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봄에 현 담임인 이동간 목사가 주님의 부름을 받아 창원침례교회의 추수감사절 헌금과 국내선교기금으로 개척을 한 교회가 있었습니다. 20년 동안 행복하고 감사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작년 부활절 예배를 드린 후 상가재건축으로 건물을 비워주고 6개월간 예배당 없이 성도들의 가정을 순회하며 예배를 드리는 축복된 기간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11월에 이르러 우리도 이제 교회소유의 예배당이 있어야 한다는 공감대를 이루어 신주거지로 조성된 현동의 새상가 100평을 매입하고 12월 25일 기쁜 마음으로 입당예배를 드렸습니다. 이쯤에서 모든 분들이 짐작하시는 일이 생겼습니다. 넘어갈께요. 고심하며 기도하고 있는데, 9월 5일 새벽기도시간에 강한 감동을 1시간 동안 받게 됩니다. “네 책을 팔아 교회부채를 갚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달 8월에 이동간 목사가 두 번째 시집을 발간했는데 그 책을 팔아서 빚을 갚으라는 감동이었습니다. 이 책은 지난 25년간 쓴 시 중에서 엄선한 작품들을 꼽아 만들어졌습니다.전혀 기대하지 못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발간 20여일 만에 알라딘 집계 전자책 베스트셀러 부분에서 시 부문 1위, 소설·시·에세이 부문 7위, 통합부문 17위에 도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 셨도다” (시편34:4)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 살아가게 하신 하나님을 전해 이 소식을 듣는 자 중에 한 생명에게라도 은혜와 축복이 된다면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을 믿고 이 간증을 하게 됐습니다. 얼마 전 총회 사무실에 가서 군경선교회에서 봉사하시는 양회협 목사님께 인사드리고자 찾아갔습니다. 양 목사님께서 저의 건강을 물으시면서 어디 가서 설교할 때에 제 이야기를 한다고 하시면서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다시 살게 해주신 은혜를 함께 나누는 것이 좋을 것 같으니 하나님의 축복을 간증해 성도들에게 확신을 주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보답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을 때에 나는 깨달았습니다. “그래 하나님이 주신 것을 나누어야 한다. 나를 통해 지금도 역사하심을 보이셨는데 나는 그대로 간직하고만 있었구나”하는 깨달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 간증을 나눕니다. 폐결핵에서 살려주신 하나님 1983년도 아내와 결혼하고 1985년도에 역곡에서 첫 목회를 시작 하게 됐습니다. 목회를 시작한지 1년이 지났는데 어느 날 저녁 기침을 심하게 하면서 요강으로 받아내야 할 정도로 각혈을 했습니다. 각혈이 멈
시대와 환경 때문에 공부의 기회를 갖지 못했던 분들을 위해 한글학교를 한다. 얼마 전 마을 한글 학교에서 공부하시는 엄니 손자가 결혼식을 한다고 해서 교회 승합차에 가시는 모든 분들을 모시고 읍에 있는 결혼식장에 다녀왔다. 결혼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자연스럽게 엄니들의 결혼식은 어땠는가 물었다. 처음에는 망설이는 듯 하다가 하나 둘 피시기 웃기도 하고 가끔 한숨도 쉬시며 결혼 이야기들을 털어 놓으셨다. 그래서 글로 써 보기로 했다. “어제는 결혼하러 갔다. 손자가 결혼 하러 갔다. 즐겁게 했다. 할머니는 열여덟에 결혼을 했다. 아주 무서웠지. 이전에는 다 그렇게 했단다.” “옛날에는 가마 타고 말 타고 쪽도리 쓰고 혼인식을 했는데 요즘에는 예식장에서 간단히 마친다. 사람이 한번 태어나면 꼭 한번 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결혼식이다.” 맞춤법이나 글자는 좀 틀려도 손주 결혼식을 마치고 돌아오시며 옛날을 회상하시며 얼떨결에 치른 결혼식의 즐거움과 그리움을 토로하신다. 아직은 서툴고 받침도 어설프지만 한자 한자 배우는 재미에 나이를 잊기도 하신다. 종종 “이 나이에 이런 거 배워서 머에 써먹겠어?” 그럴 때면 함께 부르며 힘을 내는 노래가 있다. “80세에
어떤 후배 목회자가 새벽에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했다. 시편 33장 10절을 찾아보라는 말씀이었는데 거기엔 “여호와께서 나라의 계획을 폐하시며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케 하시도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는 언젠가 여러 목회자들 앞에서 이 구절을 본문으로 설교를 하면서 그 때 많이 울었다고 간증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왜 그 말씀을 읽으라고 하셨는지, 그가 무엇 때문에 울었는지 언급하지 않아서 알 수는 없었지만 나에겐 그 성경 구절과 간증이 오랫동안 기억이 됐다. 특히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케 하시도다”란 말씀이 가끔은 문득 생각되어질 때가 있다. “무효케 하시도다”란 히브리어는 “누”인데 “헛되게 하다” “허락하지 않다” “제지하고 좌절케 하다”는 뜻을 가졌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께서 헛되게 여기시고 허락지 않으며 제지하여 없애버릴 사상들이 있다. 이런 사상들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며 인류에게 고통과 해악을 이미 주었거나 계속 줄 수 있는 것들이다. 데이브 브리스(Dave Breese)란 그리스도인 사역자가 “무덤 속에서 세상을 움직이는 일곱 사람”이란 제목의 책을 저술했다. 그 일곱 사람 중에는 현대 공산주의 이론을 정립한 칼 마르크스도 포함
