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후배 목회자가 새벽에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했다. 시편 33장 10절을 찾아보라는 말씀이었는데 거기엔 “여호와께서 나라의 계획을 폐하시며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케 하시도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는 언젠가 여러 목회자들 앞에서 이 구절을 본문으로 설교를 하면서 그 때 많이 울었다고 간증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왜 그 말씀을 읽으라고 하셨는지, 그가 무엇 때문에 울었는지 언급하지 않아서 알 수는 없었지만 나에겐 그 성경 구절과 간증이 오랫동안 기억이 됐다. 특히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케 하시도다”란 말씀이 가끔은 문득 생각되어질 때가 있다. “무효케 하시도다”란 히브리어는 “누”인데 “헛되게 하다” “허락하지 않다” “제지하고 좌절케 하다”는 뜻을 가졌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께서 헛되게 여기시고 허락지 않으며 제지하여 없애버릴 사상들이 있다. 이런 사상들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며 인류에게 고통과 해악을 이미 주었거나 계속 줄 수 있는 것들이다. 데이브 브리스(Dave Breese)란 그리스도인 사역자가 “무덤 속에서 세상을 움직이는 일곱 사람”이란 제목의 책을 저술했다. 그 일곱 사람 중에는 현대 공산주의 이론을 정립한 칼 마르크스도 포함
이 기간에 침례교회는 점차 자립심을 배양시켜 갔고,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침례교 정체성을 갖추게 됐다. 윈스톤 크로우리(J. Winston Crawley)는 1950대와 60년대를 거치면서 한국침례교회는 진정한 침례교회로 정돈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타교단에서 넘어온 목회자들과 성도들에게 침례교적인 신앙정신과 교리적인 교육을 통해서 성경 중심적이고 복음전도적인 침례교 신앙을 심어주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3) 한국침례교회 발전기(1968년 이후)에 대한 실천신학적 평가 1968년 재결합한 한국침례교회는 “한국침례회연맹”(이후 1976년 한국침례교총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이라는 이름으로 뭉쳤다. 1970년 교회기금대여위원회가 발족해 교회개척과 확장에 필요한 재정적 필요를 제공받을 수 있게 됐고, 후일 국내선교회로 발전했다. 그리고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침례교 신앙으로 무장된 많은 사역자가 배출되면서 교회개척 사역이 더욱 열기를 띄었고, 그것은 교단 발전에 큰 밑거름이 됐다. 1970년대와 80년대로 이어진 한미연합전도대회는 교회들의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을 가져다줬다. 1970년 한국침례교회는 미국 루이지애나 주 총회와의 연합 사업으로
성서적 목회의 원리와 본질을 벗어나지 않고 교회의현실과 상황에 맞춘 내 몸에 맞는 목회, 우리 교회의 상황에 맞는 목회는 무엇인가? 오늘은 이런 질문에 대한 한 가지 대답으로 하나엘교회의 목회 매뉴얼을 소개하고자 한다. 하나엘교회 목회 매뉴얼은 결코 대단하지도 특별하지도 독특하지도 않으며 누구에게 자랑스럽게 소개할 만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 매뉴얼을 소개하는 이유는 목회 매뉴얼이 없었을 때의 목회와 매뉴얼을 통한 목회의결과가 너무나 큰 차이를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하나엘교회의 주의 장막비전은 주의 장막을 교회 모양으로 단순화시켜 시각화했다. 먼저 도표의 중간에 있는 큰 그림의 장막은 하나엘교회를 이미지화했고 하나엘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할 이미지화 된 단어는 순종이다(마 1:16). “주는 곧 그리스도”란 말씀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삼고 그리스도의 주재권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자들에 의해 교회가 세워진다는 뜻이다. 순종의 기초로 세워진 장막에 5가지 기둥이 있다. 5가지의 장막은 마치 교회를 세우는 기둥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오각형의 주의 장막비전의 그림에 5가지 각은 주의 장막을 세우는 기둥
