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남아공에 요청했던 비자취득에 꼭 필요한 현지교회의 초청장이 한 달여 만에 도착했습니다. 이 일에 주님의 보이지 않는 은혜가 있었습니다. 2주 늦어도 3주면 오는 편지가 너무 지연되면서 우편물 분실을 우려했는데, 지난 금요일 아침 7시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저희가 임시로 살고 있는 시골마을에 저와 이름이 같은 할아버지가 살고 계셨던 것입니다. 우편배달부는 주소지를 확인하지 않고 이름만 확인하고 그곳에 보냈던 것입니다. 그 분은 항상 자신의 것이 아니면 무조건 반송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날에는 돌려보내지 않고 뜯어보았다가, 누군가에게 중요한 편지라 여겨져서 전화를 주신 것입니다. 정말 주의 특별한 은혜였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에 한국에서 준비해야 할 서류 준비로 분주했습니다. 특별히 요즘 남아공 비자법이 강화되어 비자취득이 쉽지 않다는 소식을 종종 듣습니다. 많은 수수료를 들여 대행업체의 도움을 받아도 여러 번 거부되는 경우가 있다고 하지만, 저희는 예전처럼 직접 서류를 준비해서 접수하려고 합니다. 인터뷰도 해야 합니다. 특히 재정 증명과 은행 잔고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기도로 잘 준비해서 3년 봉사자비자(Visitor’s Vis
1. 위기(재난) 관리 평가 가. 선교사회의 좋은 전통 기독교를 억압하고 선교활동에 적대적인 네팔의 분위기와 정부정책으로 선교사회 내에는 서로 돕고 위로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레 형성되었다. 초창기 선교사들로부터 선교사들 간의 친목과 화합을 절대적인 가치로 인식하는 좋은 전통이 세워진 것이, 갑작스럽게 닥친 대지진이라는 큰 재난 중에서도 선교사회가 힘을 합쳐 연합 구호활동을 효과적으로 신속하게 해 나갈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나. 비상 연락망 확보 또 네팔인들의 느긋한 천성과 견고한 공동체 의식으로 인해 재난상황에서도 사회 질서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었던 것 또한 선교사들이 구호활동에 안심하고 집중할 수 있었던 주요한 여건이 되었다. 음성통화가 불가능한 상태였음에도 3G 데이터 통신이 작동하여 카카오톡(카톡) 통신이 가능했던 것이, 신속하고 효과적인 구호활동을 가능케 했던 절대적인 요소였다. 재난지역으로 급파된 구호물품 운반팀과 이루어진 카톡 통신으로 현지 상황파악은 물론, 구호물자 확보, 재정 확보, 자원봉사 자원 활용, 미디어 정보전달 등에 있어서 실시간 정보교류가 이루어짐에 따라, 재난대책본부 상황실은 순간순간의 필요에 빠르게
동서 길이가 20km, 남북 길이만도 10km에 이르는 거대한 사원으로 그 중 안젤리나 졸리가 주연한 툼라이더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앙코르톰과 앙코로와트가 가장 유명하다. 머리가 7개인 나가(뱀신) 두 마리를 서로 껴안은 신들이 다리 양쪽으로 쪼그리고 앉았는데 왼쪽에 54명의 선한 신(善神)이고 오른편의 54명은 악신(惡神)인 아수라 상이 있다. 앙코르와트는 수리야바르만 2세의 장례식을 위해 지어진 하나의 묘지다. 이 건물을 짓기 위하여 37년 동안 하루에 동원된 인원만도 10만 명이 넘었고, 코끼리가 4만 마리나 동원됐다. 이 사원을 짓기 위하여 쓰인 사암은 여기서 60km 떨어진 톤레삽을 통하여 운반해 왔다. 우기와 건기라는 두 계절만 존재하는 열대지방으로 건기가 되면 거의 비가 오지 않아 메마르고 건조하여 먼지가 많이 날린다. 우리가 갔을 때에도 4개월 가량 비가 내리지 않아서 신작로길인 마을 지붕과 나무들에는 뿌연 먼지가 쌓여 있었다. 우기에는 비가 6개월간 거의 매일 같이 오는데, 농민들은 농사 준비를 해서 8월에 모내기를 시작하고 9월이 되면 온 벌판이 푸르게 변한다. 대호수(大湖水)라는 의미의 톤레샵(Tole Sap) 호수는 지름이 100Km이고
