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거의 같은 시기의 러시아의 문호 끄리일로프(Krylov)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썼습니다. 어떤 두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재판을 받게 됐습니다. 한 사람은 세상에서 살인을 하고 잡혀서 사형을 받아 죽고 한 사람은 유명한 저술가로서 명성을 떨치며 존경을 받다가 나이가 많아 죽어서 심판대에 서게 됐습니다. 두 사람은 모두 유죄가 인정되어 지옥으로 가서 벌을 받게 됐습니다. 둘 다 자기에게 주어진 가마솥에 들어가게 됐고, 가마솥 밑에서는 꺼지지 않는 불이 타고 있었으나 살인죄를 짓고 사형을 받고 온 죄인의 불보다 오히려 책을 많이 썼던 학자의 불이 더 뜨거웠습니다. 학자는 “재판장님! 저 사람은 사람을 죽인 흉측한 살인자지만 저는 그런 죄를 지은 일도 없고, 남의 것을 한 푼도 훔치거나 떼먹은 일도 없는데 불이 더 뜨거운 것은 공평하지 못합니다”라고 항의를 하자 재판장은 “저 사람은 한 사람의 생명을 죽였거니와 너는 네 쓴 책으로 수많은 영혼들이 병들고, 죽게 했노라. 그러므로 너는 불이 더 뜨거운 것이 마땅하니라”고 선언을 했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볼테르야말로 수세기를 이어오면서 그의 높은 지식과 넓은 학문에 비춰 불멸의 지성에 틀림이 없지만 하나님을
저는 요한복음에서 ‘인자’(사람의 아들) 칭호가 나오는 구절들을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와 사역에 관한 요한의 신학적 교훈을 제시하고 있다. 지난 호에서는 오병이어 표적 사건 이후에 예수님을 다시 찾아온 무리와 예수님 사이의 대화에 나오는 인자 말씀을 통해 제시되는 신학적 교훈을 살펴보고자 한다. 예수님은 오병이어 표적의 놀라운 영광을 체험했지만, 그 표적에 담긴 의미를 알지 못하고 육신의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에 예수님을 다시 찾아온 무리를 향해 예수님은 그의 존재를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으로 제시하셨다. 예수님은 단순히 육신의 양식을 제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삶에 진정으로 필요한 영원한 생명의 떡을 주러 하늘로부터 내려오신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다. 이번 호에는 오병이어 사건 후에 진행되는 생명의 떡에 관한 예수님의 긴 교훈에 나오는 인자 말씀에 담긴 기독론적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예수님은 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떡이지만, 그가 줄 떡은 세상의 생명을 위한 자기 ‘살’(육신)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여 “이 사람이 어떻게 자기의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라고 반문하는 유대인들과 변론하시면서 자기의 말씀의 참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막 12:30) 1981년도에 사랑하는 제 아내를 만나 깊은 사랑에 빠져 연애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그때 당시에 저는 산악인으로서 암벽등반에 심취되어 있었습니다. 학창시절부터 산을 너무 좋아해서 친구들로부터 “산적 두목”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제 이미지는 늘 산과 연관 지어져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산이 얼마나 좋던지 집에 와서도 방에서 잠을 자기보다는 옥상에서 하늘을 보며 자는 것이 더 행복했을 정도로 산과 저는 아주 밀접한 관계였습니다. 어느 날 사랑하는 제 아내에게 산 사나이다운 멋진 면모를 보여 주고 싶은 생각에, 늘 암벽 등반하던 서울 도봉동에 있는 선인봉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때 그 현장에서 산악인들의 활동 상황을 다 목격한 제 아내가 “길조 씨도 이런 암벽에 올라가나요?”라고 질문을 하길래 “그럼요.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내가 훈련시킨 후배들인걸요.”했더니, 제 말을 듣던 아내의 얼굴에 감탄보다는 어둠의 그늘이 드리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우리 두 사람이 그곳에서 내려올 때 제 아내가 저에게 청천벽력 같은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자
