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좌파적 신념의 역사로 시작된 프랑스혁명은 그 후 연속되는 무신론적 인본주의 혁명의 뿌리가 됩니다. 하나님을 인간 이성으로 대체하고 새로운 인간 종교를 창시하기 위한 무신론적 인본주의의 혁명입니다. 진보세력의 공모자들 스스로 ‘하나님 없는 인간’(l’HSD, l’homme sans Dieu)이라고 자처했습니다. 소설 ‘1984’의 작가로 유명한 조지 오웰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1789년 프랑스혁명은 반(反기)독교적 사상에서 비롯된 혁명의 정신을 파리 자유의 여신상처럼 우상시합니다. 이들이 내세우는 혁명은 또 역사적으로 반복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프랑스혁명은 신좌파(neo-Marxist) 혁명세력에 의해서 또 한 번 인본주의 이데올로기로 중무장하고 온 세계로 포문을 열게 됩니다. 바로 1968년에 일어난 프랑스 68혁명입니다. 역사적으로도 이 68문화혁명은 현대주의로부터 엄청난 파급·파괴력을 지닌 포스트모더니즘시대로 옮아가는 혁명을 알리는 불꽃 신호탄과도 같습니다. 2. 프랑스68혁명은 앞선 혁명과 ‘부전자전’ 프랑스혁명 이후 인본주의 모더니즘 시대는 프랑스68혁명을 거치면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로 전환됩니
113차 총회가 법적인 논쟁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114차 총회 의장단 및 총무를 선출하기 위한 입후보자의 예비등록일이 7월 9일 예정돼 있다. 대의원들은 현재 교단에 산적해 있는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금 교단의 위상을 세울 수 있는 의장단과 5년 임기의 총회 행정을 감당할 차기 총무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그런 만큼 현재 파행을 겪고 있는 총회와 내홍을 겪고 있는 기관의 현안을 보다 행정적으로 냉정하게 처리할 교단 안팎의 지명도 있는 화합형 청지기가 그 어느 때 보다 필요한 때다. 최근 몇 년간 계속된 진영논리와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지도자를 선출하는 과정이 반복된 것도 부인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교단을 위한 정책이나 방향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바라보기보다 특정 후보의 지지 성향에 의존해 지도자를 선출해왔다. 물론 근래 단독으로 입후보하면서 이러한 문제들은 크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임원을 선임하거나 각 기관에 이사를 파송하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는 것이 사실이다. 교단 안팎에서 침례교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리 곱지만은 않다. 그동안 교단에서 간과했던 문제들이었으며 관심을 가지고 교단이 하나되고 협력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면 침례교회 관련 문
셋째로, 과일 재배법을 한국인에게 전수해 조선의 농업기술 진흥에 기여했다. 펜윅이 과일 재배와 농사법을 전수한 첫 번째 제자가 윤병수(尹秉秀, 1867-1944)이다. 사실 윤병수는 펜윅의 농장 견습생이 되기 이전 1885년 10월 25일에 원산항(元山港) 장무관(掌務官)으로 임명받아 약 2년 6개월간 벼슬아치로 일했다. 공무원이었던 윤병수는 원래 묘목 재배에 관심이 많았는데 펜윅을 만난 이후부터 새로운 인생길을 걸으며 과수 재배 전문가로 성장하게 됐다. 그렇다면 윤병수가 펜윅의 과수원 제자가 맞는지, 언제부터 견습생이 됐는지, 학농원(學農圓)을 세워 언제쯤 자립했는지, 그리고 개화기 한국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궁금하다. 이에 관해 여러 자료가 있는데 연도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음을 밝히고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겠다. 1) 1909년 3월 14일자 황성신문 기사 첫째가 1909년 3월 14일자 황성신문의 기사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원산거(元山居) 윤병수씨(尹秉秀氏)는 원래(元來) 종식업(種植業)에 유지(有志)ᄒᆞ야 거(去) 광무(光武) 팔년(八年)붓터 당지(當地)에 주거(住居)ᄒᆞᄂᆞᆫ 영국(英國) 목사(牧師) 편위익씨(片爲益氏)에게 종예술(種藝
