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오기의 신화, 홍수환 선수가 한 이야기다. ‘지금까지 링은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일련의 어려움들을 겪으면서 저는 인생이 링보다 무서운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링에서는 두들겨 맞아 그로기 상태가 되면 말려 주는 사람도 있지만, 인생에서는 맞고 떨어지면 아예 죽이려고 하는 것 같아요.’” 최윤규 저(著) ‘물속의 물고기도 목이 마르다’(책이 있는 마을, 130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싸움의 3대 요소’라는 유머가 있습니다. 펀치력, 맷집, 그리고 말리는 사람입니다. 머리카락도 가른다는 취모검(吹毛劍), 마이클 타이슨 같은 펀치력이 있어야 싸움에서 이깁니다. 그런데 맷집이 없으면 허사입니다. 실력이 좋아 열 대를 때린다 해도 한 대는 맞게 됩니다. 한 대 맞고 넘어지면 열 대 때린 것도 소용없습니다. 바다에 파도가 항상 있듯이, 인생에는 바람이 항상 붑니다. 따라서 바람에 흔들거리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잡초가 강한 것은 바람이 불 때마다 몸을 흔들되 뿌리를 깊게 하기 때문입니다. 맷집입니다. 거인이나 대가들의 특징 중 하나는 좋은 의미의 둔감력(鈍感力)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많은 눈, 그 독한 입들을 견뎌내는 둔감력이 있어
어느 한 교인이 목사님이 설교시간에 “개새끼”라로 했다며 이집 저집에 다니며 성토를 했다. 듣는 사람마다 “목사님이 욕을 해서는 안 되지! 하나님 말씀만 전해야지!”라고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사건의 전후 실체는 이랬다. 목사님이 설교 시간에 한 예화의 서두에 “옆집 개가 새끼를 일곱 마리를 낳았는데 개새끼들이 너무나 귀엽고 예쁘다”는 말을 했다. 이해력이 부족해서 온 사소한 말로 시작되었지만 한 목회자를 욕쟁이 목사로 만들었다. 잘못 듣고 잘못 말을 전하는 작은 실수로 인해 교회 안에서도 크고 작은 상처를 주고받기도 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실수! 그러나 프로이드(Sigmund Freud)는 그의 책 ‘정신분석학 입문’에서 “성적 리비도”나 “꿈”에 대한 주제보다도 먼저 맨 첫 장에서 ‘인지왜곡’에 대한 문제를 다루었다. 즉 비정상적인 사람은 잘못 듣고, 잘못 말한다는 것이다. 잘못 들은 것을 말하기 때문에 왜곡된 말을 하게 된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인지왜곡자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듣고 싶지 않은 말은 가위질해 버리고, 듣고 싶은 말만 잘라 모으는 고도의 편집기술을 통해 ‘거짓을 진리로, 진실을 거짓으로’ 둔갑시켜 듣는 이들의 마음을 현혹시킨다
Ⅴ. 중생 교리의 실제적 적용 남침례교 조직신학자들이 중생 교리를 전개하면서 주로 사용한 성구는 요한복음 3장 3~8절과 디도서 3장 5~8절 말씀이다. 요한복음 3장 3~8절은 중생이 하나님의 나라와 연결된 말씀이다. 그리고 요한복음 3장 3~8절과 디도서 3장 5~8절 말씀은 침례중생설로 왜곡되거나 중생자 교회회원권을 지지하는 말씀으로 활용됐다. 1. 중생과 하나님의 나라(요 3:3~8) 대그와 보이스 그리고 무디는 요한복음 3장 3~8절에 나타나 있는 중생을 하나님의 나라와 연결해 설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멀린스는 중생과 하나님의 나라 관계를 아주 간략하게 묘사했고, 카너는 이를 좀 더 상세하게 설명했다. 멀린스는 요한복음 3장을 중생에 관한 고전적인 말씀으로 인식했다. 하지만 그는 공관복음서와 요한복음 3장 3~5절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나라의 의미가 서로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공관복음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사건을 다루지만, 요한복음은 그 사건을 인식하면서 하나님의 나라의 원리를 더 강조한다는 것이었다(요 5:24~29; 11:25~26). 멀린스는 이 하나님의 나라의 원리를 중생과 관련시켜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에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마16:26). 