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르티아 센 이라는 사람은 199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뛰어난 학자이다. 이 사람은 “빈곤과 복지”에 관한 연구가 인정되어 노벨상을 받게까지 됐다. 이 사람이 쓴 글 중에 좋은 정치와 나쁜 정치를 구별 지어 발표한 적이 있다. 좋은 정치는 시장경제의 꽃을 피우고 시장 역동적으로 가동케 한다. 나쁜 정치는 시장을 망가뜨린다. 최악의 기근은 흉년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시장 기능을 가로막는 잘못된 정치 때문에 발생한다. 보통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정치가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몇 가지 중요한 문제들에 대하여 분명한 원칙을 세우고 그 원칙이 제대로 실현되어 있도록 길을 열어 주면 정치는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다. 중요한 원칙들 중의 하난가 국민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다양한 의견과 목소리들을 한곳으로 수렴하여 나가는 일과 시장경제를 존중하여 자본주의 경제 질서와 민주주의 기초를 지켜 나가는 일이라 생각된다. 이렇게 쉬워 보이는 일들이 왜 잘 안 될까? 사람들의 욕심 때문이다. 이기심 때문이다. 그래서 잘 안 된다. 성경에 다스림의 은사가 나오는데 이 다스림에 해당하는 원문에 보면 “선장” 행정가의 의미가 있다. 이렇게 다스림의 은사는 바르게
요즘 들어 국가와 사회 전방에 걸쳐 기본이 바로서는 정상적인 나라와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구호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행동에 돌입하여 많은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기독교 또한 혁신을 요구받고 있다. 깨끗하고 투명한 기독교단, 올바른 유관기관들, 교회행정, 재정투명성 및 많은 부분에서 바른 집행을 강력히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잘못된 관행, 부정부패가 만연한 기독교를 바로잡기 위한 자정노력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으며, 꼭 해야만 하는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불편과 부담을 주는 불합리한 사안을 개선할 수 있도록 반성하고 새로운 결단을 해야 한다. 과거로부터 지속되어 온 기독교 전반의 비정상을 혁신하여, ‘기본이 바로 선’ 기독교 교단 및 기독교 유관기관들, 대형교회 뿐만 아니라 중 소형교회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으로 새로워지는 혁신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기독교 각 교단, 기독기관 곳곳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부정부패, 부조리, 불법, 편법들의 비정상을 바로 잡지 못하면 기독교의 미래는 암울 할 것이다. 기독교가 사회로부터 비판과 비난을 면치 못하고 외면을 당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못한 위선 때문일 것이다. 교회가 생명력을 잃고 신앙
괴테가 말했다. “그 사람의 보여지는 모습대로 그를 대하면 당신은 그를 더 나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의 잠재력을 믿어 주면 당신은 그 믿음대로 그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이 믿음의 원리를 손수 보여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는 시몬을 보면서 그를 반석이라 불렀다. 천방지축 급한 성격의 시몬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가 행동하는 대로를 보신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잠재력을 보시고 믿어 주신 것이다. 그렇게 이름이 베드로로 개명된 후에도 시몬의 행동은 별로 달라지지는 않았다. 마지막 시간이 다가옴을 알고는 제자들에게 심각하게 ‘너희 나를 버리고 흩어질 것이다’라고 말하자, 눈치 없는 베드로는 이렇게 호언장담했다. ‘여기 있는 자들이 다 주를 버리고 달아날지라도 저만큼은 절대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믿어주십시오. 제가 베드로 아닙니까?’ 하지만 그는 멋지게 배반하고 도망쳤다. 그때까지만 해도 베드로는 그랬다. 하지만 주님은 끝까지 베드로를 믿어주었고, 그에게 당신의 교회를 맡겼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러면 내 양을 먹이라.”베드로는 주님의 믿음대로 반석이 되었고, 마지막 순교의 순간까지 소명의 길