안녕하세요. 행복한 선교사 비크럼, 박예진입니다. 이곳은 찬 공기가 차츰 따뜻하게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해가 쨍쨍 내리쬐는 날엔 봄이 오는 기쁨을 한껏 만끽하기도 합니다. 한국의 공기도 점점 따뜻해지고 있겠지요. 겨울이 추울수록 봄을 기다리고 반기게 되는 것 같습니다.저희의 생활 2월 12일에 포카라로 집을 이사했습니다. 포카라는 저희가 살던 너우다라에서 22km떨어진 곳 입니다. 포카라는 해발 800m높이에 위치한 도시이고 너우다라는 해발 1,500m에 위치한 산동네입니다. 겨울에 너우다라는 많이 춥습니다. 여러겹 옷을 입어도 햇살이 거의 들지 않는 방 안은 항상 차갑고 난방도 없어, 세 달의 겨울을 지내고 나니 저희의 몸에 이전같지 않은 증상들이 나타났습니다. 저는 9일 동안 열이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했고, 비크럼 선교사는 기침과 코막힘과 고열과 두통을 번갈아가며 10일이상 앓았습니다. 따뜻한 포카라로 이사를 하고 이틀 후에 저는 몸이 나아 건강해졌고 비크럼 선교사도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 회복중입니다. 기침이 끊이지 않아 병원을 찾아가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폐에 염증이 생겨 약을 먹으면 나을거라 하여 약을 복용중입니다. 비크럼 선교사의 건강이 회복되어 가
지난해 여름 한국을 방문하는 3개월 동안 선교센터의 게스트룸에 거하면서 인연을 맺게 된 비타의 가정은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중에서도 러이사와 치열한 접전을 벌였던 슬로뱐스키와 마리우풀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마린카 근교에 작은 마을(꾸락호바)에서 거주했다. 그 가정을 통해 아들 지성을 동역자로 세워 이 지역을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쿠락호바라는 마을은 키예프에서 동남부로 약 800킬로 떨어진 곳으로 도착하는 동안 3개의 검문소(controlpoint)를 지나야 했다. 무장을 한 군인(경찰)들이 통행차량을 검문했고, 신분증 검사와 방문 이유 등을 묻는 것으로 어렵지 않게 통과를 시켜 줬다.10여시간을 달리는 동안 느꼈던 것은 좌우로 펼쳐진 광활한 대지는 위대함과 함께 평온함을 줬다. 반면 작은 마을들을 지나며 언뜻 비춰지는 사람들의 표정은 한없이 굳어 있었고, 한겨울의 자연과 같은 차가운 느낌이었다. 목적지인 쿠락호바에 도착해 동행한 비타의 안내를 받아 피난길을 떠난 한 가정의 처소에 여정을 풀었다. 25000여 명의 인구가 모여 살았다는 이 지역에는 현재 얼마의 인구가 유입되고 떠났는지 알 수 없었다. 화력발전소는 있지만 가스가 중단된 상태인지라 가정마다 전기
2016년 2월 22일(월)부터 28일(주일 새벽)까지 샘밭교회 15명은 베트남을 거쳐서 캄보디아 비전트립을 다녀온 뒤 1주일이 지난 어제, 저녁식사와 겸해서 시작된 캄보디아 비전트립 정리를 위한 모임은 늦은 시간까지 감동과 비전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교회생활에 열심을 내지 못했던 노 자매님도 어느새 친근한 지체로 웃음과 친밀한 주님 사랑을 입술로 간증하고 있다. 작은 농촌교회에서 아직 파송선교사도 없는 선교사역이지만, 담임목회자 주도로 이루어지는 선교가 아니라 성도들 주도로 조용하지만 감사하게 이루어져 가고 있다.비전트립의 목표는 예수님의 명령인 선교에 대한 발걸음을 내디뎌서 베트남과 캄보디아 사람들을 만나 동일한 생명을 가진 사람을 향한 긍휼의 마음을 배우고, 참가자들에게 세계를 향한 비전을 품게 하고, 자신에게 주신 달란트의 소중함을 일깨워서 자신이 할 수 있고, 해야 할 사명을 발견하며, 이금춘 선교사의 사역을 배우고, 우리의 현 상황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협력의 마음을 배워 기도하기 위한 것이다.2008년 샘밭교회에 부임한 이후, 교회의 변화를 기다리기만 하는 시대는 지냈다는 판단을 하고, 교회 리더들과 농촌에 위치해 있지만 열정적으로 사역하
4. 재난대책본부의 초기 긴급구호활동지진 3일째 되던 날 안정적인 치안상황이 지속될 것이라는 확신이 든 이후, 재난대책본부는 밀려오는 네팔인들의 구호 요청에 대응할 채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당장 선교사들 간에 일단 활용 가능한 재원과 인맥을 동원하여, 식량과 천막을 확보하는데 역량을 집중하였다. 또한 한국위기관리재단이 한국 내 창구 역할을 맡아 선교사회 재난대책본부와 공식관계를 맺음으로써, 재난대책본부는 매우 빠르고 체계적인 구호활동에 돌입하게 되었다. 선교사들은 각자 요청받는 대로 대책본부로부터 구호물자를 지급받아 재난현장으로 달려갔고, 그 어떤 국제기관보다도 더 신속하고 체계적인 긴급구호활동을 펼칠 수가 있었다. 선교사회가 이처럼 신속하게 재난사태에 대응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앞서 언급한대로 선교사들 간의 화합과 일치를 이룬 네팔 주재 한국 선교사협의회의 23년의 역사가 있다. 5. 1차 긴급구호활동 종료2주 동안 지속된 재난대책본부의 초기 긴급구호활동은 구호활동에 참여했던 대책본부 선교사들의 탈진상태를 가져왔을 뿐 아니라, 각자의 사역지를 돌보지 못하는 어려움에 빠지게 되어 일단 멈추게 되었다. 이는 시의적절한 조치였기도 하였는데 그 이유는 그 시점
