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월 24일부터 31일까지 정성애 해외선교진흥부장과 함께 네팔에서 개최된 서남아시아 선교대회에 참석시 전훈재 선교사님의 안내로 전여회와 수원중앙교회가 협력해 대지구입을 지원한 석띠쌀리 교회를 방문하고 교회 건축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교회는 5월 21일에 평택 에덴교회의 협력으로 건축이 완공되어 교단 100주년 기념교회로 봉헌됐다. 교회와 기관의 협력으로 이루어진 또 하나의 선교후원의 열매였다. 한 교회나 한 기관의 힘으로는 어려워도 힘을 합치면 하나님의 사역은 더 많이 이루어 질 수 있다고 생각된다.전훈재 선교사님은 고아원 사역, 교회 개척사역, 네팔총회와 함께 신학교를 운영하며 열정적으로 사역을 하고 있었다. 전여회는 이 방문을 계기로 여성신학생 2명에게 졸업시 까지 장학금을 후원하고 네팔 침례교 여성연합회와 자매결연을 맺고 현재까지 7년 가까이 여성 사역을 위해 재정적 지원을 하고 있다. 교단 총회는 해마다 교단 발전협의회를 개최했는데 이 해 2월 28일에 대전대흥교회에서 개최됐던 교단발전협의회가 기억에 남는다. 이 모임에서 여성목사 연구위원회와 직제 연구 위원회 보고, 교회 분쟁에 대한 해결 방안, 교단의 단기, 중기, 장기 계
2007년 봄 새벽 3시, 서울 관악구 난곡동 주사랑 공동체교회 담임목사 사택에 전화벨이 울렸다. 조심스럽게 교회 밖을 살펴보니 생선박스 안에 있는 아기를 발견했다 아직은 싸늘한 봄날, 이 새벽에 아기가 혹시 죽지는 않았는지 조심스럽게 상자를 펼쳐보았으나 살아있었다.그 후 목사님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으로 알고 2009년 12월 교회 앞에 베이비 박스(Baby Box)를 설치했다. 지금까지 무려 561명의 아이가 베이비 박스를 통해 살아났다. 지난 주간에 유명한 필립 얀시 부부가 이곳을 방문했다. 캐나다에서 신문을 통해 이 베이비 박스 소식을 듣고 꼭 한번 방문하고 싶었다며 한국을 방문한 하이라이트라고 했다. 그는 “아기들은 목소리를 낼 수 없어서 누군가 그들을 대변해야 한다. 영어에 ‘애드버킷(advocate)’이란 말이 있는데 이는 누군가에게 목소리를 준다는 의미다. 구약에서도 의인은 약자를 위해 목소리를 대변했고 예수님은 우리의 에드버킷”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외국인 아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주 노동자 160만명 시대에 일자리를 찾아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낳은 아기를 이곳에 버리고 가는 것이다. 현재 신고 되지 않은 불법 체류자의 외국인 부모에게 태어
(2007-2008)전여회는 해마다 8월 연차 총회에서 선출된 실행이사들과 장학이사, 회관관리 운영이사, 사랑의 집 관리 이사들을 위해 9월에 훈련 연수회를 1박 2일로 개최하는데 이 해에는 용인 에버랜드 홈브리지 힐사이드 호스텔에서 개최했다. 연수회에서는 먼저 전여회의 사역과 실행이사들과 이사들의 사명과 역할이 무엇인지 교육을 받는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실행이사회를 개최하여 각 분과위원회 위원들을 선출한다. 또한 한 해 동안 받은 사명에 최선을 다할 것을 하나님께 약속드리며 총회 평신도 부장님을 초청하여 헌신예배를 드린다. 특별히 이 해에는 땅밟기 기도에 대한 훈련도 받았는데 에버랜드에 가서 삼성을 위해 기도하며 직접 땅밟기 기도 실습을 하기도 했다. 길고 힘들었던 무더위도 지나가고 아침, 저녁 소슬 바람이 가을의 문턱에 왔음을 실감나게 할 때 무더위만큼이나 온 국민들의 가슴을 졸이며 땀 흘리게 했던 아프간 인질 형제, 자매들이 풀려나 추석 명절을 마음 편히 보낸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렸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순교한 배 목사님에 대해서는 모두가 마음 아파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생명을 드릴 수 있다면 그것은 아주 영
