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란 무엇일까? 어떤 글에 보니 이런 말이 있었다. 더러운 물로 가득 차 있는 물통이 있었는데, 한 사람이 그곳에 깨끗한 물을 붓기 시작했다. 그래도 물통은 여전히 더러운 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실망하는 기색이 없이 계속해서 물컵으로 깨끗한 물을 부었다. 그렇게 한참을 되풀이한 후 물통을 바라보자 그 물통은 이제 더러운 물이 아니라 맑고 깨끗한 물로 가득 찬 물통이 되어 있었다. 만일 그 사람이 깨끗한 물을 꾸준히 붓지 않고 지겹다고 포기했다면 과연 그 물통에는 어떤 물이 들어 있었을까? 그렇다. 용기란 1초를 더 견디고, 한 번을 더 하는 힘이다.우리가 무슨 일이든 실패하는 이유는 너무 빨리 절망하기 때문이며, 너무 빨리 단념하기 때문이다.대학시험에서는 1점 차로 합격과 불합격이 판가름나고, 100미터 경주에서는 0.1초 차이로 금메달과 꼴지가 결정된다. 이런 때에 한 번 더 시도하고, 1초를 견디는 것,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용기가 아닐까?사실 모두가 포기하는 상황에서 혼자 버틴다는 것은 용기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셨을 때, 성전은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하나님을 예배해야 할 곳이 강도의 소굴로 변해 있었던 것이
9월은 각 교단마다 정기 총회가 있는 달이다. 우리 교단도 제105차 정기 총회가 9월 21일(월) 부터 24일(목)까지 강릉 실내 체육관에서 있을 예정이라는 공문을 총회로부터 받았다. 신앙생활의 아름다움은 변화와 성숙에 있다. 성숙해 가는 공동체는 아름답다. 성숙은 병화를 수반해야 한다. 104차회기를 지나오면서 우리 교단과 총회는 많이 변화되었고 성숙해 졌다. 특별히 104차 회기의 총회장 곽도희 목사를 비롯한 임원진의 수고와 노고에 힘찬 감사의 박수를 보내 드리고 싶다. 동시에 이번 제105차 정기 총회는 가 일층 변화되고 성숙한 성총회의 모습을 보여 주기를 기대한다.신앙의 성숙과 변화는 무엇을 통해서 이루어지는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 중요한 것은 체험일 것이다. 동시에 배움과 훈련을 통해서 성숙되고 변화된다. 그 가운데 빼놓을 수없는 것이 깨달음이다. 영적진리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서이다. 하나님의 성품을 알게 되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섭리와 비밀을 깨닫는 것이야 말로 영적 생활의 중요한 관건이다.개인적인 신앙생활을 되돌아보면 복음은 일찍이 알고 있었지만 이것이 개인적인 신앙으로 체계화되기까지는 꽤 오랜 기간이 지난 후였던 것 같다. 그중에 하
최근에 부족한 사람이 칼럼집을 책으로 묶어 펴냈다. 책을 접한 최성열 평론가로부터 서평을 보내 오셨다. 원문을 요약형태로 조심스럽게 게재해 본다. 목회 경험을 틈틈이 신문에 기고한 내용들이다. 이 평론을 이렇게 게제 하는 것은 결코 자랑을 하려 함이 아니다. 이 서평을 읽고 혹 책을 읽고 싶어진 독자가 있어 책을 원하면 기꺼이 보내드리고 싶은 생각에서이다. 반종원 목사님의 칼럼과 목회의 글들을 모은 동행 30년을 간단하게 요약하고 느낌을 적어본다. 반종원 목사님은 『동행 30년』에서 다섯 주제로 잡은 첫 번째 ‘삶과 신앙 사이’라는 주제로 ‘설교한 대로 살면 잘 사는 것’이라고 하면서 첫 서막을 연다. 그는 친구이신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 기쁨, 의미, 가치라고 한다. 지하철에서 외판원으로부터 캐온 ‘희망’이라는 메시지와 만남, 비전, 어려운 일이 닥칠지라도 굵은 획을 그어가며 지켜온 요동하지 않는 인생을 책의 서문에 싣고서 아름다운 동행의 발걸음을 내디디셨다. 게다가 남이 변하는 것을 바라기보다 자신이 변화되는 모습 속에서 찾은 능력, 사람이 아름답게 사는 길은 생명의 끝이 사랑이라는 것이라고 한다. 그 안에는 다 닳아서 쇠갈고리가 된 호미처럼 나누는 사랑
군목 시절의 이야기다. 한 번은 동계종합훈련을 마치고 복귀했더니 인사과 사병계가 군종병 신병이 하나 왔다고 알려주었다. 부대가 훈련 중이어서 근무소대 내무반에서 대기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누군지 궁금해서 내무반으로 찾아갔더니 신병답게 내무반 침상 끝에 차렷 자세로 앉아 있었다. 맞은 편 침상에 앉아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신병 뒤 침상 안쪽에 앉아 있던 상병 하나가 나를 보며 손을 가로로 마구 휘저으며 소리 없는 입모양으로 ‘얘는 안 돼요’라는 말을 인상을 쓰며 거듭 말하는 것이었다. 그 옆에 있던 다른 병사마저 덩달아 같은 사인을 보냈다.내무반에서 나온 다음 그 상병을 불러 군종병으로 왜 안 된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그 친구 왈 “제가요 이것저것 물어봤거든요. 그런데 애가 술 담배도 하고 순 날나리예요.”라는 것이었다. 그 신병은 술 담배를 해도 문제가 안 되는 학교 출신이었는데 그 상병은 술 담배를 하는 것을 보니 순 나이롱 신학생으로 보였던 모양이었고 그런 사람이 군종병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상병은 기독교 신자가 아니었다. 그 때 나는 술 담배 문제가 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신실한 신자인지 나이롱 신자인지를 구분하는 잣대로
