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은 곧잘 별일도 아닌 것 가지고 시작되는데 산으로 올라갔다가 건너지 말아야 할 강까지 이르기도 한다. 왜 싸움이 시작되었는지 기억도 못하는 경우도 태반이다. 싸움이 커지고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됐다고 말하는 부분들은 대부분 시초의 갈등 때문이 아니다. 싸우다 중간에 던져진 말 때문에 더 열 받고, 그 반동으로 화나서 한 대꾸가 더 큰 싸움으로 이어진다. 이혼도 애초에 문제가 되었던 직접적 원인 때문이라기보다는 싸워가는 과정에서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되면서 헤어져야겠다는 결론에 이른다. 교회의 갈등도 시작을 따지면 어이없을 정도로 허무한 경우가 태반이다. 그런데 별일도 아닌 작은 불씨가 초가 삼간을 다 태운다. 별일도 아닌 시작에 뒤따라오는 반응이 갈등의 방향을 결정한다. 일하며 상사에게 스트레스를 있는 대로 받던 남편이 집에 들어와 애들 시끄럽다고 짜증을 부린다. 들어오자마자 짜증인 남편에게 서운해서 대뜸 애들한테 해주는 게 뭐 있는데 성질이냐고 되받아친다. 졸지에 나쁜 아빠가 된 남편은 너는 잘하는 게 뭐가 있냐고 한 방을 날린다. 그렇지 않아도 육아에 살림에 지치고 자존감이 바닥이던 아내는 내가 너 때문에 이러고 산다고 원망을 한다. 열 받은 김
버림받은 아이가 안전하게 생존하려면 자신의 부모를 이상화하고 자신이 나쁘다고 생각함으로써 자신을 분열시켜야만 한다. 이렇게 분열된 자신의 한 부분은 사실 자신이 받아들기를 거부한 부모의 일부분이다. 아이는 이렇게 분열되고 금지된 자기를 다른 사람들, 즉 자신의 가족이 아닌 타인에게 투사한다. 그리고 상처를 주는 부모의 목소리를 자신의 내부로 투사하게 된다. 이 말은 아이가 원래 자신의 부모로부터 들었던(상처가 되는 부정적인 말) 대화를 자동으로 계속 자신의 내부에서 듣게 된다는 것이다. 긍정적 이미지를 받든 부정적 이미지를 받든 아이는 자신이 부모에게서 양육을 받은 대로 자신을 본다. 오랫동안 거짓 자기를 자신으로 동일시하다 보면 자신의 진정한 감정, 필요, 욕구를 거의 의식하지 못하게 된다. 즉, 수치심이 내면화가 된다. 진짜 자기와의 의식적인 접촉은 차단되고 진짜 자기는 존중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순종은 사랑을 통해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다. 이는 실제적인 참 자기로서의 건강한 생명이 자녀나 타인에게 흘러 그 대상들도 역시 참 자기로서 건강하게 소통하게 되는 교류를 말한다. 순종이 강요되는 가운데 그와 같은 규칙에 의해 ‘좋은 아이’(거짓 자기가 기능을
가족의 역기능 가운데 부모가 자녀에게 상처를 주는 학대에는 성적, 신체적, 정서적 학대 등이 있다. 첫째, 성적 학대다. 성적 학대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그러나 신체적이지 않은 학대는 학대가 아니라고 오해하기 쉽다. 부부 중 어느 쪽이든 자신의 배우자보다 자녀가 더 중요하다면 잠재적인 정서적 성적 학대가 된다. 부부 사이의 갈등과 부부 중 한쪽이 자녀와 밀착된 것이야말로 가족의 대표적 역기능의 삼각구조다. 즉 부모가 부부 사이에서 해결하지 못한 신체적, 정서적, 심리적인 필요를 아이를 이용해서 채우게 되기에 일종의 학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역기능의 삼각구조’라고 부르고 싶다. 부부가 갈등이 있을 때, 아이의 아빠가 주로 일을 나가면 집에서는 엄마가 자녀들과 밀착이 된다. 특히 이성의 자녀인 아들에게 밀착이 된다. 그러면 엄마가 아이의 심리적인 대리 아내가 되고, 아이는 엄마의 심리적 대리 남편이 된다. 이렇게 되면 아이는 아이로서 그리고 자녀로서 참 자아를 잃어버리고 누군가의 대리인이요, 역할을 하게 되기에 거짓 자기를 형성하며 가면을 쓰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학대가 되는 것이다. 둘째, 신체적인 학대는 정신