자기의 불행과 실패의 원인을 남에게 돌리지 않고 자기 탓으로 돌리는 사람을 매우 교양 있는 인격자로 모두 치부한다. 반면에 자기의 불행이나 실패가 남 때문이라는 이유를 달면 못난이의 변명이라고 수근 거린다.자기의 불행이나 실패의 원인을 전적으로 100%로 자기 탓으로 돌리는 것이 과연 정확히 옳은 판단인가? 나의 이런 불행상태가 조금은 남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잘못된 생각일까. 물론 자기의 불행이나 실패의 원인이 거의 전적으로 자기 탓임에는 부정할 수 없으나 약간은 남 탓도 아닐까?가령 나라경제가 어려워져서 내가 실직했다고 할 때 그 원인이 실직자 나에게 100% 있단 말인가? 물론 여러 직장인 중에 자기만이 퇴출당했을 땐 자기 탓이 있겠지만 나라경제가 잘 돌아갔더라면 약간의 결점 때문에 자기가 퇴출되었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강원도 제자가 해주는 옻닭을 나는 극구 아내에게도 먹으라고 강권하다싶이 했다. 위장병에 특별히 좋다하기에 위장이 약한 아내를 위해 뒷생각은 못하고 우선 앞생각만 해서 먹으라고 강권했다. 아내는 혹시라도 옻독이 오르면 어쩌나 하면서도 일단 옻고기를 만지기 시작 했는데 손에 아무런 징조가 없었더라는 것. 그래서 나의 강권에 의해서가 아니라
1974년 1월 9일 긴급조치 발동 후 2월 21일(?) 새벽기도회를 인도하고 기도하고 나오는 나에게 검은 복장의 젊은이가 인사를 하고 이름을 물어서 대답하자 잠간 얘기할 것이 있다고 해서 루삥집이지만 들어오시라고 했더니 밖에 잠깐 나가자고 해서 길가로 따라 갔더니 검정색 새단 차에서 또 다른 한 사람이 나오더니 뒤쪽 좌석 문을 열고 밀어 넣어 들어갔다. 놀란 나는 말을 잠깐 하자더니 왜 차에 태우느냐고 했더니 우리는 중정 기관에서 나왔는데 가보면 안다고 하며 나를 태우고 부산 수영에 있는 군용공항으로 데려가 비행기에 태우고 한 시간 후에 서울 김포공항에 내렸다. 큼직한 핸드폰으로 본부에 연락하기를 잘 압송했다고 하자 지시대로 남산 중앙정보부로 이송해갔고 높은 사람 앞에 세우고 소개한 다음 그가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는데로 오른쪽으로 따라 내려가 지하 작은 방에 들어가 수사관과 고된 이틀을 지났다. 22일 조서를 쓰고 저녁 11시경에 풀려나 세종호텔 앞에서 버스로 서울역에 와서 밤기차로 귀가했다.3월 10일 아침에 갑자기 검정색 옷차림의 압송으로 세단차를 타고 부산역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내려 남산 중정으로 가서 지하에 내려가 아무런 수사 없이 열손가락
(2007)미국 남침례교 국제선교회는 미국에 있는 한인 침례교회들과 한국의 침례교회들과 함께 세계선교 전략을 위한 모임을 시작했다. 미국 한인 침례교회, 한국 침례교회, 미국 남침례교 국제 선교회가 돌아가며 모임을 주관했는데 5월 21일부터 24일까지 미국 남침례교 국제선교회 초청으로 교단 총무님, 기관장님들, 침미준 목사님들과 함께 전여회에서는 이정자 회장과 내가 참석했다. 국제선교회 선교사 훈련원에 방을 배정 받아 여장을 풀고 다음날 선교사 훈련에 관한 많은 것을 배우는 기회를 가졌다. 또한 국제 선교회 본부를 방문해 국제 선교회의 사역에 대해 배우는 기회도 됐다. 미국 남침례교단의 협동 프로그램의 협동 기금의 50%와 해마다 성탄절에 드리는 라티문 성탄 헌금으로 선교훈련과 선교사들의 모든 것이 지원 되는 것을 보며 아직도 선교사 자신들이 모금해야 하는 한국 침례교 선교사들의 어려움을 되돌아봤다. 우리교단도 속히 선교사들이 모금에 대한 부담 없이 사역에 전력할 날이 오기를 기도한다. 교회들이, 목회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부인하면 가능한 일일 것이다.우리 교단은 하나님 은혜로 20년 전에 미국 남침례교 국제 선교회의 도움으로 침례신학 대학교 내에 세계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축구대회가 6월 달에 한창이다. 거의 지구촌 식구들의 삼분의 일에 해당되는 약20억의 지구촌 사람들이 즐기고 있다. 자국이 이기면 춤을 추고 자국이 패하면 축 늘어진 어깨가 처량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일본이 코트디부아르와 일전을 벌였다. 나의 가장 먼저 떠오른 기대는 제발 일본이 이겼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생각도 잠시 뿐이고 재빨리 내 마음 속에는 다른 주문이 나를 압박했다. “왜 일본이 이겨야 하느냐?”고. 내가 처음 일본의 승리를 기원했던 것은 일본은 오대양육대주 중에 아시아 주에 속하고 바로 이웃에 있는 나라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 마음의 다른 주문은 답을 내리고 있었다. “일본은 패해야 한다.”라고. 나는 일본 오사카에서 출생했고 해방직전 다섯 살에 귀국했는데 그땐 일본의 강점기였고 그 나라로 인해 나라에 설움과 압박을 당하던 때였다. 지금도 한일관계는 껄끄럽기 제한이 없다. 내 마음은 결단을 내렸다. “일본 지거라, 일본 패하라.” 거의 응원이 나왔고 상대 코트디부아르 나라를 도왔다. 생각대로 1 : 2로 일본은 역전패 당했다. 아주 기분이 좋았다. 한국의 승리 못지않게 일본의 역전패가 기뻤다. 아내도 나와 같은