예수님은 한 사람의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사랑하시어 3년간 복음전도와 구령사역 후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의 기적으로 자신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놀라운 기적의 열매를 오늘 우리에게 주어졌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예수 천당! 불신 지옥!” 드디어 형무소 간수들이 “이 놈의 영감탱이 입 못 닥쳐!”라고 소리 질렀다. 그토록 완력을 가하는데도 아랑곳없이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다가 개처럼 끌려 형무소 사무실로 나갔다. 일본의 검사가 안됐다는 표정을 지으며 노인에게 다가가 “영감님!”하고 불렀다. “예!” “예수 천당을 그만하라는데 왜 계속해서 혼구멍이 납네까?” 이때 최권능 목사의 눈빛이 번쩍이며 검사를 보면서 “검사 양반, 내래 온 전신에 예수신이 꽉 차 있어서 어찌할 수 없습네다. 소리치지 않으면 안됩네다!”라고 말했다. 검사는 혀를 끌끌 차며‘이 영감을 저렇게 예수에게 미치게 하는 그 엄청난 힘은 무엇일까?’하고 중얼거렸다. 최봉석(일명 최권능) 목사님은 평양 강동현 최준서 씨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노방전도자
누에 농사는 딱 한 달 농사다. 누에알에서 부화되어 뽕잎을 먹을 만큼 먹은 누에들은 더 이상 뽕잎 먹기를 거부하고 섶에 오른다. 섶에 오르는 누에들은 유리 속을 들여다보듯이 투명한 몸뚱이를 지닌다. 그 몸속에는 온통 명주 실크로 충만되어 있다. 섶에 오른 누에들은 제각기 자기 자리를 잡은 뒤 그 입으로 무한히 길고 긴 실크를 뽑아내어서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다가 마침내 고치 집을 짓고 자기는 그 속에서 번데기로 남는다. 이렇게 하는 작업이 딱 한 달이라서 농부들에게는 단시간에 손질을 올리는 고마운 누에 농사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지어놓은 누에집 고치가 매달린 것을 보노라면 흐뭇하고 아름답기도 한대, 그 밑에는 비극적인 지옥세계가 있다. 남이 뽕잎 먹을 때 자기들은 무슨 짓을 했던가. 동료들은 섶에 올라가 집을 짓건만 다른 누에들은 섶에 오르지도 못하고 그 섶 아래서 흐물거리고 있다. 그것들에게는 더 이상 뽕잎 제공도 없다. 때는 이미 늦으리. 애원해도 뽕잎 배급은 없다. 배도 고프고 힘도 없는 누에 잔존들. 몸 색깔은 누렇게 부패하고 있고 썩는 냄새까지 풍기면서 땅바닥에서 허물거린다. 뽕잎 주던 아낙네는 이 누에들을 빗자루로 슬슬 쓸어 담는다. 그리고 “구
우연한 기회에 남편들의 탈선외도에 대한 이유에는 다음과 같은 보편적인 현상이 있다고 어떤 성(性)전문 강사가 전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강사는 탈선자의 개인적인 이유는 각각 다를 수 있지만 보편적으로 남성의 탈선외도에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내가 그 강사의 요지를 대강 기억하기로는 남편 탈선의 이유로는 첫째로 남편의 외도가 본처에게 주는 상처의 끔찍함을 모르고 있다는 것과 둘째로 본처만 알지 못하면 남편의 외도가 문제될 것이 없다는 묘한 문화 환경과 셋째로 본처로부터 떠밀림을 당하는 듯 남편의 인기가 없어지는 듯 느껴지는 남편의 감정과 넷째로 본처와의 침대 생활(Bed life)이 통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표면적으로 볼 때는 상당히 그럴 듯한 외도의 이유같이 보인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보는 남편의 외도는 그 이유를 인간의 타락성 분위기에서 찾는다(롬1:24~27). 세상 사람들은 결혼의 영적인 의미를 알바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성경을 접하지 아니한 그들이 어떻게 성경이 말하는 부부관계의 영적 의미를 알겠는가? 아담과 하와는 그리스도와 신부교회의 원초적 상징이다. 그리고 남편 간의 성교(Sexual action)는 두 인격결합의 최고 표현이며
