로 확장되었다.동성애자들이 비정상적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호모(homo)’보다 게이라고 불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성 동성애를 뜻하는 레즈비언(Lesbian)은 에게해에 있는 레스보스(Lesbos) 섬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고대에 이 섬의 여성들 사이에 동성애가 활발했다고 한다.미 연방대법원이 동성결혼을 합법화하자 백악관은 동성애 단체들이 즐겨 사용하는 무지개 색으로 백악관 조명을 밝혔다. 왜 무지개 색이 동성애를 상징화게 됐을까? 맨 처음 주창한 사람은 화가 길버트 베어커였다. 그는 1978년 영화 오즈의 마법사 주제곡인 ‘무지개 저편’(Over the rainbow)에서 영감을 얻었다. 무지개가 성적인 다양성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베어커가 만든 깃발은 7가지 무지개 색에 분홍색을 더해 8가지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분홍색과 남색 천은 구하기 어렵다는 점 등이
다음세대를 생각하자지금 미국의 주요 도시에서 가출한 청소년의 숫자는 이미 전염병적인 규모에 도달했다고 한다. 소망을 빼앗긴 아이들은, 그들이 갈구하는 흥분과 자유를 찾아 대도시로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대도시에서 방황하다 자포자기의 상태에 이른 그들에게 음식과 쉴 곳을 제공하는 사람은 대부분 마약 밀매꾼과 포주들이다. 불행히도, 가출 청소년 중 수백 명이 넘는 아이들이 십대를 넘기지 못하고 살해되거나 약물 남용 또는 자살로 죽는다. 이러한 상황에 처해 있는 많은 부모와 함께 중보기도를 하면서 놀라운 기적을 일으킨다고 한다. 한 예로, 몇 년 전에 가출하여 여러 달째 소식이 없던 아들을 둔 한 어머니와 함께 아이를 바르게 인도해 달라고 믿음으로 마치 목숨을 걸린 듯이 간절하게 기도했더니 아이와 관련된 어둠의 세력들이 괴멸됐다고 한다. 이 아들은 정신적, 육체적, 정서적, 그리고 영적으로 매우 피폐해져 있었지만, 어째든 돌아왔다. 그가 그러한 상태에서 수백 마일이나 떨어져 있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그를 눈동자처럼 보호하고 인도하신 하나님의 손길 때문이다. 소년은 조금씩, 그러나 확실히 회복됐다. 그는 온전히 하나님을 사람하며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목회단상편견(偏見)언젠가 TV에서 세칭 ‘호스트 빠’를 단속했다는 뉴스가 나온 적이 있다. ‘호빠’라고도 하는 호스트 빠는 남자 접대부가 여자 손님들에게 시중드는 즉 술도 따르고 때론 몸도 파는 술집이란다. 이 뉴스를 접한 어떤 사람들은 ‘말세구만! 잘했네. 경찰이 한 건 했구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생각보다는 ‘어? 그럼 여자가 술 따르고 몸 파는 술집은 왜 단속 않는 거야?’라는 의문이 들었다. 대한민국에 그 수가 얼마인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술집들 중 여자가 시중들고 몸 파는 술집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그런 술집은 내버려 두고 호스트 빠만 단속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남자는 여자를 사도 되지만 여자는 남자를 사서는 안 되고, 여자는 몸을 팔아도 되지만 남자는 안 된다? 하나님 앞에서는 둘 다 똑같은 죄이다. 현대 사회의 남녀 평등적 가치에서 볼 때도 둘 다 똑같은 문제이다. 아마 법률적으로도 둘 다 똑같은 범죄일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일까? 우리는 이런 것을 편견이라고 한다. 편견은 사실을 왜곡하여 인식한 결과물이기에 문제의 원인분석에 오류를 낳게 되고 그에 따라 필연적으로 잘못된 반응과 해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