“미국 혁명의 원리와 프랑스 혁명의 원리가 닮았다는 것은 정숙한 청교도 가정의 어머니와 추문을 다루는 프랑스 소설의 부정한 여인이 똑같이 닮았다는 것과 같다. …참으로 19세기에 프랑스보다 더 슬픈 역사를 가진 나라는 없습니다.” <아브라함 카이퍼, ‘칼빈주의 강연’ 중> 유럽 역사에서 비극의 역사로 기억되는 1789년 프랑스 혁명은 현시대의 기독교의 위기 측면에서 볼 때도, 치명적 위기를 불러온 중차대한 사건입니다. 제임스 에머리 화이트는 이 때를 두 번째 타락이 있었던 때라고 강조합니다. 첫 번째 타락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날 때입니다. 두 번째 타락은 프랑스 혁명 시기로, 서구사상사와 문화사에서 도로 메꿀 수 없는 깊은 틈이 이때 생겨났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역사는 근대 프리모던(Premodern)에서 현대 모던(Modern)으로 넘어갑니다. 그리고 그 후에도 현대모던에서 포스트모던(Postmodern)으로 넘어갈 때도 또 한번 공포의 혁명이 프랑스에서 재발합니다. 앞에서 첫 번째는 1789년의 급진적인 정치적 혁명이고, 그 다음 두 번째는 1968년의 문화혁명입니다. 이렇게 프리모던에서 모던으로 포스트모던으로 운명의 역사를 결정하는 배경에
침례교단이 요즘 세상과 교회에서 뜨거운 감자처럼 회자되고 있다. 총회장은 선거 무효, 1부총회장은 직무정지 상태에 이르렀으며 일간지에 선거 관련 광고까지 나오면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이를 두고 대의원들 사이에서는 법적인 해석과 규약의 해석 및 적용 등 심지어 음모론까지 돌고 있지만 그 어느 누구도 현 교단 사태에 대한 깔끔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여론이다. 우리 교단은 그동안 총회 규약을 중심으로 침례교회의 이름 아래 하나의 공동체로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교회 부흥을 위해 힘을 모아 지금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것은 과연 희망 회로에 불과한 일인가 싶을 정도로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침례교회는 현재 안타깝게도 ‘네 편 내편’으로 나눠져 있고 누구의 뜻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에 처했음에도 대다수의 교회와 목회자는 교단 정치에 점점 방관자로 전락했다. 속된 말로 “뭣이 중한디?”라고 표현할 정도로 “강건너 불구경”인 상황이다. 교단의 현 상황은 실제로 암울하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 사태에서 힘과 지혜를 하나로 모아 극복하며 나름 선전해 온 것을 생각하면 지금의 상황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많은 부분
연일 영일만 석유 매장 관련 이슈가 뉴스를 도배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6월 3일 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영일만 일대 8광구에 석유 및 가스가 최소 35억 배럴, 최대 140억 배럴이 존재할 가능성이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러한 발표에도 불구하고 여론은 좋지 않다. 한국갤럽의 지난 6월 14일 조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동해 석유·가스 매장에 대한 윤 대통령의 발표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한 비율은 60%, 반대로 ‘신뢰한다’고 응답한 인원은 28%에 그쳤다. 그도 그럴 것이 석유·가스 매장 확률이 높다고 분석한 분석 업체에 대한 신뢰성이 계속 도마 위에 오르고 있고, 이미 이전에 같은 장소를 분석했던 해외 대기업은 정밀분석 결과 매장 가능성이 낮을 뿐만 아니라 매장이 돼 있다 하더라도 채산성이 낮다는 결과를 발표한 것으로 드러나 석유공사에 막대한 부채를 안겨준 ‘자원외교 시즌 2’ 아니냐는 불신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항간에는 영일만 8광구를 채굴할 돈으로 차라리 전세사기 피해자를 구제하라는 의견도 제기되지만, 전세사기 특별법에 거부권을 행사한 윤석열 정부가 과연 채굴을 취소한다 하더라도 정말 도움이 되는 곳에 예산을 사용할 것인지는 미지수
디딤돌교회(임성도 목사) 국내선교회(회장 이창종 장로) 40여 명의 전도대원은 지난 5월 18일 경북 포항에 위치한 동해제일교회(김위수 목사)에 국내 농어촌교회 전도 지원을 전개했습니다. 동해제일교회는 1916년에 세워진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작은 어촌 마을에 위치한 교회입니다. 지난 2023년 새로 김위수 목사가 부임해 교회와 지역에 대한 애정과 헌신으로 온 열정을 쏟고 있었습니다. 교회 선교회 임원들은 사전에 포항에 내려가 교회의 상황을 살피고 전도를 비롯해 교회 리모델링, 내부 정리, 동네 환경 미화 등의 필요를 조사하고 리모델링은 현지 사업자를 통해 진행하기로 했으며 그 외의 부분은 디딤돌교회 전도 대원이 감당하기로 했습니다. 대전에서 포항까지의 거리는 먼 거리였기에 새벽예배를 마친 후, 새벽 6시 30분에 모든 전도 대원은 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3시간 30분의 이동시간 동안 선교회장으로 헌신하고 있는 이창종 장로의 인도로 모든 대원을 한 사람씩 소개하고 인사하는 시간을 가지며 9세 어린이부터 78세 장로까지 모든 전도 대원은 하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 디딤돌교회 전도 대원들은 동해제일교회에 도착했을 때, 김위수 목사와 강영숙 사모, 동해제
