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대의 대학생선교단체인 한국대학생선교회(대표 박성민, CCC)가 최근 정치적 발언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전광훈 목사, 한기총)에 탈퇴서를 제출했다. CCC는 그동안 한기총 회원단체로 참여해 왔으나 활동은 하지 않았다. 한기총 자료집에도 회원단체 목록에도 빠져 있었다. CCC는 한기총이 최근 발표한 성명서 내용 가운데 한경직 목사와 김준곤 목사(한국CCC 설립자)가 한기총 설립을 주도했다는 주장과 관련 “김준곤 목사는 한기총 설립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바 없다”며 “앞으로 김준곤 목사를 언급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CCC는 한기총 창립준비위원회 서기를 맡았던 노량진교회 림인식 원로목사(예장통합 증경총회장)의 발언을 통해 김준곤 목사가 한기총 설립에 관여했다는 한기총 전광훈 대표회장의 발언을 부정했다. 림 목사는 “영락교회 한경직 원로목사가 한기총 창립준비위원장을 맡았으며, 각 교단 증경 총회장 등 40여명이 산파역할을 했다”며 “김준곤 목사는 대학생 선교단체 대표로 한기총 설립에 참여하거나 관여할 입장이 아니었다. CCC 김준곤 목사는 교단 총회장을 지낸 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준비위원회에 참여를 안 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한
다음세대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 포스트모던의 세상을 지나 4차 산업혁명시대, 다가오는 AI세상의 시대를 살아갈 세대에게 본질을 준다는 것! 새 술이어서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그들에게 전통과 종교를 깨고 생명과 진리를 전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그들에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줄 것인가? 본질과 비본질의 문제! 생명과 진리, 전통과 종교의 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답을 찾을 것인가? 본질의 문제란 과연 무엇인가? 필자는 지난 글을 ‘우리는 새 술과 새 부대가 될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으로 마무리했다. 이 질문은 우리에게 “생명과 진리, 전통과 종교라는 측면에서 이제 과감히 전통과 종교화 된듯한 모습에서 돌이킬 준비가 되었는가? 우리에게 편하고 익숙하고 일부가 되어버린 어떤 요소들을 과감히 버리고 바꾸어 나갈 준비가 되었는가?”라는 질문임과 동시에 “생명과 진리라는 전제를 배경으로 과감하게 새로워질 준비가 되었는가?”하는 것이다! 우리는 변화를 준비하고 있는가? 우리는 새 술과 새 부대가 될 준비가 되었는가? 한 번 더 생명과 진리, 전통과 종교를 명확히 짚고 가자!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이 분명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분명하지 않은 것이다
“여보 저거 임신한 것 같지 않아요?” 예배당 마당을 어슬렁거리고 있는 고양이를 보고 아내가 놀란 듯 외친 말이다. 그 고양이는 동네 혼자 살고 있는 어느 할머니가 기르는 고양이인데 먹이가 부족한지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찾아다닌다. 시골인 이곳은 음식 찌꺼기를 두엄 칸에 버리거나 한 쪽에 구덩이를 파고 버리는데 교회 정원 한편에 있는 구덩이에도 자주 찾아오는 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 눈에 부른 배가 보인 것이다. 마침 집에 유통기한이 조금 지난 연어 통조림이 몇 개 있었는데 그것을 주자는 말에 캔을 따서 주었더니 허겁지겁 먹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집에는 안 가고 마당 한 구석으로 가 퍼질러 누워버렸고 결국 연어 통조림을 먹는 며칠 동안 집에도 가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딸아이가 고양이 준다며 사료를 사왔고 고양이는 그것을 얻어먹으며 제 집인 양 현관 앞에 자리를 잡고 살기 시작했고, 그 소문을 들은 주인 할머니는 목사님 댁에서 잘 얻어먹고 살라 하며 찾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사택 뒤꼍에 있는 심야 보일러 저수통 근처에서 아주 작게 ‘낑’하는 소리가 들려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보니 고양이 새끼 네 마리가 거기에 있었다. 그 소식을 전해
