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신대원에 입학해 여름방학 동안 고향집에 가지 아니하고 계속 첫 목회지인 도안교회를 돌보기 위해 하숙집을 구했다. 인자한 할머니는 둘째 아들, 교회에 나오지 않는 박현매 고등학생과 방을 같이 쓰게 했다. 9월 개학 후 오솔길을 따라 교회당으로 올라가는데 오른쪽 발목이 큰 가시에 찔렸다. “따끔”거리며 아팠다. 그러나 나는 개의치 않고 예배를 인도하는데 계속 발목이 빨갛게 부어오르고 있었다. 가리토시(멍울)가 생겨 절름거리며 예배 후 내려와 나는 우선 할머니에게 보였더니 “이거 큰일 났시유, 뱀에게 물렸구먼유!”하고 들기름 병을 갖고 와 발라주면서 빨리 유성으로 연락해 대전 큰 병원으로 가야한다고 했으나 나는 절대로 아무에게도 입 벙긋하지 말라고 신신 당부했다. 월요일 아침 학교를 가려는데 발목이 부어올랐고, 색깔이 불고 누렇고 푸른색으로 뱀처럼 얼룩덜룩했다. 기숙사 동방인인 최한원 전도사는 사감 김 집사에게 얘기했고 나는 할 수 없이 목동병원으로 따라갔다. 의사는 뱀에게 물린 것이 확실하니 재빨리 치료해야지 그냥 두면 다리를 끊어내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나는 이미 나았는데, 사람 겁주는구나” 하고 재빨리 도망쳐 올라와 다리를 절름거리면서 수업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이란 이름의 갈매기는 여러 갈매기 무리와는 다르게 고상한 생각의 소유자였다. 그와 같은 동류의 갈매기들의 일상은 어떠했는가? 작가 바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대부분의 갈매기들은 비상의 가장 단순한 사실, 곧 먹이를 찾아 해변으로부터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방법 이상의 것을 배우는 것에는 신경쓰지 않았다. 대부분의 갈매기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나는 것이 아니라 먹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갈매기에게는 먹는 것이 아니라 나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 무엇보다도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은 나는 것을 사랑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다른 갈매기들과 친하게 어울릴 수 있는 방법이 아님을 그는 알게 되었다. 그의 부모조차도 조나단이 하루 종일 혼자서 외롭게 시도하며, 수백 번이나 낮게 활강하는 것을 보고는 당황하고 있었다. 뼈와 깃털만 남은 자식 조나단을 바라본 그의 부모는 답답해했었다. “왜 그러니, 조나단? 도대체 왜 그러는 거니?” 그의 어머니가 물었다. “넌 왜 다른 갈매기들처럼 되는 게 그리도 힘든 거니? 저공 비행 따윈 펠리컨이나 알바트로스에게 맡길 수 없니? 넌 왜 잘 먹지도 않니? 얘야, 넌 너무 말라서 뼈와 깃털뿐이구나!”
꿈을 깨어 시계를 보니 주일 아침 5시였다. 어제는 토요일로 12월 첫날이라 교회당 강단 뒤에 꿇어 앉아 밤기도를 하다 보니 다리에 쥐가 나서 견디기 어려워 누웠는데 잠이 든 것이다. 남루하고 초췌하며 가련하고 불쌍한 사람이 앞에 나타나자 놀라서 그만 꿈을 깬 것이다. 대통령 선거날 아침에 푸른 일바지를 입은 여자 후보가 나타나서 깨어보니 새벽 4시였다. 일찍 투표소에 가서 찍고 오면서 다시 생각하니 푸른 옷은 교도소 죄수복이란 해석이 되어 친한 10여명 벗들에게는 그녀가 교도소 갈 것이라 조심스레 얘기 한 일이 있었다. 꿈 해석을 어려서부터 부친에게 들어왔고 대학시절엔 심리학에서 꿈 해석 공부도 했고 목회를 하면서 교인들이나 친구들의 꿈 해몽을 부탁받고 해석을 해 주기도 했으나 조심스런 일이었다. 꿈은 신령한 영몽, 예언적인 예몽, 실제로 일어날 실몽, 잡다하게 꿈꾸는 잡몽, 꿈꾸고 잊어버리는 허몽, 악전고투하다 땀 흘리고 꿈 깨는 악몽, 아무 꿈 없이 깨어나는 무몽 등이 있다. 성경에는 요셉의 꿈을 위시하여 많은 꿈 이야기가 있다. 꿈 속에 나를 찾아온 그 불쌍한 한 사람은 누구일까? 