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 석학은 자유는 인간의 자기 이해 곧 ‘자신이 무엇이며 무엇이 되느냐’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니버의 그러한 자유정신을 위한 인간의 사랑은 생활의 법칙이라는 내용을 이끌어 올 수 있는가? 소크라테스가 부정의 소리에서 중요하고 심오한 결론을 이끌어낸 것 같이 우리는 자연과 이성의 구조에 대한 사랑과의 관계도 숙고할 수 있다. 사랑은 법보다 고차원적 단계에 존재하는 것으로 행위의 강제력이 없고 성문화되지 아니한 법이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우선 법으로 처리하려 한다. 그래서 인간을 위한 도덕적 율법인 사랑을 잊어 버리기 쉽다. 사랑은 인간을 위한 법이며 사랑의 법은 인간의 제한된 상태에서의 인간을 위한 무제한의 법이며, 인간은 자신의 종말까지 자기 자신을 형성해 갈 수 있는 자유를 가졌다. 또한 인간의 사상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자신의 빈약 속에서 그것을 견지할 수 없다. 지고의 사랑 아가페(agape)는 인간 존재의 궁극적 하나님의 법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모든 인식이 불가피하게 궁지에 빠진 자신을 위해서나 자신의 자유를 요구하는 것보다 잘 견지된 자신을 위한 관계를 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히
“A hungry child knows no politics” 위의 말은 1984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에티오피아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강조하며 꺼낸 말이다. 국내외 정치 싸움에 어린 것 들이 아사 직전이다. 그것들이 무슨 정치를 알겠나. 그 것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나. 그것들은 어른들의 정치는 모른다. 배가 고파서 아직 빵 밖에는 생각나는 게 없다. 어린아이들에게 이데올로기의 변화와 차이 설명도 무의미하다. 우선 고픈 배를 채워주는 게 어른들 특히 정치인들의 우선 과제가 아 니냐는 의미가 레이건의 말 속에 들어 있다. 한국의 통일부 장관 김연철 씨가 4 월 8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레이건 대통령의 말을 강조했다. 북 한의 주민이 배고파하니 인도적 차 원에서 식량을 지원하는 게 마땅하지 않겠냐고 한 것이었다. 레이건이 식량 지원할 때 하역비용을 제공했는데 그 돈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는 밝히지 않아서 정치적으로 이용 되지 않았나 우려가 있다는 코멘트도 김 장관이 했다는 것이다. 사실 톤당 12달러를 독재 정부의 주었었다는 등. 내가 지금 레이건 대통령의 발언과 한국 정보 장관의 그 말을 가지고 와서 말하고자 하는 결 론적인 의미는 딴 곳에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 엘 백성을 위기에서 구하시기 위해 홍해를 가르시고 자연적 위기에서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구조하셨다. 요단강 강물을 3번이나 도하했는데, 첫 번째는 여호수아가 인도하는 이스라엘 백성이요, 두 번째는 엘리야가 하늘로 승천 하기 전 겉옷을 취하여 요단강을 갈라서 엘리사와 같이 건넜고, 마지막은 엘리야의 승천에서 떨어진 두루마기를 엘리사도 주워서 엘리아의 하나님을 외치며 치니 요단 강이 육지처럼 갈라져서 건넜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 로되 저가 비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3년 6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약 5:17~18). 엘리야는 바알과 아세라의 850인 제사 장들과의 대결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늘로부터 불을 내려 재물을 태우고(왕상 18:30~40),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왕 상 18:42) 일곱번째 기도해 비를 내리게 했다. 또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서 3일을 지 내고 니느웨 성에 회개를 선포하여 다 회개한 것 등을 살펴보며 이 시대의 위기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선포해야 함을 다시금 생각하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자주 국가이다. 