둘째로, 비즈니스 영성이 돋보였다. 비즈니스 영성이란 선교사가 사업을 할 때 돈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 경영에 초점을 두고 운영하는 것을 말한다. 액츠비즈니스 선교회는 비즈니스 선교사의 영성 6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1) 비즈니스 선교사의 정체성, (2) 신앙에 대한 이해와 자기부인의 길, (3) 하나님의 마음과 복음전도자의 길, (4) 모든 소유를 주께 드린 청지기적 삶, (5) 세상의 전문가로서의 뱀 같은 지혜, (6) 세상 중에서 지키는 비둘기 같은 순결. 이런 면에서 펜윅은 비즈니스 영성의 모델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펜윅은 이런 비즈니스 선교사의 영성 6가지를 그대로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자가 2010년에 허긴 박사 은퇴기념논문집에 기고한 “펜윅의 영성”에서 비즈니스 선교사 펜윅의 영성 4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1) 경건의 생활, (2) 성경에 대한 확신, (3) 증인의 삶, (4) 윤리적․도덕적 민감성. 펜윅은 원산 농장 10만 평을 매입한 후 부자 선교사였지만 하나님 나라 시각으로 물질을 사용했다. III. 펜윅의 비즈니스 선교가 한국침례교회와 한국사회에 끼친 영향 지금까지 펜윅의 평가를 보면 펜윅이 근본주의 신학과 세대주의
앞의 기술한 내용대로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은, 조선의 존립을 지키기 위해 대원군의 쇄국정책과 서양 세력 배척은 날로 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대상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의 양인(洋人)들은 배척당했다. 그런 상황에서 양인을 돕거나 함께 장시간을 지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시 중국의 고려문 지역에서는 이응찬이 압록강에서 풍랑을 만나 모든 재산을 잃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고향에도 돌아가지 못하는 거렁뱅이가 됐는데, 불행 중 다행으로 양인(洋人)을 만나 끼니만 연명한다거나 일자리를 구했다는 내용이다. 이응찬은 존 로스 선교사를 가끔 보는 것이 아니라, 조선어를 가르쳐주었기 때문에 매일 장시간을 만났다. 존 로스는 조선어를 배워야 한다는 일념으로 밤에도 호롱불을 켜놓고 조선어를 배웠던 것이다. 그러나 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이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양인과 매일 함께 지내는 것이 수상하다는 것이다. 당시 조선인이 양인과 접촉하는 것은 크게 ‘장사, 무역, 역관(통역, 번역)’의 업무일 경우였다. “이응찬이 양인과 장사와 무역을 하는 것 같지는 않고, 더구나 그 양인이 관료나 외국사절로 온 것도 아닌데, 존 로스라는 양인이 군인인가? 아니면 첩자인가?
침례교회는 선교하는 교단으로 세계선교에 선한 영향력을 지금까지 끼쳐왔고 여기에 더해 뜨거운 찬양과 기도, 말씀이 함께하는 교단으로 잘 알려져 있다. 최근 총회가 주최한 연합기도회인 라이즈 업 뱁티스트를 비롯해 한사목이 주관한 목회자 영성 세미나, 지방회 창립 50주년을 맞아 천안지방회가 주관한 복음화 대성회는 말씀과 성경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충만한 능력을 구하며 기도하는 침례교단의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전국 침례교회 연합기도회인 라이즈 업 뱁티스트는 전국을 순회하는 것과 동시에 유튜브 플랫폼을 활용해 6월 3일부터 14일까지 12일간 모든 교회가 온라인으로 참여하며 찬양과 말씀, 기도가 어우러진 대축제의 시간이었다. 우리 모두가 고난과 어려움을 겪었던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시작된 연합기도회는 매년 6월이면 교단 전체가 기도의 불씨를 지피고 다가오는 여름 사역을 말씀과 기도로 준비하는 응답의 시간으로 자리매김했다. 우리는 장소를 제공하는 교회와 말씀을 선포하는 강사, 성공적인 행사 진행을 위해 헌신하는 총회 스태프들의 수고로 기도회가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올 초부터 일어난 113차 총회 의장단의 잇따른 직무정지 소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