목회자에게, 교회 중직들에게, 혹은 우리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힘든 일 중에 하나라고 한다면 No라고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다. 그 필요를 다 내가 채워줘야 할 것 같은 선한 마음에서이다. 또 부탁하는 것을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난감하다. 내가 힘에 부쳐도 상대방이 원한다면 어떻게 하든 들어줘야만 할 것 같다. 내가 교회에서 지도자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보살펴야 하고 베풀어야 한다. 우리는 착하게 살아야 하고, 기독교인이라 더욱이 착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처음에는 기꺼운 마음으로 요구에 응답하다가 점점 더 상대방이 부담스럽고 심지어 미워진다는 데 있다. 내 할 일을 못하고 손해를 보면서까지 애를 썼는데 상대는 끝도 없이 요구하는 것만 같다. 어느새 내가 해주는 일들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것만 같다. 힘이 들어 어쩌다 No라고 할라치면 상대방은 섭섭해하는 것 같다. 그게 마음이 영 불편하고 내가 이기적인 것 같아 죄책감까지 든다. 그래서 계속 요구를 들어주다 보면 어느 새인가 상대방에게 분노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본다. 내가 도와줘도 별로 달라지지 않는 그 사람이 화나고 짜증 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도
이 기간에 침례교회는 점차 자립심을 배양시켜 갔고,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침례교 정체성을 갖추게 됐다. 윈스톤 크로우리(J. Winston Crawley)는 1950대와 60년대를 거치면서 한국침례교회는 진정한 침례교회로 정돈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타교단에서 넘어온 목회자들과 성도들에게 침례교적인 신앙정신과 교리적인 교육을 통해서 성경 중심적이고 복음전도적인 침례교 신앙을 심어주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3) 한국침례교회 발전기(1968년 이후)에 대한 실천신학적 평가 1968년 재결합한 한국침례교회는 “한국침례회연맹”(이후 1976년 한국침례교총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이라는 이름으로 뭉쳤다. 1970년 교회기금대여위원회가 발족해 교회개척과 확장에 필요한 재정적 필요를 제공받을 수 있게 됐고, 후일 국내선교회로 발전했다. 그리고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침례교 신앙으로 무장된 많은 사역자가 배출되면서 교회개척 사역이 더욱 열기를 띄었고, 그것은 교단 발전에 큰 밑거름이 됐다. 1970년대와 80년대로 이어진 한미연합전도대회는 교회들의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을 가져다줬다. 1970년 한국침례교회는 미국 루이지애나 주 총회와의 연합 사업으로
성서적 목회의 원리와 본질을 벗어나지 않고 교회의현실과 상황에 맞춘 내 몸에 맞는 목회, 우리 교회의 상황에 맞는 목회는 무엇인가? 오늘은 이런 질문에 대한 한 가지 대답으로 하나엘교회의 목회 매뉴얼을 소개하고자 한다. 하나엘교회 목회 매뉴얼은 결코 대단하지도 특별하지도 독특하지도 않으며 누구에게 자랑스럽게 소개할 만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 매뉴얼을 소개하는 이유는 목회 매뉴얼이 없었을 때의 목회와 매뉴얼을 통한 목회의결과가 너무나 큰 차이를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하나엘교회의 주의 장막비전은 주의 장막을 교회 모양으로 단순화시켜 시각화했다. 먼저 도표의 중간에 있는 큰 그림의 장막은 하나엘교회를 이미지화했고 하나엘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할 이미지화 된 단어는 순종이다(마 1:16). “주는 곧 그리스도”란 말씀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삼고 그리스도의 주재권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자들에 의해 교회가 세워진다는 뜻이다. 순종의 기초로 세워진 장막에 5가지 기둥이 있다. 5가지의 장막은 마치 교회를 세우는 기둥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오각형의 주의 장막비전의 그림에 5가지 각은 주의 장막을 세우는 기둥