국민, 영토, 주권을 갖춘 격(格) 빠진 데가 없고 자주독립국인데 친일친미로 나라의 입지를 지켜야 되는 듯 하는 인상을 지님이 유감이다. 친일친미 다 치우고 친신(親神) 국가면 얼마나 좋을까. 기독교를 국교로 하는 나라라고 해서 모범국가로 보이 지는 않는다. 거기도 세상 다른 나라들에게나 생기는 온갖 일들이 그대로 생기고 있다. 미국을 우방 국가요, 한미 동맹 국가라 하니 이만 두고 곁에 있고 일본과의 한국 관계는 여전히 들쭉날 쭉하고 있는 현실 아닌가? 웬만하면 친일파로 매도한다. 일본이 역사적으로 한국을 극진히 사랑하는 뜻에서 한국에 임했다고 하는 비판 없는 전제만은 그만두기로 하자. 일본 땜에 경제와 문화가 이렇게 발전했으니 일본의 공도 잊지 말자는 논리를 펴면 의당 친일파란 소리를 듣는다. 대한민국 사람은 반일 종족주의자가 돼야 한다는 논리 가 소위 친일파에 맞서서 결국 국론통일이 못되고 있다. 제발 일본이 한국을 뜨겁게 사랑하던 나머지 부득이 강점해서 도우려 했다는 말은 그만두자. 그렇다면 강점 해소를 위해서 싸운 애국자들을 무참히 고문하고 투옥하고 죽인 이유는 무엇인 가. 지금 상태에서 과거의 원수라도 현재와
내 평생소원 이것뿐 주의 일하다가 이 세상 이별하는 날 주 앞에 가리라 살같이 바른 광음을 주 위해 아끼세 온 몸과 맘을 비치고 힘써서 일하세 오늘은 찬송가 450장을 부르다가 잠을 깨어 일어나니 아침 5시였다. 지금까지 50여년 목회하며 새벽기도에 익숙해 일어나는 시간인데 엊저녁은 세상에 일어나는 일로 기도하다 늦잠을 들게 되었다. 이번 중국의 홍수로 6000만 이재민이 생겨났고 피해 금액은 우리 돈 30조원이란 보도를 접했다. 이뿐인가? 블랙 스완 검은 백조가 왔다. 무슨 징조 인가? 1970년 시골 목회를 하던 중 대만에서 발간된 중국공산당사란 책을 읽고 울었는데 이번 중국이 우한에서 교회당 십자가를 끌어내리며 450여 교회당을 폐쇄, 파괴하고 300명 선교사를 추방하더니 코로나 유행병이 유행함에 울었다. 연변 과기대 창립 10주년 행사에 축사순서를 마치고 백두산과 두만강 도문 등의 관광을 마치며 김진경 총장은 이전에 미국 플로리다 대학 동창생이 강택민 주석의 비서실장이기에 북경에 같이 가서 만나보지 않겠느냐는 요청에 ‘목사가 정치가를 만나 뭘해’하는 생각으로 거절한 것이 복음전도를 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예수님과 알렉산더 대왕
“아이고! 화산댁, 아들 낳아 반갑네요!” 두각댁이라는 이웃 할머니는 새끼줄에 고추가 달린 금기(Taboo)를 보고도 무례하게 들어와 어머니께 축하 인사를 했다. 당시 부모님은 종교가 달랐다. 조상들이 함경도 함흥에서 수백 년간 사시다가 강원도 강릉에 내려오신 부친의 증조부께서도 유도(유교)를 신봉했고, 그 후손도 계속 유학을 배우고 살아오셨다고 했다. 어머니는 무속종교(Shamanism)와 불교를 믿어 왔다. 나는 왜정때 1937년 11월 30일(양력 12월 28일) 저녁때 경상북도 울릉군 남면 저동 439번지(본적)에서 한학수 농부(아버지)와 전유봉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지금 그 출생지는 주사골 중에도 안동리 말등산 밑 봉래폭포 아래 맑은 지하 샘물이 솟아나는 곳에서 그리 멀지않는 초가집에서 3세까지 자랐다고 어머니께 전해 들었다. 내가 어릴 적에 어머니는 밖에 나갔다 들어오실 때 ‘객귀’를 물리친다고 마당에 십자가 표시를 긋고 칼을 한복판에 꽂아두기도 하셨으며, 부엌 부뚜막 위에 찬물과 표주박에 쌀을 넣어놓고 조상신을 섬기셨다. 동생들을 낳으셨을 때는 ‘삼신’에게 정수를 떠 식사판 위에 놓고 비시기도 하셨다. 물건을 옮길 때도 조심하고 이사를 할 때도
대전에서 복집 식당업을 하고 있는 처제가 주일에는 항상 문을 닫고 교회 출석을 했는데 다가올 주일에는 큰 두 팀이 오전, 오후로 주문을 해온다는데 이를 거절해야 하느냐 마느냐 결정을 못하겠다고 형부 목사에게 상담을 구해왔다. 나는 즉각 처제에게 전화를 넣었다. “처제, 걱정 말고 그날 두 팀을 다 받으세요, 누가 뭐라고 말하거든 신학 교수 목사 형부께서 식당문을 열라 했다고 하세요”라고. 처제는 나의 제안에 약간 당황하면서도 오는 주일에는 오전 오후 영업을 하겠다고 결단을 내렸다. 그 당시 한일 외교관계가 험악해 경기가 나쁜 데다가 모두 다 느끼듯 정부 정책에 따른 경기가 땅바닥에 깔려 가게 문이 닫히는 가하면 특히 식당업이 줄초상을 만났다는 것이다. 처제도 하루에 두 세그릇 탕이나 팔린다는 것이다. 그래도 시간에 맞춰 종업원 일급은 꼭 지불해야 하는 판이고 월세는 꼬박꼬박 내야 하는 등 식당운영이 최악이란다. 그런데 목사는 성도의 경제 사정은 모른다는 것. 주일에 영업하면 축복 못 받는다고 외치면서 주일 성수원칙을 강조하고, 영업수익은 없는데 십일조를 위시한 헌금은 또 강조한다는 것이다. 