“인사 서로 나눕시다. 나 황경찬 목사요.” “예, 저는 한명국 목사입니다.” “그래서 어디서 목회하시오? 아침식사 나누면서 얘기나 합시다.” “저는 서울침례교회라고 충무로에 있습니다.” “나도 거기서 멀지 않은데서 목회를 하고 은퇴를 했지요. 나는 성결교단으로 치부동성결교회였지요.” “들어오실 때에 보니 포니차를 잘 운전하시던데 혹시 목사님은 여기 제주도에 사신가요?” “그래요. 은퇴하고 나니 누가 오라는 사람도 점점 없어지고 한 때 총회장을 할 때는 초청도 많았는데…목사는 목장이 있어야지. 평생 양아치로 살았고 양젖을 먹고 살았는데 집에 가만히 있으니 견딜 수가 없어. 작년에 나이 80에 이곳 멀리 제주도에 와서 개척했는데 2년이 지나니 지하교회이지만 40명의 교인으로 늘어나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목사님 대단하시고 존경합니다. 어느 누가 80세에 개척교회 꿈도 꾸겠어요. 죽도록 충성해야지요. 오늘 저는 80세에 부름받은 모세처럼 목사님을 기억하고 언젠가는 제2의 소명으로 목사님을 따를 용기가 생기네요.” 때는 1987년 목회현장의 긴장도 풀고 또 추수감사절에 있는 제2회 “예수잔치” 준비기도를 위해 멀리 제주도 기도원에서 만났던 황경찬 목사님은 1
하나님께서 일을 하시기 위해 사람을 부르시고 사용하신다. 그러나 한 사람보다는 옆에 누군가를 붙여서 함께 일하신다. 몇 사람을 살펴보면, 모세에게는 아론을, 다니엘에게는 세 친구들을, 베드로에게는 요한과 야고보가, 그리고 바울에게는 실라, 바나바 외에 여러 사람이 함께 했다.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함께 하여 더 아름답고 큰 일을 이뤘음을 볼 수 있다. 목회를 하면서도 좋은 멘토와 친구를 만나고, 좋은 교우들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사역을 하며 함께 하나님을 일을 해 나갈 수 있는 좋은 동역자를 만나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옆 가까이에서 서로 만날 수 있는 동역자도 어느 땐 한 몸처럼 가깝다가도 조그만한 일로도 원수가 되기도 한다. 또 여러 가지 일로 떨어져야만 하는 일들이 생겨 함께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나 목회를 하며 부족한 것이 투성이인 모습으로 사역을 혼자는 다 할 수 없음에, “동역자를 붙여 주세요.” 간절히 기도했다. 어느 날 마음속에 소리가 들렸다. “네 옆에 있지 않느냐?” 눈을 들어 몇 몇의 얼굴과 이름들을 떠올렸다. 딱히 확신이 안 생겼다. 지나고 나면 그래도 돕는 자라고 생각했던
부산 보수동 어느 헌책방에는 ‘사람이 만든 책보다 책이 만든 사람이 더 많다’는 글귀가 벽에 붙어있다. 주인에게 어떤 책이 더욱 그렇느냐고 물어봤더니 당연히 성경이라고 대답을 해줬다. 전에 교회에 출석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성경의 위대함을 생각해봤다고 말했다. 전광 목사라는 이가 백화점 왕 존 워너메이커(John Wanamaker)를 두고 ‘성경이 만든 사람’이라는 제목의 책을 저술했다. 존 워너메이커는 일생동안 성경을 사랑했으며, 체신부 장관이 되어 인터뷰할 때에 “장관은 부업이고, 주일학교 교사가 본업입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어린이 사역에 헌신하고 봉사했었고, 크리스천 기업가로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 YMCA건물을 지어주는 일을 했었는데 그를 가리켜 성경이 만든 사람이라고 전했다. 나를 예수님과 교회로 인도해준 것은 한 권의 책이었다. 대학 시절에 연설문에 잠시 관심을 가진 때가 있었다. 학교 도서관에서 마르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문을 모은 책을 발견하고 관심 있게 읽게 됐다. 그의 ‘사랑’이란 제목의 연설엔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와 긍휼을 전했다.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신데(요1:3) 그분을 피조물이며 죄인인 인간들이
공부가 재미있거나 학교가 신나서 학교 가는 학생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학교를 가야하고,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억지로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다. 그러나 분명 공부가 재미있고 좋아서 열심히 하는 학생들도 있을 것이다. 이런 학생은 스스로 공부하기 때문에 성적이 향상되고 목표를 성취할 때마다 성취감을 느끼며 더욱 재미있게 공부한다. 자기 주도적 학습법이라는 것을 잘 알 것이다. 선생님의 강압이나 부모님의 잔소리 때문에 공부하는 학생은 같은 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 있어도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하는 학생에 비해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고 한다. 