치열한 전장에서는 군 지휘자가 무명 군사에게 갑자기 소대장의 임무를 부여한다. 적군의 맹렬한 공격에 대비해 결원이 된 자리를 메우기 위하여 하급 병사에게 소위 계급장을 달아 주면서 “소대장에 명(命)함”하고 임무를 부여한다. 이를 두고 현지 임관이라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으로부터 현지 임관을 받은 자들이다. 최고 사령관이신 하나님으로부터 그 시간 그 곳에서 반드시 필요한 시기에 임무 특명을 받은 자들이 그리스도인이다. 그리스도인은 그가 처해 있는 시공(時空)에서 현지 임관을 받은 자들이다. 현지 임관 특명을 내리시는 하나님은 어떤 위치에 계시는가? 그 분은 어떻게 현지 임관 특명을 내리시는가? 하나님은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분이시다. 하늘은 그의 보좌요 땅은 그의 발등상이 아닌가(마5:34~35). 사람이 어디로 가더라도 하나님은 거기 계신다. 땅 끝 바다 끝까지 가더라도 하나님은 거기 계신다.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 어딜 가든지 땅을 밟고 공기를 마시듯 우리 인간의 시공은 하나님의 시공과 맞대어 있다. 우리 사람은 하나님과 언제나 조우(遭遇)하게 되어 있다. 이 조우에 긍정적인 자세를 취한 자가 그리스도인이다. “하나님, 여기 지금 제가 있습니다
“죽어서 천당 갈 사람은 예수 믿어야 하고 지옥 갈 사람은 마음대로 죄짓고 못된 짓거리하다가 지옥 불구덩이 들어간다.” 어려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던 말에 “나는 절에 가서 28번 네 곳에 절하고 부처님 제자가 됐고 석가모니 부처의 은덕으로 극락세계에 들어간다. 걱정할 것 없다. 천당이나 극락, 그것이 그것이지 뭐 다를 게 있노”라고 했는데 정말 천당, 천국이 있는지가 예수님을 믿은 후에도 의심의 그림자가 있어왔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5:20) 예수께서 천국복음을 전하실 때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0~21)고 가르치셨다. 전쟁 중에 한기춘 목사님의 사경회에서 천당지옥이 총심왕(天堂地獄總心王)이라면서 “천당가고 지옥가는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힘주어 설교하셨다. 천국은 먼저 사람의 마음에서 이뤄진다고 하셨다. 천국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면 마음이 천국이 먼저 되고,
그리스도인은 예수로부터 세상으로 파송 받은 그리스도의 대사라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28:19~20) 예수님은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시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은 자신의 모든 삶을 통해 예수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삶을 살아야한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를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 비슷하게 살 때 그리스도인의 삶을 통해 예수를 볼 수 있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5~16) 그리스도인이 착한 행실을 통해 빛을 비출 때 주변의 사람들이 감동받고 더 나아가서 예수님을 믿게 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유창한 말로 성경이야기를 하
지금까지 요한복음서 서두에 나오는 로고스 찬미가를 토대로 요한의 기독론적 교훈 중에서 로고스 기독론에 관해 살펴보았다. 이제부터는 요한의 기독론적 칭호 중에서 ‘아들’이란 단어가 사용된 칭호들 곧 “하나님의 아들,” “사람의 아들,” “그 아들” 및 ‘독생자’/“유일한 아들”이 나오는 구절들을 토대로 요한이 제시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와 사역의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요한이 사용한 독특한 기독론적 칭호인 ‘독생자’/“유일한 아들”(the only Son)/“유일하게 출생한 아들”(the only begotten Son)을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특별하고 유일한 존재성에 관하여 알아본다. “하나님의 아들”과 “사람의 아들”(한글 성경에는 주로 ‘인자’로 표기) 칭호들은 공관복음서들에서도 익숙하게 사용됐다. 요한은 이 기독론적 칭호들을 사용하면서도 그가 강조하려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존재성 곧 신성과 인성의 연합이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한 존재성을 제시하는 것에 역점을 두고 있다. 그래서 요한은 ‘누구의’ 아들이라는 기원의 수식어가 없이 ‘아들’을 관사와 함께 사용한 “그 아들”이란 칭호를 특징적으로 사용했다. 요한에게 있어서 “그 아들”은 ‘독
지옥가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죄사함 받아 의인이 되어 영원한 심판인 지옥의 형벌을 피할 수 있다는 것 하나만이라도 엄청나게 큰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과 교통하며 살아갑니다. 예수를 믿기 전에 우리는 영적 고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난 이후로 우리는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만나게 됐고 또한 그분과 늘 인격적인 교제를 통해 친밀한 사랑가운데 살게 됐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시고, 도와주시기 위해 늘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얻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왕의 자녀가 비록 어린아이라고 할지라도 나이 많은 신하들이 그 아이에게 하나같이 꼼작 못하는 것은 왕의 자녀의 권세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귀를,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권세가 주어져 있습니다. 