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말로 이루어지고 정치도 사업도 모든 역사는 말을 통해 다 이루어진다.말을 하지 않고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사람들은 지루한 말보다 재미있는 말을 듣고 싶어 한다. 같은 말도 재미있게 잘하면 훨씬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말은 자기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표현하는 수단이므로 자기 생각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많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같은 문제를 가지고 어떤 사람이 가서 말했을 때는 안 됐는데 다른 사람이 가서 말하니 쉽게 되는 경우도 있다. 들어줄 수도 있고 안 들어 줄 수도 있을 때는 부탁하는 사람의 말과 태도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몇 년 전 중국을 갔다가 북경에서 사업을 하는 한국인 사업가를 만났는데 한국 사람들이 중국에 와서 성공하고 돈을 많이 번 사람도 있지만 실패하고 가지고 온 돈을 다 날린 사람도 많다고 했다. 중국 사람들을 잘 모르고 중국은 가난하고 한국은 경제적으로 앞섰다는 우월감을 가지고 덤벼들었다가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중국에서는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다”는 말이 있다고 했다.그때만 해도 막 자유 시장경제로 개방 중이라 행정 체계가 잡혀있지 않아서 같은 일도 어떤 사람은 되고 어떤 사람은
한 상담소에서 출장상담을 부탁해 왔다. 여러 가지 힘든 조건 때문에 거절을 했지만 재차 요청이 왔다. 아이가 집에서 수년이 넘도록 나오지 않는다고 하여 허락을 했다. 초기 면접상담에 아이의 부모가 왔다.정신과 의사와 여러 상담자들을 거치고 온 부모이기에 큰 기대를 하지는 않는 것 같다. 이야기인 즉 아들의 나이가 20세이며 3년 전 자퇴를 했단다. 몇 개월 후면 군대를 가기위해 신체검사를 받으러 가야되는데 걱정이란다. 오랫동안 자신의 방에서 나오지 않아 욕창이 생길 정도란다. 그래도 요즘은 거실까지 나온다고 하였다. 아빠의 말에 의하면 부모가 자식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으며 아들도 공부를 꽤 잘했다고 한다. 지금도 부모는 아들이 머리가 좋다고 말한다.아버지가 특히 아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입장이고 엄마는 아빠의 요청으로 따라왔다. 아빠의 원가족은 사랑이 넘치는 것 같으나 자녀가 성장함에도 응석받이처럼 대하는 분위기였고 엄마의 원가족은 경상도 특유의 가부장적이면 엄격한 분위기가 묻어난다. 아들에게 정신적 상처가 있었다면 가족문제가 가장 클 것이고 그 다음은 학교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부모는 가족문제도 학교문제도 아니라고 한다.그동안 거쳐 왔던 대부분의 상담자
지난 5월 26일 저녁,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뜻 깊은 행사가 진행됐다. ‘새벽이슬’과도 같은 주의 청년들이 한 자리에 모여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된 참된 사랑’을 발전 및 실천할 것을 다짐하며 함께 기도와 찬양하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청년들은 이날 ‘참된 사랑은 기다린다’(TLW-Healing on the Stage) 행사를 통해 이성(異性)과의 관계에서 육신적 감정에 휩쓸리는 세상을 본받기보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롬 12:1~2) 주 안에서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기까지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가꾸며 기다리기로 작정했다. 그리고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건강한 가정을 세우겠다는 ‘예수 가정 선언’(Jesus Home Manifesto)을 했다.1993년 미국 내쉬빌의 로즈 튤립 그로브 침례교회(Rose Tulip Grove Baptist Church)에서 59명의 젊은이들이 순결서약예배를 실시하면서 점화된 TLW 운동은 이내 전 미국으로 확산되며 큰 주목을 받게 됐다. 그리고 약 1년 후 1994년 7월 29일에 미국의 정치 1번지인 워싱턴 DC 광장의 푸른 잔디에 침례교인들이 211,663개의 순결서약카드를 상징하는 하얀 깃발을 가득 꽂
하나님께서 말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것처럼 사람에게도 말에 권세를 주셨다.“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잠언18:21)우리 입안의 작은 혀를 가지고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고 말로 한 인생을 무너지게 할 수도 있고 절망 가운데 빠진 인생을 일으켜 세울 수도 있다. 선거 때마다 상대방 후보를 인신공격하는 말들이 난무한다. 짧은 기간 동안에 사실을 확인 할 길도 없고 당하는 입장에서는 사실이 아님을 해명할 시간도 없이 언론을 통해 유포되면서 유력한 후보가 졸지에 무너져 버리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말로 얼마든지 한 인생을 무너지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의 말로 한 가정을 무너지게 할 수도 있고 위기를 만난 가정을 일으켜 세울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권세 있는 말을 잘 사용해야 한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사람을 세우는 말, 사람을 살리는 말을 해야 한다.“지혜로운 여인은 자기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잠언14:1) 허무는 말을 하지 마라.손으로 허무는 것보다 말로서 허무는 것이 더 위험하다. 지혜로운 사람은 말
