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새천년이 시작되는 2000년 새해를 우리 모두가 기대하는 마음으로 맞이했다. 전여회는 새해가 되자마자 신년 감사예배를 드린 다음 날인 1월 4일부터 15일까지 호주의 멜본에서 개최된 침례교 여성 지도자대회와 세계대회에 이월자회장과 세분의 실행위원들과 나를 파송했다. 그 대회는 참석했던 한국 침례교인들과 전여회 회원들에게는 특별한 대회였다. 그 대회에서 수원중앙침례교회 담임이셨던 김장환 목사님이 세계연맹 회장으로 선출되시고 전여회 증경회장이신 여의도 교회의 장영심 집사님이 부회장으로 선출되셨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통령이 보낸 축전을 행사장에서 호주대사가 대독하는 등 한국인으로서 기쁨과 긍지를 느꼈던 대회였다.우리가 없는 동안에도 속리산 유스타운에서 어린이 선교캠프가 개최되어 25교회에서 123명의 어린이와 교사와 강사 36명이 참석한 가운데 하명애 어린이선교교육진흥부장과 분과위원들의 헌신으로 은혜롭게 캠프가 끝나 있었다. 곧이어 24일부터 26일까지는 김정득 청소년 선교교육 진흥부장과 분과위원들의 헌신으로 같은 장소에서 청소년 선교캠프가 개최됐다. 18교회에서 197명이 참석하고 교사와 강사 31명이 많은 수고를 해줬다.이해부터 전여회는 개교회에서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보다는 무엇이나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은 풍요롭다. 사람들은 없는 것의 목록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자빈(自貧)하게 된다. 나는 내 주변에 온통 있는 것 밖에 없다는 것에 지극히 만족해한다. 나는 원래 두 귀를 갖고 있었는데 오른쪽 귀가 영 먹통이 되어 버렸고 다행히 왼쪽 귀만 가지런히 청각 작용을 하고 있다. 젊을 때는 들어야 할 과제물이 많으니 두 귀가 성해야 했을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늙어서는 굳이 들어야할 것들이 별로 없이 한귀로만 들어도 되지 않느냐는 하나님의 배려인 것이다. 노인들이 한쪽귀가 안 들린다고 고민하는데 그땐 자기가 꼭 듣고 싶은 이야기만 성한 귀로 들으면 될 것 아니냐고 나는 타이른다.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골라 들으면 한쪽 귀만으로도 족할 것인데 굳이 듣지 않아도 될 남의 이야기를 듣자고 욕심(?) 때문에 스스로 불구자연(不具者然)하고 애태우고 있으니 얼마나 딱한 일인가? 아직 나에게는 들을 귀가 없는 것이 아니라 들을 수 있는 귀가 하나 있다는 소유감의식(所有感意識)이 있다. 만약 두 쪽 귀가 다 먹통이라면? 그땐 들을 것이 더 이상 없다는 사인으로 보고 듣지 않으면 속편 할 게 아닌가? 아주 세상소리 안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행16:10) 요엘 선지자가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욜2;28)라고 예언한대로, 오순절 성령 강림 후 베드로 사도의 첫 번째 설교는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 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행2:17)에서 요엘의 예언이 응하였음을 증거했다.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고, 베드로 사도는 욥바에서 고넬료 가족의 구원을 위한 환상을 세 번이나 보았다. 바울은 드로아에서 밤에 환상을 보았는데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행16:9)는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보고 유럽 땅으로 건너가 복음을 전했다. 고린도에서는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행18:9)고 했다. 구약에는 에스겔 선지자를 위시해서 다니엘, 이사야 등 많은 환상과 이상에 대한 말씀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교회사에도 성 프란시스를 대표 인물로 들 수 있다. 또 19세기의