우리 교단에는 많은 기관들이 있다. 신학대학교가 있고, 기독교도서 판매와 출판, 각종 세미나와 제자훈련 등을 주관하는 교회 진흥원, 중국 선교사 왈레스를 기념하여 세운 침례병원과 교회 개척기금 또는 건축 기금을 지원해온 국내 선교회들이 있다. 위에 언급된 네 기관들 모두 미남침례교회의 지원으로 세워졌고 운영되어 왔다. 그 외에도 침례신문사, 해외선교회, 군경선교회, 교역자복지회, 전국남선교연합회, 전국여성선교연합회, 뱁티스트사와 전국사모회가 있다. 이들 8개 기관은 해당 기관의 임원이나 이사들의 헌금이나 회비로 운영되고 있다.이중에는 모범적이며 헌신적인 운영으로 기관이 성장함과 동시에 교단적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해외에 자랑할 수 있는 기관이 있는가 하면 다른 기관 중에는 관리자의 도덕적 해이와 사명감 부족으로 빚더미에 올라앉거나 기금이 고갈되고 각종 비리가 발생하여 교단의 근심거리가 되고 있다. 돌이켜 보면 우리 교단은 한 때 분열의 고난을 겪었고, 다시 합동의 기쁨도 있었다. 초기에는 미남침례회와 유대를 맺고 목회자 생활비를 후원하고 개교회가 대지를 구입하거나 건축을 할 때 미국 성도들의 헌금으로 지원 해준 일이 많았다. 이렇게 기도와 헌금으로 후원해 주는
“다 쏟아내지 말고 20%만 말하라” 대기업에 다니는 모 과장은 얼마 전 느닷없이 지방으로 발령이 났다. 회식 자리에서 ‘사건’이 화근이었다. 그는 올 초 성품이 나빠 직장 내 ‘공공의 적’ 으로 통하는 상사에게 회식 자리에서 불만을 토했던 것이다. 후배들 사이에선 영웅이 됐지만 조직의 반응은 냉랭했다. 그는 어느새 ‘인내심 부족하고 인화력 부족한 직원’으로 낙인 찍혔다. 결국 과장은 항의 한 번 했다가 ‘유배’신세를 자초하고 말았다. 상사나 동료의 불합리한 처우와 일처리에 항의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상하 관계가 분명한 조직에서 인사평가권이라는 무시무시한 칼자루를 쥔 상사에게 잘못 항의했다가 본전도 못 뽑기 십상이다. 기분을 덜 상하게 하면서 할 말을 하는 법은 없을까 하고 깊이 반성했지만 때는 늦었다.1. 아니꼽더라도 일단 상대를 띄워라.공문선 커뮤니케이션 클리닉 대표는 “일단 긍적적인 단서를 붙여 상사를 향한 포문을 열라” 고 조언 한다. 예컨대 ‘앞으로 크게 되실 팀장님께서 이러시면 되겠어요?’, ‘제가 철석같이 믿고 있는 팀장님이 그러시면 안 되시죠?’ 등 농담성 아부 멘트로 시작해 긴장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라는 것이다. 상대는 빈
무교절이 지난 지 50일이 되는 날,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모여들고 있었다. 성경 말씀처럼 하나님의 선민처럼 경건하게 살아보려는 마음을 가진 “경건한 유대인들”로서 예루살렘이나 유대에 거주한 이들도 있었지만 외국에 사는 이들도 있었다. 외국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을 ‘디아스포라’라 하는데 그들은 오순절 규례를 지키기 위해 먼 거리를 여행해 예루살렘에 들어온 것이다. 그렇게 예루살렘 거주민과 유대 인근각처에서 모여든 순례 객과 천하 각국에서 온 유대인들 그리고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이 예루살렘에 모여들었다. 그렇게 순례객이 조용히 이동하고 있었는데 예루살렘 성 내 한 곳에서 갑자기 많은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은 소리가 나는 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는데 큰 무리가 모였다고 말한다. 모여든 무리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는데 그들의 말은 헛소리도 아니었고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소리도 아니었다. 오히려 갈릴리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어떤 일들의 대해 자랑하고 감사하며 찬양하고 있었다. 더 놀라운 일은 여러 종류의 외국어를 거침없이 말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 적어도 15개국 이상의 나라에서 온 유대인들