상담1) 제 아내는 성생활은 추잡한 것이며 영적인 생활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제가 열심히 애무해 줄 때도 전혀 반응하지 않습니다. 사실은 아내가 스스로 반응하기를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행위도중 어떤 기분이냐고 물으면 아내는 아무 느낌도 없다고 합니다. 저는 성이 하나님께서 부부에게만 허락하신 복된 선물로 이해하고 있는데 아내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저는 우리 부부의 성 관계가 아름답기 원하여 되도록 여러 가지 일들을 제안합니다. 그러나 아내는 도무지 관심이 없습니다. “난 아기만 가지면 되요, 창녀들이나 하는 이런 일은 하나님도 싫어하실 거예요!”라는 것이 아내의 말입니다. 제가 아내를 선택한 것이 잘못이었다고 문득문득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결혼식 날에 그녀를 죽을 때까지 사랑하겠다고 서약한 일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생활은 날이 갈수록 즐거움도 재미도 없어집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상담2) 제게 필요한 것은 남편의 관심입니다. 제 남편은 저보다 차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차를 닦고 청소하는 데는 2시간 이상 들이면서 저에게는 거의 시간을 할애하지 않습니다. 잠자리에 들 때까지 저 이는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말하려
신학교(Seminary)는 라틴어의 ‘못자리’(Seminarium)에서 유래되었다. 그러므로 신학교는 성직을희망하는 자에게 필요한 신학(theology)을 가르치는 기관이다.목회자가 되려면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아야 한다. 신학을 정확하게 말하자면 신학 이론이다. 신학이론은 신학자들이 성경을 연구해서 자신들의 주장을 학설로 펼친 것이다. 그렇지만 모든 신학이론이 성경적이냐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신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를 할 때에 신학자들은 자신들만의 학문의 색깔이 있고 신앙관이 있다. 그래서 급진적인 좌파신학이 있는 반면에 보수적이고 정통적인 신학도 있다. 그러나 자신들의 학설만이 정통적인 성경관이라고 고집을 부리고 칼날을 세우기 때문에 분별해낼 능력이 없는 공부하는 학생들은 정신이 혼란스럽다. 그래서 신학교에 들어갈 때는 뜨겁던 열정적인 신학이 점차 식어지고 태만해지며 부정적인 시야로 변하게 되는 신학생으로 변질되기도 한다.그러나 신학교와는 달리, 교회(Church)는 신학을 배우는 곳이 아니라 신앙(Belief)을 배워 삶에 적용하는 곳이다. 신앙은 학문이 아니라 체계적인 믿음이다. 물론 그 믿음은 성경에 기초를 두어야 할 것이다. 그 분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나와 함께하시는 은혜다. 하나님은 나에게 부모를 앞서 보내주셔서 부모를 통하여서도 언제나 함께 해 주신 은혜이기에 부모의 은혜는 곧 하나님의 은혜가 된다. 부부가 사랑하여 한 몸 됨을 통하여 자녀를 생산하고 그 자녀는 부모의 한 몸 되는 사랑을 통하여 부모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을 동시에 경험하며 자라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모의 사랑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실제로 관계 속에서 경험 할 수 있다. 물론 교회나 사회에서 사랑을 주는 멘토를 만나서 사랑의 관계를 경험 할 수도 있겠지만 나란 존재 자체가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함께 하는 분이라면 그것은 부모님 일 것이다.요한복음 17:1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이 말씀의 의미를 조금은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가끔 아들과 딸에게 고백한다. ‘내가 널 사랑한다. 너로 인해 행복하다. 아빠가 힘들어도 너만 보면
생각해보면 목사라는 것처럼 이상한 직업(?)도 없다. 많고 많은 직장과 직업 중에 목사처럼 배우자와 아이들까지 철저하게 드러나고 온 가족이 남편의 일터에서 함께 하는 직업은 본 적이 없다. 목회자가 하나님께서 부르신 소명이며, 교회가 직장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해도, 온 가족이 목사와 함께 사역에 참여하고, 더불어 평가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도 여느 직업과는 확연히 다르다. 한 사모님께서 자신을 BOGO(Buy one, Get one free), 즉 하나 사면 하나 끼워주기처럼 목회자에 묶인 세트로 부르시는 말씀을 듣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웃자고 한 농담이었지만 왠지 생각하면 씁쓸해지기도 한다. 미국 사람들이 사모를 ‘First lady’라고 부르는 것을 종종 듣는데 어찌 보면 대통령의 아내와 비슷한 기대가 반영되는 것 같기도 하다. 단 월급에서 확연히 차이가 나겠지만… 목회자의 아이들도 어느새 자기 또래나 어린 아이들을 챙기고 돌보는 데에 익숙해져 가고 babysitting은 전문가 수준이 된다. 심방을 갈 때에도 목회자의 자녀들은 거의 어린이 사역자의 역할을 한다. 돕는 것이 몸에 배어가는 우리의 자녀들을 보면서 그것이 또한 하나님의 복인 것을 알면서도
