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라고 예수님은 선언했는데 우리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온 것은 무엇 때문인가? “목사님, 좀 도와주세요!” 어느 주일 남루한 옷을 입고 술이 덜 깼는지 말도 또렷하지 못하고 얼굴이 검푸른 50대의 새 얼굴의 사람이 예배 전에 일찍 찾아와서 나를 만나자고 했다. 그는 구룡마을에 사는데 먹고 살기가 힘들어 찾아왔으니 제발 좀 도와달라고 간청했다. 언젠가 성탄절을 앞두고 극동방송국의 행사에 초대되어 갔더니 구룡마을 무허가 주택의 많은 사람들을 초청하여 잔치를 하고 있어 빈손으로 갈 수 없어 갖고 간 봉투를 김 목사님의 선한 뜻대로 사용되게 전달한 일이 기억나서 예배 후에 박종수 씨를 위해 헌금함에 도움의 손길을 광고했더니 개척교회 가난한 성도들이지만 15만원이 되어 기도하고 잘 전달해 줬다. 그런 후 매주일 예배에 일찍 와서 도와달라고 부탁하여 예배 후에 우리들이 개인적으로 도우다가 교회의 구호헌금에서 도왔다. 2년째에는 매주 돈 받으려 나온 걸인이 성수주일 교인이 되더니 한 달에 두세 번씩 왔다. 아마도 돕는 액수가 차츰 줄어드니까 예배 끝
-노부부 간의 침상 매너- 어떤 신혼부부는 결혼식을 마치자마자 신혼여행지에서 이혼수속을 밟지 않나 몇 년 살아온 젊은 부부 사이에 금이 간다고 하지 않나, 70~80 노령의 황혼이혼도 이따금씩 있다고 하지 않나 등 부부관계가 많이 흔들리고 있는 현 시대상을 보고 있자니 결혼생활 60여년을 지나고 있는 팔순 노목(老牧)이 약간은 치매성 걸린 듯한 인상을 받을지 몰라도 후배들에게 할 말은 하고 떠나야 할 것 같아서 횡설수설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들이 다 알고 있는 지극히 일상적인 이야기일 것이다. 에세이 형식보다는 조항별로 느낌을 제시하고자 하는 바 새로운 장르의 에세이로 봐달라는 애교도 부려본다. 첫째로, 합방(合房)을 하라. 분방(分房)은 안된다. 각방 쓰는 예가 허다한 부부들이 있는데 그들이 알아야 할 것은 부분은 스킨십(skinship)이 있어서 하트십(heartship)이 일어나고 그 때 골인하는 것이 바디십(bodyship)이다. 둘째로, 부부간에 침상에서 그날 마감기도를 했으면 한다. 분명 단잠을 잘 수 있다. 셋째로, 부부간에는 결콘 안면(安眠) 방해를 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자주 가는 화장실도 고이 이불을 제쳐놓고 도적 침입하듯 뒷발꿈치로 소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4:17)는 예수님의 첫 번 외치신 말씀에 젊은 목회 시절 은혜 받아 부흥회를 인도할 때는 거의 언제나 “회개에서 천국”이란 주제로 집회의 첫 시간에 소리쳤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옛날 선지자나 침례요한이나 예수님의 제자인척 흉내를 잘 내었던 것이었다. 요즈음도 사람들은 아마 죄를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를 싫어하고 꺼려하며 잘 들으려 하지 않는 것 같게 느껴진다. 그래서 고소한 얘기나 설교로 웃기는 코미디 출연으로 인기를 얻는가? 왜냐하면 요즈음뿐만 아니라 67년 전 중학교 1학년 때 교회 나갈 때부터 저나 다른 학생들이나 어른 교인들도 죄를 지적하고 회개하라는 설교를 귀에 달콤한 귀뚜라미 소리보다 좋아하지 않는 것을 보아왔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5:32)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3:12)라고 대답해 아내에게 떠넘겼고,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창
