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고 (많은 사람) 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단 12:4)” 하나님께서 BC 530년경에 다니엘을 통해서 이 세상 마지막 때의 징조를 말씀해 주시기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고 지식이 더한다”고 하셨습니다. 이조시대 때는 과거 시험을 치르기 위해 부산에서 서울까지 오는데 한 달 보름이 걸렸다고 합니다. 저희 어머님은 고3때 경상남도 진주에서 서울로 대학 시험을 치루기 위해서 새벽 캄캄할 때 출발했는데 한밤중에 서울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자동차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4시간 30분, 고속전철로는 2시간 40분, 비행기로 30분이면 가게 되었습니다. 1896년, 라이트 형제가 처음으로 비행의 꿈을 꾸기 시작해서 1903년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동력 비행기를 조종하며 비행시간 12초, 비행거리 36.5m를 날았습니다. 제가 초등학생 때 하늘에 날아다니는 비행기를 보면서 “내 평생에 저 비행기를 한번이라도 타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꿈은 지금 현재 너무나 자연스러운 삶으로 바꿔져 있습니다. 저희 고등학교 때는 수학여행을 경주로 갔었는데, 요즘 학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그 옛날 이방의 땅 모압에서 온 작은 여인 롯이 베들레헴의 유력한 사람 ‘보아스’에게 한 질문은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동일하게 해야 하는 질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룻이 질문한 이 물음에서 진지하게 진리를 찾아야 하며 또 이 말씀을 우리들의 신앙생활에 적용해야할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근본적으로 어떤 존재인지 자신에게 질문해 봐야 합니다.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온 모압의 어린 여인 룻이 베들레헴의 유력자 보아스에게 경이로운 마음으로 질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질문이 얼마나 정확하고 완전한 질문인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베들레헴의 유력한 사람 보아스에게 한 질문은 보아스의 계보를 통하여 탄생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예시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보아스의 자비와 사랑으로 그의 아내가 된 이방 여인 룻의 감동적인 이야기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은총을 떠나서는 결코 해석 될 수 없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고백의 은총을 누리며 살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스
4. 침례교 신앙의 실천적 요소들 침례교는 역사적으로 복음전도, 교회개척, 세계선교를 위한 실천적 신앙정신과 교회생활로 교회성장과 교단 발전을 이룩하여 온 교회이며 신자들이다. 침례교는 또한 본질적으로 성경과 영적 체험에 기초한 실천적 신앙과 생활로 교회와 교단적인 정체성을 정립해 온 신앙공동체이다. 침례교 신앙의 주요한 실천적 요소들을 몇 가지 선정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 복음전도와 선교의 실천 침례교인들은 전통적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들이다. 영혼구원, 전도, 선교는 침례교인의 특징적 표지이다. 침례교의 선구자격인 재침례교도들의 신앙에서의 놀라운 점은 교회 지도자들의 선교에 대한 업적이 아니라 보통 회원들이 선교에 헌신하였다는 점이다. 재침례교도들은 온 세상을 향한 책임이라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존 번연은 가능한 예수 그리스도를 제시하기 위해 설교하였고, 전도를 설교의 일차적인 목적으로 간주하였다. 하지만 특수침례교인들의 칼빈주의 신학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초창기 침례교인들의 특징이었던 복음 증거에 대한 책임감을 둔화시켰다. 18세기 이후 깊은 퇴보에 빠져들었던 영국의 침례교회에 다시 불을 붙인 것은 설교자 스펄전(Charles Haddon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애국가 가사의 일부입니다. 새삼스레 애국가를 운운하는 것은 작금의 우리나라가 너무도 걱정스러워서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보호하시는 우리나라가 어쩌다 이렇게 가련하고 곤고해졌습니까? 아름다운 금수강산이 왜 이토록 피폐해지고 처량한 신세가 되었습니까? 한두 사람에 의해 이렇게 농단을 당할 수 있습니까? 국민들이 믿고 뽑아준 대통령은 무엇을 하시고 계시는 것입니까? 외국 땅에 나와 있는 제 자신이 이렇게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바라봐야 하는지 혼란스러울 뿐 따름입니다. 청와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들입니까? 그들은 그럴싸한 명찰이나 달고 모두 ‘박바라기’ 노릇만 해온 셈인데 정말 안타깝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자고로 예나 지금이나 간신배는 있는 법이지만 해도해도 너무하는 것 같습니다 대통령의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길래…. 