자기 주도적 학습을 하는 학생은 공부하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공부를 하지만 선생님이나 부모님의 눈치를 살피며 억지로 공부하는 학생은 불평하면서 하기 때문에 성과에 차이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녀들에게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하고 성적이 안 나온다고 야단칠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도록 동기를 부여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초등학생인 주안 주찬 형제가 방송에 나와서 놀라운 암산 실력을 보여 주어 시청자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초등학교 1학년인 동생 주찬이는 100만 단위의
카너도 멀린스와 같이 “하나님 편과 인간 편”의 전개 구조로 그의 중생관을 전개했다. 그에 의하면, 중생을 체험한 사람은 자신이 중생의 변화를 일으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오직 중생은 인간이 하나님께 복종했을 때, 하나님이 그를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아울러 카너는 중생을 가져오는 믿음도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반응에 의한 것임을 강조했다. 하나님이 제공한 구원의 선물을 인간이 믿음을 통해 받아들인다는 말이다. 이렇게 하나님은 구원을 주시고, 인간은 그 구원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카너는 중생의 과정에서 인간이 수동적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반응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카너는 멀린스와 같은 중생관 전개 구조를 갖고 있지만 인간 편의 능동성을 그보다 더 강조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무디는 에베소서 2장 8절에 근거해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믿음”의 구조를 세운 후, 여기에 요한복음 1장 16절과 로마서 1장 17절 말씀을 연결시켰다. 즉 요한복음 1장 16절의 “은혜 위에 은혜러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측면을 보여준 것이고, 로마서 1장 17절의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라는 말씀은 인간의 측면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무디는 요한이 구원을 위에서
지금까지 요한복음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에 나타난 기독론적 내용을 살펴봤다. 이제는 “사람의 아들” 곧 ‘인자’ 칭호가 사용된 구절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와 사역에 관한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요한복음에는 인자 칭호가 13회 나온다. 요한복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는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동시에 사람의 아들로 제시된다. 하나님의 아들이 신성을 부각시키는 반면 사람의 아들은 인성을 부각시킨다. 인자는 영원한 신성의 존재성을 가진 로고스가 신체를 가진 인간의 존재가 되어(1:14) 공생애 삶을 사셨고 하나님의 뜻을 완결하시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신 하나님의 아들의 존재와 활동을 전체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이번부터는 인자가 사용된 말씀들을 통해 요한의 인자 기독론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자 한다. 인자의 첫 번째 사용은 예수님의 공생애 준비과정에서 두 번째 제자 집단과의 만남 사건에서 나온다(1:51). 그 사건은 빌립을 만나시고 제자로 초청하신 후에, 빌립이 그의 친구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고 그를 예수께 데려온 것으로 진행한다. 빌립의 전도를 듣고 자기에게 나온 나다나엘을 가리켜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