지금까지 요한복음서 서두에 나오는 로고스 찬미가를 토대로 요한의 기독론적 교훈 중에서 로고스 기독론에 관해 살펴보았다. 이제부터는 요한의 기독론적 칭호 중에서 ‘아들’이란 단어가 사용된 칭호들 곧 “하나님의 아들,” “사람의 아들,” “그 아들” 및 ‘독생자’/“유일한 아들”이 나오는 구절들을 토대로 요한이 제시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와 사역의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요한이 사용한 독특한 기독론적 칭호인 ‘독생자’/“유일한 아들”(the only Son)/“유일하게 출생한 아들”(the only begotten Son)을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특별하고 유일한 존재성에 관하여 알아본다. “하나님의 아들”과 “사람의 아들”(한글 성경에는 주로 ‘인자’로 표기) 칭호들은 공관복음서들에서도 익숙하게 사용됐다. 요한은 이 기독론적 칭호들을 사용하면서도 그가 강조하려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존재성 곧 신성과 인성의 연합이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한 존재성을 제시하는 것에 역점을 두고 있다. 그래서 요한은 ‘누구의’ 아들이라는 기원의 수식어가 없이 ‘아들’을 관사와 함께 사용한 “그 아들”이란 칭호를 특징적으로 사용했다. 요한에게 있어서 “그 아들”은 ‘독
지옥가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죄사함 받아 의인이 되어 영원한 심판인 지옥의 형벌을 피할 수 있다는 것 하나만이라도 엄청나게 큰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과 교통하며 살아갑니다. 예수를 믿기 전에 우리는 영적 고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난 이후로 우리는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만나게 됐고 또한 그분과 늘 인격적인 교제를 통해 친밀한 사랑가운데 살게 됐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시고, 도와주시기 위해 늘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얻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왕의 자녀가 비록 어린아이라고 할지라도 나이 많은 신하들이 그 아이에게 하나같이 꼼작 못하는 것은 왕의 자녀의 권세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귀를,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권세가 주어져 있습니다. 귀신도 쫓아냅니다. 병도 고칠 수 있습니다. 바로와 모세가 대면했습니다. 바로는 세상 것을 다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세상의 엄청난 권세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반면에 모세는 80세에 세상 것은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던 힘없는 노인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싸웠습니다. 결론은 바로가 모세에게 살려달라고 항복을 했습니다. 생명을 얻습니다. 우리
하나엘교회가 목회매뉴얼을 만든 이유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극적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3학년 때 주의 종으로 부름을 받았다. 신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 논현동에 있는 강남중앙교회에서 8년 동안 부교역자 사역을 했다. 교구 사역에서 결실을 보며 사역하던 중 교회개척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어서 순종을 하고 강남중앙교회의 개척 후원으로 2001년 11월 18일 용인시 상갈동 그린빌 프라자 상가 5층에서 교회개척 첫 예배를 드렸다. 강남중앙교회의 사랑과 헌신으로 장소는 주어졌지만 준비된 개척 멤버가 없었기에 아내와 둘이 시작해야만 했다. 대형교회의 부목사로 사역을 하다가 개척교회 담임목사 사역은 그야말로 상황이 많이 달랐다. 개척목회자의 업무는 정기적인 교회청소 및 관리까지 책임져야 한다. 50평의 교회당이었지만 교회당을 관리한다는 것도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3개월이 지나니깐 그동안 부교역자 때 준비한 설교의 총알이 다 없어졌다. 일주일에 5번의 새벽예배 설교와 수요예배, 금요철야 설교, 주일대예배 설교를 준비하고 전해야 했는데 그 당시 나의 심정은 한마디로 설교 준비에 치여 죽을 것 같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개척교회 목사는 설교 사역만 할 수 있는 것이 아