길거리, 전철, 시장, 기타 여러 곳에서 만나서 전도했던 수많은 불쌍한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중에는 불신 대통령도 있었고 두 번이나 소위 장로 대통령이 있었는데, 그리스도인들이 받은 인상은 불신 대통령 재직 시가 장로 대통령 재직 시보다 우선 세속 정치도 더 좋았고 더더구나 기독교에 대해서 아주 호의적이었다는 것이다. 언필칭 장로 대통령의 심중에는 자기가 크리스천 장로이니 기독교에 작은 제스처만 줘도 국민의 눈초리가 따가울테니 차라리 무관심하는 듯 지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꽉 차 있지 않았나 싶다. 암, 그렇고 말고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 나라와는 병행하지 않는다. 소위 정교 분리라는 명제가 그래서 나왔던 것이다. 그런데 세속 정치가 잘 되면 기독교는 하락세를 탄다는 이 아이러니컬한 현상이 있다. 독일에서 두어 달 체류하면서 느낀 것은 메르켈 지도자의 선정(善政)으로 독일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 최고의 안전과 경제부흥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보아하니 국민들은 빵 먹고 다리 뻗고 잘 공간이 거의 완벽하게 마련되어 있어서 아무런 걱정도 없이 지내고 있다. 주말이면 주말 즐김, 월말이면 월말 즐김, 1년이면 연가 2개월 해외여행 휴가, 사는 동안 무료 진료, 노후에는 연금보장, 죽을 땐 장지와 주례목사를 두고 있으니 세상살이 만
우리가 신학교를 졸업할 때 기념 배지를 줬는데 양복 왼쪽 가슴 모서리에 달게 했다. 그 배지는 지금도 나의 여러 양복 중에 꽂혀있다. 그것은 G자와 Y자로 되어 표시로 금도색을 한 것으로 영어의 Go와 Ye의 머리글자로서 “너희는 가서”(마28:19)로 예수님의 지상명령(The Great Commission)의 첫 두 글자이다. 신학교를 졸업한 주님의 제자들은 무엇보다 먼저 가서 예수님의 유언에 따라 복음을 전하기 우해 “가라”는 도전의 명령이었다. 인자가 오신 것은 보내기 위함이다. “가면서 전파하여”(마10:7)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21:2) “사거리 길에 가서”(22:9) “성안 아무에게 가서”(26:18) “가라 하라”(28:10)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눅10:3)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눅17:14)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20:21)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행1:8)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행8:26)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행10:20) “성문 어귀에 문둥이 네 사람이 있더니 서로 말하되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
염소 가운데 순한 양 같은 님은 떠나셨다. 향년 85세를 일기로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2018년 11월 19일 그는 떠나셨다. 한국 침례교회 원뿌리인 동아 기독대의 원로이신 고 노재천 목사님의 장손이며 고 노안성 안수집사님의 5남매 중 장남으로 세상에 와서 이름 높은 안동고녀 출신의 이명순 사모와 결혼하여 5남매를 이 땅에 둔 채 그는 떠나셨다. 평생을 침례신학교 기독교 교육학 교수로서 교단의 교육발전에 지대한 도움을 주시곤 은퇴하셨고 엊그저께 영 아주 세상살이 은퇴를 하셨다. 내가 까까머리로 갓 제대한 26세 청년이었을 때 아직 신학교 졸업도 하지 아니한 예과 중퇴생인 나를 그는 과감히 점촌 서남교회 담임 전도사로 추천해 주셨다. 나를 인정해 준 님이 고마웠다. 지금 역사적인 점촌교회의 중진들은 그때 학생들이었다. 노 목사님의 아버님이 점촌 시내에서 철물점을 경영하고 있었는데 대구에서 역전으로 물건이 배달되면 의당히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윤백아, 역전에 가서 짐 찾아와라.”그 밑에 4남매가 있었건만 장자 노윤백은 언제나 그 집 맏머슴이었다. 나는 서남교회를 목회하면서 그 장면을 눈으로 보았다. 그는 순종을 평생 미덕으로 신앙하고 살았다. 노 목사님은 재