세상의 모든 역사는 말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정치도 사업도 전도도 교육도 사랑도 말을 하지 않고 되는 일은 없다.말을 못하는 장애를 가진 사람이라도 수화를 하거나 Body language를 해서라도 생각이 전달되어야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이다.성공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긍정적인사고를 가지고 말을 해도 긍정적으로 말한다. 그러나 실패하는 사람은 대부분 부정적인사고를 가지고 말을 해도 부정적으로 말한다.찰스캡스가 지은 “혀의 창조적 능력을 사용하라”는 책의 서두에 “당신이 입으로 내는 말은 당신을 성공케 하든지 아니면 당신을 속박할 것이다”라고 했다. 우리는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인생을 성공과 풍성한 삶으로 이끌 수도 있고 자기 말에 얽혀서 피곤하고 고달픈 인생을 살수도 있다. 희망을 말하는 것이다.“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막11:22)하나님을 믿고 산을 향하여 바다로 옮겨지라고 말하고 마음에 의심하지 않으면 그대로 될 것이라고 했다. 내가 하는 말을
“남편이 피곤하다며 성생활을 기피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남편은 불편해 하면서도 늘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옵니다. 왜 그런가요?”“남편은 아이를 싫어하니 아이를 갖지 말자고 합니다. 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요?”“남편과 첫 날밤을 치룬 뒤에 2년이 지나도록 아직 한 번도 성관계를 가져보지 못했습니다.”“병원에 가보자고 하면 화를 내고 집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부부중 한 사람의 동성애로 인하여 고통을 호소하는 배우자를 가끔 만나는 시대가 됐다. 상담과 부부 세미나를 통해 만나게 되는 이들 부부들은 결국 내적치유 프로그램에 참석시켜 치유를 하게 되는데 그 치유가 결코 쉽지 않다. 아직 우리나라는 주로 남편의 동성애가 문제가 되어 고통을 당하는 아내의 호소들이 대부분이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남편들이 교회안에서는 모범적이고 충성스러운 봉사자들로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이다.27살 남성과 오피스텔에서 실제 간접 동거중이던 34살의 신랑은 장로인 아버지와 교회 목사님의 강압적인 강요를 이겨내지 못하고 같은 교회 장로님의 딸과 결혼했다. 물론 목사님이 주례를 했고 교회에서 많은 성도들의 축복속에 결혼을 했다. 결혼한 뒤 성관계를 기피하는 남편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는가? 그럴 수 없느니라.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이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롬9:14~16).“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 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롬9:20~21).기적의 희망적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적이 언제 누구에게 왜 일어나는지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에게는 그 기적이 분명한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불치의 병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들, 사업에 실패하여 더 이상 재기할 가능성이 없는 사람들, 불가능한 상황 속에 있는 사람들이 낙심과 절망 가운데 빠져 있는 것보다 하나님에게 희망을 갖는 것이 훨씬 유익합니다. 기적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지만, 아무에게나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구약 성경에 다니엘의 세 친구가 등