펜윅의 사역 결실로 세워진 대한기독교회는 교회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하여 마태복음 18장 15~17절의 가르침을 따라 교회 치리를 매우 엄격하게 시행했다. 문제가 있는 교인에게는 출교, 정권, 권책 등 세 가지 벌칙을 내렸다. 불신자와 결혼을 하거나 주의 만찬에서 남은 떡을 어린 자녀에게 먹인 일 등등이 징계의 경우가 되기도 했다. 또 침례 대상자에게 “규례문답”을 숙지시켜 시험에 합격해야 하도록 지도했다. 그 내용은 모두 25개 조로 되어 있는데 신앙적 실천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교훈에 일탈한 행위를 범한 자는 책벌하는 데 매우 엄격했으며, 교인들은 책벌을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펜윅의 중심 사상은 세대적 전천년주의, 초교파주의, 축자영감설, 현실적 유일주의, 신앙선교, 오지선교, 자립선교, 토착화선교 등인데, 그의 사역과 그에 의해 세워진 동아기독교를 실천신학적으로 평가한다면 지나칠 만큼 복음전도적이었다는 점을 우선 꼽지 않을 수 없다. 교회는 목양적 기구가 아니라 전도적 기구이며, 사역자도 목회자가 아니라 전도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졌다. 그리고 재정적인 면에서도 매우 독립적이었으며 비타협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의 공급하심
두 차례의 아웃리치를 은혜와 사랑 가운데 마친 후, 우리 주일학교 아이들은 아직도 마음이 들뜬 채로 지내고 있습니다. 아웃리치 덕분에 매우 편한 지난 주일을 맞다가 오늘은 다시 쉴 틈 없는 주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우리 술 중독 할아버지께서 술을 많이 드신 후 교회당에 오셔서, 우리 더함교회에 1년 만에 생긴 새신자 할머니께 갖은 욕설과 시비를 붙은 끝에 모처럼 애쓰고 힘써 모시고 온 새신자 할머니가 그대로 나가 버리셨습니다. 그럼에도 우선 오후 찬양예배까지 모시고 기다리려 했는데, 점심 식사 후엔 우리 최고령 할머니들과 술중독 할아버지와 싸움이 붙어서 교회가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화가 난 우리 집사님이 우리 술 중독 할아버지의 팔을 잡고 끌고 나가려는데, 아예 교회당 바닥에 들어 누우셨습니다. 우리 집사님들이 가셔서 잡아끌어도 꼼짝도 안하고 욕 만하고 누워 계십니다. 주일 오후예배 찬양팀과 함께 준비하다가, 우리 술 중독 할아버지의 아내인 현 집사님. 체면을 생명보다 중시하시는 우리 할머니 집사님의 눈에 눈물이 고인 것이 순간 보였습니다. 그래서 바로 제가 출동하여 대자로 누워버린 할부지 팔을 잡고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리고 “빨리 집에 갑시다. 모셔다 드릴
미국에 있는 동안 생활하던 곳이 미국의 중부지역에 있는 미주리주의 세인트루이스 근처였다. 미시시피강을 사이에 일리노이주와 미주리주가 만나는 곳이다. 짧은 미국에서의 생활이지만, 생각하면 엄청난 어려운 일들을 많은 겪은 시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그네의 삶이 무엇인가를 새롭게 배우게 된 시간이었다. 모두가 나그네와 같은 이민 사회에서 같은 한국 사람들로 인하여 적지 않은 사람들이 상처를 주고 받고 살아가는 있는 모습을 경험한 것이다. 그런데 그 지역의 강퍅한 이유를 한 가지 발견하게 됐다. 영적인 문제로 영적 전쟁터와 같은 세상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방해하는 영적 싸움이었다. 그것은 가까이 있는 일리노이주에 있는 링컨 박물관을 관람했을 때, 더욱 실감하게 됐다. 수많은 사람들의 울부짖음과 통곡이 있었다는 곳, 바로 흑인들이 노예로 팔려가며 가족과 헤어지고 고통 당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한국 교회가 많이 부르며, 한이 많은 한국 사람이 작사한 노래라고 알았던 “주님여 이 손을 꼭 잡고 가소서”라는 노래가 세인트루이스와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됐다. 일리노이주 시카고 도시에 있는 침례교회에서 찬양 사역자였던 토마스(Thomas A. Dorsey