예수 그리스도는 한 마리의 ‘잃은 양’이라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셨다. 그들을 찾아가 필요를 지원하고 회복시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셨다. 아흔아홉 마리 양들을 두고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것은 시간적·경제적으로 합리적 판단이라 볼 수 없겠지만 ‘잃은 양’에 대한 사랑은 그런 모든 수고에 비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한 영혼은 천하보다 귀한 것이기에 얼마든지 그럴 필요가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에게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간곡하고도 단호하게 명령하셨다(눅 10:37). 필자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방문상담의 필요 성과 효과를 경험한 바 있다. 안면신경이 마비되어 입이 한 쪽으로 돌아가고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느 누구에게도 그 모습을 보이기 싫어 자신을 고립시키고, 하나님에 대한 분노와 원망 감을 가지고 살았다. 그때 ‘잃은 양’과 같은 소년을 찾아와 손을 내민 사람은 이웃에 사는 중년 여성 한 사람이 유일했다. 전문적 상담훈련은 없었지만 어린 소년의 내적 고통을 공감하고 들어주며, 욥의 친구들처럼 문제나 잘못을 묻는 대신 위로와 격려, 다시 활짝 웃는 날이 올 것에 대한 소망을 심어주고 기도해 줬다. 그 방문 대화가
2020년 한해는 참 어두운 한해였습니다. 1월 중국 우한에서 날아온 코로나19는 제3차 유행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2단계에서 2.5단계로 격상시키면서 음식점, 호텔, 극장 등의 영업시간이 제한되고 교회도 예배를 비대면 또는 제한된 인원으로 드려야합니다. 코로나가 온 세상을 멈추게 했지만 세월은 멈추게 하지 못했는지 코로나 상황 속에서도 크리스마스의 계절은 어김없이 돌아왔다. 그러나 분위기는 그리 밝지 못합니다. 크리스마스는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로 영어로는 그리스도(Christ)의 미사(mass)라는 의미로 프랑스에서는 노엘(Noel), 이탈리아에서는 나탈레(Natale), 독일에서는 바이나흐텐(Weihnachten)이라고 한답니다. 12월 25일을 크리스마스로 지키지만 신약성서에는 마리아가 하나님의 성령으로 임신해 그리스도가 탄생하는 내용을 소상히 기록하고 있지만 그날이 언제인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크리스마스가 12월 25일로 정해진 것은 교황 율리우스 1세 때였습니다. 1세기 말부터는 그리스도교 국가 전체에서 이 날을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로 지키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기독교 역사상 유래
FAMILY는 FA+M+I+L+Y의 결합으로 각각 FAther, Mother, I, Love, You를 말한다. 아빠가 엄마에게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 가족이다. 아담이 하와에게 사랑의 고백을 한다.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창 2:23). 사랑은 서로에게서 한 몸 됨의 관계를 말한다. 이처럼 부모가 서로 사랑하는 가족에 있어서 아이들은 부모가 한 몸 됨의 관계를 보게 되는데 이것을 ‘동일메시지’(同一 Massage)라고 부르고 싶다. 아빠와 엄마가 한 몸이고 부모와 자녀가 한 몸이라는 의미의 동일메시지다. ‘세상은 남녀평등이다, 여성상위다, 역차별이다’ 라고 말을 하지만 수평관계도 아니고 수직관계도 아닌 그저 한 몸일 뿐이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주시니라”(엡 5:22~23) 그러므로 남편과 아내는 누가 위냐 아래냐가 아니라 머리와 몸이 한 몸이 될 때 온전한 인격이라 부를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코로나19라는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격변의 시대를 지나면서 우리의 일상이 멈췄다. 