아주 오래 전 썰렁한 유머가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63빌딩에서 한 가족이 떨어졌는데 모두 다 살았다. 이런 기적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정답은 이렇다. ‘아버지는 기러기 아빠, 엄마는 새 엄마, 아들은 비행청소년, 딸은 날라리였다.’ 이게 90년대에 유행하던 썰렁개그다. 그런데 요즘은 냉소적인 유머가 판을 친다. 몇 년 전, 병맛이란 말이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병맛‘이란 ‘병신 같은 맛’의 준 말로 ‘어떤 대상이 맥락 없고 형편없으며 어이없음’을 뜻하는 신조어다. 당시에 인터넷에는 병맛만화가 뜨고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인 ‘이말련 시리즈’에 이런 만화가 나온다. 어느 현대인이 필수품인 차가 없어 허전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차를 사러 갔다. 경차를 고르는 그에게 판매원은 안전이 중요하다며 안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중형차를 선택했더니 대형차가 들이받으면 위험하다고 한다. 대형차를 사더라도 트럭이 와서 충돌하면 위험하다고 생각한 이 사람은 결국에는 25톤 덤프트럭을 샀다. 그리고 신나게 달리다가 무궁화호 열차와 충돌한다. 이야기는 ‘안전하고 튼튼한 대중교통 기차를 애용합시다-철도청’이란 어이없는 결론으로 막을 내린다. 한 마디로 어이없음 그 자체다. 그런데
천지창조 세쨋날 주님의 역사하심이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그러나 요즘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떠한가?현재의 추세로 나아간다면 한국인이 일본인보다 먼저 멸종하게 될 것이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가 내 놓은 암울한 전망이다. 현재와 같은 낮은 출산율을 방치할 경우 마지막 한국인은 2750년에 사망하고, 마지막 일본인은 3011년에 태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는 먼 미래를 내다본 인구 예측이어서 추정에 많은 불확실성이 있으나 다른 변수들도 감안해야 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하지만 단순한 엄포만은 아니다. 한국은 인구 노령화에 출산율까지 낮아지고 있는데다 여성들은 갈수록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2013년 출생률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인구 1000명당 8.6명이 태어나 전년 대비 9.9%나 급감했다. 여성 1명이 일생 동안 1.187명의 아기를 출산 세계에서 다섯째로 적다. 이런 추세가 이어질 경우, 북한과의 통일이나 상당한 이주민 유입이 없다면 한국인은 2750년 자연적으로 멸종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현재 5141만여 명인 인구가 이번 세기 말에는 2000만 명으로 줄어들고, 부산에선 2413년, 서울에선 2505년에 완전
부족한 사람이 금년 현대시선 신인 문학상 수필부분에 당선이 되었다. 무슨 늦은 나이에 신인 문학상이냐 할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또 하나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감사한다. 나의 어린 시절을 더듬어 보면 아직 우리 동네에 TV는 고사하고 라디오도 아직 그리 흔 하지 않은 때가 있었다. 농한기가 되면 우리 집 안방은 동네 할머니들이 모여서 이런 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는 공간이었다. 가끔은 기나긴 겨울밤 간식으로 찐 고구마와 동치미 무를 쭉쭉 쪼개서 잡수시면서 담소를 나누시곤 했는데 아주 가끔은 감자떡이나 무 설기 같은 별미를 해서 나누어 드시던 모습이 눈에 아련하다. 그럴 때면 할머니들에게 유일한 낙이 한 가지 있었는데 옛날 이야기책 읽는 것이었다. 눈도 어두우시고 한글을 잘 모르시던 할머니들이 책을 읽는다는 말은 다른 사람이 읽어드리면 할머니들은 읽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나는 책읽기를 유난히 좋아했는데 할머니들 앞에서 책을 읽어드리면 너무 좋아하셨고 고마워하셨다. 나는 그게 좋아서 밤늦은 시간까지 이야기책을 읽어드리곤 하였다. 그때 읽었던 책은 주로 명사십리, 장화홍련전, 콩쥐밭쥐. 어사 박문수, 을지문덕, 강감찬. 장끼전. 별주부전