귀신도 쫓아냅니다. 병도 고칠 수 있습니다. 바로와 모세가 대면했습니다. 바로는 세상 것을 다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세상의 엄청난 권세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반면에 모세는 80세에 세상 것은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던 힘없는 노인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싸웠습니다. 결론은 바로가 모세에게 살려달라고 항복을 했습니다. 생명을 얻습니다. 우리
하나엘교회가 목회매뉴얼을 만든 이유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극적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3학년 때 주의 종으로 부름을 받았다. 신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 논현동에 있는 강남중앙교회에서 8년 동안 부교역자 사역을 했다. 교구 사역에서 결실을 보며 사역하던 중 교회개척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어서 순종을 하고 강남중앙교회의 개척 후원으로 2001년 11월 18일 용인시 상갈동 그린빌 프라자 상가 5층에서 교회개척 첫 예배를 드렸다. 강남중앙교회의 사랑과 헌신으로 장소는 주어졌지만 준비된 개척 멤버가 없었기에 아내와 둘이 시작해야만 했다. 대형교회의 부목사로 사역을 하다가 개척교회 담임목사 사역은 그야말로 상황이 많이 달랐다. 개척목회자의 업무는 정기적인 교회청소 및 관리까지 책임져야 한다. 50평의 교회당이었지만 교회당을 관리한다는 것도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3개월이 지나니깐 그동안 부교역자 때 준비한 설교의 총알이 다 없어졌다. 일주일에 5번의 새벽예배 설교와 수요예배, 금요철야 설교, 주일대예배 설교를 준비하고 전해야 했는데 그 당시 나의 심정은 한마디로 설교 준비에 치여 죽을 것 같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개척교회 목사는 설교 사역만 할 수 있는 것이 아
펜윅의 사역 결실로 세워진 대한기독교회는 교회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하여 마태복음 18장 15~17절의 가르침을 따라 교회 치리를 매우 엄격하게 시행했다. 문제가 있는 교인에게는 출교, 정권, 권책 등 세 가지 벌칙을 내렸다. 불신자와 결혼을 하거나 주의 만찬에서 남은 떡을 어린 자녀에게 먹인 일 등등이 징계의 경우가 되기도 했다. 또 침례 대상자에게 “규례문답”을 숙지시켜 시험에 합격해야 하도록 지도했다. 그 내용은 모두 25개 조로 되어 있는데 신앙적 실천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교훈에 일탈한 행위를 범한 자는 책벌하는 데 매우 엄격했으며, 교인들은 책벌을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펜윅의 중심 사상은 세대적 전천년주의, 초교파주의, 축자영감설, 현실적 유일주의, 신앙선교, 오지선교, 자립선교, 토착화선교 등인데, 그의 사역과 그에 의해 세워진 동아기독교를 실천신학적으로 평가한다면 지나칠 만큼 복음전도적이었다는 점을 우선 꼽지 않을 수 없다. 교회는 목양적 기구가 아니라 전도적 기구이며, 사역자도 목회자가 아니라 전도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졌다. 그리고 재정적인 면에서도 매우 독립적이었으며 비타협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의 공급하심
두 차례의 아웃리치를 은혜와 사랑 가운데 마친 후, 우리 주일학교 아이들은 아직도 마음이 들뜬 채로 지내고 있습니다. 아웃리치 덕분에 매우 편한 지난 주일을 맞다가 오늘은 다시 쉴 틈 없는 주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우리 술 중독 할아버지께서 술을 많이 드신 후 교회당에 오셔서, 우리 더함교회에 1년 만에 생긴 새신자 할머니께 갖은 욕설과 시비를 붙은 끝에 모처럼 애쓰고 힘써 모시고 온 새신자 할머니가 그대로 나가 버리셨습니다. 그럼에도 우선 오후 찬양예배까지 모시고 기다리려 했는데, 점심 식사 후엔 우리 최고령 할머니들과 술중독 할아버지와 싸움이 붙어서 교회가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화가 난 우리 집사님이 우리 술 중독 할아버지의 팔을 잡고 끌고 나가려는데, 아예 교회당 바닥에 들어 누우셨습니다. 우리 집사님들이 가셔서 잡아끌어도 꼼짝도 안하고 욕 만하고 누워 계십니다. 주일 오후예배 찬양팀과 함께 준비하다가, 우리 술 중독 할아버지의 아내인 현 집사님. 체면을 생명보다 중시하시는 우리 할머니 집사님의 눈에 눈물이 고인 것이 순간 보였습니다. 그래서 바로 제가 출동하여 대자로 누워버린 할부지 팔을 잡고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리고 “빨리 집에 갑시다. 모셔다 드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