로마 멸망의 원인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다양한 이유들을 제시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설, 쾌락의 대명사인 혼욕으로 문란한 성적 향락을 제공한 목욕탕 설, 납 성분의 수도관 구축으로 인한 납중독 설 그리고 극단적인 타락설 등을 말하곤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나카가와 요시타카의 ‘빵과 서커스(Bread and Circuses)’의 역자 임해성이 ‘이 책을 읽기 전에’를 통해 언급한 대로 로마의 멸망 원인이 꼭 그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미 앞서 언급한 것들은 로마 초기부터 있어 왔던 문화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의 쇠락은 제국의 거대한 규모가 가져온 자연스럽고도 불가피한 결과였다. 번영은 부패를 촉진한다. 정복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파멸의 압력은 늘어간다.”는 임해성의 로마 멸망 진단에 수긍을 하게 된다. 고작해야 9m 앞 밖에 볼 수 없는 코뿔소가 앞을 향해 돌진하듯이 7~80년대 한국교회는 오직 부흥이라는 대명제 아래 코뿔소처럼 눈앞만 보고 돌진하듯 달렸다. 그 결과 제2의 예루살렘이라는 세계의 찬사를 들으며 부러움의 영적 대국이 됐고, 로마가 정복전쟁을 벌이듯이 한국 기독교는 서로 앞다퉈 전 세계로 선교전쟁을 시작
한국교회의 다음세대가 무너지고 있다는 이야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1990년 이후 한국교회 주일학교는 급격히 감소했다. 예장통합을 비롯해 합동, 고신, 감리교회 등의 주일학교 출석률은 최저 30~50% 가까이 감소했다고 한다. 우리교단도 정확한 통계 수치를 발표하고 있지는 않지만 매년 정기총회를 통해 보고되고 교세 보고서에는 주일학교 통계가 없는 교회들이 대다수이다. 그러고 보니 한국교회가 다음세대를 위한 대안이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들이 소개되고 교회에 적용되고 있지만 실제적인 효과는 미지수이다. 이제까지 다음세대를 위한 프로그램은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실험적으로 시도되고 있다. 주일학교 활성화를 위해 교회의 연합 행사나 다음세대 전도 사역들을 전개하고 있지만 해결책이라고 보긴 어려운 실정이다. 일부 뜻있는 교회들만이 다음세대를 품으며 복음을 전하고 있지만 정작 성도들의 믿음의 유산을 자녀들에게, 다음세대들에게 전수되는 상황까지 이르지 못하고 있다. 한국교회가 더 늦기 전에 다음세대의 부흥을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지난 6월 13일 기침미래포럼(이사장 지덕 목사, 대표회장 김현일 목사) 세
한 해를 시작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6월이다. 6월은 우리 근현대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고 있다. 6월 6일은 현충일이고, 한국전쟁도 6월 25일에 발발했다. 이러한 이유 등으로 6월을 호국 보훈의 달이라 부른다. 호국보훈(護國報勳)이라 함은 나라를 지키고 나라를 위해 힘쓴 사람들의 공훈에 보답한다는 의미다. 그런 만큼 해마다 6월이 오면 전 국민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피 흘렸던 순국선열들을 기리기 위한 마음가짐을 품고 일치단결하게 된다. 조지 버나드 쇼는 “역사가 되풀이되고 예상치 못한 일이 반복해서 일어난다면 인간은 얼마나 경험에서 배울 줄 모르는 존재인가”라고 말한 바 있다. 때문에 우리는 역사를 반면교사 삼고 과거를 교훈 삼아 새로운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그렇다면 6월의 역사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무엇일까? 과거 한반도는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인해 혼돈에 휩싸였다. 이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인해 우리나라는 군인 26만 명, 민간인 100여만 명(추정)이 피해를 입었고 공업기반의 절반이 무너졌다. 이는 흡사 예레미야애가 4장에 펼쳐진 광경이 한반도 전역에 펼쳐진 것이라 할 수 있다. 휴전 후 미소 주도의 냉전 체제가