꼰대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겪었던 거에 비하면 넌 힘든 것도 아니야.”“내가 해봤는데 그거 안되는 거야. 시간 낭비 하지마.” 선배는 이렇게 말한다. “나한텐 힘들었는데 넌 아닐 수 있어.”“나는 실패했지만 넌 성공할 수도 있는 일이지.” 꼰대는 “나도 그랬으니 너도 그럴 것이다”라고 말하는 반면, 선배는 “나는 그랬으나 너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강주원 저(著) ‘가볍지만 가볍지 않은’ (비로소, 83~84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아재’와 ‘꼰대’의 차이가 있습니다. 썰렁 개그라도 해서 소통하려고 노력하면 ‘아재’고, ‘요즘 젊은 것들은…’ 하면서 위에서 가르치려 들면 ‘꼰대’입니다. 스페인어 ‘꼰데(conde)’는 ‘백작’이라는 고귀한 의미이지만, 자기 반성이 없이 어른 노릇만 하려는 사람을 세상은 ‘꼰대’라고 부릅니다. 꼰대는 나이와 무관합니다. 삶의 태도의 차이입니다. 늙어도 꼰대가 아닌 사람이 있고, 젊어도 꼰대인 사람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세상 풍속을 잘 따라가지 못하지만 느린 몸과 마음으로 늘 반성하며 소통하려는 사람을 아재라고 합니다. 아재는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꼰대는 다릅니다. 몸과 마음이 느린 것은 물론이고,
“남편은 자기 생일날 밥을 빨리 안 준다고 상을 엎어 밥상이 망가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상을 새로 안 사고 석 달 동안 땅바닥에 밥을 줬더니 그 뒤로는 상을 안 엎었습니다.” 권정자 외 20인 공저(共著)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남해의 봄날, 127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절 때문에, 그리고 여자라는 이유로 글을 배우지 못했던 우리들의 할머니 스무 명이, 글과 그림을 배워 전시를 하고 책을 냈습니다. ‘순천의 소녀시대’라고 불리우는 할머니들은 막내가 50대 후반, 맏언니는 아흔을 바라보는데, 살아온 생을 모두 합하면 1600년이 넘습니다. 일본군에게 잡혀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친구, 전쟁 중 피란길에 죽은 동생을 업고 온종일 걸었던 이야기, 구멍 뚫린 양말 사이로 보이는 하얀 엄지발가락이 멋있어 보여서 결혼했는데 짜장면 하나 사줄 돈이 없던 가난한 남편 이야기… 영어를 배울 때 “안녕하세요. 선생님”을 “헬로, 디져”라고 해 웃음 바다가 되고… 할머니들의 그림일기에는 한국의 근현대사의 애환이 묻어 있고, 세월이 그리고 웃음과 눈물이 묻어 있습니다. 동네 오빠에게 손목을 잡힌 할머니 이야기를 들어보십시오. “한동네 사는 친
상담소를 찾은 C씨는 교회 갈 때마다 자신을 싫어하는 듯 보이는 한 할머니가 신경 쓰인다고 했다. 이유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들하고는 인사도 잘하고 말도 잘 섞으면서 유독 자신만은 경계하는 듯 보인다는 것이다. 한 번은 자신을 말없이 지나쳐가려 하길래 얄미운 마음에 일부러 길을 이리저리 막아 앞서 가지 못하게 했다나… 그 할머니와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괜스레 내 흉을 보는 것은 아닌가 의심이 생겼다. 그 할머니가 신경이 쓰여 교회를 나가는 것이 시큰둥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다른 교회로 옮겨볼까 생각도 했다. 참다못해 한번은 작정하고 따져 묻기로 했다. 도대체 왜 자기를 싫어하냐고 대놓고 물어보겠다며 씩씩댄다. 그런데 문제는 그 할머니가 정작 자기를 싫어하는 것인지,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낯을 가리는 것인지조차 확신이 없다는 데 있었다.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다. 열은 받는데 뭐라고 따져야 할까? 얼마 전 ‘언니의 따끈따끈한 독설’이라는 짧은 강의를 유튜브에 연재하는 한 강사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중 한 강의의 주제는 ‘은근히 나를 싫어하는 사람 상대하는 법’이다. 언제나 칭찬받고 싶고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 욕심은 비단 크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