“지금부터 신랑 홍용표군과 신부 전미숙양의 결혼예식을 거행하겠습니다.” 1981년 11월 11일 오후였다. 시간이 지나자 신랑 신부는 상기된 얼굴로 예식을 재촉했고, 나는 주례사를 40분 넘게 제일 길게 했다. 신부를 데리고 입장하여 신랑에게 인계하고 곧장 나간 사람은 알고 보니 전세방 주인이었다. 신랑의 친구인지 직장동료로 보이는 몇 사람이 뒤쪽에 앉아 있었고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줬다. 거슬러 올라가면 어느 날 두 사람이 나를 찾아와서 결혼주례를 간곡히 부탁했다. 옛날 첫 번 주례처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었지만 좋은 일이라 생각하고 주례를 쾌히 승낙했다. 일단 새신자라서 산 밑 동리의 집을 찾아갔더니 전세방 살림을 초라하게 했고 이미 아기가 있었던 상태였다. 나의 목회 원칙대로라면 이런 경우에는 교회당에서는 결혼식을 허용할 수 없었다. 예전에 S씨의 경우와 같이 예식장에서 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을 했었지만 그들의 사는 형편이 너무 어려워 예식장은 정말 힘들겠다 싶었다. 이 신랑 신부의 사연을 듣고 교회당에서 주례를 허락하게 된 또 다른 동기가 있었다. 두 사람은 인하대학 재학 중에 눈이 맞아 사랑에 빠져 양가 부모들에게 미움을 받아 쫓겨났다. 하라는
“기적은 갓난아기 교회의 강보이다”라고 풀러는 교회사에서 말했다. 괴테는 그의 파우스트에서 “신앙의 가장 사랑스런 자식은 기적이다”고 했다. 에머슨은 그의 처세론에서 “기적은 기적적인 자연계에서 일어나지 수학자에게는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제레미 테일러의 성스런 죽음에서 “그처럼 많은 불은과 적의 가운데서도 인간을 살아남도록 하는 것은 인간을 창조하는 것만큼 큰 기적이다”고 말했다. “기적이 없었더라면 예수를 믿지 않아도 죄가 되지 않았으리라”고 파스칼은 그의 명상록에서 말했다. 다윗은 그의 시편 40편 5절에서 이런 찬미의 기도를 했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도소이다 내가 들어 말하고자 하나 주의 앞에 베풀 수도 없고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 1995년 BWA 제17차 대회를 마치고 홍순표 선교사의 초청으로 브라질 상파울로교회에서 부흥회를 마치고 귀국길에 LA의 로버트 슐러 박사가 섬기는 크리스탈 교회에서 예배하고 나오면서 그의 소명에 대한 읽은 글이 떠올랐다. 슐러 목사가 네 살이었을 때 삼촌이 중국을 다녀와 그의 집인 아이오와 목장을 찾아오셔서 문 앞에서 만났을 때, “네가 로버트이지?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18:8)라고 예수님은 반문하셨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마17:17)라고 예수님은 당시의 세대도 질타하셨지만 재림의 때인 종말 세대에는 믿음을 보기 어렵다고 예언하셨는데 67년전 처음 교회에 나갔을 때보다 점점 믿음이 식어지고 나태해 해이해지는 것을 54년간 목회현장에서와 지난 35년간 80여 나라의 137회 외국 선교 여행에서도 보아왔다.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 하였으리라”(눅17:6) 반실불수 다리 치유 나는 나이 28세에 학업과 목회를 중단하고 국방의 의무를 위해 고향으로 가다가 사람들의 소개로 김천에 내려 용문산 기도원에 올랐다. ‘믿음’방에 투숙했는데, 나와 같이 작은 방에 합숙한 이성환 씨는 반신불수로 왜관에서 왔는데 방앗간을 하고 있다고 했다. 자기 말로는 여자관계로 미군과 싸워 넘어져 그 결과 팔은 오그라졌고 다리는 굽힐 수 없는 편 다리가 됐다고 했다. 군 입대를 준비를 위해 한 주간 금식기도를 하려고 올라왔는데, 그가 자꾸 예배하고 기도해 달라고 해서 첫날은 지은 죄를 회