우리교단 총회가 소송으로 빨간불이 켜졌다. 여의도 국회 난맥상과 닮아도 너무 닮았다. 교단 역사상 진영논리와 법적 다툼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임원 직무정지와 같은 초유의 사태는 그야말로 충격적인 사건임에 틀림없다. 총회의 규약에 근거해 대화와 협의를 통해 풀어나갈 수 있는 문제들임에도 총회 결의를 따르지 않고 세상 법으로 문제를 해결해 온 결과라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서두에서 밝혔지만 사실 매 총회 회기마다 이 같은 법적 다툼은 끊이지 않았다. 총회를 대표하는 총회장이나 임원, 목회자가 1회 이상은 경찰서나 법원에 출두해 조사를 받는 것이 새삼스럽지 않은 일이 돼버렸다. 또한 법적 다툼으로 발생하는 적잖은 소송비가 총회나 개교회 예산에서 처리되고 있어 복음과 선교를 위해 쓰여져야 할 헌금이 낭비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총회는 교회의 미래를 설계하고 대내외적인 어려움을 지혜롭게 헤쳐나기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함에도 진영논리, 법적논리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를 보는 대다수의 대의원들은 무관심하다. 아니 정확하게는 자신의 문제나 우리 교회만 아니라면 상관없다는 반응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보다 “내 편인지 네 편인지”에만 관심이 많
다음 세대, 이 시대의 최고의 화두! 10/40 창(10/40 Window)을 주창한 선교 전문가 루이스 부쉬라는 학자는 최근에 4/14 창이란 신개념 선교지를 선포했다. 내용인즉, 4세에서 14세의 다음 세대를 잃으면 모든 미래는 끝이 난다는 것이다. 이는 전 세계의 다음 세대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못한다면 기독교의 미래는 끝이 난다는 것에서 창안된 ‘신개념 선교지대’이다. 이러한 상황은 다음 세대를 잃어버린 서구 기독교, 그리고 멀리서 찾을 것 없이 지금 한국교회의 급격한 쇠퇴와 고령화의 모습이기도 하다. 시골 교회는 시골이라 할머니, 할아버지만 남았는 줄 안다. 그러나 도시의 교회를 가도 젊은이들은 거의 없고 고령화된 늙은 교회들이 대부분이다. 이번에 뱁티스트 트렌스포메이션(Baptist Transformation, 이하 BT)를 준비하면서 전국의 침례교회들의 상황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도시나 농어촌을 막론하고 다음 세대, 특히 청년부가 존재하는 교회들이 지방회 안에서 1/3이 안됐고, 그나마도 제 기능을 발휘하는 청년부는 1/4도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한국교회의 절반 이상이 주일학교를 운영하지 않는다는 보고는 우리가 이미 아는 상황이다. 대학
로마서 필사를 마치고, 성실히 완성케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필사를 끝마치며 감사 기도를 하던 중 이런 음성이 들렸습니다. “필사를 마치면서 네가 깨달은 것이 무엇이니? 어떤 마음으로 필사를 했니?”라는 음성에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는데, 또 물으셨습니다. “필사를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어서 했니, 칭찬 받고 싶어서 했니, 완성의 목적을 가지고 했니, 상 받고 싶어서 했니, 누구의 의를 위하여 했니?” 말씀을 대하는 저의 태도와 의도를 물으셨습니다. 나도 이것을 해냈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던, 일 중심적인 저를 발견하고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로마서 필사책을 폈습니다. 자세히 세세하게 다시 읽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주님과의 친밀함을 구하며 묵상을 써내려갔습니다. 로마서를 자세히 읽으면 읽을수록 울컥 올라오는 감동의 말씀들은 살아서 역사하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로마서 필사를 하며 ‘비판과 비난’이라는 주제로 훈습일지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사람을 보자마자 무의식적으로 장단점을 구분하며 비판했던 저는 이 문제가 죽는 날까지 해결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이웃사랑이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롬14:15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