전국을 다니면서 모금활동에 나섰는데 대전에 들렀을때 대흥교회 안종만 목사의 배려로 뷔페식당에 모임을 가졌다. 누군가 큰 소리로 “한 목사님, 축하합니다!” 했다. 잘못들었는가? 생각하는데 가까이 오신 분은 전 신학대학 정진황 학장으로 또 다시 웃으시며 “축하합니다”하셨다.‘이런 인사가 있는가? 세상에 인사치고는! 저의 딱한 처지를 어떻게 보고 하신 말씀인지? 농담도 지나친 농담이니 농담으로 듣기엔 아닐테고.... 화재에 대하여 부정적인 별의별 소리를 들었는데 이제는 축하의 소리도 듣는구나!’ 그날 저녁 권혁봉 교수의 집에서 잠들기 전에 깊이 생각해 보니 화재 다음주에 욥의 설교를 했다가 화상부모들로부터 욕설 전화를 받은 일이 있었는데 구약학 교수로 욥기를 가르치신 정학장의 축하의 뜻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1990년 BWA 세계대회 준비 차 국내에 체류 중인 Isher Head 박사의 연락으로 BWA로부터 5,000불을 도왔고 선교사들의 만 여불에 침례교단 내의 200여 교회와 교인도 개별적으로 도왔는데 특히 영안교회 안경선 집사와 이제순 목사가 상경하여 500만원 헌금이 기억되고, 외부인사로 중구유치원협회의 100만원와 동양그룹
(2006-2007)2006년 11월에는 미국 남침례교 선교사로 파송되어 부산 왈레스 기념 침례병원에서 원장으로 섬기다가 은퇴하신 우기수(Charles Wiggs) 목사님과 사모님이 15년 만에 서달수(Cloys Starns) 목사님 부부와 함께 한국을 방문하셨다. 육이오 한국 전쟁 직후 수많은 난민들을 치유하기 위해 미국 남침례교단 해외선교회에 의해 부산에 세워진 침례병원은 성장에 성장을 거듭해 오늘날의 침례병원으로 발전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많은 환자들을 치유하고 복음을 전하며 많은 의료인들을 훈련하는 기관으로 부산지역에 침례교회의 위상을 높이 들어내어 왔다. 오늘의 병원이 있기 까지 초창기 병원을 위해 수고하셨던 많은 선교사들의 수고를 우리 교단은 늘 기억해 드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교단 유일의 침례 병원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다. 서달수 선교사님 부부는 부산, 대전, 서울에서 사역하시며 교회들을 도우셨던 분들이다. 사역하셨던 기관들과 교회들을 방문하시던 중에 11월 15일에 그 분들이 전여회를 방문하셨다. 우기수 원장님과 서달수 선교사님 사모님 두분 모두 초창기 전여회와 동역 하시며 전여회 발전을 도우셨을 뿐만 아니라 내가 침례병원 특진실 간호사였
남자들의 눈은 변화무쌍한 조명을 지닌 것 같다. 시시때때로 바라보는 대상이 밉기도 하고 예쁘기도 하게 보여 지는 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남자가 아닌가 싶다.목사인 나도 남자임에 역시 여느사람과 다름없는 변화무쌍한 눈을 가진 것임에 틀림이 없다. 내가 그런 눈을 가졌다는 것을 어느 광고의 표지판에 실린 20여명의 미녀들의 화보를 감상하는 과정에서 발견했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나의 눈도 예쁨을 바라보는 눈이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에. 그 화보를 설명하면 대강 이렇다. 2014년 아시아인천경기대회를 광고하는 장면인데 거기 20대의 미녀 20여명이 한복을 입고 한국지도가 박힌 기(旗)를 흔들면서 뭔가 환호하는 장면이었다. 나는 그 화보를 우연한 장소에서 입수하여 나의 화장실 문에 부착했다. 화장실을 이용할 때마다 그 화보의 20여명의 미녀들을 바라본다. 아내는 영감이 뭐 이런 화보를 붙여 놓았느냐고 성화를 부리지만 그것은 나와 아내의 문화차이라고 엄청난 선을 그어놓고 고집스럽게 그 화보를 지금까지 부착해 놓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화장실을 이용할 때마다 이 20여명의 미녀 중에 누가 제일 미인일까 하고 선발하는 일인데 어느 날은 이 미녀가 선발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