“모든 천사들을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얻은 상속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히1:14) 성경엔 천사들의 활동이 나타나 있는데, 특히 예수님과 천사들의 관계는 많았고 신구약 성도들에게 천사 곧 주의 사자와의 도움과보호, 인도와 역사가 많은데 그중에 몇 가지를 살펴보고 오늘 우리도 천사의 섬김을 받아 훌륭한 후사 곧 상속자로서의 삶과 복음전파에 동역해야겠다. 고장없이 선 트럭 성경 반포 선교의 실화로 무슬림 국가인 이란의 산골에 처음으로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이 성경책을 구하면 예수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고 들었다. 어느 날 밤 한 신자가 꿈을 꾸었는데 그는 말하기를 내일 고속도로에 내려가면 그에게 성경책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지나갈 것이라고 했다. 다음날 그는 마을에서 믿는 사람들에게 성경 살 돈을 조금씩 모아 갖고 산을 내려가 그 지역을 관통하는 고속도로에 이르러 바위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을 지나가는 한 트럭엔 두 사람이 타고 있었는데 갑자기 핸들이 움직이지 않아 아무리 해도 핸들이 꿈적도 하지 않았으나 가까스로 어떻게 핸들을 움직여서 길가에 차를 세웠고 내려서 어디가 고장이 났는지 살피게 되었다. 그런데 큰 바위에 앉아 기다
포천 양로원에 사역하는 김익수 목사 따라 약속대로 15분 설교를 마쳤는데 휠체어에 앉은 어르신네들의 반수쯤 비스듬히 기대어 졸고 있었다. 예배 후 2층에 올라가니 침상에 누운 90세 전후의 노인들이 음식을 못 먹고 링겔에만 의지해 연명하며 신음하는 소리가 구슬프게 들렸다. 인생은 生老病死라고 어려서부터 들었으나 에녹, 아브라함, 모세, 여호수아, 다윗, 천수를 누린 사도 요한을 위시한 다른 사도들처럼 장렬한 순교의 삶이 떠올랐다. 응급환자실을 방문했을 때 그들의 신음소리가 노래처럼 흘러나옴을 듣고 환자들의 마지막을 감지할 때 주님의 자비와 긍휼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주 왕하 5장의 나아만의 설교를 하면서 교만을 내리고 겸손히 요단강에 7번 목욕해 어린 아이의 살같이 문둥병의 치유 받은 기적은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 선지자의 말에 순종해 실행한 그의 믿음과 순종의 열매였음같이 지금도 똑같이 하나님의 말씀의 믿음과 순종이라 생각되어 아래의 말씀을 나누게 된다. 지난 50여년 목회사역 가운데 나의 병고를 돌이켜 보면서 병자들의 고통과 슬픔, 낙망과 죽음의 그림자에 신음하는 모습에 동정과 불쌍히 여김이 저절로 발산되고 어떻게 저들을 치료하고 주님의 기적의 능
살아갈수록 좀 불편한 것이 아주 편하다는 것을 생생하게 느끼게 되고 이 사실을 타인들에게 일종의 진리나 되는 것처럼 말해 주고 싶었다. 우리의 생활에 불편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못 가졌기에 불편하기보다는 가졌기에 더 불편하다는 것이다. 어느 스님이 말했던가. 그건 누가 말했던 상관없다. 무엇을 가졌기에 부자(富者)가 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안 가졌기에 부자가 된다는 것인데 듣기에 따라 알쏭달쏭하다. 그러나 성경이 이 말의 의미를 명료하게 밝히고 있다. “내가 궁핍함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1~13) 그렇다. 풍부한 소유보다 풍성한 자기가 돼야 하는 것이겠다. 법정 스님의 말이다. 또 이런 말의 정확한 해명은 성경이 말하고 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나에게는 우선 스마트폰이 없다.