직장에서 일하는 모습이 달라지고 있고, 경제활동의 종류와 양상이 변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돈을 번다는 사람과 돈을 잃는다는 사람이 극명하게 갈린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당연히 여겼던 것들이 불가능해졌다. 친구들과 만나 수다를 떠는 것은 물론이고 집 밖에서 몰려 노는 아이 들의 고함소리, 웃음소리도 그쳤다. 하다못해 아프신 부모님을 방문하는 일도 금지됐다. 노환으로 몸이안 좋으셔서 요양원으로 가신다는 집사님의 전화가 마지막이 됐다. 목회자로서 심방도 심지어는 장례조차도 허락되지 않는다. 교회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도할 수도, 나가서 전도도 할 수 없는 열악한 상황이다. 사람에게 너무나 자연스러 웠던 삶의 모습들이 다 멈추어 섰다. 그리고 언제 이 사태가 종식될 지는 기약이 없다. 모든 것에 쉼표가 붙여졌을 때 우리는 갑작스러운 ‘정지’의 순간 앞에 선다. 여태껏 해오던 일들도, 숨가쁘게 달려가던 삶도 멈추어 섰을때 당혹감과 혼란은 말할 수 없이 크다. 알코올 중독이 몇십 년째 계속되던 사람이 어느 순간 술을 마시지 않으면 그 빈 잔에 대체 무엇을 채워야 하는지, 그 시간에 무엇
옛날에 어떤 나무 꾼이 산에 가서 나무를 한 짐 해서 산에서 내려오다가 지게를 받쳐놓고 땀을 닦고 앉아 쉬고 있는데 처음 보는 예쁜 새 한마리가 앞에 날아와 앉았다. 나무꾼은 생각하기를 이 새가 사람들에게 들었던 엄청난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바로 그 파랑새일거라고 생각하고 저 파랑새를 잡으면 내게 엄청난 행운일 올 거라고 생각하고 새를 잡으려고 살금살금 다가가면 새는 몇 발짝을 폴짝 날아가고 이번에는 잡아야지 하고 살금살금 가서 손을 내밀면 새는 폴짝 날아가서 몇 발짝 앞에 걸어가는 것이었다. 손만 펴면 잡힐 것 같아서 숨을 죽이고 잡으려고 하면 새는 저만치 달아나고 잡힐 듯 잡힐듯하면서 잡히지 않아서 안달이 난 나무꾼은 한 발 한 발 새만 보고 좇아가다 보니 새는 간 곳 없고 나무꾼은 깊은 산속 에서 길을 잃고 그만 날이 저물었다. 나무 꾼은 산을 헤매며 고생하다가 나무꾼을 찾아 나선 동네 사람들에 의해 간신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 성실하게 일을 해야지 행운을 바라고 허황된 꿈을 쫓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파랑새를 잡겠다고 좇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로또복권이 내 인생에 파랑새가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를 통하여 개인의 자아상을 분석하는 것을 교류분석(Transactional Analysis)이라 한다. 교류분석은 성격, 대인관계, 의사소 통에 관한 이론의 하나다. 자아(ego)는 크게 3가지(어버이자아, 어른자아, 아이자아)로 나뉘고 어버이자아는 비판적이냐 양육적이냐 두 가지로 나뉜다. 아이자아는 자유아이자아, 교수아이자아, 적응적인 아이자아로 나뉜다. 적응적인 아이자아는 반항적으로 적응하느냐, 아니면 순응적으로 적응 하느냐로 다시 두 가지로 나뉜다. 짧은 글로 교류분석을 설명하기는 불가능하지만 반항적으로 적응한 아이나 모범적으로 적응한 아이나 둘 다 상처가 있고, 3세대의 관계적인 측면에서 역기능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녔다. 우리는 단지 모범생이면 괜찮지 않느냐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부모에 의해 상처를 받게 되면 자신의 실제적인 참 자아가 숨어 버리고 모범생으로 적응되어진 가면을 쓰게 되기 때문이다. 역기능 가정에서 받은 상처는 내면에 수치심을 끌어안게 한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의 수치심을 가리기 위해 상담자나 봉사자, 또는 목사가 될 수도 있다. 반대로 반항아의 가면을 쓸 수도