목사가 되기 전 K.T에 10여년 간 근무한 적이 있다. 1주에 1번 정도는 회사에서 밤 근무를 해야 했다. 당직자는 그 밤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책임져야 한다. 정해진 시간에 외곽 순찰도 돌고, 야간 업무가 잘 돌아가는지도 점검해야 한다. 평온하기만 하던 교회가 여기 저기 잡음이 일어나고 어수선 해지면, 권투에서 소나기 펀치가 날아올 때 잠시 덕킹 모션을 취하고 잔뜩 구부리듯 젊을 때는 지체 없이 금식기도로 난관을 극복했다. 지난 주간 나홀로 교회 본당에서 당직하기로 했다. 늦은 밤에 기도하시는 몇몇 여자 집사님들이 목사님이 함께 자리를 지켜 주시니 든든해서 좋다고 반긴다.주보에 실린 교회 목장별 기도제목과 교회 학교별 기도제목을 읽어가면서 중보기도도 하고 스마트폰, 아이패드, 전원잭, 리시버를 준비해서 앞서가는 목사님들의 설교도 듣고, 성경 통독 앱을 열어 들으니 은혜 충만이다. 05시에 문을 열어 잔잔한 음악을 틀고 05:30 새벽 예배가 시작되기 까지 조용한 묵상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니 많은 시간이 여유롭다.첫날은 장의자에 누웠다가 비좁아 떨어지기도 했는데 다음 날 부터는 접철의자를 붙이니 추락(?)할 염려가 없어졌다. 미국 여행 14시간 지루한 비행기
성도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감사를 드린다. 하나님께서는 예배드리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예배는 신앙생활의 핵심이며 꽃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행위 가운데 가장 거룩한 것이다. 예배는 본질적으로 중요하다. 특히 실버 예배는 실버처치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할아버지, 할머니들만 따로 모여서 실버 예배를 드리면 군중심리가 발동한다. 어떤 면에서는 맨투맨으로 대화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다. 그래서 실버 예배에 모든 승부를 거는 것이다. 실버처치의 어르신들은 주일에 교회를 나오지 않는다. 다른 양육 프로그램을 추가로 가동하기도 쉽지 않다. 오직 일주일 한 번 실버처치에 나오는 것이다. 그러니 실버 예배를 통하여 복음을 증거하고 예수를 만나게 해야 한다. 믿음이 자라가게 해야 한다. 때문에 실버 예배는 더없이 중요하다. 이런 배경 때문에 나는 마치 실버 부흥회를 하는 것처럼 매주 최선을 다하여 예배를 인도한다. 찬양도 뜨겁게 드리고 말씀도 강하게 선포한다. 약 70분 동안 오직 찬양, 기도, 말씀 선포, 성경 공부 외에 다른 프로그램은 일체 하지 않는다. 찬양은 약 15분 정도한다. 복음적이고 쉬운 찬양을 반복하여
(1999)인도네시아 침례교여성 지도자 강습회가 끝난 후 배성연 해외선교진흥부장님과 나는 정재교 선교사님과 정영명 선교사님 가정이 사역하고 있는 족 자카르타로 이동했다. 처음으로 선교사님들의 사역지를 돌아보게 되어 기대하는 마음도 있었고 바쁜 사역에 지장을 드리지나 않을까하는 불안한 마음도 있었는데 성령의 인도로 각 가정과 정말 좋은 교제의 시간을 가졌고 사역의 필요들을 보게 되는 귀중한 시간이었다.족자공항으로부터 살라띠가에 있던 정영명 선교사님 댁으로 차로 이동중 경험했던 일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특별한 경험으로 기억되고 있다. 대통령 선거 결과에 만족하지 못한 인도네시아 청년들이 우리가 지나가던 도로에 큰 돌들을 깔아놓고 있었는데 조금 가다보니 도로에 불을 지르고 곧 전쟁이라도 일어날 것 같이 분위기가 험악했다. 옆길로 피해 가는데 우리가 외국인임을 알아본 인도네시아 청년들이 우리가 탄 차를 세웠다. 정선교사님이 약간의 지폐가 든 봉투를 주고 재빨리 그 자리를 피할 수 있었지만 정말 등골이 오싹하고 식은땀이 쫙 나는 순간이었다. 말로만 듣던 선교지의 위험을 피부로 경험한 순간이었다. 바로 그런 것들 때문에 우리가 선교사님들의 신변 안전을 위해 매일 기도
쌀은 우리 민족의 주 양식이다. 그래서 모든 식품 중에서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다. 경로 우대 대상인 65세 이상의 어르신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분들은 대부분 매우 가난한 시대를 겪었다. 보릿고개를 경험한 세대이다. 그런 이들에게는 쌀은 여전히 아주 소중한 주 양식이다. 그래서 쌀은 진실하고 따뜻한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좋은 선물이 되는 것이다. 65세 이상의 어르신들의 환경을 살펴보자. 그들의 문화를 들여다보자. 결코 짧지 않은 인생 여정을 살아오는 동안 많은 굴곡과 시련이 있었다. 이미 배우자를 잃은 사람도 있다.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도 많이 있다. 