최 아무개 한 사람이 북한의 김정은 보다 더 무서운 가공할 힘을 가진 마귀와도 같게 느껴지는 것은 비단 나 뿐만은 아닐 것입니다. 한 여자에 의해 질질 끌려 다니고 있는 우리나라가 여기까지 온 것만도 기적입니다. 이스라엘 자손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침례교 신학자들 중 열 명을 선택해서 생애의 주요 전환점과 대표적 저술을 소개하고자 한다. 존 번연(John Bunyan, 1628-88). 영국 출신. 침례교회의 설교자요 저술가로서 “천로역정”, “율법과 은혜의 교리”, “침수례와 주의 만찬” 등의 저술과 논문을 남겼다. 번연은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이 주도한 청교도 혁명과 공화제(共和制)를 지지했으나 크롬웰이 실권하고 프랑스로 망명했던 찰스 2세가 영국으로 돌아와 다시 왕위에 오른 소위 왕정복고(王政復古,1660) 후에 투옥과 석방을 거듭하던 중 옥중에서 “천로역정”을 썼다. 이 책은 고난 중에 탄생한 명저(名著)이므로 더욱 만인의 심금을 울려준다. 존 길(John Gill, 1697-1771). 영국 출신 침례교 신학자로서 “교리신학대전”과 최초로 성경 전권 주석을 저술한 대 학자이다. 그의 신학은 온건 칼빈주의를 지향했으며 큰 저술을 남긴 영국 최초의 신학자로 알려졌다. 찰스 스펄전(Charles H. Spurgeon, 1834-92). 영국 출생. 뉴파크 스트리트 침례교회를 개척해서 37년 간 목회하는 동안 신자수가 14,000명에 이르렀으며 그의 설교집
우리는 요즈음 진실과 정직이 신화처럼 여겨지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인간은 아담의 타락 이후로 진리를 거슬러 사는 것이 너무 당연한 것처럼 되어 버렸지만, 그래도 누군가의 말과 행동을 진심이고 진실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누가 말을 해도 의심해봐야 하고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정상적인 삶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이 사회에 숨은 양심과 같은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들이 간혹 발견되면서 그래도 이 세상이 살만하다고 스스로 위안을 하며 사는 것인 현실입니다. 신약성경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유난히 “진실로 진실로”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셨습니다. 이런 표현은 거의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딸려 나오는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 “구원” “증거” “하나님의 일” “예언들” “중요한 교훈”등입니다. 이는 구약시대 때부터 이미 거짓 선지자들이 있어, 이런 중요한 내용들을 계시도 없이 자기 임의로 좋을 대로 예언하고 교훈함으로 사람들을 현혹해 왔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에 대해 “이것이 참된 말씀과 예언이다”라고 경고하시며 선언한 내용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금 한창 국정감사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 중
성경에는 십자가가 가진 상징에 버금가는 또 하나의 상징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어린양입니다. 기독교 테마의 양대 산맥은 갈보리십자가와 하나님의 어린양입니다. 찬송가에서 가장 많이 불러지는 테마를 찾아봐도 십자가와 하나님의 어린양입니다. 보좌에 앉으신 어린 양 앞에는 그 누구도 면류관을 벗어 내려놓고 엎드려 찬양드릴 수밖에 없습니다(계5:8). 성경에는 어린양에 대한 두 가지 관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 관점은 희생입니다. 어린양은 모든 동물들 가운데 가장 희생적인 동물입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어린양은 가장 온순하며, 신뢰할 수 있으며, 그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는 특성 때문에 하나님께서 어린양을 희생 제물로 선택하셨을 것입니다. 두 번째, 관점은 성경은 하나님의 독생자 이신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으로서 어린양입니다. 예수님의 삶과, 사역, 그리고 고난과 갈보리십자가 위에서 대속의 죽으심이 어린양의 희생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어린양의 그림의 세계로 들어가 보면 네 장의 귀중한 장면을 만나게 됩니다. 첫 번째, 어린양의 그림입니다. 아브라함이 백세에 낳은 아들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과 그 명령에 순종한 아