어렸을 때 아버지는 나에게 “하늘 천(天) 따 지(地) 집 우(宇) 집 주(宙)” 곧 천자문을 가르친 후 명심보감과 사자소학을 가르치셨다. 그리고 공자님과 인의예지 교훈에 대하여 가르쳤다. 조선은 소국이라 공자(孔子) 맹자 노자 같은 성현의 호칭인 자(子)의 호칭을 붙일 인물이 나오지 않았으나 중국의 5000년 역사에는 제자백가의 인물들이 나왔는데 그 중에 공자는 석가모니, 소크라테스, 예수와 세계 사대성자로 불리지만 공자님이 가장 높은 성현이라 가르쳤고 나는 자연스레 공자님의 추종자가 됐다. 공자는 태어나자 부친이 죽고 6세에 어머니마저 죽어 천애의 고아로 유랑자가 되었으나 학문에 뜻을 두어 열심히 공부하여 30세에 노나라 정공의 초청으로 중도읍의 읍장이 됐고, 그 후 사공(건설부장관)이 됐고 나중에 대사구(법무장관)에 임명됐으나 뜻이 맞지 않아 위나라로 갔고 그 후 14년에 걸친 유랑생활로 “상갓집 개와 같다”는 혹평도 받았으나 수많은 문하생이 따랐고 염옹, 자로, 자공, 안희(아연) 등의 수제자들을 두고 73세의 천수를 누린 후 세상을 떠났다고 배웠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우리 집에 드나들던 양남댁 스님이 큰아들이 잘 돼야 한다고 어머니를 꾀어 나를 억
어떤 목사가 예배당을 팔아버렸답니다. 이 소식을 듣던 또 어떤 목사는 무표정했답니다. 그도 예배당을 팔아버렸기 때문이랍니다. 예배당을 팔아버리는 목사가 꽤 많나 봅니다. 발설자가 말했습니다. “권 목사가 예배당을 팔아버렸다면 그땐 많은 사람들이 놀랄 겁니다.” 그래서 나는 기분이 좋았답니다. 식구들에게 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아버지, 참 잘 사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또 기분이 좋았습니다. 소천일이 가까워오고 있네요. 무척 조심스럽네요.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하나님, 목사가 교회를 팔아버리지는 않았겠지요.” 일부 목사가 예배당 팔아버렸다는 사건은 성도는 물론 세상 이방인까지도 알고 있는 처지인데 목사 입에서 그 사실을 도무지 발설 한 번 하지 않는다는 것도 양심을 들여다보이는 일 같아서 여기 용감한 건지 바보스러운 건지는 몰라도 이제 목사도 알고 있다고 발설해야 되겠다. 예수님이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시던 때에 당부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마4:19) 사람을 낚으라는 것이 예수님의 소명 이유였다. 예수님은 사람의 호주머니를 훑으라고
맴맴맴! 해마다 여름철이 올 때마다 아름다운 매매소리의 합창이 옛날 시골의 어린 시절의 동심으로 돌아가게 한다. 작대기로 나뭇가지를 쳐서 또는 친구들의 어깨 위에 서서 나무에 붙은 매미를 한 깡통씩 잡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저 작은 매미가 어떻게 저렇게 고운 소리를 내어 울려 퍼질까? 저 아무렇게나 소리지르는 듯한 매미의 울음소리를 듣고 무심히 지나칠 때가 많았다. 저 소리를 몇 일간 내기 위해 몇 년을 어두운 땅 속에서 지내야 하는가? 하는 생각에 우리 인생을 돌아보게 한다.여러 가지 식물의 조직 속이나 나뭇가지에 산란된 매미의 알은 2~6주간에 부화되어 깨어 나온 매미의 애벌레(유충)는 땅 속으로 들어가 침과 같이 생긴 뾰족한 주둥이로 나무뿌리를 찔러 그 속의 수액(樹液)을 빨아 먹으면서 몇 해를 자란다. 다 자란 ‘굼벵이’ 성충은 초여름부터 나타나는데, 맑은 날을 골라 대체로 저녁 해질 무렵 땅 위로 기어 나와 나무줄기나 나뭇가지 등에 몸을 고정시킨 매미로 탈피를 한다. 애벌레가 땅속에서 보내는 기간은 종별로 달라서 2~7년을 땅 속에서 보내는 것부터 2~7년에서 13~17년을 보내는 것 등 다양하다. 이 현상은 천적을 따돌리기 위해 채택된 하나의 생존