생활이 넉넉지 않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쌀은 정말 더 없이 중요한 양식이 된다. 어느 날 우연하게, 실버 예배에 참석하는 어르신들 중에 수원, 인천, 부천, 강서구, 은평구에서도 오시는 분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분들에게 “어떻게 그 멀리에서 오셨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어부교회에서 쌀을 준다는 소문을 듣고 왔다는 것이다. 우리 교회가 서울 강동구에 있으니 대략 2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다. 왕복 4시간이다. 거기다가 예배 시간과 기다리는 시간, 로스 시간까지 감안
아내가 내 차를 몰고 나가 사고를 냈다. 좁은 골목길 사거리에서 일어난 경미한 접촉사고 인데 9:1의 가해자란다. 상대방이 병원에 입원하면 골치 아프니 우리 쪽에서 다 수리해주는 조건으로 일단락 지었다. 신호등도 없는 좁은 골목길에서 일어난 접촉사고에 9:1의 판결이 좀 억울한 면이 있지만 이렇게 처리하는 게 현명하다니 어쩔 수 없다. 내 차에 여러 군데 흠집이 생긴 것은 아내가 내 곁에 있다는 증거로 생각하며 산다.월드컵 축구는 운동이라기보다는 예술에 가깝다. 어떻게 그 작은 틈바구니 사이로 통렬한 골을 성공시키는지 슬로우 비디오로 다시 보면 더 기가 막힌다. 그렇게 피 땀흘리며 기량을 갈고 닦았는데 심판의 잘못된 오심으로 패배를 당하고 짐을 싸게 하는 것은 한 개인이 아니라 열광하는 그 나라 온 국민의 가슴에 대못질이나 진배없다. 그래서 금번 월드컵에서는 골 판독기를 도입했다. 순식간에 골대를 맞고 골라인 안쪽으로 떨어졌다가 튕겨져 나온 공을 14대의 고속 카메라가 공의 위치를 파악해 1초 안에 골 여부를 판명해 심판이 착용하고 있는 손목시계에 “Goal”을 선언한다. 코스타리카와 프랑스의 골이 그렇게 선언되었다. 지난 주 신문은 10개월이나 복역을 마치
(1999)이 해에 처음으로 시작된 또 다른 한 가지는 안식년으로 한국에 들어와 있던 여성선교사들을 전여회 행사에 초청하는 것이었다. 8월 여름 수련회를 시작으로 전여회 행사시 마다 남녀 선교사들 중 해외 선교회의 추천을 받아 한 분을 세워 선교보고를 듣고 여성선교사들을 초청해 교제의 폭을 넓히고 선교 현장의 소리를 듣고 선교사님들을 위로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또한 12월에는 안식년 선교사 가족들을 전여회 회관에 초청하여 송년음악회를 개최하여 위로하는 사역을 1998년부터 시작했다. 전국 교회의 여선교회에 부탁하여 몇 달 동안 수집한 남녀의류, 생필품, 악세사리, 가방, 구두, 악기, 건어물 등 무엇이든지 선교사님들이나 선교지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물건들을 모아 선교사님들이 필요에 따라 선택할 수 있게 했는데 어떤 여성선교사님이 세상에 태어나서 돈 안내고 마음껏 물건을 가지게 된 것은 처음이라고 너무 기뻐하던 모습이 지금도 안 잊혀 진다. 실행이사들이 음식을 한 가지씩 준비해 와서 저녁식사를 대접하고 에스더 선교 합창단이 송년 음악회를 준비하고 때로는 찬조 출연자도 초청하고 선교사님들도 출연하며 즐거운 시간을 준비해 드렸다. 그리고 자녀들을 위해 가정 당
나의 동역자 그 목사가 밤에 음주하는 이유를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는 어릴적부터 술을 먹기 시작했었다. 그것은 그의 어머니께서 먹다 남은 식은 밥에 누룩을 부어 놓고 하룻밤만 지나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술이 되는데, 한참 보리 고개 배고픈 시절이라 그것을 그냥 밥 먹듯이 퍼먹었던 것이 술 먹기 시작이라고나 할까. 시중에 판매하는 알코올성 술이 아니라 그냥 감주 같기도 하고 어쩌면 술 같기도 한 것을 그냥 숟가락으로 퍼먹었을 따름이었다. 그래도 술은 술인지라 머리가 휑하니 돌기도 하는데, 담임선생님은 그 사정도 모르고 어린것이 벌써부터 음주냐고 야단치지만, 그는 우선 배부른 것이 다행이었을 뿐이었다. 그 목사에게는 그렇게 해서 술이라는 것에 아무 거부감을 느끼지 못했다. 본인도 그렇게 자란 경험이 있다. 그런 그가 목사가 되었다. 하나님의 종이요 교인 앞에 선생인 공인(公人)인데 음주를 미덕으로 아는 한국교계에서 내놓고 밝힐 것은 못되었다. 그 목사는 음주를 끊기로 했다. 술에 취한 자도 아니고 더더구나 중독된 자도 아니다. 어린시절 배고파 먹던 술막지를 지금처럼 배부른 시절에 먹을 이유가 없지 않는가? 그런데 그 목사는 자주 찾아오는 두통과 수면장애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