IV. 동아기독교의 시베리아 교회개척과 북방선교 펜윅은 1906년 대한기독교회를 창립하면서 “교회본부를 원산에 두고 한국과 남북만주(南北滿洲)와 노령(露嶺) 시베리아 등에 전도지역을 확장할 것을 결정”함으로 시베리아 선교 시대를 열었다. 여기서 노령(露嶺)의 시베리아란 펜윅이 순회전도자들을 파송했던 크라스키노(연추), 파르티잔스크(수청), 포시에트(목허우), 블라디보스토크(해삼위), 아누치노(도비허) 지역을 말하는 것으로 오늘날 러시아 연해주(沿海州)이다. 한편 본고에서는 연해주와 시베리아 또한 위의 러시아 도시명을 혼용할 것임을 밝힌다. 연해주의 한인 이주 역사는 1863년 함경북도 경흥의 농민 13가구가 굶주림과 억압을 피해 두만강 건너 포시에트(Посьета)에 정착한 시기로 본다. 이들은 최초의 한인 마을인 ‘지신허’(地新墟)를 포시에트 지역에 건설했고, 이후 1869년에는 기근으로 인하여 1만 명이 이주했고, 1906년에는 고려인 인구가 3만 4,399명이었다가 1914년에는 6만 3천 명으로 급증했는데 이미 1910년에는 비공식 이주민을 포함해서 연해주의 고려인이 8~10만 명 정도 이른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연해주에는 1863년부터 고려인
이 글은 한국교회가 4차 산업혁명이란 외부적인 변화의 특성을 이해하고 실천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전략을 통해 목회에 바르게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려 한다. 즉, 한국교회가 4차 산업혁명의 시대적 변화에 대비해 목회 전략이 준비되어 있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본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기본 이해 4차 산업혁명의 개념에 대한 논의는 다보스 포럼 의장인 클라우스 슈바프(Klaus Schwab)에 의해 제시됐다. 그는 2016년 다보스에서 개최된 세계경제포럼에서 기술발전으로 야기되는 미래 산업과 사회구조의 변화를 4차 산업혁명으로 소개하며 포럼의 주제로 공론화했다. 슈바프는 기술로 인한 사회변화와 발전의 준거가 되는 특징을 역사적으로 4차에 걸친 산업혁명으로 설명한다. 1차 산업혁명은 1760~1840년에 철도와 증기기관의 발명과 사용으로 전개됐고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전반에 전기에너지를 이용한 대량생산시스템의 도입으로 2차 산업혁명이 이뤄졌으며 1960년대에 반도체를 이용한 컴퓨터와 인터넷 보급으로 디지털, 정보화 시대가 펼쳐지며 3차 산업혁명이 나타났고 이후에 더 정교해지고 진화된 디지털 기술과 정보통신의 발전을 통해 나타나는 광범위한 사회변화
노트르담 대성당 앞에 한 눈 먼 거지 소녀가 있었습니다. ‘저는 눈이 멀었습니다. 한 푼 주십시오’라고 적힌 푯말을 들고 적선을 했지만, 다들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어떤 남자가 다가와서 그 푯말에다 몇 마디를 써주고 갔습니다.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소녀에게 돈을 주고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그가 써 넣은 문장은 이러했습니다. “저는 당신들이 볼 수 있는 이 아름다운 봄을 보지 못합니다.” 눈 먼 거지 소녀에게 다가가 문구를 고쳐준 사람은 프랑스 시인 로제 카이유였습니다. “저는 눈이 멀었습니다. 한 푼 주십시오”라고 말한 것은 단지 정보를 전달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봄을 저는 볼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공감의 시였습니다. 구름은 바람이 움직이고, 사람은 사랑과 공감이 움직입니다. 아무리 옳은 것, 좋은 것이라도 공감 있게 표현하지 못하면, 사람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사람은 견해가 일치할 때보다 공감할 때 가장 따뜻함을 느낍니다. 공감은 힘이고 능력입니다. 세계적인 사회학자 제레미 리프킨도 ‘공감의 시대’에서 21세기에 있어서 최고의 강자는 ‘공감의 능력을 가진 자’라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이웃교회에 소속해 있는 K집사라는 이가 시의원 선거에 세 번째 출마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그가 다니는 교회는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교회들과 뭔가 갈등이 있는 상태였다. 한 지역에서 독보적으로 부흥하고 교인들이 열정을 갖고 지나치게 활동하는 교회는 이웃 교회들에게 피해(?)를 주기 쉬운데 바로 그런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K집사를 지지해주고 지인들에게 소개를 해준 데는 까닭이 있다. 우선, 어느 교회의 교인인가를 떠나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였다. 로마서 12장 15절에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말씀하셨는데 두 번 출마해서 두 번 낙선한 그의 실망과 아픔이 나에게도 조금은 느껴졌었다. 지방 자치를 위한 선거 때마다 타종교인들은 연속으로 당선되는데 그리스도인으로 유일한 후보자였던 그만이 떨어지니 안타까움과 답답함을 갖게 됐다. 그리스도인 당선자가 나오길 바라면서 지지해 줬는데 그것이 약간의 보탬이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세 번째 도전에서 당선인이 됐다. 다음으로 내가 그를 지지해준 것은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이 지역의 관공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정치계, 법조계, 언론계, 교육계 등에서 많이 진출해