사람의 관계를 이어주는 것은 말이다. 말에 의해 사람과의 관계가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한다. 행복을 만드는 말과 행복을 깨는 말이 있다. 행복하기위해 말을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말이 씨가 된다.우리말에 “말이 씨가 된다.” 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말에 대한 매우 명료한 표현이다. 씨는 심은 대로 나게 되고 심은 대로 거두게 된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고 좋은 씨를 심으면 좋은 것을 거두고 나쁜 씨를 심으면 나쁜 것을 거두게 된다. 씨에는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는 능력이 있듯이 사람의 말에도 열매를 맺게 하는 능력이 있다.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다 창조하셨다. 땅이 공허하고 흑암이 깊은 중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말을 하시자 빛이 생겼다. 하나님께서 창조적인 말을 했을 때 결과가 나타났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하나님 형상대로 지으시고 아담에게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셨다. 아담은 말로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의 모든 생물을 다스릴 수 있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에게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는데 우리의 말에도 창
칠흑같이 어두운 밤, 열차가 장대비를 뚫고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헤드라이트 앞에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손을 흔들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기관사는 급히 열차를 멈추었고, 차장과 열차 승무원들이 밖에 나가보았습니다. 그러나 기관차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20여 미터 앞에 교량 한가운데가 급류에 휩쓸려나가고 없었습니다. 만일 그 이상한 형체가 아니었다면,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몰살하는 사고가 났을 것입니다. 이것은 英國의 빅토리아 여왕 때의 사건입니다. 교량이 복구된 후, 열차는 무사히 런던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상한 형체에 대해 궁금해 하던 기관사가 살피던 중 헤드라이트에 큰 나방 하나가 죽어 붙어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기관차 안에 들어가 얼른 헤드라이트를 켜보았더니, 나방의 모습이 마치 깃발을 흔드는 사람의 형상처럼 보였습니다. 이 사실을 보고받은 여왕은 “그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시느라 행하신 일이다”라고 말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이 사건을 우연으로 보십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기적으로 보십니까? 아마도 불신자들은 우연한 사건으로 볼 것입니다. 혹은 ‘여왕이 그 날 매우 운이 좋았구나’라
누가복음 14장 26~27절에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라는 말씀이 있다.위 말씀은 교회와 복음을 가족보다 그리고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히 여겨야 된다는 말씀처럼 들린다. 한 선교사는 선교를 위해서 가족을 버리든지 가족을 위해서 선교를 포기하든지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맞는 말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먼저 가족을 예로 들어 보자. 가족 구성원이 순기능이면 3세대가 같이 살아도 좋지만 역기능일 경우에는 세대를 분리 하거나 부부라 할지라도 긴박한 상황에서는 따로 살아야 할 경우도 있다. 그러기에 결혼 후에도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 맞느냐 틀리냐는 질문은 우문이다. 부모의 사랑을 많이 받고 인생의 과정 가운데 자신의 필요를 잘 채움 받고 자란 사람은 어려움을 잘 극복하며 사랑을 받은 것처럼 남을 사랑할 줄 아는 성숙한 인격을 가진다. 이 사람은 많은 사람과 같이 있을 때도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이나 사별을 할 때도 적응을 잘 하며 여전히 자신과 남은 사람들을 위해서 서로
과거의 사진들을 보면 무표정한 모습이 많다. 사람들이 사진을 찍기 전에 웃고 떠들고 이야기를 하다가도 단체사진을 찍기 위해 자리를 정돈하고 “사진 촬영하겠습니다. 하나 둘 셋!” 하면 모두가 입을 꼭 다물고 굳은 표정으로 사진을 찍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사진속의 모습이 확 짝 웃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몇 년 전에 주민등록증을 새로 발급하는데 동사무소에서 사진을 찍어준다고 해서 가서 주민등록증의 사진을 웃는 모습으로 바꾸고 싶어서 입을 벌리고 웃었더니 사진을 찍는 담당공무원이 “입 다무세요.”라고 해서 결국은 입을 다물고 찍었던 적이 있다. 신분증에 붙이는 사진은 웃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웃는 모습으로 바꿔도 좋지 않을까? 평소에 웃지 않던 얼굴이 사진 찍을 때 “웃으세요.”해서 예쁘게 웃어지지가 않는다. 그래서 사진사는 “김치 하세요, 치즈 하세요.”하면서 웃는 모습을 만들려고 애를 쓴다.평소에 잘 웃지 않는 사람이 억지로 웃으려면 얼마나 어색한지 모른다. 입술과 구강구조가 입만 열면 미소가 되고 말을 하는데도 윗니가 보이며 웃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사람은 큰 복을 받은 사람이다.많이 웃는 것이 건강에도 좋고 인생을 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