최근에 젊은 개그우먼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해 자살에 대해 또한 번 관심을 가지게 됐다. 국민일보에 “여성 덮친 코로나 우울 2030극단 선택 늘었다”는 제목의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코로나19 사태가 지속되면서 여성 자살률이 전년 대비 7.1%나 더 늘었다고 했다. 2020년 6월까지 자살자는 6278명이 라고 하니 매년 1만 2000명 이상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체 수치는 전년도와 비슷한데 올 상반기 동안에는 여성 자살비율이 전년보다 더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으며 20대 30대 여성들이 4~5배나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1인 가구 여성들이 많은데 코로나 장기화로 직장을 잃거나 개인 사업장을 폐업하면서 실업자가 되고 카드로 생계를 유지하다가 연체 압박을 받으며 한계상 황으로 몰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늘었다는 것이다. 통계적으로도 카드연체율, 현금서비스 사용률, 주거지원 요청비율, 자살동향 데이터 등 모두가 20대 비정규직 1인가구 등의 특징이 있다고 한다. 코로나19로 타격받은 젊은이들이 비대면이 일상이 되면서 기존의 안전망이 무너지면서 우울 증에 빠지고 삶의 압박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가족의 필수조건이라면 결혼이다. 그로 인해 자녀를 생산하고 대를 잇고 또 다른 가족으로 세대를 걸쳐 종족을 보존하게 된다. 그러므로 세대를 걸쳐 지속되는 가족의 체계에서 중요한 본질의 의미를 가진 단어가 ‘참 자기와 거짓자기(True Self False Self)’다. 참 자기는 어려서부터 자신의 부모에게서 받은 좋은 영향으로 분화(分化)가 잘 되고 건강하게 성숙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이 부모와 자녀의 순기능적인 관계에서는 부모처럼 자녀들이 건강하게 성숙하여 결혼을 하고 또자신의 부모처럼 자녀를 낳아 좋은 부모가 된다. 나는 6·25전쟁 때 아버지를 잃은 유자녀 (遺子女)들을 대학 내에서 몇 개의 팀으로 나누어 강의로 만났다. 강의 겸 집단 상담을 2년에 걸쳐 진행했다. 이제는 이분들이 70세 전후의 조부모 세대가 됐다. 거의 대부분 어린 시절의 상처가 있었다. 자신의 배우자를 죽이고 싶다는 표현을할 정도로 상처가 깊은 분도 있었고, 자녀들에게 한 번도 긍정적인 말이나 사랑의 표현을 못해 본 사람도 많았다. 이혼과 사별을 한 분에 게는 재혼을 권했지만 역기능의 상처로 얼룩진 과거의 상처는 선뜻 재혼을 하려는 의지를 꺾어 놓았다. ‘왜 또 그 고생을 해야
2019년 12월부터 시작된 코로나19의전 지구적 확산은 우리의 일상을 통째로 바꿔놓았다. 이전에는 경험해 본 적없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시행해 오면서 경제 활동은 위축되고 생계는 힘들 어졌다. 학교와 직장은 비대면 온라인 시스템에 적응하느라 여전히 분주하다. 중요한 업무회의까지 랜선으로 진행되고 있고, 친구를 만나기도 부담스럽다. 오랜 기간 준비해 온 주요 행사들 또한 모두 취소되거나 비대면으로 간소하게 치르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이와 연관된 스트레스로 불안, 우울, 무기력 감을 호소하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다.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어쩌면 무기력감, 흥미와 의욕의 상실, 우울한 기분으로 대표되는 “코로나 블루”는 우리에게 또 다른 메시지를 주고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욕심내지 않는 삶, 기본에 충실하되 기다리며 사는 삶을 받아들이고 감내해 가라는 징후일 수 있다. 현대인들은 지금까지 농경문화에서 도무지 맛볼수 없었던 광속의 짜릿함 속에서 살고 있다. 인터넷, 물건배송, 음식 배달 모든 것이 속도전쟁이다. 느리면 살 수 없을것 같은, 아니 속도를 숭배하는 세상 속에 사는 것 같다. 삶이 풍요로워지려면 속도에 저