반면에 2세대는 1세대보다는 복음에 대한 희생과 헌신이 좀 떨어지지만 현지 언어에 능숙하고, 현지 문화와 충돌이 거의 없다. 소명만 분명하다면 훌륭한 영적 자원이 될 수 있는데 바울 같은 경우가 그렇다. 그렇다면 재만 동아기독교의 북방선교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로 재만 동아기독교는 이주자들에게 ‘세상의 꿈’보다는 ‘하나님 꿈’을 실현시키는데 탁월했다. 대다수 디아스포라들은 타국에 와서 성공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사업, 학업, 예술 등 자기 분야에서 성공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재만 디아스포라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20세기 초반 만주로 이주 온 한인들은 생활고(35.8%), 금전난(16.4%), 경제적 어려움(14.9%) 등 96.9%가 경제적 이유 때문에 이주했다. 한마디로 ‘세상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이주했다. 하지만 펜윅은 이들에게 ‘하나님의 꿈’, 즉 예수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일이 ‘세상의 꿈’을 이루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임을 일깨워줬다. 실제로 펜윅은 1906년 대한기독교회를 창설한 후 바로 그 다음해에 직접 간도를 방문해 순회하다가 이곳에서 최성업, 이종근, 이종만, 장진규에게 복음을 전해 예수를 영접토록 한
침례교회는 영국 분리파 청교도들이 세운 교회이다. 영국침례교회는 그리스도가 전 인류의 죄를 위해 속죄했다고 믿는 일반침례교회와 택함 받은 사람만을 위해 속죄했다고 믿는 특수침례교회의 두 교회로 시작됐다. 일반침례교회는 1609년에, 특수침례교회는 1633년에 시작됐다. 일반침례교회의 창시자 존 스마이스(John Smyth, 1570~1612)는 성공회 목사였는데, 그는 성공회-청교도-분리파 청교도-침례교로 변화를 거치면서 침례교회를 창시하게 됐다. 이번에는 침례교회 출현의 먼 배경이 되는 성공회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성공회(영국국교회)는 영국 왕 헨리 8세(1509-1547)가 부인 캐서린과의 이혼 문제로 가톨릭교회를 탈퇴해 개신교회가 된 교회이다. 가톨릭교회에서 결혼은 7성례 중 하나였으므로 결혼과 관련된 문제는 세속법원이 아닌 교회법원이 관장했으며, 국왕의 결혼은 교황청 법원이 직접 다뤘다. 캐서린은 원래 헨리의 형 아더 왕자의 부인이었다. 아더는 결혼한 지 5개월 만에 죽었고, 헨리는 정치적 이유로 형수와 결혼하게 됐다. 형수와의 결혼은 근친혼에 해당되어 교회법에 금지된 것이었으나, 영국과 스페인 왕가의 압력으로 승인됐다. 결혼은 그러나 불행했다. 두
“‘이거 사실이 아니지요?’ 나는 아저씨의 눈이 어두워지는 것을 절망적인 심정으로 지켜봤다. ‘그러니까 전부 다 사실은 아니지요?’ 한참 만에 대답을 들었다. ‘사실이 전부는 아니야.’ ‘그러니까 사실이 거짓말일 수도 있다는 거지요?’” 정유정 저(著) 《7년의 밤》(은행나무, 23-24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사실과 진실은 다릅니다. 우리는 ‘사실’로 ‘진실’을 숨기며 자위하고 쾌재를 부르며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러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랄 왕 아베멜렉 앞에서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말합니다. 아비멜렉이 사라를 주목하자 목숨이 위태로울지도 모른다는 생각 속에 아브라함은 쫄장부가 된 것입니다. 사라가 누이인 것은 사실입니다. 사라는 이복 누이였습니다(창20:12). 그런데 그 상황에서 누이라고 해야 했을까요? 당연히 아내라고 했어야 합니다. 누이라고 한 것은 거짓말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그러나 ‘진실’이 아닙니다. 거짓말이 아닌 사실을 말했지만 진실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이에 하나님은 진노하십니다. 죄성이 가득한 우리 인간은 쉽사리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사실’을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진실’입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