5월은 가족의 달이고 마음을 설레게 하는 달이다. 근로자의 날, 어린이 날, 어버이 날, 부부의 날이 5월에 모두 모여 있어 가족을 생각하고 가족이 모두 모여 행사를 하게 만드는 달이다.화창한 봄날을 연상케 하고 대학에서는 축제를 연상케 하고, 밝은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 계절의 여왕이다.가족의 화합을 떠올리게 하는 5월에 아동학대, 노인 학대 등 서글픈 소식들이 들려온다. 어린이날에 들리는 소식은 아동학대의 가장 큰 주범이 그들의 부모이며, 부모 중에서도 아버지의 폭력에 의해 사망하는 어린이가 매우 많다.아동학대의 80% 이상은 가정에서 이루어지며, 77% 이상이 부모에 의해 자행된다. 어린이집에서 나타난 학대사례로 연일 떠들썩했으나 기관보다 더 심각하고 집요한 학대는 가정에서 이루어진다.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가하는 폭력은 훈육이라는 핑계로 가해지는 것이 가장 많다. 밤에 잠을 자지 않는다거나 울고 보챈다거나 또는 대소변을 제대로 가리지 않는다거나 등의 이유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런 이유들은 채벌로 교정될 수 없는 것들이다.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되는 것을 두고 보지 못하고 체벌을 하는 데에는 아이들에 대한 이해와 부모의 책임감 부족, 부모의
어버이의 은혜와 존경을 되새기자는 뜻으로 제정된 어버이날은 5월 가정의 달에 부모에게 효도하는 날로 제정되었다. 자녀들에게 있어 부모는 낳아주시며 길러주시고 끝없이 사랑과 희생으로 헌신하는 분으로 인식되어 왔다. 부모가 없었다면 내가 과연 이 땅에 존재할 수 있었을까? 나의 미래와 비전이 있을 수 있을까? 나의 부모가 존재하고 있기에 내 삶의 희망과 미래가 있게 되었다. 그래서 부모에 대한 자식의 보답은 무엇으로 비교한들 다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성경에도 부모와 자식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살펴볼 수 있다. 아브라함이 백세에 낳은 이삭은 아버지를 존경하여 섬기고 절대적으로 순종했던 것이다. 아브라함이 번제물로 이삭을 바치려고 했을 때도 이삭은 묵묵히 부친의 뜻을 따랐으며 자신의 처 리브가를 아비의 고향에서 찾아야 할 때도 아버지의 뜻을 따랐다. 그만큼 아비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보여준 모습이었다. 모세도 시내산에서 받은 십계명 중에 제 5계명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며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는 육신에 대한 부모에게 마음과 뜻을 다하라는 뜻이다. 하지만 요즘 세태에서 부모에 대한 공경과 존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제일 먼저 5월 5일 어린이날을 시작으로 한 달 내내 가정에 관계된 날들이 기다리고 있다. 가장 먼저 어린이주일을 맞아 각종 예배와 행사 등이 열리며 이를 활용해 교회학교 성장에 전환점을 모색하고 있다.어린이주일이 특별히 기쁘고 감사한 것은 어린이들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이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 가운데 잘 성장한다면 교회에서 그리고 이 나라와 세계에 영향력을 미치는 인물들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당연히 부모의 기대가 더 크기에 부모는 자녀들을 더 세심하게 말씀과 기도로 양육해야 할 것이다. 자신들의 성장과정을 되돌아보면서 아이들이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거룩한 영향력으로 도와주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내 자녀를 대하는 마음으로 사랑하고 기도해 줘야 한다.그것이 교회를 위해 그리고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믿음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중요한 일들 중 하나일 것이다. 특별히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 사무엘을 들 수 있는데 그는 삶이 깨끗해서 예쁘고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사무엘은 사방이 더럽고 추한 세계에서 마음과 영혼을 깨끗하게 보존한 정결하고 예쁜 아이였다.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