침신대 신학대학원에 입학하기 전 한 주간 먼저 신학교에 와서 기숙사에서 아래의 성경을 읽다가 충격적인 말씀으로 받아 문 닫으려는 도안교회에 자원해 목회를 시작하게 됐다. “들의 짐승들아 삼림 중의 짐승들아 다 와서 삼키라 그 파수꾼들은 소경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라 능히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요 누운 자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니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요 그들은 몰각한 목자들이라 다 자기 길로 돌이키며 어디 있는 자이든지 자기 이 만 도모하며 피차 이르기를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라 우리가 독주를 잔뜩 먹자 내일도 오늘같이 또 크게 넘치리라 하느니라”(사56:9~12) 성문 앞 네 문둥이는 벤하닷이 거느린 아람군대의 사마리아 성 포위로 진퇴양난이요, 사면초가에 놓였다. “성문 어귀에 문둥이 네 사람이 있더니 서로 말하되 우리가 어찌 하여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랴 우리가 성에 들어가자고 할지라도 성중은 주리니 우리가 거기서 죽을 것이요 여기 앉아 있어도 죽을지라 그런즉 우리가 가서 아람 군대에게 항복하자 저희가 우리를 살려 두면 살려니와 우리를 죽이면 죽을 따름이라”(왕하7:3~4) 그들이 일어나 죽기를 각오하고 아람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3:8~10) 근래에 와서 인터넷을 통해 “십일조를 내지 말라”는 설교를 몇 번 살펴보면서 혹시 이단자들이 아닌가? 오래전 십일조를 안내면 도둑놈이라 설교한 전 목사와 나아가 지옥간다고 소리친 윤 목사를 이단이라고 해서 한기총 이대위원장때 교정한 일이 있었는데 십일조 때문에 상처를 입은 일이 있어서인가? 어떤 교회처럼 재정 관리를 정직하교 효율적이며 투명하게 하지 않는 교회에 대한 반감에서인가? 퇴직금을 100억, 200억을 받는다는 대형교회 목사들에 대한 역반응에서인가? 생각하다가 아무래도 이 말씀을 나누게 됐다. 필자는 6·25전란 휴전 후 54년 대구영남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대구에 하나뿐인 전란 중에 부산에 있던 래이(이대복) 선교사가
나는 서제 벽에 무식하게 굵은 대목을 몇 개 박아 놓고 외출에서 돌아와서 거기에다가 외투나 가벼운 겉옷을 걸어 놓는다. 아내는 이따금씩 서재에 들러 보기 흉하게도 이런 못에다가 옷을 걸어 놓느냐고 거의 짜증스럽게도 훌훌 걷어서 다른 방에 갖다 버린다(?). 스탠드 옷걸이를 비치하면 될 것을 왜 그러느냐고? 언젠가 나도 모르게 대못을 벽에 박아 놓은 것이 있어서 그냥 쓰고 있는 것뿐이다. 자주 아내가 촌스러운 영감쟁이라고 놀려대도 끄덕 없이 지내는 이 노인의 무의미한 고집이라 할까? 그런데 어느 날 책에서 눈을 떼고 바라보니 못과 외투가 벽에 걸려 있는 것이 새삼스럽게 돋보이는 것이다. 나는 순간 자문(自問)해 봤다. 왜 나는 아내가 그토록 못마땅한 옷걸이 행세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라까? 그리고 더 깊은 실제문제로 나아갔다. 못이 거기 있어 옷을 거는 거냐? 옷이 있어서 못에 거는 거냐? 가령 외투 옷이 있었다 하더라도 벽에 못이 박혀 있지 아니했더라면 거기에 걸려 있지 않았을 것이 아니냐? 그렇다. 그런거다. 나는 놀라운 발견을 했다. 그리고 그런 것을 발견한 나의 지혜에 스스로 감동(?)