침례교 신앙이란 침례교인들이 일반적으로 인정하고 실천하는 침례교인들의 주장들과 태도들 그리고 행동들이라고 볼 수 있다. 침례교는 역사적으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나타내 보였는데 각자의 주어진 상황 속에서 사회적 실천을 수행하였다. 실천과 이론의 관계에 있어서 침례교회의 초창기에는 실천이 이론보다 앞선다. 왜냐하면 침례교회는 그 기원에 있어서 어느 특정한 신학사상이나 인물이 아니라 하나의 운동이었기 때문에 침례교회의 정체성은 실천적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김용복은 침례교회의 역사적 뿌리는 영국의 분리주의에 두고 신앙과 정신은 16세기 재침례교로부터 이어받은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제안하였다. 재침례교도들은 신앙적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 지도자 중 하나인 존 스마이스(John Smyth)가 남긴 신앙고백서에 따르면 “선행이 결핍된 믿음은 헛된 것이며 참된 살아있는 믿음은 선행으로 구별된다.”고 했다. 이러한 선행, 즉 신앙적 실천은 인간의 힘으로 이루저지는 것이 아니다. 후브마이어(Balthasar Hubmaier)를 중심으로 한 재침례교도들은 “인간의 힘에 의지하여 선행을 행하라고 하는 것은 날개 없이 날라고 하는 것과 다름 없다.”고 고백하였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그동안 여름 내내 입었던 양복들을 세탁소에 맡기기도 하고 옷가지들을 정리하면서 느껴지는게 있습니다. 어떤 옷은 즐겨입다보니 깃이나 소매부분이 많이 헤진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여기저기 낡아지고 떨어져서 밖이나 점잖은 자리엔 입고 나가기엔 주저가 되는 옷이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옷을 쉽게 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편안함 때문입니다. 어떤 옷은 겉보기에는 세련되고 좋아 보이지만 막상 입으면 어딘가 불편하고 착용감이 좋지 않습니다. 구두나 의자도 이와 비슷합니다. 눈으로 볼 때와 신어보고 앉을 때가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함께 있으면 참 편안하고 따뜻한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에 객관적으로는 좋은 사람 같은데 함께 일을 하거나 교제해보면 마음이 맞지 않고 왠지 불편한 사람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나를 만나는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입니까? 나보다도 상대방이 그렇게 느껴야겠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너는 왜 그렇게 까칠하냐고 말씀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반대로 너는 나를 참 편안하게 해주는구나라고 말씀하십니까? 너하고 있으며 기쁘고 즐겁
교단의 신학 여부를 말하기 전에, 먼저 침례교 신학자가 개신교회 태동기 평양신학교의 신학 강의에 기여한 사실부터 이야기 하고자 한다. 고 이종성 박사(장신대 조직신학 교수와 학장 역임)는 『기독교학술원포럼』 창간호에서 개신교 선교 초기 한국의 신학교육에 크게 기여한 두 신학자로 프린스톤 신학교의 핫지(Charles Hodge,1822~78)와 로체스터침례신학교의 스트롱(A.H. Strong,1836~1921)을 지적했다. 이 두 신학자는 당시의 북미주를 대표한 교의신학자들로서 각각 방대한 분량의 ‘조직신학’ 저술을 남겼다. 중국인 가옥영(賈玉銘)이 이 두 신학자의 ‘조직신학’을 발췌해서 여섯 권으로 된 중국어 ‘조직신학’을 편찬했고, 이영태가 그 책을 번역해서 1931년부터 평양신학교의 조직신학 교재로 사용했다. 이 책을 감수한 남장로교 선교사 레이놀즈((W.D.Reynolds, 1867~1951)는 매우 복음적인 책이라고 추천했고 이종성은 많은 신학자들이 따르며 가르친 교재였다고 했다. 주제로 돌아가서, “침례교회에는 신학이 없다”는 주장은 아마 침례교회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먼저, 침례교회는 다른 복음적인 교파와 마찬가지로 성경을 그리스도인의
주로 목회자들이 글을 읽는 이 곳에 우리 교회 특별새벽기도회 때의 설교를 과연 실어도 될까 잠깐 고민도 했지만, 묵상하면 할수록 목회자들에게도 주는 교훈이 깊은 것 같아 오늘은 그 요약을 올린다. 1. 다니엘 1장(뜻을 정하자) “별이 지면 꿈도 지고”라는 노랫말에도 나오듯이 별은 우리의 가슴 속 꿈을 상징한다. 암울한 시대에 별처럼 빛난 인생을 산 다니엘은 그 점에서도 귀감이 된다. 그는 한 시대의 별이 되어 주의 백성들에게 꿈을 주었는데, 무엇보다 뜻을 정한 자였기 때문이었다(1:8). 나라가 망해 포로로 잡혀간 신세였지만, 하나님 앞에서 신앙 양심만은 지키겠다는 거룩한 뜻이 있었다. 그래서 왕의 진미까지도 거절했다. 그 일은 목숨도 내놓을 일이었지만 결국 승리하였다. 알고 보니 이 결단은 이 모든 역사를 주께서(1:2) 주관하고 계심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목회자도 마땅히 그 믿음을 가져야 하리라. 2. 다니엘 2장(하나님께 구하자)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왕의 꿈 해석하는 일을 두고 자기 능력과 지혜보다 하나님께만 전적으로 의지하였다. 그 꿈의 해석을 그의 세 친구와 함께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받았다. 이로써 그는 바벨론을 이어 메데 바사, 헬라,
성경에 기록된 한 말씀, 한 말씀 모두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어졌으며 우리는 이것을 ‘축자영감설’이라 하고 이 사실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신앙의 핵심이라고 증거합니다. 우리 시대에 증거 되는 복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지 우리 자신의 신앙태도를 점검해야 할 때입니다. 이 시대에 가장 끔찍한 비극은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에서 객관적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는 믿음위에 우리가 확실하게 서 있다면 우리는 성경을 사랑하며 기독교 진리를 기쁨으로 증거 하게 될 것이고 우리 믿음은 날로 새롭게 될 것입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성 없는 앵무새처럼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은 하지만 실제적으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고백되고 있는지? 