사랑하는 조황호 목사님! 어느 날 목사님은 제게 이런 문자를 보내 오셨습니다. “천국도 믿고 부활도 믿는데 내 마음이 왜 이렇게 힘이 들지요?”라고 말입니다. 그때가 목사님의 생애 가운데 가장 힘든 날이었습니까?목사님 오늘 아침에는 제가 질문을 드립니다. 천국도 믿고 부활도 믿는데 내 마음이 왜 이렇게 슬픈 건가요? 그저 나보다 몇 걸음 먼저 가시는데 말입니다. 어제부터 하늘도 슬픈 비를 내리고 있습니다. 저희 수원교회에 부흥회 초청 강사로 오셔서 설교하시던 첫날, 온몸으로 설교하시던 열정에 은혜 받고 넋이 나가 있다가 예배 후에 조용히 말씀 드린 일이 기억납니다.“목사님 내일 부터는 천천히 해요. 오늘밤 한 주간 받을 부흥회 은혜 다 받았으니 내일부터는 천천히 해도 돼요.” 그때 목사님 하신 말씀이 귀에 쟁쟁합니다.“내가 언제 다시 이 교회 와서 부흥회 설교하겠어요.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하고 가렵니다.”찬란한 사도행전의 역사를 재현하는 교회를 꿈꾸며 불을 토하듯 감동 있는 설교로 청중을 사로잡고 한국교회를 깨워서 바로 세워준 성령의 사람, 열정의 부흥사! 당신은 진정 한 시대의 성령의 불꽃 이였습니다.화성중앙교회의 양떼 들을 가슴에 안고 푸른 풀밭에 뉘이
자원외교 비리로 혐의를 받던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은 가득이나 지치고 힘든 국민의 마음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더 마음이 무거운 것은 이전의 다수 연예인 자살자들이 대부분 기독교인들이었던 것처럼 그도 생명의 종교인 기독교인이었다는 것이다.‘에밀 뒤르켐’이 그의 ‘자살론’에서 자살률이 낮은 카톨릭과 반대로 개신교도들의 자살이 많은 것은 개인주의적 경향이 짙기 때문이라 하였는데 포스트모더니즘 시대, 개인주의가 인본주의의 제왕으로 등극한 오늘날 낯설지 않은 진단인 듯하다.한 걸음 더 나가 조성돈 교수는 자살을 ‘사회적 질병’중 하나라고 말한다. 그만큼 자살은 이제 우리 사회와 삶의 한 부분이 됐다. 어찌됐든 이러한 우리 사회와 우리 교회의 부정적 현상은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하게 한다. 물론 오죽했으면 자살하겠는가하는 동정도 할 수 있지만 어떤 이유로도 하나님에게 있는 생명의 소유권을 사람이 가질 수 없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한 술 더 뜬 이규태 장로라는 사람의 부정이다. 그의 삶은 국가와 사회, 교회의 부정의 극치였다. 그의 죄가 만천하에 드러남은 모두를 위해 천만다행으로 주님의 심판이라 할 수 있다. 방산비리혐의를 받는 그가 서울의 모 교회의 장로로 교회의
1944년 5월 10일은 우리 기독교한국침례회 교단으로서는 일본의 압제 속에서도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끝까지 신앙 순수성을 간직한 역사적인 날이며 혹독한 핍박의 날로서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일제는 1910년 한일합방을 시작으로 우리민족은 36년의 식민지 통치 속에 들어갔으며 특히1938년부터는 일본 총독부가 주관이 되어 일명 황민화 정책을 펼치면서 우리 조상들에게 신사참배, 창씨개명, 일본어 사용 등을 강요하는 소위 한국인들의 정신과 영혼까지도 일본화 시키겠다는 민족 말살정책을 시행했습니다.그 결과 신사의 경우 1945년 6월까지 신궁 2곳, 면단위 신사 77곳, 마을단위 신사 1,062곳이 세워졌으며 이것도 부족하여 각급 학교 등에는 ‘호안덴’을 세우고, 각 가정에는 ‘가미다나’라는 가정 신단까지 만들어 아침마다 참배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사참배에 동원된 인원은 조선신궁 참배자만도 1940년에 약 215만 9,000명, 1942년에는 약 264만 8,000명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에 한국교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계속되는 일제의 강압에 눌려1936년 6월에 감리교단을 시작으로 국내 최대 교단인 장로교단 마저 19938년 9월 10일에 제27회