미국 어느 시장에서 한인 교포 두 명이 싸우고 있었다. 그 현장에 흑인 경찰이 오더니 “당신들 교회에 가서나 싸우지 왜 여기서 싸우냐?”고 질책하면서 함부로 말하더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예수님 믿기 전에는 술집에서 싸움질 잘 하던 사람이 어떻게 예수님을 믿고 직분자가 된 후에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갈등과 분쟁을 일으키고, 국내에서 말썽을 피우던 자가 해외에 나가서도 그런 짓거리를 자주하여 교회를 어지럽히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미국 사회에서도 한인 교회 안에서 분쟁이 심했으니 흑인 경찰 입에서 이런 말까지 나왔으리라고 추측되어진다. 누가복음 17장 10절부터 보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질문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니이까?” 예수님께서 대답해주시길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개인의 심령 안에도, 가정에도, 무엇보다도 교회 공동체 안에 이미 있어야 된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시기, 증오, 알력, 반목, 분쟁이 가득한 교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런 교회들은 전혀 바람직한 교회가 될 수 없으며 아예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줄
“목사님, 오늘 서울대에서 하는 학생들 세미나에 제가 도울 일 없을까요?” “고맙습니다. 문 박사님, 있습니다. 괜찮으시면 학생들 간식 좀 부탁드립니다.” “무엇으로 할까요?” “약 20명이니까 피친(피자와 치킨)세트 라지로 4개 정도 주문하면 될 것 같습니다.” “네, 목사님 잠시 후 학교에서 뵙겠습니다.” 약 1년 전 캠퍼스에서 한 형제와 점심을 같이 먹던 중 작은 겨자씨가 하나 싹 텄다. 형제는 조심스럽게 부탁을 해왔다. “목사님, 제가 요즘 기독교 역사에 관심이 생겼는데요. 혼자 책을 읽다가 캠퍼스 오시는 날, 가끔씩 뵙고 궁금한 것 몇 가지씩 여쭈어 봐도 될까요?” 그렇게 해서 매주 만남이 시작됐고, 조금씩 한두 명씩 멤버가 붙기 시작했다. 그것이 현재 매주 5~6명이 모여 기독교 서적을 읽고 나누는 서울대 기독대학원생 독서모임이 됐다. 이 모임은 지난학기부터 주변의 학생들을 초청해 함께하는 오픈 세미나를 가끔씩 열기 시작했다. 지난 학기 처음 4차 산업혁명 관련 화두가 독서모임에서 대화의 논점이 됐을 때, 누군가 함께 하는 초청 세미나 모임을 제안했다. 그리고 기독교인 과학자로 “4차 산업혁명과 기독교적 대응”이라는 주제로 먼저 고민해 오신 전문가
목회매뉴얼에 대한 이론적 근거 교회가 흔들리면 교회 안에 속한 성도들이 흔들리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지진이 났을 때 건물이 흔들리는 이유는 기초를 받치고 있는 지지대인 땅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건강한 교회를 받쳐주는 기초와 같은 역할은 교회가 공유해야 할 교회의 핵심가치이다. 교회는 목적이나 목표보다 가치가 더 중요하다.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교회의 목적이 설정되고 목회의 목표가 세워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를 교회되게 하려면 교회의 핵심가치를 가장 먼저 세워야 한다. 교회의 가치는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목적보다는 ‘우리가 왜 이 일을 하는가?’에 대한 이유를 말한다. 사역의 목적과 방향보다 왜 그러한 목적을 두고 있는지 왜 그러한 방향으로 달려가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 분당에 신도시가 입주할 즈음에 좋은 위치에 교회를 건축해 부흥을 한 교회가 있었다. 분당 가까운 판교에 신도시가 입주할 때 또 한 번의 비전과 목적을 세웠다. 판교 신도시 입주에 맞춰 큰 성전을 지어 이전하는 것이 그 교회의 목적이 됐고 비전이 됐다. 결국 판교에 수천 명이 들어가는 아름다운 성전을 지었다. 비전을 이루고 목적을 이룬 것처