까지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편 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아무리 외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불가사의해 저의 좁은 식견으론 표현 불가능한 졸필이지만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인류 구속의 놀라운 섭리는 바로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으로 신비중의 가장 큰 신비요 기적 중에 최상의 기적이며 하나님의 사랑 중에 지극한 사랑의 극치요 인간으로선 정말 전무후무한 역사적 사건이었으니, 예언된 “오리라 한 엘리야”로 마지막 선지자 침례 요한은 십자가를 지고 끌려가는 예수를 미리 내다보듯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라고 주전 800여 년 전 이사야 선지자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도 53:7) 라는 예언의 성취를 증거했다. 이미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의 금단의 열매인 선악과를 따먹고 불순종의 범죄인 원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여자의 후손인 예수께서 십자가에 들림으로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을 언약으로 말씀하셨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4:1,2상)라고 엄명한 말씀은 주님의 지상명령(The Great Commission) 혹은 최후명령처럼 바울 사도의 유언이요 최후명령으로 때를 얻든 못 얻든 영혼구령을 명령했다. 선전종이와 공짜 이발 해방 후 우리 마을엔 이발소가 없었다. 고모부 댁에 가서 이발을 몇 번 했는데 당시 이발 기계는 두 손으로 머리를 깎는데 기계 이빨이 여러 개가 빠진 오래된 기계라서 머리털이 잘 깎이지 않아 전진후퇴를 할 때면 머리가 아파서 여러 번 울곤 했다. 그래서 어머니가 가위로 머리를 깎아주셔서 학교에 갔더니 동무들이 “머리칼을 소가 뜯어먹었다!”고 놀려댔다. 토요일이 되면 어김없이 노란종이를 아무 말 없이 뿌리고 다니는 사람이 있었다. 동무들의 말은 “예수쟁이”가 예수 믿으라고 하는 “선전종이”(전도지)라 했다. 교회에 안 다니는 우리들은 놀려댔다. 어떤 때는 “예수를 믿지 말고 나를 믿어라!”고 골목대장인 내가 먼저 소리치면 아이들도 작은 막대기를 흔들고 나를 따라 하기도 했다. 그런데
1950년도를 전해서 우리나라에는 거지떼들이란 무리가 있었다. 일제 강점기의 고난과 6·25 전쟁의 전란에서 생겨난 동냥패들의 모임이 거지떼들이었다. 나는 그때 십대 청소년으로 그 거지떼의 모습을 유달리 새겨보는 지혜를 가졌다고 할까! 나는 그들의 삶의 조직과 패턴을 자세히 검토한 것 같다. 그들에게는 일정한 조직의 패턴이 있었다. 보통 10여명의 거지들이 한 떼가 되어 동냥을 하고 다녔다. 그들은 어느 동네 누구네 집에 길사(吉事)나 장례일이나 제삿날을 꼼꼼히 기억했다가 그 날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가서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지만 당당히 동참한다. 그들의 조직을 자세히 보면 거기에는 왕거지 대장이 있고, 규율을 지키는 규율부장이 있고, 재무(?)를 관리하는 재무부장이 있고, 동네마다 길사흉사 등 대사가 있는 가구의 일시 주소를 챙기는 섭외부장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여기 부장이라고 한 것은 내가 지금 임의로 붙인 이름이지만 직분만은 꼭 그런 것 같다. 가령 섭외부장이 어느 집 잔치집에 들어간다. 다른 거지 양반들은 잔치집에 얼씬도 못하고 저 동네 한 모퉁이 보이지 않는 곳에 조용히 좌정하고 오직 섭외부장 한 사람이 잔치집에 들어가서 거지 인원보고와 거지 모인