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하나님의 성품에 이르는 여덟계단_1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라(벧후 1:3~11) 최병락 담임목사
[주일예배] 정말로 살아나고 싶습니까? 사무엘상 20장 27-34절 안희묵 담임목사
[주일예배] 애굽의 재앙이 주는 교훈 출애굽기 9:1~7 국명호 담임목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설교 영상을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주일예배] 주께 돌아가자 호세아 6:1~3
공기는 무색, 무취의 투명한 물질로 지구상에서 가장 많습니다. 공기 속에는 산소 21%, 질소 78%로 이들이 공기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으며 아르곤, 이산화탄소, 수소, 네온, 헬륨 등의 소량 원소들이 있으며, 공기는 신선한 산소와 인체에 유익한 음이온 물질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물질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생물체는 호흡한 산소를 이용해 영양소를 산화시키고 이 과정에서 생기는 에너지에 의해 생명 활동을 영위하는데 산소가 부족하면 체내의 가스교환이 이뤄지지 않아 호흡곤란과 쇼크를 일으키게 됩니다. 산소는 체내에 정체된 독가스 즉 일산화탄소를 이산화탄소로 만들어 체외로 발산시키기 때문입니다. 우리 몸에는 체중의 약 70%가 물로 되어 있는데 이 70%의 물이 각종 공해로 오염되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 70%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혈액을 깨끗하게 하는데 바로 산소가 가득 찬 공기입니다. 따라서 오염된 공기는 우리의 혈액을 탁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인간의 뇌는 체중의 2%밖에 되지 않지만 전체 산소 소모량의 20%를 차지하고 있으며 200억 개나 되는 뇌 세포의 생존과 발달이 신선한 공기 즉 산소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마시는 공기의 산소
기독교한국침례회의 전신인 대한기독교회는 일제강점기 교단 창설자 말콤 펜윅 선교사의 비정치적 신학의 영향으로 초교파적 항일운동에 소극적이었다. 교단은 민족주의에 기초한 독립운동이나 항일활동을 전개하지 않았으나, 친일을 결정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반대로 성경적 진리와 복음주의 신앙을 지키는 과정에서 일제의 통치에 저항했고, 결과적으로 항일활동을 실행했다. 대한기독교회는 애국주의를 표방했으며, 일제의 통치가 신앙의 자유와 정교분리를 침해하는 경우 만난(萬難)을 무릅쓰고 항거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예로는, 1)을사늑약 체결 직후인 1905년 11월 19일 장로교, 감리교와 함께 교단 연합구국기도회를 개최했고, 2)1906년 펜윅 작사의 애국가를 교인들에게 보급했으며, 3)1916년 「포교계」 제출을 거부해 수난을 당했고, 4)1930년대 신사참배를 지속적으로 반대해 박해를 받았으며, 5)1940년대 교단 폐쇄를 불사하면서도 예수 재림과 천년왕국 신앙을 고수했다. 기독교한국침례회의 전신인 대한기독교회는 일제 강점기 민족의 아픔에 동참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대표적인 한국침례교 역사가 허긴 박사는 대한기독교회는 선교사 말콤 펜윅의 영향으로 1905년 을사
[주일예배] 살아남을 넘어 살리는 자로 사무엘상 17:41~49
[주일예배]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출애굽기 8:1-15
[주일예배] 산아 네가 무엇이냐 시리즈 12 산을 평지처럼 걸어라(하박국 3:17-19)
특별 계시란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모든 사람이 아닌 특별한 대상에게 일반 계시에서 얻을 수 없는 자신과 자신의 창조물에 대한 특별한 내용을 특별한 방식으로 직접적으로 드러내신 진리를 의미한다. 특별 계시의 대상은 하나님의 선택된 언약 백성으로서 구약 시대에는 아주 특별한 경우(멜기세덱과 욥)를 제외하고는 이스라엘이었으며 신약 시대에는 교회의 성도들이다. 특별 계시의 내용으로는 자연과 인간의 양심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삼위일체성과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그분의 형벌 대속적 죽음과 부활을 통한 죄사함과 칭의, 성령의 중생과 내주하심, 교회와 그리스도의 재림과 최후심판과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것들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체험하고 그 하나님의 구원 역사로 그분과 사랑의 관계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오직 아들의 소원대로 아버지께로부터 계시를 받은 자만 가능하다(마 11: 27; 요 17:3, 6~8, 23~25).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밝힌 베드로의 신앙 고백이 베드로의 인간적 통찰력이 아닌 하나님의 계시에 의한 것임을 지적하셨다(마 16:17). 예수 그리스도가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 성부와 완전
아래 그림은 정체되어 있고, 점점 쇠퇴해 가는 교회는 기존의 형식화와 제도화에서 벗어나, 2단계의 무브먼트의 동력을 회복할 수 있어야 한다. 무브먼트로의 회복은 단순한 개선이나 보완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뿌리로부터 완전히 새로워지지 않으면 안된다. 스티브 애디슨은 사역(Ministry)과 무브먼트(Movements)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사역은 누군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도와 목표를 이루는 것이라면, 무브먼트는 내가 누군가를 도와 그로 하여금 목표를 이루게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말씀으로 돌아가고, 성령으로 돌아가고, 사명(Mission)으로 돌아가야 함을 역설한다. 코로나19가 시작되던 2020년, 북미에서는 그 전부터 계속 증가하던 문닫는 교회의 수는 급격히 증가하게 됐다. 30만개의 교회 중에서 앞으로 18개월 이내에 6만개의 교회들이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내다 봤고, 실제로 그렇게 진행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위기 속에서 교회가 점점 쇠퇴하고, 급기야 소멸되기 전에, 무브먼트를 회복해, 다시 부흥의 길을 가게 될 수는 없는 것일까? 마른 뼈가 다시 살아나듯이, 무너진 성벽이 다시 회복되듯이 우리의 교회도 다시 회복되기
[주일예배] 살리는 영이 살아나게 한다 사무엘상 16:6~14
[주일예배] 삶으로 번역하는 성경 사도행전 2:43~47 조항철 목사(비전교회) 아래 영상을 클릭하면 새 창으로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주일예배] 산아 네가 무엇이냐 시리즈11 시험의 산을 옮기라(마6:13)
초기 한국교회의 선교사의 회개 미국에서 1906년에 윌리엄 시무어에 의해 로스엔젤레스 아주사 거리(Azusa Street) 부흥집회에서 본격적으로 성령의 불길이 타올랐던 시기에, 한국은 1907년도에 평양에서 영적 대각성부흥운동이 일어나게 됐다.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복음을 전하기에 가장 어려운 나라 중 하나였다. 불교와 샤머니즘의 뿌리 깊은 전통 가운데서 외부 문화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한국 땅에 처음으로 기독교가 전래된 것은 1784년 천주교 신부들에 의해서였다. 1866년 대원군 집권 당시에는 그 핍박이 극에 달해 약 8000명의 천주교 주교와 신부 그리고 신자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했다. 최초의 개신교 역사에 있어서 선교사들이 인천 항구에 첫 발을 디딘 것은 천주교가 들어온 지 약 100년이 지난 후였다. 1884년에 장로교 선교사인 호레이스 언더우드와 감리교 선교사인 헨리 아펜젤러가 나란히 한국 땅에 발을 디디게 됐다. 두 선교사는 모두 학생 자발운동 출신으로 같은 배를 타고 한국에 온 것이다. 그런데 개신교 선교사로서 이들보다 먼저 한국에 도착했으나 일찍이 순교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1865년에 영국 웨일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