오는 5월 31일부터 이틀간 서울광장에서 열릴 서울 퀴어 문화축제를 앞두고 한국교회의 반대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퀴어축제가 “시민 모두에게 열려 있는 인권 행사”라는 주최 측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한국교회는 “성경의 권위와 질서, 그리고 사회 근간을 뒤흔드는 악행을 용납하는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러한 한국교회를 비롯한 시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퀴어 문화축제 주최 측은 성소수자를 포함한 모든 이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인권 축제인데 필요 이상으로 한국교회가 반대하고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또한 대다수 한국교회와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은 문화축제라는 이름 아래 일탈의 선정성과 함께하는 상업성을 지적하며 반대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보수 기독교단체들은 대한문광장 앞에서 축제 이틀째인 6월 1일 오후 1시부터 퀴어 축제의 맞불 행사를 열겠다고 선언해 행사 당일 충돌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퀴어축제 행사에 강력 반발하고 있는 국민대회준비위원회 측은 지금의 성 소수자들은 세상 주요 언론의 관심을 등에 업고 선하지 않은 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민대회 측은 “퀴어 축제가 동성애자의 인권 보호와 평등
어린이날, 어버이날이 포함된 5월을 우리는 가정의 달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가정의 달을 맞아 사회 곳곳은 물론 한국교회도 여러 행사를 통해 가정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주님이 허락하신 성경적 가족이란 무엇인지 되돌아보면서 전도의 달로 삼았으면 한다. 성경은 가정의 중요성을 굉장히 심도 있게 다룬다. 십계명을 보면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 것과 안식일 등 주님과의 관계에 관한 계명 이후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이 바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이다. 성경은 남자인 아담을 창조하신 후에 돕는 배필로 여자인 하와를 창조해 가정을 이루게 하셨으며, 잠언은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잠 10:1)를 비롯해 자녀가 부모에게, 부모가 자녀에게, 남편과 아내 사이 등 가족 구성원이 마땅히 지켜야 할 교훈들로 가득하다. 신약에도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 5:8)라며 강한 어조로 가정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설파한다. 이렇듯 성경을 통해 주님께선 거듭 가정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성경적 가정을 세우는 일에 굉장한 도전
한국 침례교의 태동을 열었던 말콤 C. 펜윅 선교 130주년을 기념하는 기념대회와 한인침례인대회(영적성장대회)가 지난 4월 30일부터 3박 4일간 강원도 홍천 비발디 파크에서 900여 명의 침례교 가족들이 함께 한 가운데에 성공적으로 끝났다. 혼란스러웠던 임시총회가 끝나자마자 시작돼 130년 주년 기념대회가 차질은 빚을까 우려 속에서 열렸지만 우리교단 총회(총회장 박종철 목사)가 초청한 28명의 미남침례회 해외선교회(IMB) 소속 은퇴 선교사로 인해 대회가 빛났고 선교 사명의 뜻을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들 은퇴선교사 28명은 모두 한국에서 15년 이상 대한민국의 복음화를 위해 헌신했다. 펜윅 선교사는 조선을 사랑했고 동북아 북방 지역 선교에 모든 열정을 쏟았는데 그 열정이 은퇴선교사를 통해 다시 살아났다. 펜윅은 한반도를 복음의 전진기지로 삼았고 이를 바탕으로 북간도와 만주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국내 교회가 존재하지 않는 오지에 교회를 세우며 주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선교하는 교회, 전도하는 교회였다. 이 정신이 지금에 이르러 오늘날 한국의 침례교회는 성도가 2~30명만 되어도 해외선교사를 파송하는 교단으로 성장했다. 기독교한국침례회는 13