복음을 듣고 있는 사람들Y는 제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 가장 오랜 시간 사귄 가장입니다. 복음을 전할 때 남보다 가족이 더 어색한 것처럼, 너무 익숙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아 금요일 오전마다 방문하던 일을 그만 두었었습니다. 몇 달이 그렇게 지났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기회를 주기로 했습니다. 복음을 전해온 도구인 라울 빼왈을 가지고 가서 적어도 한 페이지씩을 읽고 있는 중입니다. 그는 매번 코란을 들고 와 읽다가, 제가 라울 빼왈을 읽고 말을 걸어야 응답합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우정을 쌓는 것은 중요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버리면 오히려 복음을 전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러므로 가능한 한 빨리 복음 전할 기회를 만들고 지속적으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어떤 상황이라도 상관하지 말고 자신의 임무를 다 하라’고 했습니다(딤후4:2). 항상 전도자로 서 있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D는 핑계인지 일 때문인지 만남을 피해왔던 한 가장인데, 결국 다른 마을에서 1년간 풀라어 문자를 교육하러 떠났습니다. 대신 강 쪽, 어부 마을에서 다른 사람을 찾기 위해 갔습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 촌장의 집을
주님의 이름으로 잠비아 홍현기, 서재현(은택, 은찬, 은채)선교사 가정 문안드립니다. 저희도 그동안 주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으로 은혜 속에 살았습니다. 저희 가정에 주님께서 선물로 올해 1월 6일 오전 6:30분에 은돌라중앙병원에서 3.1kg에 건강한 아들 홍은채를 주셨습니다. 진통이 있은 후 5:30분에 병원에 입원해 한시간만에 출산했고 오후 4:00에 서 선교사와 아이를 데리고 퇴원을 하여 집에서 산후조리와 아이를 돌보았습니다.산모인 서재현 선교사는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새벽에 출산을 하고 당일에 퇴원하여 집에서 몸조리 하도록 주님께서 잘 인도해 주셨습니다. 저희 가정은 아이를 둘이나 낳아 키웠지만 산후조리는 전혀 해보지 않았던 일이라가 나름 걱정도 많이 되었지만 청소와 빨래, 미역국, 아이 분유 먹이기, 호박물 만들기, 분유병 소독 등등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 졌습니다. 지금은 서선교사도 몸이 많이 회복되고 있고 은채도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오묘한 생명의 신비와 특별하게 지으신 주님의 창조물,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위대하고 그 어느 것보다도 아름답고 신비하기만 합니다. 두 달여 동안 정말 주님의 은혜와 인도하심만을 바라며 가정과 교회에 충실
네팔 선교 동역자님께네팔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안식년을 마치고 네팔에 온지 두 달이 되었습니다. 네팔에 입국하자마자 집주인의 아들로 소유주가 바뀌면서 집세를 배로 올리는 바람에 집을 구하고 이사하느라 힘이 좀 들었지만 고아원과 썩띠쌀리교회 옆 가까이에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반석한인교회 도움으로 중고차도 구입했습니다. 또 감사할 것은 많은 분들의 기도 덕분에 인도 국경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간 마진을 취하려는 사람들로 인해 아직도 조리용 가스, 자동차 오일 등은 구하기가 어려운 가운데 있습니다. 한 달 만에 반통짜리 가스 1통을 구했습니다. 참고로 가스 반 통이면 한달 정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건기라 전기가 들어오는 시간이 적다보니 인버터 배터리가 충전이 되지 않아 태양열로 충전하는 쏠라를 설치하고 보니 어느덧 난방이 없어 힘든 겨울이 지나 짧은 좀이 왔습니다. 이제 3월이면 더운 여름입니다. 2월 들어 자주 지진이 찾아옵니다. 그래도 동역자분들의 기도로 힘을 내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침례식썩띠쌀리교회 성도들 침례식을 카트만두 외곽의 야외 목욕시설에 가서 했습니다. 우리 고아원 막내 쏠로미도 침례를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