침례신문의 ‘하늘 붓 가는 대로’ 103회에 다음과 같은 표제의 나의 에세이가 게재됐다. ‘며느리와 딸’. ‘나도 아내와 함께 독일 라이프치히 한인교회 담임목사로 있는 아들 권순태 목사 집에 두 달을 머문 적이 있었다. 아들과 며느리는 환상적인 커플로서 뭇 교인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이민교회를 섬기는 것을 보고 나는 그저 고마웠다. 그런데 문제는 며느리의 존재였다. 며느리는 친할 듯 하면서 뒤로 물러서고 말할 듯 하면서 침묵하기를 꼬박 두 달 동안 그러했었다. 나는 매우 조심스러웠다. 그 정도를 넘어서 나는 며느리를 경계했다. 어떻든 며느리에게 결례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두 달 체류 중 며느리에게 불평하거나 신경 쓰이지 않게 하려고 우리 노부부는 최대한 노력했다. 끼니 때는 사인 주기 전에 식탁에 앉았다. 밥 먹고는 언제나 잘 먹었다고 말했다. 두 달 동안 이런 시아버지의 “Thank You”에 “you’re welcome”이란 말을 며느리로부터 들어본 적이 없었다. 거의 나는 점심은 외식으로 때웠다. 식사 시간에도 며느리와 함께 한 적은 손가락으로 셀 정도였다. 10분 이상을 마주 앉아 담소한 적이 없었다. 어딜 가든 담소 잘 하기로 꽤나 유명
1960년 2월 저동교회 임암천 목사가 나에게 “강성찬 전도사를 부흥강사로 초청하고 싶으니 알아보고 청빙해라”고 전했다. 그래서 나는 경북 산골 고령까지 먼 길을 찾아갔다. 농촌교회를 개척한 총각 강 전도사는 마침 자체 부흥회를 하고 있었다. 집사 내외를 불러서 “멀리서 한 선생이 손님으로 오셨는데 방이 이렇게 차가워서 되갔소, 군불을 잘 넣고 또 반찬도 계란 같은 것이나 생선도 밥상에 오르게 하이소”라고 힘있게 일러줬다. 식사 대접을 잘 받은 후 저녁 부흥회에서 은혜를 받고 따뜻한 방에서 잘 자고 나서 이튿날 나는 강성찬 전도사를 저동교회 부흥강사로 초청하기로 허락받고 모교회 임암천 목사에게 통지했다. 세월이 흘러 강성찬 전도사는 목사가 됐고 부산교회를 부임해 강 목사가 인도하는 부흥회에 참석해 간증을 듣게 됐다. 그는 평안도 정주의 농부의 아들이었고 선친은 복음을 받아 예수님을 잘 믿었다. 마침 교회당을 건축하게 되었는데 농토는 공산당에게 빼앗겼고, 그때는 소 두 마리가 전 재산이었다. 어머니는 그 중 송아지를 기쁜 마음으로 건축헌물로 바쳤다는 것이었다. 그 무렵 연자맷돌을 돌리던 건장한 어미소가 갑자기 혀를 길게 내밀고 침을 흘리며 눈동자가 흐려지고 비
한 평생을 살아온 시니어(Senior)들에게는 한국의 어제와 오늘은 마치 지옥과 천국을 방불케 하는 느낌을 지닌다. 노년들이 피차 만나면 조국의 발전상에 그저 감격해서 노년들의 지난 삶을 되돌아보면서 감탄하고 지금의 젊은이가 바통을 잘 받아서 달리고 있다는 현실감에 만족한다. 그리고 언필칭 “세상 많이 변했구나”라고 하루에도 몇 번 씩 토로한다. 가령 스포츠 세계를 한정해 놓고 보자. 도대체 골프가 뭔가?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스포츠인가? 지독히 가난했던 노년 십대 때 야산에서 소를 먹이다가 귀가할 즈음이면 막대기자로 토막 막대기를 멀리 쳐 내는 놀이를 했다. 힘껏 쳐서 토막 막대기가 멀리 멀리 던져지면 그날 저녁엔 보리밥이라도 먹겠다고 기뻐하고, 거꾸로 이놈의 토막 막대기가 멀리 못가고 가까이 떨어지면 그날 저녁엔 틀림없이 죽그릇이 안겨진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막대기치기 놀이를 한 우리들은 지금 골프의 선구자요 선조다. 호화로운 잔디밭이 아니라 자연 야산에서 토막 막대기를 던진 것이 골프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 학설(?)은 아닐지 몰라도 우리 땅의 노년들의 이야기임은 물론이다. 그럼 축구란 무엇인가? 지금 세계는 축구 스포츠가 우상이 되고 있지 않