자문해 봐야 할 것입니다. 성령께서 감동하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모든 권위의 원천이 됩니다. 라고 우리는 고백해야 합니다. 성경은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안에 역사하셨던 성령께서 택하신 사람들에게 감동하셔서 그들의 손을 빌려 기록하셨고 완성하신 인류에게 주신 가장 소중한 선물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기록되어졌으며 하나님 사랑의
18절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의 의미를 “너는 믿음이 있느냐? 나는 행함도 있다”는 의미로 설명하였다. 성도는 행함으로 자신의 진실한 믿음을 표명해야 한다. 즉 믿음의 조건으로서의 행함이 아니라 믿음의 증거로서 행함을 강조한 것이다. 참된 신앙은 실천을 열매로 맺는다. 실천이 없는 신앙은 그 진위가 의심스러우며, 진정성을 담보하기가 어렵다. 열매로 나무를 안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도 같은 의미이다. 신앙은 실천으로 나타나며, 실천으로 고백되는 신앙이 참 신앙이다. 3) 교회의 실천 교회의 전형으로 여겨지는 건강한 초대교회는 믿음의 내용만이 아니라 믿음의 열매로써의 실천이 확보되었기에 복음의 능력을 충분히 드러냄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님의 도구가 될 수 있었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바 십자가 고난을 받으신 후 부활하시어 승천하시고 다시 오실 예수님께서 교회들에게 주신 메시지를 살펴보면 실천에 관한 내용이 가득하다. 예수님은 거듭하여 교회의 “행위”에 대해 언급하셨다(계 2:2,5,19; 3:1,8,15).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계 2:2). 여기서 ‘행위’는 포괄적인 의미로 전체적인 삶의 모습을 말하며, 하나님의 사업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지혜와 계시의 성령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와 사역을 아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에 의한 계시를 강조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에 관한 소식인 복음은 근본적으로 만세 전에 감추어졌던 비밀이기 때문에, 그 비밀은 오직 성령의 계시를 통해서만 인간에게 알려진다는 것이다. 이 복음의 비밀은 이전 세대들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이 택하신 종들(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셨다(엡 3:5). 뿐만 아니라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하나님이 그의 택함 받은 백성들에게 성령의 계시를 통해 알려주셨다(골 1:26). 사도 바울은 이렇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알며 그 생명과 권능을 풍성하게 누리고 나아가 전파하는 일에 있어서 성령의 절대적 중요성과 필요성을 강조했다. 사도 바울은 먼저 이러한 성령을 통한 계시의 은혜를 받은 사람으로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무엇보다도 먼저 이러한 계시의 은혜를 받도록 기도하고 있다. 그는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하는 기도제목을 말하면서 먼저 지혜와 계시의 성령을 받도록
세상가운데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평균적으로 몇 가지의 공통적인 힘이 있음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머리에는 이해력이, 눈에는 분별력이, 입에는 논리정연한 구사력과, 손에는 휘어잡는 장악력이, 일할 때는 강한 추진력과, 태도에는 단호한 결단력이 있고 인격에는 감화력과 영혼에는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훌륭한 지도자일수록 위에 말한 여러 좋은 점들을 갖고 있으나 모두 다 가진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대개는 몇 가지씩은 소유하고 있는데 과연 우리는 어떤 점들을 갖고 있습니까? 여리고의 아모리족 여인 기생 라합은 비록 신분은 낮았고 직업은 보잘 것 없었지만 그녀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좋은 점들이 있음을 성경에 나타난 내용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도 이런 점들을 사모해야 합니다. 라합은 분별력이 있었습니다(수2:9~10). 그녀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한 눈에 알아봤습니다. 그녀에겐 결단력도 있었습니다(2:4~5, 히11:31). 자기네 집으로 숨어 들어 온 두 정탐꾼을 대범하게 숨겨줬습니다 그녀에게는 논리정연한 언어구사력도 있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2:11~13). 그래서 정탐꾼들도 그녀의 말을 듣게 됐습니다. 라합은 여인이었지만 신속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