펜윅이 선교사로서 한국에 오기까지의 과정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가정과 교회 지도자들을 통한 가르침과 영적 훈련, (2)교회에서 교사 직분 등을 통한 훈련, (3)직장생활 등 사회 활동 경험을 통한 인성개발, (4)성경 사경회를 통한 선교적 사명 고취, (5)성경연구와 다른 선교사들을 통한 하나님의 뜻 발견, (6)선교 사역지 결정, (7)사역지로 가기 위한 파송 단체 물색, (8)후원자 모집, (9)선교 사역지로 출발. 한국에 도착한 펜윅은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노력했는데, 직접 사역하면서 언어를 배우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러한 그의 경험은 후일 전도자를 길러내는 데 그대로 적용됐다. 한국에 도착한 펜윅은 자신도 전도와 성경교육 사역을 실천하면서 다른 많은 사역자를 훈련해 파송했다. 그가 가지고 있던 전도자의 자격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사람이요,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으며, 성경의 실질적 지식을 알고, 영혼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은 사람”이다. 그는 제자들을 자신의 집에 기거하면서 훈련을 받도록 했는데, 1개월을 기본 단위로 한 주간은 기본적인 교리를 배우고, 세 주간은 나가서 성경을 보급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방식으
얼마 전 금요일과 주일은 좀 힘든 날이었다. 금요일 새벽, 새벽기도를 인도하려 나오려는데 갑자기 몸살 기운이 감돌면서 딱 쉬고 싶단 생각이 들었지 뭔가? 하지만 그 새벽, 갑자기 설교를 누군가에게 맡기기도 그래서 힘들지만 나가서 인도는 했는데, 그때부터 하루 종일 몸살기는 더 커져버렸다. 기도하면서 버텨보려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철야기도회 인도라도 누구한테 부탁할까 했지만, 그 역시 갑작스레 맡기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아무래도 이대론 안되겠다 싶어 오후 늦게 급히 내과를 찾았다. 주사 한방을 억지로 부탁을 하고는 약도 좀 세게 조제해 달라 부탁해 먹고는 철야기도회를 인도했다. 그래서인지 정신까지도 몽롱해져 그 기도회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도 없다. 술 취하면 필름 끊긴다더니 약에 취한 나도 그랬다. 하지만 프로(?)답게 애써 태연한 척은 했다. 물론 예민한 성도들은 눈치 채셨을 수 있다. “목사님이 다른 때보다 좀 힘들어 보이신다.” 그래서 철야기도회가 끝나기 무섭게 사택으로 돌아왔다. 아내와 딸아이는 아직 기도중이라는 문자를 받고는 “먼저 자겠다”며 누웠다. 그렇게 약 기운에 취하니 토요일 아침 늦게까지 잤다. 그러고 나니 신기방기, 몸은 한결 가벼워지
목회매뉴얼의 필요성 “지금은 목회하기가 어려운 시기이다” 개척뿐만 아니라 기존교회도 점점 성장 동력을 잃고 있다. 정말 목숨을 내놓을 만한 열심도 없고 특별한 능력도 없고 새로운 패러다임의 적용도 없으면 교회성장이 어려운가? 목회자가 주의 종으로 헌신하고 4년 이상의 신학교육을 받고 부교역자 경험을 했고, 또 소명 가운데 개척을 하였거나 목회하고 있으면 그 정도로 충분하지 않는가? 국민일보를 비롯해 기독교신문이나 교단신문에서 여전히 “이 세미나에 오기만 하면 우리의 목회가 달라질 수 있다”는 광고가 넘쳐나지만 어떤 경우는 오히려 목회의 발목이 잡힐 수도 있다. 지금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목회자들이 있다면 지금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목회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교회는 생명 공동체이다. 교회의 주인은 주님이시다. 목회는 목회자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저 주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뿐이다. 그러니 목회자는 복음의 확신을 갖고 목회철학을 온전히 성경에 두고 그것에 맞춰 잘 시행하기만 하면 된다. 시행에 있어서 좀 어설프고 부족해도 교회는 주님의 소유이기에 주님의 돌보심 가운데 자연스럽게 성장한다. 그래서 교회는 목회자가 특별한 능력, 특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