역사상 가장 큰 재난 중 하나가 1271년에 일어났다. ‘동방견문록’을 쓴 마르코 폴로(Marco Polo)가 몽고의 황제 쿠빌라이 칸을 방문했다. 당시 중국과 인도와 아시아 지역을 통치하고 있던 쿠빌라이 칸은 마르코 폴로가 전해준 기독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몹시 큰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마르코 폴로에게 교황에게 가거든 기독교에 조예가 깊은 사람 100명을 자기에게 보내주면 자기 자신과 모든 신하들과 장군들이 하나님을 믿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 일이 신속히 이루어지 않았다. 30년 이상이나 선교사 보내는 일이 지연됐고 그나마 겨우 두세 명의 선교사가 늦게 도착했다. 중요하고 큰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다. 쿠빌라이 칸 한 사람의 영혼이 구원을 받았더라도 그 당시의 영토에 미친 영향이 어떠했겠으며, 오늘날 아시아와 세계의 역사가 어떻게 달라졌겠는가? 한 사람의 구령이 얼마나 큰가? 헬라의 스파르타 표어에 ‘너 하나하나가 산 벽돌이 되라’는 말이 있다. 모든 수는 ‘하나’에서 시작하여 10, 100, 1000, 10000, 억, 조, 그리고 경으로 늘어난다. 1초가 60개 모여 1분이 되고, 한 시간은 60분, 하루는 24시간, 1년은 365일, 또 1
모 처에 강의 차 전철 노인석에 앉아 아침 출근을 하고 있었다. 세 사람이 앉을 자리에 두 사람이 앉았기에 가운데 한 자리는 여유 있는 공석이었다.어떤 이가 다가오더니 무슨 쪽지를 빈자리에 휙 던지고 달아나듯 떠나버리기에 뭔가 하고 주워보니 이런 것이었다: 시원한 소변, 강력한 파워! 50~80대 누구나 대만족! 청춘이 별건가요! 단, 1회 섭취로 달라진 남성을 확인하세요! 그것을 주워 읽는 동안 노마호두(老馬好豆)라더니 시니어도 그런가 웃었다. 그리고 그 쪽지를 대강 읽어보고 또 버리지 않고 나의 배낭가방에 고이 넣었다. 그걸 그냥 버려두면 전철 차내가 온통 휴지로 불결할 것 같아서 고이 주워 넣었을 뿐이었다.그런데 내 옆에 앉았던 다른 승객이 갑자기 자기 명함을 건네주면서 나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나는 당황했다. 이 승객이 왜 이러시나? 그는 자기가 이 쪽지 회사의 직원이라고 했다. 정말 우연의 상황이었다. 그가 말하기를 이런 쪽지를 받으면 대개 사람들이 불편해하고 받는 즉시 구겨버리곤 하는데 어째서 선생님은 그걸 고이 보관하시려는 거냐고 했다. 그때 나는 말했다. “나 목사입니다.” 목사란 말에 그 쪽지사의 직원은 더욱 놀라는 것
바울 사도는 에베소 성도들에게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6:17)고 분부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 구약성경에는 주로 천사들을 통하거나 선지자들을 통해 그리고 간혹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셨다. 신약성경에서(요1:1~3)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입술로 말씀해 주셨는데, 그 후 성령을 보내셔서 말씀해 주시고 성령의 감동(딤후3:16)으로 오늘 우리가 읽는 기록된 말씀을 주셨다. 우리가 설교를 듣거나 성경을 읽고 공부하면 그때 특별히 와 닿는 감동과 은혜의 말씀이 있어, 그 어떤 것도 오늘 우리가 받는 기록된 말씀 이상의 권위를 갖는 것은 결코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4:12) 미국 애리조나 주의 피닉스(Phoenix)에 살던 사람이 일정한 기간의 교도소 징역을 끝마치며 출감 날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에는 자기를 이곳에 보낸 사람을 쏘아 죽일 작정을 하고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렸다. 드디어 자유의 몸으로 풀려나오는 날에 집에 와보니 어린아이 둘만 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