헌법재판소(헌재)가 최근 임신 초기 낙태까지 처벌하는 것은 위헌이라며 2020년 12월 31일까지 법을 개정하라고 했다. 이번 사건은 산부인과 의사 정모씨가 “낙태죄는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해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에서 시작됐다. 이로써 7년 전 합헌 결정은 뒤집혔다. 헌재는 지난 4월 11일 낙태죄 처벌 조항에 대한 위헌 청구 심판에서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또한 임신 초기의 낙태까지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했다. 이날 심판에서 헌재는 재판관 4명이 헌법 불합치, 3명은 단순 위헌, 2명은 합헌 의견을 각각 냈다. ‘헌법 불합치’ 결정이란 위헌성은 인정되지만 해당 법률을 당장 무효화할 경우 뒤따를 사회적 혼란 등을 피하기 위해 법률을 고칠 여유 등을 두고 효력을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태아 생명권 우선 입장’에서 ‘여성의 선택권 문제’로 바뀐 것이다. 헌재는 “태아 생명 보호라는 공익에만 절대적 우위를 부여할 수 없다”고 했다. 위헌 판결문을 쓴 헌재나 이를 찬성하는 집단이나 단체들은 앞으로 보수적인 교회들이나 이번 판결에 반대하는 항의자들로부터 거센 도전과 비판을 수없이 받을 것이 자명하다. “하나님의 심판이 두렵지 않
내일 일을 몰라 사람은 막말을 하면 안된다고 한다. 그야말로 언제부터인지 나의 입장이 그렇게 됐다. 나의 남편인 한명국 목사는 줄기차게 침례교세계연맹(BWA)에 몸바친 사람이고 그 덕분에 나는 가정과 교회에 대해 강하게 버텨가는 힘이 생겼다. 어떻게 여기까지 달려 왔는지 지나온 걸음을 되돌아 보니 아득하다. 어린 시절 집에 오면 따뜻한 어머니는 없고 서먹하고 썰렁한 선생님만 있었고 결혼을 해서 나이많은 남편에게 사랑받겠다고 선택은 했지만 남편은 없고, 목사님과 BWA만 있었던 것 같다. 언제 이 우리를 벗어나 볼까도 생각하고 이리저리 안간힘을 써봤지만 탈출하려는 나에게 어떤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은퇴하고 새로이 받은 교회는 다시금 최선을 다하겠다는 결심을 하기도 전에 정말 나의 의지가 아닌 다른 의지로 전국사모회에 헌신하게 됐다. 스스로 나를 반문해보고 또 불가능이라는 두려움이 나의 영혼을 짖누르기도 했다. 안한다라는 말을 수 없이 내뱉었다. 그러나 어느날 개척 초기 성도 한 분의 전화가 걸려왔다. “사모님 무슨 일 하시지요? 기도 중이 하나님이 사모님께 물질을 보내라 합니다” 나는 소름이 돋았다. 이 길을 비켜갈 수 없는 길이라 여기고 순종하기로 한 뒤
2019년 부활절이 우리 앞에 찾아왔다.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요 11:25)라고 말씀하신 그대로 자신이 직접 부활체로 나타나심으로 그 약속을 확증하셨다. 이는 예수님 자신이 메시아 되심을 증명하셨을 뿐 아니라, 그를 믿는 신자들에게도 부활의 소망을 안겨 주신 전대미문의 사건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시기까지의 기록을 보면 우리는 주의 길을 따르는 자들의 흥미로운 모습들을 관찰할 수 있다. 베드로는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세 번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며 도망가는 나약한 모습을 보였지만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은 후 누구보다도 먼저 무덤으로 달려갔고 부활을 목도한 후 용감하게 복음을 전하며 나아갔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유대인들이 두려워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임을 숨겼다가 빌라도에게 찾아가 예수님의 시신을 가져갈 수 있도록 허락을 구한 후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에 주님을 모셨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이들의 반응도 제각각이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목도한 후 의심하지 않고 바로 제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 일에 주저하지 않았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