지금 신약복음 은혜시대인데 명백히 율법인 안식일과 십일조를 엄수하라고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중고등학교 시절 미국을 독립시킨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에 대해 듣고 배웠고,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인품에 대해 배웠다. 대학교 3학년 미국 역사를 공부하면서 링컨과 마찬가지로 불학무식과 멸시 빈곤의 처지에서 자랐으나 하나님의 말씀과 신앙의 위력으로 미국 영토 확장의 위대한 업적을 남긴 대통령 앤드루 존슨(Andrew Johnson)이 떠오른다. 그는 에이브러햄 링컨 보다 더욱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세 살 때 아버지를 잃었고 처참한 가난 속에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했다. 13세 때 양복점 점원으로 시작해 18세에는 구두수선공으로 일했으나 결혼 후 아내에게 글을 배우기 시작해 정치학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이어 테네시주 주지사를 거쳐 상원 의원이 된 후 링컨 대통령의 초선 당선과 함께 부통령이 됐고 드디어 제17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통령 후보 연설로 전국을 다닐 때 비난과 치욕적 야유를 받았다.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했다. 양복쟁이에, 구두수선공, 일자무식쟁이가 대통령 후보라니!” 와 같은 저들의 비난에 “예, 저는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의 국명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다. 우리의 국명은 대한이다. 그런데 대통령을 위시해서 많은 정치인들이 대한이란 국명을 감추고 마냥 “한반도”이니 “남쪽”이니하는 판이니 참으로 듣기에도 민망스럽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요” 못하고 “남쪽 대통령이요” 한다면 대한민국 곧 대한의 아름이 “남쪽”나라인가? 우리나라의 이름이 “남쪽”이나 “남한”이 아니다. 빈번히 대면하는 북조선의 지도자와 면담할 때 거의 언제나 대한민국이란 이름은 빠진다. 예를 들어 한반도 평화를 구축하자 한다. 북조선도 대한민국이란 국명은 쓰지 않고 “남쪽”이라고 하고 있다. 전에 올림픽 경기장에서도 태극기 대신에 “한국지도”를 들고 나오고, 애국가 대신에 “아리랑”을 불렀다. 물론 이렇게 하기는 북조선도 마찬가지였다. 정치적 외교적 문제가 깔려있다고 하더라도 대한은 대한민국이라 이름을 대고 북조선도 조선이라고 이름을 대고 이야기해야만 양자의 정체가 분명할 것 아닌가? 명칭이 불분명하면 어느 나라가 어느 나라와 외교하고 있는지 모른다. 북한 호칭도 애매하다. 이 말의 문자적 해석은 북에 있는 대한민국이란 말인데 어디 지금 그런 상태인가? 그들의 이름 그대로 조선이라 해두자. 그것이 유엔의
제2차 세계대전 중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성공시키고 독일을 항복시킨 연합군 총사령관 아이젠하워 장군이 두 번의 미국 대통령을 지내고 월터 리드(Walter Reed) 병원에서 임종을 30분 앞둔 때 빌리 그래함(Billy Graham) 목사를 초청했다. 다음은 그래함 목사가 그때를 회상하며 한 말이다. “병실에 들어가자 아이크(Ike) 전 대통령은 평소와 다름없는 그의 특유의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맞아 줬습니다. 임종이 거의 다 되어가자 아이크는 더 오래 같이 달라고 하면서, 자기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죄 사함을 받고 천국에 가는 도리에 대하여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성경을 펴고 간단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어떤 공로나 노력이나 선행으로 또는 교회를 다닌 기간으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믿고 죄 사함을 받아야 천국에 가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 후에 아이크는 말했습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나는 이제 준비가 되었습니다.’ 이 유언을 남기고 그는 평온히 임종을 맞이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