요즘처럼 집에 콕 갇혀있어야 하는 때에는 우리와 연결된 많은 것들이 단절된다. 교회, 직장, 학교를 포함한 일상의 공간들과 단절됐다. 한없이 길어서 고슴도치의 형상이 된 아들의 머리나, 아들 머리 자라듯이 계속 늘어가는 옆구리살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온라인으로 만나는 사이버 공간들은 편하긴 하지만 사람 간의 친밀감의 욕구들을 다 채워주지 못한다. 윗도리는 셔츠 입고, 아랫도리는 잠옷 입고 참석하는 회의는 반만 진지하다. 친구들과 만나서 수다 떨고 밥 먹고 차 마시던 공간도 여유도 사라졌다. 집에 머무르라는 명령이 슬슬 풀려가고 있지만 역시 아직 사회적 거리를 유지해야 할 것이 고, 사람과 사람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뭔가 찝찝하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아주 가깝게 남겨진 유일한 존재가 가족이다. 쳐다보고 만지고 부대낄 수 있는 단 하나의 관계다. 코로나19가 시작되면서 각자의 집에 갇힌 생활이 시작되면서 다시 한번 떠오른 이슈는 가정폭력이다. 학교에 가지 않으면 굶어야 하는 아이들이 생겨난다. 어떻게 이 풍요의 나라에서 아이들이 밥을 못 먹을 수 있냐고 질문하겠지만, 하루 종일 나가서 일해야 겨우 먹고살고, 그나마 이 경제적 재난에서 한 달이라도 수입
매년 11월 15일이면 영국 북서부에 있는 샌턴 브리지라는 시골 마을에서는 ‘세계 최고의 거짓말쟁이 대회’가 열린다. 19세기에 이 마을에서 살았던 윌 릿슨이라는 노인을 기리기 위한 행사인데 그는 술집을 운영하면서 늘 거짓말로 손님들을 즐겁게 해주었다고 한다. 이 대회에서 수상자가 되려면 심판들과 청중들 앞에서 어떤 최고의 거짓말을 해야만 됐다. 거짓말도 ‘선의의 거짓말’ ‘악의의 거짓말’ ‘허풍치는 거짓말’ 등으로 다양하다. 누군가 유머스런 거짓말을 모은 것을 읽어봤더니 황당무계했다. ‘동물원에서 개미가 코끼리를 물어 죽이는 것을 봤다’ ‘산불이 났는데 덩치 큰 사내가 오줌을 눠서 껐다’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것은 여자의 입이다’ 이런 것들이었다. 세계 최고의 거짓말 대회에서 2007년 우승자는 영국 성공회 소속 한 주교였는데 그는 “나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라고 했다. 이 대회는 세계인들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지만 정치인과 변호사는 참가 불가이다. 이들은 워낙 거짓말에 익숙해 있을뿐더러 프로들로 봐서 아마추어들과 겨루는 것을 금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임기 중에 하루 평균 16번씩 20,000
사랑이라는 말은 어떤 말보다도 아름답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말이다. 사랑에 대한 사전적 의미는 “다른 사람을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런 관계나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사랑이라는 말을 붙인다고 다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사랑에는 “아가페” “필레오” “에로스” 의 세 종류가 있다고 한다. 아가페는 신이 인간을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위하여 독생자를 대속 제물로 주기까지 죄인을 조건 없이 사랑해 주시는 무한한 사랑을 말한다. 필레오는 인간적인 사랑, 조건적인 사랑, 친근하고 우정에 가까운 사랑으로 사람과 사람 간의 인격적인 사랑을 가리킨다. 에로스는 육체적인 사랑 남녀 간의 사랑을 말한다. 남녀 간의 사랑의 최고의 표현은 에로스(eros) 육체적인 사랑 섹스일 것이다. 섹스는 부부간의 사랑에 있어서 최고의 사랑표현이지만 대상이 달라질 때는 사랑이 아니라 쾌락의 수단이 되고 죄가 되므로 하나님은 에로스 사랑 즉 섹스를 금지한 대상을 정해줬다. 첫째, 짐승과의 수간이다. 짐승과 변태적인 성행위를 금지하고 남자든 여자든 짐승과 교합하면 사람도 죽이고 그 짐승도 반드시 죽이라고 했다. “너는 짐승과 교합하여 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