세대주의 전천년설을 믿는 이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기 전에 전쟁과 기근, 지진과 같은 징조가 있고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증거되며, 배도와 함께 적그리스도의 출현이 있고 7년 대환란이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은 대환란과 천년왕국을 교회가 아니라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이 실현되는 장으로서 본다. 교회시대의 정점은 휴거이며, 이때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신실한 제자들은 ‘공중에서’ 만나서 천국으로 데리고 가서 ‘어린 양의 혼인잔치’를 여실 것이다. 이렇게 참된 교회가 지상에서 사라지면, 적그리스도가 7년 동안 악마적 통치를 시작하며, 이때 하나님의 진노가 땅위에 쏟아진다. 이러한 대환란 기간에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대규모 전쟁이 일어날 것이며, 이 와중에 예수 그리스도가 천국의 군대와 함께 재림하셔서 주님의 원수를 모두 처부순다. 그 때 이스라엘은 비로소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할 것이며, 지상에 천년왕국이 세워질 것이다.세대주의 종말론은 기독인들로 하여금 미래의 어떤 시점(예수의 재림시점)에만 집착하도록 만듦으로서 현실의 삶을 등한시하도록 만들었다. 1992년 10. 28. 휴거설을 주창했던 다미선교회나 현재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은
목회단상편견(偏見)언젠가 TV에서 세칭 ‘호스트 빠’를 단속했다는 뉴스가 나온 적이 있다. ‘호빠’라고도 하는 호스트 빠는 남자 접대부가 여자 손님들에게 시중드는 즉 술도 따르고 때론 몸도 파는 술집이란다. 이 뉴스를 접한 어떤 사람들은 ‘말세구만! 잘했네. 경찰이 한 건 했구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생각보다는 ‘어? 그럼 여자가 술 따르고 몸 파는 술집은 왜 단속 않는 거야?’라는 의문이 들었다. 대한민국에 그 수가 얼마인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술집들 중 여자가 시중들고 몸 파는 술집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그런 술집은 내버려 두고 호스트 빠만 단속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남자는 여자를 사도 되지만 여자는 남자를 사서는 안 되고, 여자는 몸을 팔아도 되지만 남자는 안 된다? 하나님 앞에서는 둘 다 똑같은 죄이다. 현대 사회의 남녀 평등적 가치에서 볼 때도 둘 다 똑같은 문제이다. 아마 법률적으로도 둘 다 똑같은 범죄일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일까? 우리는 이런 것을 편견이라고 한다. 편견은 사실을 왜곡하여 인식한 결과물이기에 문제의 원인분석에 오류를 낳게 되고 그에 따라 필연적으로 잘못된 반응과 해결
세대주의 신학(dispensationalism)은 영국의 배타적인 플리머스 형제교회(Separatist Plymouth Brethren) 지도자 다비(John Nelson Darby; 1800-1882)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당시 제도권교회 성공회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배타적인 교회운동이다. 스코필드 관주성경(Scofield Reference Bible)에 의해 영어권에 널리 보급되었다. 따라서 세대주의자들 가운데는 보수적인 복음주의자들이 많다. Biola, Moody, Dallas, Grace와 같은 신학교는 세대주의 신학을 대변한다고 알려져 있다. 세대주의에도 점진적 세대주의와 극단적 세대주의의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는데, 여기서는 주로 극단적 세대주의의 문제점을 살펴보려 한다.성경 전체를 이해하는 시스템에 따라서 신학이 크게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하나는 루터와 칼빈이 가르친 개신교 정통신학인 ‘개혁주의 언약신학’이고, 또 다른 하나는 ‘세대주의 신학’이다. 두 신학체계는 구원과 율법, 종말에 대한 입장이 다르다. 다비는 자신의 교리를 “재발견 진리”라고 주장하였는데, 이 세대주의 신학의 영향으로 생겨난 것이 한국의 폐쇄적 형제교회와 유병언, 박옥수,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