오늘날 한국 사회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노인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교회의 책임이 가중되고 있다. 노인인구의 지속적인 증가추세로 인한 퇴직 후 여가시간과 수명의 연장 등으로 인한 문제는 더 이상 개인적인 문제로 미룰 수만은 없게 됐다.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은퇴 후 시간이 늘어나면서 ‘제2의 인생’이 더욱 길어지는 추세다.따라서 은퇴 후 경제적 활동의 비중증가와 함께 여가활동으로 보내는 시간이 더욱 증가하고 있다. 노인들의 평균수명 증가와 건강상태 호전으로 노인들 가운데서 병약해서 일할 수 없는 노인들의 비중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반면, 건강하게 장수하는 노인이 늘어나면서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도 은퇴 후 30~40년을 노는 노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또 초고령사회에서 생활하게 될 노인들은 현재의 노인들에게 비해 교육수준이 현저히 높아질 전망이다. 노인이 차별시 되는 사회에서 노인의 교육, 노동, 여가라고 하는 인생의 주요 과업이 이미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누구라도 그 틀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이에 노인층에 대한 사회복지와 노년기의 발달과업 수행과 관련한 노인교육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경제력이 있는 노인의 수가 급증하고 있는 추세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라는 속담이 있다. 무슨 일을 하려고 생각하였으면 망설이지 말고 곧 행동으로 옮기라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어떤 사안에 대해 신속하고 정확한 처리가 요구될 때 사용하는 말이다.우리 교단은 지금 어느 때보다 이 말이 이뤄져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수단과 방법, 절차와 규정이 어떻게 됐던 간에 보다 지혜롭게 하지만 신속하고 적절하게 사후 처리가 이뤄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본지를 비롯해, 교계 언론들이 침례교회를 주목하고 있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모습보다는 안타까움과 문제, 분란 등의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는 상황이 씁쓸할 지경이다.무엇보다 성경적이고 복음적인 교단이라는 침례교회가 언제부터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 봐야 할 것이다. 이는 우리 목회자 스스로의 자성, 그리고 세상과 타협한 교회와 교회 구성원들의 진정한 회개에 있다.혹자는 교단의 치부를 드러내고 고발하는 것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며 우리 스스로를 다스려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성경적이라 할 수 없는 방법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에서 놀라운 승리를 거둔 뒤, 범죄함으로 아이성에서 패배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의 치부
전세계 교회가 4월 5일 주일을 부활주일로 지킨다. 가톨릭교회나 자유주의 신학을 신봉하는 자들이 구약의 율법이나 의식주를 우선시하는 것처럼 형식적인 부활 기념을 지내서는 안 된다. 크고 작은 행사에 치중해서는 안 될 것이다. 주님의 부활은 온 세상 사람들의 사망 권세를 이기고 새 생명을 얻게 된 것이다.성경은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고전15:14)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복음도 헛것이고 신앙도 헛것이라고 선포한다. 부활이 복음의 핵심인 동시에 신앙의 핵심임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는 복음을 전파하면서 얼마나 부활을 강조하고 있으며, 우리의 신앙에서 얼마나 부활을 찾아볼 수 있는가? 또한 교회에서 부활절 외에도 부활에 대한 말씀이 얼마나 선포되고 있으며, 부활이 강조되고 있는가? 만일 부활절에만 연례적으로 ‘부활’을 언급하고 행사를 치른다면, 이는 교회가 복음과 신앙의 핵심을 모르거나 놓치고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복음 메시지를 들어보면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신 구원자(Savior) 그리스도는 넘쳐나지만, 다시 부활하신 주(Lord) 그리스도는 찾아보기가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